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때문이야 큰곰자리 43
전은지 지음, 신지수 그림 / 책읽는곰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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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이렇게 비호감인 아이가 주인공인 동화는 처음 봤다. 거의 마지막까지 일말의 애정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인물을 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런 아이(이런 사람)는 존재하니까.

화자인 5학년 노수혜. 공부도 못하고 예쁘지도 않다.(화자가 직접 그렇게 말하고 있음) 주류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주변엔 변변찮은(이것도 화자가 그렇게 여김) 친구들 뿐이다. 수혜는 과학 발명 영재단에 들고 싶어한다. 거기에 잘나가는(!)아이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번이 탈락한다. 수혜는 분개하며 이유를 찾는다.
1. 영재단에 뽑힌 아이들은 엄마가 학교 일을 열심히 하신다. 녹색어머니, 급식모니터링, 도서관도우미 등. 아무래도 학교 일을 해주니 선생님들은 고마울테고 그래서 그런 엄마들의 아이를 뽑아주는 거다.
2. 엄마가 학교에 간식을 사다 바치면 뽑힌다. 홍민우라는 빵집 아이는 엄마가 무슨 때마다 빵을 상자로 가져왔다. 그렇게 간식을 바치려면 엄마가 부자여야 한다.
3. 이도저도 아니라면 선생님들이 꼼짝 못할 정도로 계획서를 잘 써서 내야 한다. 그러려면 아인슈타인 과학교실에 다녀야 한다.

이러한 사고 과정을 거쳐 수혜는 이 책의 제목인 "엄마 때문이야."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엄마한테 "회사를 그만둬라" "아인슈타인 과학교실에 보내달라"며 생떼를 부리기 시작한다. 엄마는 고민이 많아진다.

그러나 수혜는 위의 저 이유들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들을 접하면서 당황하기 시작한다. 일단 3)아인슈타인 과학교실에 다니는 아이를 찾아가서 캐 본 결과 계획서는 본인 힘으로 쓴 것이었고, 과학교실 다니는 아이들 중 영재단에 떨어진 아이들도 많았다. 2)홍민우 엄마(빵집사장)가 학교에 들여간 빵은 선생님들이 주문한 빵을 배달한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학부모가 개인적으로 간식을 사보내는 건 안된다는 규정도 있었다. 1)영재단 아이들 면면을 보니 수혜처럼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도 많았다.

그럼 대체 무엇 때문인가! 화가 난 수혜는 결국 친구들을 대동하고 담당선생님께 쳐들어가는데.... 이건 수혜입장에서 대단한 실수였다. 친구들 보는데서 적나라한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별건 없었다. 그냥 수혜의 계획서와 뽑힌 아이들의 계획서를 비교해서 본 것뿐이다. 교실을 나오면서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공부 못하고 두꺼비눈인 건 그럴 수 있다 쳐."
"성질 더럽고 게을러터진 것도 그럴 수 있다 쳐."
"그런데 노상 남 탓만 하는 건 좀 그렇다. 당장 고쳐 주길 바라."

그래도 '그엄마에 그아이'인 경우는 아니었다. 엄마는 딸의 남탓에 동의하지도 분개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딸을 크게 꾸짖지도 않는다. 워킹맘들의 숙명인가.... 가슴아파하며 최대한 딸이 요구한 시간을 내주려 애쓴다. 아주 극적이진 않지만 수혜도 '내탓'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으니 결말은 희망적이다.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우리 사회에 '남 탓' 정서는 만연해있다. 그 근거를 대부분 '카더라'에서 찾는다. 수혜도 위의 1,2,3 근거를 다 친구들에게 주워들었는데, 그게 본인의 분노 정서에 철커덕 들어맞자 사실확인 거칠 것도 없이 마구 휘둘러댔다. 이런 모습은 주변에 흔하다. 이런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공감이 아니다. 냉정한 사실체크와 조용한 조언이다. 수혜는 이것을 받아들인 셈이니 이제 비호감에서 벗어날 길이 생겼다. 죽자고 또다른 근거를 찾거나 궤변을 만들어 자신을 그 안에 가둔다면 누구도 구해줄 수 없다.

나도 그런 모습은 아닌지 수시로 돌아볼 일이다. 모두 "내탓이오" 하는 체념과 한의 정서를 난 아주 싫어한다. 하지만 그와 반대 극으로 "내가 이루지 못한 건 모두 남탓 세상탓" 이라고만 하는 정서도 잘 보면 문제가 있다. 균형을 잡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인간상을 동화에 나타내다니. 수혜가 그토록 비호감이었던 건 공부를 못해서도 못생겨서도 아니었다. 공부 못하고 못생긴 매력 캐릭터들을 동화에서만 꼽재도 열 손가락이 부족하다. 찌질 캐릭터들의 특징이 있다. 바로 열등감인데, 이걸 본인은 '남 탓'으로 포장하려 하나 수혜처럼 비호감만 증폭될 뿐이다. 어찌나 꼴불견인지 이 책을 끝까지 읽는데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다. 나도 뿌리깊은 열등감의 고질병이 있어 순식간에 이렇게 될까봐 늘 걱정이다.

분량은 짧은데 주인공들이 5학년인 것으로 봐서 고학년이 독자로 맞을 것 같다. 얇고 어렵지 않으니 읽기는 중학년도 충분히 가능하다. 어른들도 좀 읽어보면 좋겠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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