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88
박혜선 지음, 이윤희 그림 / 시공주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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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우울증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 그러나 이야기는 서럽지 않고 재미있었다. 상황이 힘든 사람은 있어도 악한 사람은 없었다. 난 이런 이야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갈데까지는 가지 않는 이야기....?

동화의 주인공으로는 주로 말썽쟁이들이 많이 나오지만 이 책의 종현이는 보기드문 모범생이다. 사려깊고 예의바르고 차분하고 준비성 있고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자기 할 일은 제 시간에 알아서 해 놓는다. 우와, 완벽하다. 이런 아이가 자식이거나 제자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종현이가 이런 자신의 정체성을 원망하고 떨쳐버리려는 순간이 온다. 바로 엄마 때문이다.

첫장면, 저녁 식탁의 대화는 살얼음판 같다. 할머니는 무슨 그런 병이 있냐 하고 아빠는 신경이 곤두서 있고 엄마는 꺼질듯 무기력하다. 엄마의 우울증 진단이 내려진 후 집안의 모습이다. 결국 종현이는 할머니의 혼잣말을 듣는다. "할 일 없으니 별 병이 다 걸리지."

든든한 할머니 덕에 그동안 엄마는 마음놓고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직장을 잃고 다시 구하지 못해 집에 있게 되자 설 자리를 못 찾고 헤매다 우울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할머니의 혼잣말을 들은 종현이는 결심한다. 내가 엄마를 성가시게 만들겠다고.

이때 롤모델이 된 친구가 같은반의 안하람이다. 생각보다 말과 행동이 열 걸음은 앞서가는 아이. 하루가 멀다 사고를 치고, 하람이 엄마는 쫓아다니며 뒷수습에 정신을 못차린다. 종현이가 과연 이 모델을 닮을 수 있을까?^^

원판 불변의 법칙이라고, 타고난 게 얼마나 징글징글한 건데, 어림도 없다. 하지만 정말로 최선을 다하다보니 몇가지 사고치기엔 성공했고, 결국 엄마는 학교에 불려오게 됐다. 그때까지 종현이와 하람이, 학급 친구들이 벌이는 이야기들이 꽤나 재미있다. 엄마의 우울증이라는 소재는 조용히 따라갈 뿐 주로 천방지축 안하람과 그를 닮으려는 이종현의 분투가 이야기를 끌어간다. 캐릭터들은 나름 다 매력이 있다. 뒷목 잡게 만드는 안하람을 미워하지 못하고 웃음을 깨무는 선생님도 훌륭한 교사 여부를 떠나서 참 좋은 사람이다. 선생님은 일탈하려 몸부림치는 종현이의 어깨를 말없이 두드려 주거나 꼭 안아주기도 했다. "왜 저만 봐줘요. 이건 차별이잖아요." 라는 항변을 듣기까지. 그리고 종현이가 바란대로 엄마는 상담을 오게 됐다.

나이들어서 그런지 종현이의 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의 시어머니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사돈댁이 와서 화내며 탓하기까지.... 열심히 살림하고 손자 키워줬을 뿐인데 이제와서 어쩌라고? 이 집을 나가야 되나 고민하는 노인네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손자와 함께 엄마 생일선물로 줄 시집을 고르며 고민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참 고맙다. 얼핏 눈에 띈 시집제목은 <여행> 많은 것을 암시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의 제목이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이건 청개구리 안하람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학급에 유행시킨 말이기도 하다. 교사 입장에선 열받지만, 자신이 납득한 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게 이유없는 어깃장이거나 가당치 않은 궤변이 아니라면 귀기울여줄 필요가 있다. 모범생이라는 틀에 끼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도 못하던 종현이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자, 그리하여 종현이는 자기 목소리를 찾으며 한걸음 성장한다. 하지만 이종현이 안하람 되지는 못할 것이다. 이한철의 '안되는 건 안돼' 라는 노래가 있다.
"일등이 꼴찌하기 어려울걸 어려울걸~
잘해봤자 안되는 건 안 돼~"
생긴 대로 사는 것이다. 내가 나이고, 이런 나는 세상에 나 뿐이니까.
가끔은 나도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살 것이다. 사실 난 그 말을 꽤 잘 하는 편이다.ㅎㅎ

