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학년 아이들이랑 4인1조 돌려읽기 3차를 마치고 이제 마지막 4차를 앞두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책 선정은 난제다. 적당한 책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다. 많기는 너무 많지만..... 너무 두꺼운 책은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이왕이면 교육과정 내용과 연관되면 좋겠는데 그중에 학년수준에 딱 맞는 것이 그리 많진 않고, 특히 문학은 정말 좋은 책이 넘넘 많지만 전체 대상이라 무난하고 재미난 책이 안전빵이다보니 그런 책을 고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4권의 책 중 보통 문학에 2권, 비문학에 2권을 배정하는데 문학도 1권은 국내, 1권은 국외 동화로 선정하는 편이다. 외국 작가로 윌리엄 스타이그(진짜 도둑)와 로알드 달(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마이클 모퍼고, 케이트 디카밀로, C.S.루이스 등을 읽히려 해도 간당간당 수준이 모자란다. 린드그렌을 읽히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늘 생각같지 않아서 실망했던 터라....ㅠㅠ (몇년전에 "이제 린드그렌은 아이들에게 안 통하나보다ㅠ" 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음) 앤드류 클레먼츠는 어떨까? 하고 <프린들 주세요> 와 <말 안 하기 게임>을 비교중이다.



국내동화로는 최은옥, 권정생, 주미경, 진형민 작가의 책을 한권씩 읽었다.

이번엔 황선미 작가의 책 중에서 <신나게 자유롭게 뻥!>을 꼽아놓고 있다. 사회 다음 단원에 인권(편견, 차별, 다양성)관련 주제가 나오기 때문인데, 거한 수업을 잘 시도하지 않는 나로서는 책이라도 이렇게 관련해서 읽으며 생각을 넓혀가길 기대할 뿐이다.




그러다 오늘 이 책을 읽었다. '오, 이런 책을 한권 읽어도 괜찮겠는데?' 싶으면서 훅 땡긴다. 이승민 작가의 <나만 잘하는 게 없어>라는 책이고 형식은 숭민이라는 주인공의 일기다. '숭민이의 일기 절대 아님'이라고 표지에 써 있기는 하지만...^^ 남의 일기를 읽는 건 구미가 당기는 일이다. 게다가 이 숭민이라는 아이의 캐릭터가 참 만만하면서도 친근하다. 잘하는 건 게임밖에 없는데 그나마 종목을 바꾸니 맥도 못추고 붙는 족족 깨진다. 삼총사 친구 중 동규는 느리고 부족해 보여도 수학영재고, 심지영은 글짓기대회에서 대상을 탔다. 원수같은 성윤 녀석도 속담 외우기 대회에서 숭민이를 제치고 상을 탔다. "나만 잘하는 게 없어." 이게 책의 제목이다.


우어어.... 이건 오랜 세월 나의 고민이기도 했다. 이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이 나의 젊은 시절 과제이자 나와의 싸움이었다.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낳고 미친듯이 살다보니 이런 고민도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지금도 멋있는 사람들을 보면 한량없이 부럽다. 그래서 난 숭민이에게서 나를 본다. 친근하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더하지 않을까 싶다. 잘하는게 게임밖에 없는 녀석. 반에 적어도 한 명 이상 반드시 있으며 나머지 아이들도 이런저런 열등감들을 가지고 있고 대다수가 자존감의 문제를 앓고 있다. 모든 어긋난 행동의 기저에 이 자존감의 문제가 있다.

그런 아이들이 이 책의 숭민이랑 친구가 되었으면 한다. 별다른 재능 없고, 지극히 평범한 숭민이. 하지만 숭민이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다. 이 아이에게는 참 특별한 건강함이 있다. 평범한 건강함. 이거 우리 시대 아이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미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상도 바로 이 '평범한 건강함' 이어야 한다고 나는 입에 거품을 물고 주장하는 바이다. 4차산업, 인재, 영재, 이따위 소리 다 집어치우고 말이다.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는 평범하며 그들이 건강한 자존감을 갖추어야 사회가 건강한 법이다. 특출난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가 패배감을 맛보아야 하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난 지극히 평범한 우리반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다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이 책의 숭민이와 함께.

