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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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제 엄마집 갔다가 동생한테 빌려온 골든아워 1,2권을 빠르게 훑어 읽었다. 연휴가 끝나면 이런 책을 붙들고 있을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 나의 일에 소용되는 책을 읽어야 하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책을 읽고 '나의 일'도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한달간의 병원생활에서 나는 늘 의료진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이 고압적이어서가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그들의 전문성에 의지하는 마음 때문이었다.(병원에서 막말 고성 폭행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는지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의사는 물론이고 간호사들의 손놀림 하나도 내게는 아버지를 살리는 동아줄처럼 보여서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간병인 여사님까지도.... 결국 아버지는 한달을 못버티고 돌아가셨고 아버지를 담당한 의료진이 특별히 대단한 분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기억한다. 밤낮이 없던 그 치열한 느낌의 현장을. 가족으로 단기간 있기도 괴로웠던 그곳을 일터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물론 그중에도 게으른 사람, 양심없는 사람, 실력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지만 어쨌든 그런 시스템이 있다는 신뢰가 우리 삶의 안정성을 높여주고 있을 것이다. 이국종 교수는 그 시스템을 더 안정적으로 만들려고 의사인생을 다 걸고 노력해온 사람이다. 외상외과 전공인 그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중상자들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의료진의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중증외상센터'를 세우고 뿌리내리는데 헌신해왔다.

그러나 그 노력이 쉬웠다면 이런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씨를 뿌리기도, 그 씨에서 싹이 나기도, 가느다란 뿌리를 땅에 박기도 뭐하나 쉽지 않았다. 온갖 욕과 애먼소리를 들으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야 했다. 지원은 말뿐이었고 가장 중요한 인력지원이 없어서(이건 대한민국 어디나 그런듯ㅠ) 결국 현장인들을 갈아넣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교수 자신도 온몸이 성한데 없고 결국 한쪽 눈에 실명까지 왔으며ㅠ 간호사들도 유산은 기본이며 과로로 쓰러지기 다반사였다. 책을 끝까지 읽어봐도 이것은 현재진행형이며 "하는 데까지 한다. 가는 데까지 간다....."로 끝맺는다.

이 책에서 이국종 교수는 거창한 신념을 설파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그게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니 그것을 할 뿐이다. 그래서 피바다 속에서 허우적대며 목숨의 끈을 필사적으로 이어붙이는 것 뿐이다. 이런 환자들의 목숨은 1분, 1초에 달려있으니 헬리콥터를 타고 출동하며 그에 따른 몸의 무리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간호진들은 대부분 여성들인데 이렇게 몸을 던지는 일(예를들면 공중강하 등)에 동행하는 모습들이 경이롭다. 일의 성격상 시간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니 날밤을 새우는 일은 예사고, 늘 수면부족과 고질병에 시달린다. 난 잠 못자면 사람구실을 못하는데.... 거기에 언제 출동할지, 언제 죽음에 다다른 이들을 맞아야 할지 모르는 상시적 긴장상태, 그리고 산산이 부서진 몸과 뿜어나오는 선혈과 으깨진 장기들을 날마다 대해야 하는 일, 그 안에서 삶의 질이 어떠할까. 그들 또한 극한 노동자이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내가 상상하기 힘든 일상이다.

그의 10여년 기록 중 그와 함께 가슴을 친 대목이 많았으나 가장 최악은 2014년 4월의 기록이다. 세월호 침몰 때 그의 센터에서도 헬리콥터가 날아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지침이 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누구도 정확한 상황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출동된 모든 팀들은 발이 묶인 채 기다렸다. 그렇게 세월호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라앉았다.ㅠㅠ 그동안 한 목숨 구하기 위해 십여명이 매달려서 산다는 보장도 없는 환자를 헬기로 싣고 오는 일을 주도하던 의료인이, 수백명이 한꺼번에 수장당하는 일을 지켜보아야 했으니 그 기막힘과 분노가 어떠했을까. 그래서.... 아직도 잊힐 수가 없고 잊혀져서도 안되는 것 같다. 세월호는 말이다....ㅠㅠ