시공주니어문고 중학년용이고 주인공들 연령도 4학년이다. 분량은 중학년 수준이지만 내용상 5,6학년도 괜찮겠다. 4학년 아래로는 어려울듯. 아이들은 어른과는 다른 시각에서 재미를 느낄 것 같은데, 어른들이 권하고 싶은 책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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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앵글의 심리 -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의 마음으로 읽는 학교폭력
이보경 지음 / 양철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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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빌려다놓고 한참 미루다가 이제야 손에 들었다. 아마 절박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최근 3년간 평화로운 출근을 하고 있어서, 나한테 닥친 일이 아니어서.... 하지만 당장 내년에 우리 학급에 어떤 일이 생기고 그 일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 어떤 결말을 몰고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의 일이 내 일 되는 것은 한순간인데, 풀어져 있다 닥치면 대응하기 훨씬 어렵다. 이 책을 지금 읽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제목처럼 '심리'에 주목하는 책이다. 가장 근본을 파헤치는 일이라 하겠다. 이미 일이 벌어진 후에 심리타령을 하고 있기는 어렵다. 그때는 납득할만한(그런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처리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관찰하고 지도하는 단계에서는 '심리'에 대한 안목이 매우 중요하다. 이 분야에 공부와 활동을 많이 하신 선생님이 쓰신 책이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정확히 짚어주는 내용,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는 내용 등 나를 일깨워주는 내용이 많았다.

'트라이앵글'이 제목에 쓰였듯이 이 책은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 세 각도에서 당사자들의 심리와 그에 대한 접근방식을 다룬다. 버릴 내용이 없을만큼 밀도있고 설득력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아득해지기도 했다. 이토록 어려운 일을....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 주어진 이 평화에 감사하며 조심조심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걸까. 어제도 오늘도 뉴스에서 성인폭력보다 더 끔찍한 청소년폭력의 사례들을 보았고, 청소년법 폐지하고 엄벌하라는 댓글들이 빗발치는 것을 보았다. 책에 언급된 사례들만 보아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고 가장 다루기 힘든 것은 사람의 마음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확실히 인간이란 건, 나부터가 말이다.... 절대로 고귀하지 않다. 역겹고 냄새난다. 자연그대로 두면 아름다울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가꾸고 다듬어야 그나마 봐줄만한 정원이 되는거고, 그냥 두면 잡초 천지 발디딜 틈도 없는 살풍경이 되는 거다. 인간에게는 악의 발현을 억누르는 여러가지 동기들이 있다. 나를 비롯하여 다행히 이게 작동되는 인간들은 속으로는 남을 욕하든 뒤통수를 갈기든 어쨌거나 겉으로는 남에게 크게 나쁜짓은 안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동기 자체가 없는 인간은? 제어장치가 듣지 않는 인간은?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사회는? 그게 나의 제자라면?

트라이앵글은 책의 2부에 나오고, 1부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주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담겼다. 첫번째 꼭지가 <파리대왕>인 것은 여러가지를 시사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 나오는 '두 남자와 장인' 이야기에선 자신을 도운 사람을 오히려 견제하고 거리를 두는 인간의 심리를 볼 수 있다.(헉, 찔렸다...ㅠ) '모방의 힘'을 언급한 꼭지에선 영향력, 특히 부모의 영향력의 지대함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교사의 영향력도 무시 못할 수준이니 다시 한 번 내 언행을 돌아보게 된다. 그룹에서의 분리를 죽음처럼 여기는 아이들의 심리,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자의식을 언급한 꼭지에서는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심리라기보다도 우리나라의 특별한 국민적 심리 아닌가 싶어 입맛이 씁쓸하기도 했다. 자존감이 부족하고 남과 비교하며 체면을 중시하는 국민성 말이다. 독야청청이 씨가 마른...ㅠ

이어서 몇 군데 밑줄친 구절들을 적어본다.
■ 힘을 얻기 위한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어떤 힘을 얻고자 하는지는 아이들이 접한 환경과 경험에 따라 다양하다. 이것을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힘을 갖고 싶어요-64쪽)
: 교사로서의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는 부분이었다. 건전한 가치관을 가르치는 일이 교육으로 가능할까. 여기에 고개를 젓는다면 나는 당장 짐을 싸야 할 사람이다. 참으로 무겁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한걸음 나가고 싶다.

