알아맞혀 봐! 곤충 가면 놀이 - 2021 책날개 선정, 2019 책날개 선정, 학교도서관저널 선정, 2019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 바람그림책 68
안은영 지음 / 천개의바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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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획 정말 참신하다. 곤충, 그리고 평소에 주목하지 못했던 곤충의 얼굴(가면), 그리고 퀴즈.
"누구일까? (책장을 넘기고) 누구네!!" 하는 컨셉의 그림책은 흔한 편이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흥미롭다. 세상 궁금한 거, 호기심 없는 나도 어느새 혼자서 퀴즈를 맞히며 책장을 넘기고 있으니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다.^^

평소 곤충의 모습은 주로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 관찰된다. 곤충과 정면으로 마주할 일이 있었던가?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세상의 새로운 모습 한 자락을 우리에게 펼쳐준다고 볼 수 있겠다.

본문에 12종, 마지막 면에 18종이 추가로 소개된다. 본문 12종 중 내가 맞힌 건 개미, 사마귀, 꿀벌, 메뚜기, 거미 정도다. 그것도 가면 자체보다도 옆에 쓰여있는 정보를 보고 알아맞힌 것이다. 그러다 생각났는데, 아이들에 이 책을 보여줄 때 1)그림만 보여주고 맞히게 한다. 2)못 맞히면 옆면의 힌트를 읽어준다 3)그래도 못맞히면 다음장을 넘겨 정답을 확인한다 이런 순서로 보여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무척 다양하다. 우리반엔 곤충덕후가 있다. 장수하늘소 정도는 기본이고 타란튤라도 키운다고 했던가? 지나가는 말이라도 곤충에 대한 말이 나오면 우리는 이 아이의 덫에 걸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이는 신이 나서 곤충사랑을 역설하고 우리는 재밌어도 했다가 꺅 비명도 질렀다가 하면서 아이의 덕후질에 웬만큼 동조를 해준다.^^

또 한 아이는 곤충 공포증이 있는 아이다. 덕후랑 친한 남학생인데, 전에 '고민'에 대해서 글을 쓸때 "친구들이 곤충으로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써서 따로 조용히 불러 상황을 물어본 적도 있다. 그 아이가 곤충을 무서워하는 게 재밌어서 친구들이 책읽다가 곤충 나오면 일부러 펼쳐서 보여주고 그러는데 그게 너무 무섭고 싫다는 것이다. 나도 덕후보다는 공포증에 가까우니 이해가 가기도 한다.^^;;;

이런 상반된 취향이 공존하는 곳이 교실. 그렇지만 이 책 정도면 그 격차를 확 줄이고 함께 활동할 수 있겠다. 퀴즈도 풀고 가면도 만들어 활동하면서 무관심했거나 잘 몰랐던 모습을 세세히 살피고 그 특징을 발견하다 보면 대상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생길수도....

작가의 이력을 보니 우리반 곤충덕후보다 더한 분이다. 거의 동물에 관련된 책을 만드셨는데 주로 곤충, 또는 양서류 파충류 등 선호도가 낮은 동물들을 다루었다. 자연과 생태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책의 제작과정도 한 장 한 장 아주 세심한 작업이 이루어진 것 같다. 그림책은 예술일 뿐 아니라 그 안에 제작자들의 세월과 노력이 집약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그 노력이 보람있으면 좋겠다. 인기예감이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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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자판기 큰곰자리 38
이기규 지음, 강은옥 그림 / 책읽는곰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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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규 선생님은 책을 참 많이 쓰셨다. 인권교육으로 유명하신 분인데 교육에 대한 책보다도 거의 동화를 쓰신다. 짐작컨대 본인의 신념을 동화 안에 녹여내려는 것 아닐까 한다. 그런데 동화는 신념(주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이야기는 움직여야 하고 살아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하니까. 선생님은 인권활동을 하시면서도 동화 공부를 많이 하신걸까 아니면 타고난 이야기꾼인 걸까 궁금하다. 이기규 선생님 책에 리뷰는 처음 써본다.^^

이 책은 세 편이 실린 단편집이다. 첫번째 작품 <계단 뱀>에는 학생인권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담긴 것 같다. 준후네 학교에는 곳곳에 뱀이 산다. 교문 뱀, 계단 뱀, 복도 뱀, 교실 뱀 등. 이들에 대한 소문도 흉흉하다. 친구들은 대부분 뱀을 무서워한다. 그러나 준후는 달랐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뱀을 노려본다. 뱀은 준후를 위협하고 겁을 주지만 지후는 끝까지 버틸 뿐 아니라 마지막엔 뱀을 꽉 깨물어 쫓아버리기까지 했다.