빨리 읽어야 해서 부분부분 대충 훑어 읽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마음에 꽤 남을 것 같다.(어젯밤 꿈에도 나옴...) 무엇보다 같은 세상 살아가고 있는 어떤 이들의 치열한 삶이.... 그들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몸도 마음도. 개인을 갈아넣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내 업종에서 꽤 잔뼈가 굵었지만 아직도 늘 불안하고 긴장된 이 마음을 다잡으며 닥칠 일에 대한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되길 바란다.(뭔 일이 닥쳐도 그래도 죽고 살 일은 없잖아? 밤샐 일도 없고) 그의 일은 그의 일대로 나의 일은 나의 일대로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이교수처럼 나도 나의 일이니까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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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명절 유일 손님이 된 시누이네가 아직도 시댁에서 출발하지 못했다고 해서 식구들 아점을 후다닥 차려놓고 더숲에 와서 영화 <파이널 리스트>를 보았다.

난 예술을 동경한다. 예술을 잘하는 사람이 멋있다. 동시에 부럽고. 능력을 선택해서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예술적 능력, 그중에서도 음악을 선택하겠다. 라고 생각하곤 했다.

근데 그 과정 또한 순탄치 않을 뿐더러 피땀흘리는 노력과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가끔 잊곤 한다. 거저먹는 인생은 없는 것이다. 행복이 성취에 있지 않지만, 어쨌건 성취에는 고통스런 노력과 연마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싫어 회피하면 그냥 평범한 능력을 갖는 것이고, 그 이상을 원한다면 그 연마의 고통을 넘어서야 한다.

어쩌면 내게 없는 것은 예술적 능력보다도(물론 그것도 없다ㅋ) 이러한 인내심인지도 모른다. 적당히 일하고 일한 후의 휴식을 넘나 사랑하는 나에게 뛰어난 성취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에 등장한 이들은 퀸엘리자베스 콩쿨 파이널에 올라간 12명의 젊은이들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그리 오래 살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예술적 완성도와 인정을 위해 끊임없는 담금질을 한다. 시간의 밀도를 극강으로 높여야 한다. 그 극한을 보여주는 그들의 결승 전 합숙 8일. 하지만 잠깐의 산책대화에서 그들의 솔직한 내면이 비춰지기도 한다. 솔리스트가 된다고 행복할까? 콩쿨 입상한다고 성공하는 걸까? 심지어 뭐해먹고 살아야하지?에 가까운 고민까지....

이 콩쿨엔 한국인이 3명 올라갔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영화가 아님에도 이 중 2명이 가장 많이 나온다. 한국인이 우승자였기 때문이다. 우승자가 있으면 탈락자가 있기 마련.... 이 영화는 둘을 같이 다룬다. 아니 마치 탈락자가 화자인 듯한 영화다. 때문에 우승자의 이름을 미리 알고 있었던 나는 둘을 혼동해서 골탕먹었다는.....(에휴~~^^;;;)

아주 재미있는 영화라곤 볼 수 없었다. 참가자들 전원의 경연을 일부라도 보여줬더라면 좀더 흥미진진했을텐데... 하여간 예술가들은 타고나며 또 만들어지고 진정한 예술가로 서려면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늘 아들에게 피를 토하듯이 말했던 것, '젊을 때의 삶의 밀도'는 정말 중요하다. 내가 후회하는 것이 그거다. 물론 지금의 나는 늙어서 자연히 밀도를 낮출 때가 되었지만.... 세상이 말하는 성공 여부를 떠나서 젊은 날을 생각과 느낌과 연마로 채우는 일은 그의 인생에 튼튼한 기본이 될 것이다. 음 결국 내 자식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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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씨름 - 제7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샘터어린이문고 53
이인호 지음, 이명애 그림 / 샘터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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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막다른 곳에 다다른 듯한, 슬프고 막막하고 고단한 인생들의 작은 불빛 같은 이야기. 참혹하고 서늘하지 않아서 고마운 이야기.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듯한 이야기. 그래서 참 좋았다. (그러나 현실은 죽으라는 법이 지배한다던가? 아닐거야, 이런 따뜻한 불빛도 있긴 할거야 라고 나는 우겨본다.)