■ 작은 행위가 큰 행위로 번져 나가는 것을 교사가 즉각 감지하거나 인지하고 막을 수 있어야 한다.(깨진 유리창의 법칙-67쪽)
: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정말로 교실에 그대로 적용된다. 유리창 하나가 깨지지 않도록 사전에 감지하고 막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혹시라도 깨졌다면 한 장이 두 장 되지 않도록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한다. 끔찍해서 뒤로 물러서는 순간, 그 교실은 끝장이다. 나는 학급붕괴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그 아주 미세한 떨림을 감지해 본 적이 있다. 털끝만한 흔들림이었는데도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이 꼭지에 정말 공감했다.

■ 교사는 학급 내 집단 역동에 대해 예리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동조하는 이유-84쪽)
: 위 꼭지와 일맥상통하지만 학급 내의 집단 역동에 초점이 있다. 권력 위계가 굳어지면 손쓰기 어렵다. 그 안에서 권력에 의해 부당한 억눌림을 당하는 약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당연한 것, 상식이 되어야 한다. 어떤 해에는 이게 저절로 되지만 어떤 해에는 교사가 돌파해야 한다. 눈물겹게 어려울 때도 있다.

■ 교사는 학생들 사이에 이러한 집단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아야 하며 잘못된 위계 형성을 깨부수어야 한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서 용기있게 따르고 상황을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도덕적인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 주도록 해야 한다.(90쪽)
■ 이렇게 우리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어하는 본질적인 나약함이 있다. 우리는 이런 나약함에 분노와 실망을 느낀다. 그렇기에 더욱더 이런 나약함을 인식하고 아픔을 공감하고 자신을 바르게 세울 수 있는 정의감, 정의에 대한 당당함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 (집단에 충성하는 아이히만 -93쪽)

: 공감과 성찰이 결핍된 채로 역할에만 몰두한 아이히만의 사례는 자주 언급된다. 아이들도 이런 경우인 경우가 많다. 딱히 모나고 드세지 않은데도 악행에 충실히 가담하는 아이들. 그 눈을 뜨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황과 행동을 살펴볼 수 있는 각성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물론 무척이나 어렵지만....

2부에선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 순서로 그들의 입장과 마음을 다루었다. 피해자 장에선 '호모 사케르'라는 용어가 나왔다. 한병철 님의 '피로사회'를 같이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피로사회의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탈출구로 호모 사케르를 찾고, 자신이 호모 사케르가 될까 두려운 아이들은 더 적극적인 공격자가 되기도 한다. 피해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와같이 단순하지 않으며 이것은 우리 사회를 반영한다. 단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원인이 깊으니 해결책 또한 단순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처한 어려움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가장 우선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위로하고 힘을 주어야 하는 대상은 피해자다. 일에 휘말리면 마음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고 들었다. 상처만 안고 그로기 상태에서 끝난다. 학폭법에 대한 문제제기도 우리 사회가 꼭 귀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와 더불어 회복탄력성을 언급한 부분에 매우 공감한다.
■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덜 상처받을 수 있을까 가르쳐주고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고 학교의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142쪽)
: 피해자를 도와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사실 가해 피해가 명확한 경우보다도 현장에선 그 경계가 애매한 경우가 더 많다. 아이들이 회복탄력성(리질리언스)을 가지고 스스로의 마음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 모두의 고민은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다.

가해자의 마음에 신경쓰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을 감싸기 위해서가 아니며 그들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돕기 위해서 옆에 있어줄 필요가 있다. 보통 분노가 일기 마련이므로 참으로 수양이 된 인격이거나 숙련된 전문가여야 할 필요가 있지만....