엥... 이렇게 쓰다보니 뭐, 다음 책으로 이 책은 당첨인거네. 숭민아, 울반 친구들 만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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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의 독수리 - 히틀러를 쏘지 않은 병사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45
마이클 모퍼고 지음, 마이클 포맨 그림, 보탬 옮김 / 내인생의책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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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모퍼고는 100권이 넘는 책을 출간한 영국의 국민작가라는데 우리나라에는 일부만 번역되어 나와있다. 대부분 판매지수도 그리 높지 않다. 그중 높은 책은 <켄즈케 왕국> 정도? 나도 그 책을 통해 마이클 모퍼고를 처음 접했다. 10여년 전 린드그렌을 읽으며 어린시절 독서의 추억 속으로 되돌아가고 있던 시기였다. 켄즈케 왕국은 처음 읽은 책이었지만 묘하게 독서의 추억을 자극했다. 그리고 동화는 대상연령이 어릴 뿐 결코 수준 낮은 장르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책을 읽는 것이 일상의 일부가 되었던 것 같다. 내 나름의 역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책인 셈이다.

마이클 모퍼고는 주로 무거운 주제의 작품을 쓴다. 내가 읽어본 그의 작품에는 거의 전쟁이 나온다. <켄즈케 왕국>에서 무인도에 고립되어 혼자 살고 있던 켄즈케 씨는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일본인이었고, <모차르트를 위한 질문>에서 대 바이올리니스트 파울로 레비가 간직한 비밀도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에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집 정원에는 코끼리가 산다>도 2차대전 중 드레스덴 폭격 당시 독일인 가족이 겪는 이야기다. 그런가하면 <연들이 날고 있어>에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지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집으로>는 탈핵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 책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 걸친 다소 긴 기간을 다루고 있다. 1차 대전에 참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고 혁혁한 공을 세운 영국 군인 '빌리 바이런'씨에 대한 이야기다.

배경은 2차 대전이 한창인 영국. 바니와 엄마는 폭격으로 집을 잃고 친척집이 있는 시골로 가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는다. 텅 빈 기차 칸에 바니 모자와 한 중년남자만 있다. 폭격을 피해 터널 속에 갇힌 깜깜한 기차 안에서, 중년 남자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1차 대전때 최선을 다해 싸웠던 빌리의 이야기를. 그는 전투에서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아주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다. 마지막 남은 독일군 병사를 살려준 것이다. 쏠 수 있었고 그는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무기만 내려놓고 가게 해주었다.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후 무시무시한 반전이 일어났다. 극장의 뉴스영화에서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고 있는 독일총통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인생이 무너져내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아돌프 히틀러. 그자는 바로 그옛날 자신이 살려보낸 독일 병사였던 것이다.

그는 이 일을 자신이 되돌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암살 계획을 세우고 접근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일까지 고백했다. 바니 모자가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 그는 보이지 않았고, 이모집에 도착한 그들은 빌리 씨가 공습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빌리 바이런의 이야기는 '헨리 텐디' 라는 실존인물의 실화를 근거로 한 것이다. 그가 살려준 병사가 히틀러다 아니다 논란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100% 픽션이라고 해도 별 상관은 없다. 중요한 건 그 딜레마이다. 그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무척 불행했다. 개인 차원이 아닌 세계적인 불행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그의 행위는 옳지 못했는가?

그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망설이지 않고 쏠 것이라 말하며 과거의 선택을 몹시 괴로워했다고 한다. 당연한 감정이다. 하지만 인간은 미래를 볼 수 없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존재이다. 그 상태에서 인간의 최선이란 어떤 것일까?