여기에서 뱀은 학교 권력을 형상화한 것이라 해석된다. 근데 읽다가 약간 기분이 꿀꿀해졌다. 교실 뱀은 "모두 가림판 세워! 셋 셀 때까지 손 머리에 올려! 두 눈 꼭 감아! 안 그러면 모두 꿀꺽 삼켜 버릴 거야."
"무조건 하라면 해! 안 그러면 네 시험지를 빵점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계단 뱀은 "꼬맹이들은 중앙 계단을 이용할 수 없어. 그게 바로 법이야!"
요즘 이러는 학교는 거의 없을텐데.... 아이들을 집어 삼킬 기세의 교사는 또 얼마나 있다고... (집어삼켜지지 않으면 그저 감사한데 나는) 교사권력이 이렇게 아이가 맞서 싸워 물리칠 권력이 못되는 거 교사라면 다 아실텐데 이렇게 묘사된 것이 조금 아쉽다. 오히려 꼭 필요한 최소한의 권위를 세우는데도 고군분투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따로 있다. 준후는 복도 뱀을 만났다. 복도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하려는 준후에게 복도 뱀은 아주 친절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복도에서 뛰면 안된다고 일러주었다. 왜?라고 묻는 준후에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조용히 설명한다. 그래도 뛰면 깨물거냐는 질문에는
"아니,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네가 다칠까봐 정말 걱정이 될 거야."
준후는 뱀의 친절한 눈빛이 '맘에 들어서'
"좋아! 그럼 뛰지 않을게. 이제 됐지?" 라고 한다.
에고 상전이 따로 없구나....ㅎㅎ 눈빛이 맘에 안들면 뛰어도 되나?ㅋㅋ 그러다 다치면 누가 책임지나? 공공장소는 학교 복도 뿐이 아닐 터, 앞으로 사회에서 지켜야 할 질서와 에티켓은 누가 가르치나?
물론, 같은 것을 가르쳐도 고압적인 태도가 아니라 아이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며 가르치라는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다. 그래도 아이와 뱀이 대결하는 이런 구도는 별로 공감되지 않는다. 뭐 나만 그런 거겠지.ㅎㅎ

두번째 작품은 표제작인 <옛날 옛적 자판기>다. 두견산에 소풍을 갔던 준영이와 호야는 고장난 자판기 앞에서 빵을 먹고 봉지를 아무데나 버렸다가 커다란 집게를 든 꼬부랑 할아버지를 만나 옛날 이야기를 듣는다. 옛날옛날 큰스님과 지내던 동자승이 요술 샘물을 마시고 변신술을 쓰게 됐는데, 변신술로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소문을 듣고 큰스님이 동자승을 잡으러 왔다. 이리저리 피하던 동자승은 마지막에 대추나무가 되었는데 그와 동시에 대추나무는 벼락을 맞았다는 이야기.
할아버지는 이어서 두 번째 이야기도 들려준다. 몇백년 후, 그 옹달샘이 있던 자리에 자판기가 세워졌다. 어찌어찌하여 그 자판기에서 나온 음료수를 먹으면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든다. 이제 그 사람들은 뭐가 되었을까? 한방에 가장 좋은 것이 되려고 머리를 쥐어짠 사람들이 마침내 된 것은? 그리고 그 최후는?
옛이야기 방식에 현대인들의 문제까지 담았다. 생각할 것이 많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작품은 <그슨대가 보이나요?> 그슨대가 무엇일까 제목을 보며 궁금했다. 사람들의 화를 먹고 사는 요괴라고 한다. 까만 그림자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하늘이와 상민이는 싸워서 화를 내고 그슨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각 사람들마다의 그슨대가 있고 그게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도 알게 된다. 화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작아지는 것도, 화를 못내고 가슴 속에 쌓아도 커진다는 사실도.... 그런데 교실 안 그슨대의 상황을 관찰하던 두 아이는 가장 큰 원인을 발견했다. 그건 선생님이 모둠별 보상으로 사용하시는 막대사탕이었다. 어느날 교실에 몰래 들어가 창밖으로 사탕 통을 뒤집어버리고 미소짓는 결말이 오카다 준의 <스티커 별>을 연상시킨다. 화의 다스림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결말이 정말 의외다. 선생님들 사이에 있는 보상에 대한 의견 중 가장 부정적인 쪽이 아닐까 한다. 분노요괴의 원인이 막대사탕으로 귀결되니 말이다. 하지만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 전체 협력을 해치는 건 교사라면 누구나 체감해봤을 터이다. 우리 교실에 츄파춥스 통 같은 건 없지만(비타민 한 봉지는 있다^^;;) 뭐든 미션을 만들어 전체에게 같이 주며 격려하는 방식을 취하려고 한다. 이런 방식을 교사들끼리 고민하고 공유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안면은 없지만 존경하는 동료교사이자 학교 후배인 저자의 책에 너무 실례되는 리뷰를 남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나도 깨어있으려 애쓰겠다. 다음 작품은 어떻게 구상하고 계실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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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행성 보고서 큰숲동화 9
유승희 지음, 윤봉선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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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미치겠다. 이 책은 또 뭐냐.^^ 유승희 작가는 '콩팥풀 삼총사'로 내게 인상적인 작가라 이 책을 발견하고 당장 주문했는데, 이건 뭐 웃기고 엉뚱하고 어이없는 새로운 차원의 상상력이다.