마지막으로 방관자 장에선 회복적 생활교육을 다루었다. 이에 대해선 따로 책 한권으로 다뤄도 부족한 분량이니 간단한 소개만 했다고 할 수 있다. 전체 앞에서 중재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나름의 대안으로 그래도 가장 결실을 보는 방법인 것 같아 관심이 간다.

책의 내용에 전반적으로 만족하고 배울 점이 많았지만 마지막에 덧붙인 '나가며'라는 장은 내게는 사족처럼 느껴져서 약간 불편했다. 개인의 감정이 들어가니 전문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사실은 그 모든 감정을 알아야 전문성이 높아지는 것일테지만, '나도 그 입장 되어 봤는데'가 반드시 객관성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 내가 편집자라면 이 장은 뺐을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이 책에 언급된 모든 것을 알아도 극복할 수 없는 사안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할 때 하더라도 숨겨진 마음, 그 이해에 집중하려는 저자의 원칙에 나도 동의한다. 그를 위해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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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가르치는 선생님 독깨비 (책콩 어린이) 55
셰인 페이슬리 지음, 전지숙 옮김 / 책과콩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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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읽었던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선생님>의 후속편이다. 썩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전편과 비교해 읽기로 작정한 김에 끝까지 읽었다. 내용은 예상대로였고 특별한 반전은 없었고 결말도 평이했다.

전편의 비프리 선생님과 대비되는 이 책의 선생님 이름은 애고나이즈.(고민하다, 번뇌하다 라는 뜻 - 실제로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엄청난 밀도로 수업을 강행하고 숙제도 무지막지하게 내준다. 어떤 상황에도 예외나 봐주기는 없다. 수업방식은 대부분 강의식이고 질문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다. 새로운 수업모형이나 기법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없을 것 같다. 아주아주 전통적인 방식, 나이먹은 내가 학교다닐 때의 수업방식이다. 교사가 써주는 것 필기하기, 강의들으며 필기하기가 거의 전부다. 매일 엄청난 양을 듣고 쓰고, 외우고 익힌다. 어떨 때 보면 미처 익히기도 전에 밀어닥친 다음 분량을 쓰고 쓰고 또 쓴다. 아이들은 공부와 숙제에 치여 여가나 놀이시간은 고사하고 잠잘 시간도 부족할 정도다. 화자인 토미를 비롯한 이 학급의 6학년 아이들은 선생님의 기세에 떠밀려 꼼짝없이 이 1년을 보낸다.

그리고나서 아이들이 깨닫는 것은 '힘들여 어려운 것을 하고 났더니 다른 것들은 정말 쉽구나' 라는 것이다. 기준이 높은 애고나이즈 선생님의 방식대로 글쓰기를 해버릇했더니 모의고사의 답안 쓰기는 그냥 껌이었던 것이다. 6학년 분량이 30이라면 선생님은 100을 가르쳤고 100을 익힌 아이들에게 30은 너무 가벼웠다. 그 가벼움은 자유의 느낌과 비슷할 정도였다. 뭔지 알 것 같다. 뿐만아니라 아이들은 육상대회와 연극공연도 훌륭하게 치러냈다. 그동안에 공부와 숙제는 에누리가 좀 있었을까? 천만에!

가끔 나는 누가 나를 이렇게 담금질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유능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납득이 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의미없는 고생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건 끔찍한 일이다.

정말 다행히도 이 학급의 아이들은 이탈없이 이 고생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로 나타난 학력평가의 결과는 놀라웠다.(미국의 학교는 유급제도가 있는듯? 전과목 전원통과. 그것도 고득점으로)

