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자판기 큰곰자리 38
이기규 지음, 강은옥 그림 / 책읽는곰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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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규 선생님은 책을 참 많이 쓰셨다. 인권교육으로 유명하신 분인데 교육에 대한 책보다도 거의 동화를 쓰신다. 짐작컨대 본인의 신념을 동화 안에 녹여내려는 것 아닐까 한다. 그런데 동화는 신념(주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이야기는 움직여야 하고 살아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하니까. 선생님은 인권활동을 하시면서도 동화 공부를 많이 하신걸까 아니면 타고난 이야기꾼인 걸까 궁금하다. 이기규 선생님 책에 리뷰는 처음 써본다.^^

이 책은 세 편이 실린 단편집이다. 첫번째 작품 <계단 뱀>에는 학생인권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담긴 것 같다. 준후네 학교에는 곳곳에 뱀이 산다. 교문 뱀, 계단 뱀, 복도 뱀, 교실 뱀 등. 이들에 대한 소문도 흉흉하다. 친구들은 대부분 뱀을 무서워한다. 그러나 준후는 달랐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뱀을 노려본다. 뱀은 준후를 위협하고 겁을 주지만 지후는 끝까지 버틸 뿐 아니라 마지막엔 뱀을 꽉 깨물어 쫓아버리기까지 했다.

여기에서 뱀은 학교 권력을 형상화한 것이라 해석된다. 근데 읽다가 약간 기분이 꿀꿀해졌다. 교실 뱀은 "모두 가림판 세워! 셋 셀 때까지 손 머리에 올려! 두 눈 꼭 감아! 안 그러면 모두 꿀꺽 삼켜 버릴 거야."
"무조건 하라면 해! 안 그러면 네 시험지를 빵점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계단 뱀은 "꼬맹이들은 중앙 계단을 이용할 수 없어. 그게 바로 법이야!"
요즘 이러는 학교는 거의 없을텐데.... 아이들을 집어 삼킬 기세의 교사는 또 얼마나 있다고... (집어삼켜지지 않으면 그저 감사한데 나는) 교사권력이 이렇게 아이가 맞서 싸워 물리칠 권력이 못되는 거 교사라면 다 아실텐데 이렇게 묘사된 것이 조금 아쉽다. 오히려 꼭 필요한 최소한의 권위를 세우는데도 고군분투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따로 있다. 준후는 복도 뱀을 만났다. 복도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하려는 준후에게 복도 뱀은 아주 친절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복도에서 뛰면 안된다고 일러주었다. 왜?라고 묻는 준후에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조용히 설명한다. 그래도 뛰면 깨물거냐는 질문에는
"아니,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네가 다칠까봐 정말 걱정이 될 거야."
준후는 뱀의 친절한 눈빛이 '맘에 들어서'
"좋아! 그럼 뛰지 않을게. 이제 됐지?" 라고 한다.
에고 상전이 따로 없구나....ㅎㅎ 눈빛이 맘에 안들면 뛰어도 되나?ㅋㅋ 그러다 다치면 누가 책임지나? 공공장소는 학교 복도 뿐이 아닐 터, 앞으로 사회에서 지켜야 할 질서와 에티켓은 누가 가르치나?
물론, 같은 것을 가르쳐도 고압적인 태도가 아니라 아이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며 가르치라는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다. 그래도 아이와 뱀이 대결하는 이런 구도는 별로 공감되지 않는다. 뭐 나만 그런 거겠지.ㅎㅎ

두번째 작품은 표제작인 <옛날 옛적 자판기>다. 두견산에 소풍을 갔던 준영이와 호야는 고장난 자판기 앞에서 빵을 먹고 봉지를 아무데나 버렸다가 커다란 집게를 든 꼬부랑 할아버지를 만나 옛날 이야기를 듣는다. 옛날옛날 큰스님과 지내던 동자승이 요술 샘물을 마시고 변신술을 쓰게 됐는데, 변신술로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소문을 듣고 큰스님이 동자승을 잡으러 왔다. 이리저리 피하던 동자승은 마지막에 대추나무가 되었는데 그와 동시에 대추나무는 벼락을 맞았다는 이야기.
할아버지는 이어서 두 번째 이야기도 들려준다. 몇백년 후, 그 옹달샘이 있던 자리에 자판기가 세워졌다. 어찌어찌하여 그 자판기에서 나온 음료수를 먹으면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든다. 이제 그 사람들은 뭐가 되었을까? 한방에 가장 좋은 것이 되려고 머리를 쥐어짠 사람들이 마침내 된 것은? 그리고 그 최후는?
옛이야기 방식에 현대인들의 문제까지 담았다. 생각할 것이 많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작품은 <그슨대가 보이나요?> 그슨대가 무엇일까 제목을 보며 궁금했다. 사람들의 화를 먹고 사는 요괴라고 한다. 까만 그림자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하늘이와 상민이는 싸워서 화를 내고 그슨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각 사람들마다의 그슨대가 있고 그게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도 알게 된다. 화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작아지는 것도, 화를 못내고 가슴 속에 쌓아도 커진다는 사실도.... 그런데 교실 안 그슨대의 상황을 관찰하던 두 아이는 가장 큰 원인을 발견했다. 그건 선생님이 모둠별 보상으로 사용하시는 막대사탕이었다. 어느날 교실에 몰래 들어가 창밖으로 사탕 통을 뒤집어버리고 미소짓는 결말이 오카다 준의 <스티커 별>을 연상시킨다. 화의 다스림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결말이 정말 의외다. 선생님들 사이에 있는 보상에 대한 의견 중 가장 부정적인 쪽이 아닐까 한다. 분노요괴의 원인이 막대사탕으로 귀결되니 말이다. 하지만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 전체 협력을 해치는 건 교사라면 누구나 체감해봤을 터이다. 우리 교실에 츄파춥스 통 같은 건 없지만(비타민 한 봉지는 있다^^;;) 뭐든 미션을 만들어 전체에게 같이 주며 격려하는 방식을 취하려고 한다. 이런 방식을 교사들끼리 고민하고 공유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안면은 없지만 존경하는 동료교사이자 학교 후배인 저자의 책에 너무 실례되는 리뷰를 남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나도 깨어있으려 애쓰겠다. 다음 작품은 어떻게 구상하고 계실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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