세 편의 제목을 보고 나는 두번째 작품을 먼저 읽었다. [눈물 줄줄 떡볶이] 먹는 이야기여선가? 나도 마침 매콤한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였던가? 하여간 제목이 가장 땡기는 것부터 먼저 읽었다. 엄마 아빠를 졸지에 교통사고로 잃은 소연이의 이야기였다. 어린이 화자 중 이보다 더 비극적인 아이가 있을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할머니가 소연이를 맡으러 집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빠의 친엄마가 아니다. 그러니 사실 소연이랑은 혈연관계도 아닌 것. 소연이는 할머니에게 다가가지 않고 두 사람의 관계는 쉽지 않다. 마침내 소연이는 자신을 맡아준 할머니의 의도까지 의심해 비수같은 말들까지 뱉어내고..... 그런 손녀와 할머니의 이해와 화해 이야기. 매개체는 공포떡볶이.

어른이 어른다우면 문제는 거의 풀리는 것 같다. 끝내 안되는 일도 있긴 하지만. 난 가끔 어른답지 못하다. 그런 내가 가끔 걱정이고. 근데 할머니는 참.... 얼마나 오랜 세월 참아오셨을까. 하지만 할머니도 성격은 있는 사람이고 저자세 스타일은 아니셨다. 그리고 소연이가 그렇게 막나가는 타입은 아니었고, 떡볶이 화해에 응하는 걸 보면 뒤틀린 아이는 아니다. 앞으로 두 사람은 가끔 삐꺽거려도 신뢰는 기본으로 깔고 갈 것 같다. 소연이가 어른이 되면 할머니는 또 할머니의 방식으로 남은 삶을 사시겠지......

첫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팔씨름]은 주인공의 형편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근데 그건 생활환경의 문제고, 사실 또래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처지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사마귀처럼 막강한 녀석의 표적이 되어 날마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인 정담이는 허구헌날 사고치는 쌍둥이 동생들이랑 산다. 어느 일요일 부모님의 부재로 동생들을 맡게 된 날 벌어진 일들. 웬수인 줄 알았던 동생들이 실은 가장 강력한 아군이었다는 걸 알게 된 날.

그날 정담이는 문제의 영식이를 집에 데려오게 되었고 동생들의 성화에 팔씨름 대결을 하게 되는데.... 의외로 정담이는 강했고 영식이는 약했다. 예상된 승부가 뒤집어졌지만 이긴 자도 진 자도 별 말 없이 한 냄비의 라면을 가운데 놓고 젓가락을 든다. 쌍둥이들도 같이....

나도 이런 실속없는(?) 사마귀들을 많이 보았다. 이런 아이들의 특징은 성깔이 있고 말이 쎄다는 것. 진정한 강자는 발톱을 감추는 법인데 이들은 생기다 만 발톱으로 포악을 떤다. 이럴 때 진정한 강자가 지그시 눌러주고 '그만'이라는 눈빛을 보내주면 바로 깨갱인데.ㅎㅎ 그리고도 그걸 떠벌리지 않고 마치 잊은듯 무심하게 같이 어울린다면 당신은 진정한 멋쟁이. 정담이는 피해자에서 멋쟁이로 거듭나는가? 대책없는 쌍둥이 동생들에 의해서?^^

마지막 작품 [성배를 찾습니다] 이 작품이 내게는 화룡점정이었다고 할까? 이 책이 정채봉문학상 수상작인데 과연 그러할만하다는 결론을 내준 작품이다. 독자마다 선호는 다를 것이지만 내게는. 아마도 개가 나와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성배가 바로 개 이름이다. 철거촌에 마지막까지 살고 있는 성민이는 엄마가 24시 감자탕집에 밤일을 다녀서 집이 말이 아니다. 사람들이 떠나간 동네엔 남겨진 개들이 떠돈다. 그중에 며칠째 울면서 '성배'를 찾아다니는 준호를 어쩌다 달래주게 됐다. 준호네 집 꼴도 심란하긴 똑같다. 그러다 며칠후 성민이가 달래주며 그냥 해본 말처럼 '성배'를 찾았다. 준호가 묘사하던 엄청 귀여......운 개와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둘은 성배와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한다. 음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이별의 시간도 찾아오지.