작가는 시종일관 담담하게 서술했으며 어떤 결론도 내려주지 않았다. 어찌보면 흥미있는 일화를 동화로 각색한 것에 그친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가 이 실화를 다시 쓰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이 이야기 속에서 많은 질문들이 떠오른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생명, 선택, 책임..... 아, 역시 마이클 모퍼고의 책은 무겁다. 그래서 아직까지 아이들에게 읽혀보질 못했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
(사실은 내가 어려워 엄두가 안 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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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 하기 게임 일공일삼 65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이원경 옮김 / 비룡소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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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신 앤드류 클레먼츠 님께 충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내게 신이 주신 이야기 주머니가 있다면 이런 멋있는 글을 쓰고 싶다. <프린들 주세요>도 대단했는데 이 책도 못지않게 짜릿하다. 이 작가의 책으로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성적표>라는 책이었다. 다음으로는 10년 전에 읽었던 <잘난 척쟁이 경시대회>. ㄱㅈㅌ 교육감이 취임 일성으로 "미안하지만, 초등학생들도 경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말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뱉었던 즈음이었다. 그 책을 읽고 "미안하다고? 미안한 짓을 왜 해!!" 하면서 분노의 서평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해, 일제고사 거부를 허용한 담임들이 교사로서의 사형선고를 받고 길거리로 내몰린 사건도 있었다.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촛불을 들며 mb정권의 먹구름을 온몸으로 느꼈던 그해.ㅠ)

이와같이 앤드류 클레먼츠는 작품마다 참 멋있다. 그리고 교육의 본질을 꿰뚫는다. 어려운 교육학 책을 읽기에 독서력이 딸린다면 그냥 이분의 동화를 읽자!! (나만 해당되나 ㅎㅎ)

레이크턴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은 역대 유례없는 수다쟁이에 고래고래들이었다. 그리고 이또래의 특징대로 남녀 대결의 성향도 강했다. (이부분 우리반 아이들이 매우 공감할거라 예상한다. 평소 경기에서 승부욕이 강하지 않던 우리반 아이들이 남녀로 대결할 때 눈이 뒤집히도록 광분하는 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란 적 있다ㅋ) 이들은 서로를 수다쟁이라 비난하다가 시합을 벌이게 된다. 바로 말 안하기 게임!