이 작가가 주변인이라면 난 싫을 것 같다. 미술 전공이고 유학까지 다녀왔으며 그림작가로 활약했는데 언제부턴가는 동화도 쓰게 되었다는.... 세상은 공평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한가지만 뛰어나도 족할텐데 세상 참 너무하네.ㅎㅎ

외계생명체와 발달된 과학을 다뤘으면서도 이 책의 상상력은 초반에는 참 태평하며 발랄하다. 우주선에 탑승했던 외계인 셋이 사고로 지구에 불시착한다. 그들은 지구보다 훨씬 더 앞선 문명을 가진 나끄 행성에서 왔다. 함장 뽈라와 항해사 루까, 그리고 우리치 박사. 이렇게 생명체 셋과 인공지능 쮸비가 지구에서 겪는 이야기다. 박사는 지구인에 대한 자료를 분석하고는 흥미를 느껴 귀환을 미루고 근접관찰을 결심한다. 그가 알아내는 인류에 대한 정보들이 흥미롭다.
"역사의 대부분이 거의 전쟁이야."
"문학작품이나 철학 사상을 살펴보면 꽤 고결한 면도 있기는 한데...."
"폭력이 있지만 희생과 협력에 대한 수많은 기록들이 또 그만큼 있단 말이지."

폭발의 충격으로 셋의 탈출정은 링크가 끊어져 함장 뽈라만 다른 곳에 떨어졌다. 그곳은 박사장의 재활용센터(고물상). 박사장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함장은 인간의 인간적 성품을 제대로 체험한다. 다른곳에 떨어진 나머지 둘은 인간의 비인간적 성품을 체험.... 모든 기능이 탑재된 털을 깎이고, 언론에 보도되어 구경거리가 되고, 결국은 우주항공센터에 잡혀가는....

아참, 외계생명체의 생김새에 대한 상상력이 참 중요한데 이 책에선 그 설정이 정말 너무 무성의하달까?ㅎㅎ 지구의 한 동물종, 개와 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물론 외양만 그런 것이다. 인간을 보고 "뭐야, 다른 생물체를 포식하는 종족인 거야?" 라며 놀라는데, 그들은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생존하는 생명체라 한다.^^ 세포조직과 내부 기관이 전혀 다른 것은 물론이고.

함장 뽈라가 나를 만났다면 훨씬 쿨하고 밋밋하게 지구를 떠날 수 있었을 텐데(물론 그러면 기승전결이 성립되지 않아 이야기가 되지 않음), 무뚝뚝하지만 의리있고, 우직하지만 정이 깊고, 무관심한듯 오지랖 넓은 박사장을 만나서 여러가지 감정 체험을 하고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를 가슴 졸이게 만들어낸 후에 자기들 별로 돌아간다. 발달한 문명의 그들은 지구인에게 남아있는 그들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우고 떠났다. 그들에 대한 흔적은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기억 한조각마저도.

마지막장, 에필로그에선 나끄 별로 돌아간 우리치 박사의 보고서 내용이 나온다. 그 보고서는 엄청 욕을 먹는다. "이런 보고서가 어디 있소? 이런 하나마나한 보고서는 안 가 보고 여기서 써도 되겠소!"
그 보고서의 제목인 즉 이렇다. "말기 화석 문화와 지구인 생태 - 원시 문명의 역동성"
그 내용은.... 내가 아무리 스포에 개의치 않고 리뷰를 쓰는 스타일이지만 이건 참겠다.ㅎㅎ 세상에 딱 떨어지는게 뭐 그리 있으랴. 중요한 일일수록 규정하긴 힘든 법.^^