이렇게 쓰고 보니 별 이야기도 아닌데 왜 내겐 가장 다가왔을까? 정말이지 개란 무엇인가? 철거촌에서 마지막으로 나와 남의집에 의지하게 되어도 놓을 수 없는 그 정의 끈은. 물론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개와 안아보고 그 숨결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그건 가능하지가 않다. 그 느낌과 다행감을 잘 살린 작품. 요즘 사회시간에 여러 가족의 형태와 모습을 공부하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반려동물도 가족일까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새로 개정된 교과서라서 이런 내용까지 들어간 것 같다) 반려동물 관련 그림책은 많아서 그걸 읽어줄까 했는데 이 작품을 읽어주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작가분이 그린 대로 세상에 작은 불빛들과 숨쉴 구멍들과 눈물 다음의 후련함과 풀꽃 같은 건강한 생명력이 있다면 좋겠다. 작품이 그런 세상을 조금이라도 가깝게 한다면 나는 물개박수로 작가분들을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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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때문이야 큰곰자리 43
전은지 지음, 신지수 그림 / 책읽는곰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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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이렇게 비호감인 아이가 주인공인 동화는 처음 봤다. 거의 마지막까지 일말의 애정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인물을 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런 아이(이런 사람)는 존재하니까.

화자인 5학년 노수혜. 공부도 못하고 예쁘지도 않다.(화자가 직접 그렇게 말하고 있음) 주류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주변엔 변변찮은(이것도 화자가 그렇게 여김) 친구들 뿐이다. 수혜는 과학 발명 영재단에 들고 싶어한다. 거기에 잘나가는(!)아이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번이 탈락한다. 수혜는 분개하며 이유를 찾는다.
1. 영재단에 뽑힌 아이들은 엄마가 학교 일을 열심히 하신다. 녹색어머니, 급식모니터링, 도서관도우미 등. 아무래도 학교 일을 해주니 선생님들은 고마울테고 그래서 그런 엄마들의 아이를 뽑아주는 거다.
2. 엄마가 학교에 간식을 사다 바치면 뽑힌다. 홍민우라는 빵집 아이는 엄마가 무슨 때마다 빵을 상자로 가져왔다. 그렇게 간식을 바치려면 엄마가 부자여야 한다.
3. 이도저도 아니라면 선생님들이 꼼짝 못할 정도로 계획서를 잘 써서 내야 한다. 그러려면 아인슈타인 과학교실에 다녀야 한다.

이러한 사고 과정을 거쳐 수혜는 이 책의 제목인 "엄마 때문이야."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엄마한테 "회사를 그만둬라" "아인슈타인 과학교실에 보내달라"며 생떼를 부리기 시작한다. 엄마는 고민이 많아진다.

그러나 수혜는 위의 저 이유들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들을 접하면서 당황하기 시작한다. 일단 3)아인슈타인 과학교실에 다니는 아이를 찾아가서 캐 본 결과 계획서는 본인 힘으로 쓴 것이었고, 과학교실 다니는 아이들 중 영재단에 떨어진 아이들도 많았다. 2)홍민우 엄마(빵집사장)가 학교에 들여간 빵은 선생님들이 주문한 빵을 배달한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학부모가 개인적으로 간식을 사보내는 건 안된다는 규정도 있었다. 1)영재단 아이들 면면을 보니 수혜처럼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도 많았다.