이 책은 이 게임이 진행되는 열흘간의 과정을 담고 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게임의 규칙'을 수립했고 그중엔 "어른들께는 어쩔수 없이 대답하되 3단어 이내로 한다."와 같은 규정도 있다. 처음엔 아이들이 힘들어했지만 이내 익숙해졌고 조금 지나자 선생님들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수업진행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선생님들 회의가 소집되었는데 선생님들마다 반응이 다양한 것도 재미있었다. 이 상황에 분노하는 선생님, 즐기는 선생님, 이 현상을 연구하려 부지런히 기록하는 선생님.... 그냥 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게임을 중단하라 명한다. 이후 자신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중단하지 않는 모습을 본 교장선생님은 순간 이성을 잃고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마는데.... 이부분에서 나도 뜨끔했다. 절대 보여서는 안되는 모습이다. 다행히 교장선생님은 바로 잘못을 시인하고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사도 실수할 수 있는데 빨리 인정하는 것이 그나마 스타일을 덜 구기는 방법이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지점은 '언어의 정선' 이다. 아이들은 수업중 세 낱말로 말해야 했기에 적절한 낱말을 찾기 위해 고도의 두뇌활동을 해야 했으며 평상시에 얼마나 필요이상의 말들을 해왔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의사소통에는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으며 언어의 쓰레기를 버리고 말을 줄여야 할 필요가 인간 대부분에게 있다. (말하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나도 가만보면 쓸데없는 소리를 퍽 많이 한다ㅠ) 유난히 시끄럽고 말이 많은 학급을 맡을 때가 있는데, 가만히 듣고 있자면 모두가 '남 얘기'다. 그것도 아님 말고 식의 근거 없는. 그로 인한 생활지도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본성대로 떠드는 것에 그리 동의하지 않는다. 언어의 절제는 필요하다고 본다. 어른이 가장 그렇고, 고학년 정도라면 절제를 시작할 때라고 본다. 저학년도 조금은 필요하고. 이 게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던 이 말은 일리가 있다.
"간디는 수년간 매주에 하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마음에 질서가 생긴다고 믿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적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마음의 질서'라는 말에 주목하고 싶다. 아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옳지 않지만 조용한 순간은 있어야 한다. 시종일관 시장바닥이라면 아이들은 차분히 생각할 힘을 잃게 된다. 서로 헐뜯기 여념이 없었던 초기의 아이들이 시장바닥 상태였다면,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박수를 보내는 후기의 모습은 조용한 성찰을 거친 상태다. 게임을 통해 이렇게 멋진 변화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이 설득은 전혀 꼰대적이지도 설교적이지도 않으며 반전과 유머를 통해서 전해지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한편으로 내가 이 책에 환호를 보내는 것이 시끄러운 것을 혐오하는 나의 개인적 성향과 규칙과 질서를 중시해야 하는 교사라는 직업적 신분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아이들도 나만큼 공감할까? 이제 다음주부터 우리반 아이들이 돌려읽을 책에 이 책이 포함되어 있으니 한번 반응을 살펴봐야지. 내가 한 생각을 아이들이 할 가능성은 적지만, 적어도 재밌게는 읽으리라 생각한다. 교사인 내가 환호한다고 해서 설교책인 것은 아니고,ㅎ 흥미진진한 요소가 가득 있으니. 나와 같은 각도에서 공감하진 않더라도 그들 나름대로 공감하며 읽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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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베트남
심진규 지음 / 양철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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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싶었다. 왜 그랬냐고. 전쟁의 광기가 눈을 멀게 했던 것일까. 그들도 자상한 어머니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아들이었거나, 꼬물꼬물 귀여운 아기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전장도 아닌 마을에서 어머니 같은 노인들을, 자식 같은 아이들을 그렇게 무참히 학살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으니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전우는 죽어가고, 나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고 적들(베트콩)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작전과 명령에 의한 일이었다는 것을. (물론 그 작전과 명령 자체에 문제가 있고, 필요 이상의 잔인함을 발휘한 개인도 있었으리라 짐작되지만) 병사 개인으로서 어찌할 수는 없는 일일 수도 있었겠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으로 합리화할 수 없는 고통이 그곳에 있었으며 아직도 남아 있다.

"무서워서 그랬어.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니 무서웠어. 그래서 닥치는 대로 총을 쐈어. 죽을까 봐 무서웠고, 내가 사람에게 총을 쐈다는게 무서웠어."
할아버지는 손자 도현이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이책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가 평생을 미루어왔던 사죄를 하러 손자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떠나는 이야기다.

도현이가 그 과거의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이 등장인물들의 회상일거라 짐작했는데 뜻밖에도 판타지였다. 주인공을 현장에 갖다 놓는 방법이기 때문에 또래의 독자가 현장을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가장 좋은 서사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어른인 나는 왠지 그 판타지 안으로 쉽게 들어가지지 않아서 약간 애를 먹었다. 공항 활주로에서, 쌀국수집에서 도현이 눈에만 띄는 티엔의 환영은 판타지로 이끄는 복선일 텐데도 왠지 뜬금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어색함이 내게는 약간 옥의 티로 작용해서 몰입을 방해하긴 했지만, 전체 내용에 작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이렇게 들추기 두려운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첫 동화라는 점에서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도현이가 판타지의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50년 전 과거의 현장이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곳. 거기에서 만난 젊은시절의 할아버지는 다행히 좋은 분이었다. 전쟁고아가 된 티엔을 최대한 보살펴주려 애썼다. 하지만 그 또한 한국군의 만행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고 티엔을 끝까지 책임져 줄 수도 없었다. 평생 그 마음의 짐을 혼자서만 지고 살아왔던 할아버지는 이번 여행에서 티엔을 찾으려 한다. 한국군이던 자신을 삼촌이라 따르던 아이, 하지만 한국군에 의해 모든 것을 잃게 된 아이....