외계인의 눈을 빌어 인간을 바라본 작가는 이렇게 말하나마나한 메시지를 엉뚱한 상상력 안에 선명히 남겼다. 만화영화나 연극으로 각색해도 재밌지 않을까 라는 문외한의 의견을 남겨본다. 다음으로 작가의 최근작 <불편한 이웃>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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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해서 그랬어! 푸른숲 어린이 문학 3
정연철 지음, 조미자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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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가.... 청소년 소설에 가까운 고학년 동화다. 아이들의 상황과, 심리와 행동이 아주 현실에 가까우면서도 현실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슬픔이 느껴져서다. 나의 모자란 성품으로는 그렇다. 이 사람들을 현실에서 내 학생으로, 내 가족으로 만난다면 나는 슬픔보다 화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걱정하고 슬퍼하는 감정보다 짜증내고 답답해하는 감정이 앞서서 괴로워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경상도 산골의 한 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세 편의 연작이다. 제일 먼저 시골집에 맡겨진 진수 진희 남매가 나온다. 자신도 추스르기 힘든 부모는 몇년째 아이들을 보러오지도 못한다. 여름방학이 되었지만 즐거운 계획이 있을 리 만무. 그곳 민박집에 빚쟁이들에게 쫓긴(쫄딱 망한) 뚱뚱보 가족이 들어온다. 서로 놀리고 골탕먹이고 원수같던 아이들이 슬금슬금 같이 노는 장면이 짠하다. 그리고 어느새 채워진 마음의 자리가 또 비워질까 걱정하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먹먹하다. 한 사람의 소중함을 이 북적이는 도시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지.

뚱보가족은 떠나고 개학이 되었다. 두번째 작품엔 진수를 힘들게 하는 까칠녀석 기열이가 나온다. 심한 아토피를 앓고 있고 그때문에 서울에서 공기좋은 이곳 외갓집으로 왔다고 하지만 기열이는 알고 있다. 부모님이 이혼 위기라는 것을. 이녀석은 마음의 아픔을 온갖 못된 짓과 못된 말로 풀어낸다. 그럴수록 주변 사람들은 싫어하고 아이는 더욱 악에 받치고 악순환이다. 마음의 상처가 눈에 보여 손을 뻗어도 고슴도치를 건드리면 내 손에 피가 나게 마련이니.... 이런 아이가 있으면 참 힘들다. 다행히 작품 속의 선생님은 여유있는 베테랑이셨다. 아 나는 자신이 없는데....

세번째 작품에선 여자 어른이 민박집에 찾아온다. 그녀는 20년 전 마을을 떠났던 미숙이였다. 순간순간 잘못된 선택들이 모여 만신창이가 된 그녀. 핏덩이 같은 딸을 어머니께 맡기고 떠돈지도 몇 년. 고향에 돌아와서 만난 짠한 아이들이 그옛날 소꿉친구들의 자녀들인 걸 알게 되면서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집을 봐도 저집을 봐도 상처 없는 집이 없다. "어찌 사는 게 다 이 모양 이 꼴인지."(169쪽) 그녀는 딸을 찾아 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까?

이 책의 중요한 장치 두 가지가 있다. 외로운 진수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인 나무 조각. 정표로 주고 받은 물건이며 각 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1장은 나무 배, 2장은 나무 물고기, 3장은 나무 새. (나무 새는 진수가 아닌 기열이가 깎아서 미숙 아줌마 떠날 때 줬다.)
또 하나는 개울물. 신비의 약효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언제나 그 자리에 한결같은 개울물은 이들을 어루만져주고 맑아지게 해주고, 그제야 정신들어 나를 보게 해주고 기분까지 나아지게 해준다.

작가의 말에 나온 '개울물'이라는 동시에 작가의 메시지가 담긴 듯하다.

깨진 돌
뾰족뾰족한 돌
울퉁불퉁한 돌

돌돌,
보드랍게
어루만지며 가네.

누구에게나 개울물만은 늘 거기에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 돌아갈 곳은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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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오디션 살림어린이 숲 창작 동화 (살림 5.6학년 창작 동화) 20
한영미 지음, 박현주 그림 / 살림어린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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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오디션 / 한영미 / 살림어린이>

이 책도 꽤나 의미심장하네. 키워드는 '경쟁' 이라고 하겠는데, 경쟁을 꼭 필요한 것으로도, 절대악으로도 보지 않는 새로운 시각이 의미있다. 경쟁에 찌들어 말라가는 아이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동화는 이미 많이 봤으니까.