그럼 대체 무엇 때문인가! 화가 난 수혜는 결국 친구들을 대동하고 담당선생님께 쳐들어가는데.... 이건 수혜입장에서 대단한 실수였다. 친구들 보는데서 적나라한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별건 없었다. 그냥 수혜의 계획서와 뽑힌 아이들의 계획서를 비교해서 본 것뿐이다. 교실을 나오면서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공부 못하고 두꺼비눈인 건 그럴 수 있다 쳐."
"성질 더럽고 게을러터진 것도 그럴 수 있다 쳐."
"그런데 노상 남 탓만 하는 건 좀 그렇다. 당장 고쳐 주길 바라."

그래도 '그엄마에 그아이'인 경우는 아니었다. 엄마는 딸의 남탓에 동의하지도 분개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딸을 크게 꾸짖지도 않는다. 워킹맘들의 숙명인가.... 가슴아파하며 최대한 딸이 요구한 시간을 내주려 애쓴다. 아주 극적이진 않지만 수혜도 '내탓'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으니 결말은 희망적이다.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우리 사회에 '남 탓' 정서는 만연해있다. 그 근거를 대부분 '카더라'에서 찾는다. 수혜도 위의 1,2,3 근거를 다 친구들에게 주워들었는데, 그게 본인의 분노 정서에 철커덕 들어맞자 사실확인 거칠 것도 없이 마구 휘둘러댔다. 이런 모습은 주변에 흔하다. 이런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공감이 아니다. 냉정한 사실체크와 조용한 조언이다. 수혜는 이것을 받아들인 셈이니 이제 비호감에서 벗어날 길이 생겼다. 죽자고 또다른 근거를 찾거나 궤변을 만들어 자신을 그 안에 가둔다면 누구도 구해줄 수 없다.

나도 그런 모습은 아닌지 수시로 돌아볼 일이다. 모두 "내탓이오" 하는 체념과 한의 정서를 난 아주 싫어한다. 하지만 그와 반대 극으로 "내가 이루지 못한 건 모두 남탓 세상탓" 이라고만 하는 정서도 잘 보면 문제가 있다. 균형을 잡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인간상을 동화에 나타내다니. 수혜가 그토록 비호감이었던 건 공부를 못해서도 못생겨서도 아니었다. 공부 못하고 못생긴 매력 캐릭터들을 동화에서만 꼽재도 열 손가락이 부족하다. 찌질 캐릭터들의 특징이 있다. 바로 열등감인데, 이걸 본인은 '남 탓'으로 포장하려 하나 수혜처럼 비호감만 증폭될 뿐이다. 어찌나 꼴불견인지 이 책을 끝까지 읽는데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다. 나도 뿌리깊은 열등감의 고질병이 있어 순식간에 이렇게 될까봐 늘 걱정이다.

분량은 짧은데 주인공들이 5학년인 것으로 봐서 고학년이 독자로 맞을 것 같다. 얇고 어렵지 않으니 읽기는 중학년도 충분히 가능하다. 어른들도 좀 읽어보면 좋겠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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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도로봉
사이토 린 지음, 보탄 야스요시 그림,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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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을 저격하는 아주 매력적인 동화를 만났다. 그 사람만의 문체와 느낌을 가진(사실은 처음 보는 작가다). 이 책을 내가 어릴 때 읽었다면 이 느낌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은. 그러면서 영화로 만들어도 아주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사영화도 좋겠지만 동화니까 애니메이션이 더 좋을듯.... 난 장면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영화 장면을 생각하며 읽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떠올랐다. 영화로 표현하기 좋게 캐릭터들도 개성이 분명하다. 아주 평범한 외모지만 뭔가 비범한 도둑 도로봉, 베테랑 형사지만 뭔가 인간적인 치보리 씨, 어리고 어리숙하지만 뭔가 번뜩이는 기록관 아사미 씨, 적군일 것 같았는데 의외로 아군인 오하스 형사 등.