우여곡절끝에 만난 티엔은 할아버지와 다름없어보일 정도로 늙은 모습이었다. 그는 호아쓰(peace)꽃을 가꾸며 살고 있었다. 추모비(한국군에 대한 증오비) 주변에 평화를 상징하는 꽃을 심고 가꾸며 한국이 진정한 사과를 하리라 믿어왔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이들에게 용서를 빌 방법을 찾아 애쓴다.

우리도 전쟁의 피해를 많이 겪은 나라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남아있다. 이분들이 온전한 사과를 받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마포구에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한 적 있는데 관람 동선 마지막에 베트남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실상과 사죄의 내용도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 책과 같은 생각에서 그런 전시 구성을 한 것이 아닐까. 마땅한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좀 더 많은 이들이 그런 인식을 공유해야 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지키고 전쟁을 막는 것이다. 인간의 악마성이 가장 극명하게 발휘되는 곳이 전쟁터일 것이다. 내가 사는 이 땅에, 그리고 지구상에 전쟁의 불씨를 없애는 일이라면 인간으로서 힘을 다해 동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과거의 가해를 전쟁이어서 라는 이유로 얼버무려서도 안 될 것이다. 그 태도는 이 책의 할아버지가 잘 보여주시고 있다. 평상시에 손자보다도 철부지 같았던 할아버지였기에 더 실감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보시기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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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신부 문지아이들 154
김태호 지음, 정현진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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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혹은 거리끼는 생명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하면 "그럼 바퀴벌레도 소중하냐?", "파리도 소중하냐?" 이런 반박이 나오곤 하는데, 진짜 그런 얘기가 나왔다. 아하하하하하.... 풀벌레가 아닌 집곤충들을 극혐하는 나로서는 솔직히 동의하긴 어렵다. 근데 이야기는 작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재밌다. 어쩜 이렇게 능청스럽게 진지하며, 심각한듯 우스울 수가!!^^

야무지고 사려깊은 파리신부와 인내심이 부족하고 뭔가 얼뗘 보이는 파리신랑은 함께 비행중이다. 먹이를 찾지 못해 고생을 겪던 중 천국과도 같은 곳에 당도했다.
"신이시여, 힘없고 불쌍한 우릴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하자마자 발견한 그곳은 사람의 집이었다. 그중에서도 한 남자아이의 방. 거기엔 이미 많은 파리들이 아무 걱정없이 기거하고 있었으며 남자아이를 '신'이라고 불렀다. 그 신의 캐릭터인즉, 간식을 아무데서나 먹고, 잘 흘리고, 아무데나 버리며, 치우지 않고, 잘 씻지도 않는다. 그곳에서 파리들은 서로 경쟁할 필요도 없이 느긋하게 만찬을 즐겼다. 그 만찬의 묘사가 정말이지 리얼하다. 우엑~~~~

그러나 그곳에 다리가 여섯개밖에 안남은 늙은 거미가 함께 살고 있었으니.... 그 거미는 이런 수수께끼 같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빨간 나무는 시작이고
거꾸로 비는 끝이다.
거꾸로 비가 내리면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라."

그것은 일종의 재앙 예언 같은 것이었지만 누구도 미리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스포에 개의치 않고 리뷰를 쓴다지만 이런 것까지 말하진 말자^^;;) 동료들을 잃고 겨우 살아남은 파리신부는 그 '신'에게 할 수 있는 대로 복수를 하고 그곳을 떠나려 한다. '신'은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방을 치우기 시작하고.... 그러나 그곳을 떠나는 파리부부에게 더욱 화려한 천국이 펼쳐지는데 그곳은.....ㅋㅋㅋ

이 책을 읽으며 "작은 생명을 사랑하자"의 효과가 클까? "으헉, 방 좀 치우자." 의 효과가 클까?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난 후자라고 생각한다. 왜냐고? 내가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파리의 사랑을 받는 건 사양하겠어. 뽀뽀도 물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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