이 책을 알게 된 건 강남도서관에서 보내주는 토달자(토론의 달인되자) 자료에서였다. 신청하면 담당자 메일로 보내주고 그걸 받아서 우리학교 선생님들께 배포해야 된다. 요즘 공공도서관의 행사나 자료들은 모두 질이 높다. 작년 토달자 자료들은 딱히 선택하고픈 책이 없어서 그냥 받아만 두었는데, 올해 첫 자료에서 다룬 이 책이 왠지 끌려서 읽어보았더니 꽤 맘에 드는 작품이다. 주인공 으뜸이가 5학년. 5학년에게 딱 맞겠고 위아래로 한학년 정도 넘나들 수 있겠다. 활용하게 되면 토론자료도 꼼꼼히 읽어봐야겠다.

으뜸이는 성격상 경쟁에 취약하다. 경쟁을 즐기는 승부사들도 있지만 경쟁상황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으뜸이같은 사람들도 있다. 나도 으뜸이 쪽에 가깝다. 되도록 경쟁상황에 나를 담그지 않는 편이다. 경기나 게임 같은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연수때 강사님이 짝게임 같은 걸 시키면 속으로 좀 짜증난다. 그럴 땐 2:1정도로 내가 지는게 편하다.(단 3:0은 좀 그렇다.^^;;;) 내가 살아오며 지나온 경쟁의 상황은 대입과 임용 정도가 있겠다. 어쩌다보니 지나왔는데, 다시 그자리로 돌아가는 건 사양하겠다. 이후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는 절대 눈돌리지 않고 살금살금 살아왔다. 앞으로는 더더욱 없을 거라 예상한다. 아 그거슨... 도전이 없다는 뜻일까?

이 책의 으뜸이는 나보다 훨씬 더 예민하다. 매일 단어시험을 봐서 왕관을 씌워주는 영어학원은 진작 때려치웠고, 반편성고사를 봐서 결과를 복도에 게시하는 수학학원도 때려치울 판이다. 그나마 좋아서 다니는 구민회관 독서교실에서도 자꾸 퀴즈대회 같은 것을 해서 으뜸이를 힘들게 한다. 여기서, 교사들이 동기부여를 목적으로 경쟁식 활동을 할 때 신나서 참여하는 아이들의 그늘에서 달갑지 않거나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겠다. 이면은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으며, 따져보면 조심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이러한 으뜸이의 거울이자 성인판으로 등장하는 조연은 외삼촌이다. 동네 수퍼를 하다 대형마트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지레 장사를 접고 빚쟁이들에 쫓기는 외삼촌은 엄마와 외할머니의 애물단지다. 허구한날 대형마트 핑계를 대며 뭘 하려고 하질 않는다.

그리고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으뜸이의 마음을 채워주는 존재는 외할머니다. 손주 봐준 공 없다고, 요즘은 점점 할머니들도 자기 삶을 찾는 추세지만, 집집마다 이런 할머니가 계시다면 아이들의 결핍은 훨씬 줄어들 것 같다. (음 그치만 나는 나중에 손자한테 이런 할머니가 되어주진 못할거다.ㅠ)

으뜸이에게도 하고 싶은 것은 있다. 독서교실 수업으로 연극을 하게 되었는데 주인공 역할을 하고 싶다. 하지만 이 역시 경쟁자가 몰려 오디션을 하게 되자 절망하는 으뜸이. 원하는 마음만큼 아쉬움도 크지만 그래도 포기하려 하는데.....

작가는 경쟁 중의 극단인 '오디션'이라는 소재를 통해 "모든 일에 경쟁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정말 너희들이 원하는 일이 다가오면 그땐 한번 도전해 봐. 실패하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아. 미리부터 포기하지는 마" 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오디션 경쟁자였던 준희를 통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되 결과에 기꺼이 승복하는 성숙한 모습도 보여준다.

크고작은 욕망들이 인간을 지배한다. 남의 욕망에 짓눌려 나의 욕망을 잊은 사람도 있고, 이룰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고개를 돌린 사람도 있고, 욕망을 주체못해 추한 몰골로 주변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으며 큰 욕망의 불길을 용케 잘 다루어 주변까지 비춰주는 사람도 있다. 욕망을 이루려 애쓰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며 그 과정에 경쟁이 있더라도 해볼만한 도전이다. 페어플레이 정신만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타인에게 박수를 보내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음 그러고보니 나의 인생은 참 도전없는 인생이었네. 뭐 그것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스릴없고 좀 심심했긴 하지만 그게 좋으면 그렇게 사는 거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다만 선택에 책임 지기. 포기하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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