도로봉은 도둑이다. 제목에부터 나오니 모를 수가 없다. 어떤 도둑일까? 대도? 그는 어떤 현장에서 우연히 다른 사건을 조사하러 나왔던 '형사'인 화자와 마주치게 되고 제발로(?) 두손을 내밀어 수갑을 차고 경찰서에 잡혀왔다. 그리고 조사를 받는다. 조사받는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이라 보면 된다. 도로봉의 자기고백은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원에서 발견된 아기 때의 이야기부터.

잡혀있던 열흘간 도로봉은 취조시간마다 자신의 범행이력 -어찌보면 인생 이야기-을 담담히 털어놓았고, 형사들은 믿기 힘든 그 이야기에 점차 빠져들었다. 도로봉은 평생 수많은 절도를 해왔지만 한번도 잡히지 않았다. 정말로 신출귀몰한 괴도인가? 그런 이름을 붙여주기엔 애매한 면이 있다. 그는 알려지지 않았고 어떤 형사도 그를 잡으려 해 본 적이 없었다. 아예 한 번도 신고된 적이 없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그가 가진 남다른 능력은 '물건의 소리를 듣는 것' 이었다. 자기가 있는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물건들은 도로봉에게 소리를 내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도로봉은 그 소리를 따라 물건을 가지고 나온다. 물건들은 주인에게 완벽히 잊히거나, 어찌할바 모를 물건들이어서 그의 절도는 아예 인식되지도 않거나 차라리 다행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니 그는 자칭 도둑이되 한번도 도둑이라 불린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의 절도 에피소드는 애잔하기도 하고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다. 그렇게 도로봉 씨는 절도로 세상 구석의 제자리를 찾아주며 살고 있었다. 그의 죄를 물을 수 있을까.

이 책대로라면 우리집에선 아우성치는 소리가 왕왕 울릴 것이다. 눌리다 못해 화석이 된 옛날 서류들은 "날 고물상에 갖다주면 푼돈이라도 받을거야. 그것도 싫다면 재활용에라도 내놔." 라고 할 것이고 깊은 곳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 창고 물건들 또한 비슷한 소리를 낼 것이다. 보지도 않는 앨범이나 앨범에도 못들어간 사진들은 "날 태워버리고 추억은 가슴에만 간직해." 라고 할 것이다. 도로봉 씨가 1톤 트럭을 몰고 오면 좋겠다. 아우성치는 물건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나는 딱 손뻗으면 닿을 데 있는 물건들만 가지고 가볍고 단순한 삶을 살 텐데.

그러나 이 책은 단지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은 호흡이 좀 긴 편이다. 도로봉 씨는 '어떤 범행' 이후에 큰 변화를 감지한다.
"물건과 살아있는 것은 원래부터 다른 세계에 있는 거야. 어느 한쪽에 발을 들여놓으면 다른 한쪽에는 있을 수 없는 게 이치. 물건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살아 있는 것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아야 돼. 그 반대도 그렇고. 어느 한쪽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느 한쪽의 목소리는 잃게 되거든."

도로봉 씨가 다른 세계로 발을 옮겼다면 그건 어떤 존재를 절도한 사건 때문이었다. 물건이 아닌. 생명과 감정이 있는. 그건 조그만 강아지 '요조라'였다. 그러나 강아지는 주인 손에 돌아갔고 강아지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석방 전날에 유치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그 어느때보다도 강렬하게 도둑의 욕망을 가진 그에게 더이상 예전의 능력은 없다. 그것을 알고 있는 형사들의 '도로봉 구하기' 작전이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하고 코웃음 나오는 발상일 수도 있다. 물건이 말을 해? 쓸모를 잃어서 슬퍼해? 유치해보일 수 있는 이런 발상을 세련되게 감싸고 환상적인 숨결을 불어넣는 힘은 작가의 매력적인 문체인지, 흥미로운 플롯인지 또다른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취향저격하는 책을 만났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단, 동화로서 아이들에게 잘 다가갈지는 좀 실험을 거쳐 봐야 알 것 같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책은 호흡이 길고 구성도 단순치 않다. 아이들 대중을 사로잡긴 어려워 보이고 일부 취향의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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