일제고사와 수업내용,방식의 관련성이 미국과 우리나라가 같지 않은 듯하다. 만약 같다면 난 이 책의 내용을 전면 부정하고 싶다. 한때 몰아쳤던 일제고사의 바람은 지역간, 학교간 경쟁을 몰고왔고 수업은 파행진행됐다. 그렇다. 그때 아이들은 무진장 공부했었지. 매일 문제지 풀고. 그런데 말이다 그게 거의 헛짓거리 헛고생이었다는...ㅠ 그때 1등했던 지역, 1등했던 학교, 에고 의미없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걸리는 것이 많다. 그래도 내가 염두에 둘 점을 찾아본다면
1. 교사의 기준은 조금 높아도 좋다. 상황에 따라 유연해야겠지만 빠듯하게 쫒아가는 것보다는 여유있게 해놓으면 언젠가 도움이 된다.
2. 수업에 대한 열정. 애고나이즈 선생님은 이 점에 있어서 대단했다. 더 가르치지 못해 늘 안달했다. 가르칠 게 너무 많은 사람. 늘 수업준비가 넘치도록 되어있는 사람. 나는 가끔 지치는데. 애들도 애들이지만 나 자신이 꾀가 날 때가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선생님은 존경스럽다.
3. 아이들에게 최선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몰아가는 능력은 중요하다. 자신이 알고있던 한계를 뛰어넘을 때 인간은 희열을 느끼는데 그게 혼자서는 잘 되지 않으므로 조력자나 지휘자가 필요하다. 단 잘못 당기다 고무줄이 끊어져버린다면 그건 낭패지만. 대상과 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수준까지 밀어붙이는 능력. 그게 상당히 고급기술인데 뱃심 부족한 나에겐 참 어려운 능력이라 늘 부러워한다.

교실 안에서 교사의 위상은 어때야 하는가? 한 10년 정도 나는 이것을 스스로 상당히 낮춰 왔던 것 같다. 학생주도라는 당위에 밀려서.... 그런데 요즘은 다시 이것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 교사가 없어도 되는 교실은 없다. 그렇다면 교사는 교실 안에서 중심이 확고해야 한다. 그게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안정감을 준다.

황금연휴에 책을 읽고 페북을 보다보니 훌륭한 교사들은 왜이리 많고 나는 왜이리 작을까. 우리반 아이들이 불쌍하잖아..... 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지만, 두더지 방망이로 때려넣어 버리고 남은 하루동안 충전해야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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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도서관에서 읽은 그림,동화책들 - 특히 어른들이 봐야되는- 소개>

동화나 그림책 중엔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의 태도를 꼬집는 책들이 있다. 그 책을 아이들이 읽어도 물론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읽는다면.... 재미 외에 뭔가 깊은 생각거리가 있으리라.

평화도서관에서 2시간을 일행과만 머물면서 이런저런 책들을 펼쳐보았다. 2시간은 긴 시간이 아니기에 얇은 책, 주로 그림책 위주로 보았다. 아주 재미있게 본 그림책이 있었으니 <너무너무 공주>라는 책이었다. 엇, 작년에 나온 책인데, 왜 여태 몰랐지? 허은미/서현이라는 놀라운 작가진인데 말이다.


서현 님의 그림은 역시 편안하고 친근하고 귀엽다. <진정한 일곱살>을 지으신 허은미 님의 글도 쉬우면서 재밌다. 그러니까 글도 그림도 쉽고 재미있다는 건데.... 읽기에 따라선 뭔가 묵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임금님은 늘그막에 얻은 공주를 너무나 사랑했다. 서현 작가가 그린 공주는 너무나 밝고 해맑다. 책에선 공주를 이렇게 표현했다.
"놀고 싶을 땐 놀고, 자고 싶을 땐 자고
웃고 싶을 땐 웃고, 울고 싶을 땐 울었어.
좋은 건 좋다 하고 싫은 건 싫다 했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하지만 임금님은 걱정했다. 까막까치들의 노래에 그 이유가 있다.

"평범해, 평범해. 공주가 평범해.
얼굴도 평범해. 성격도 평범해.
머리도 평범해. 너무너무 평범해.”

딸바보 임금님은 공주란 모름지기 비범해야 한다고 기대했던 것이다. 저렇게 아이다운 공주에게 뭔가 비범함은 없었다. 너무나 걱정된 임금님은 잉어의 세가지 소원 수염을 샀다. 쭈글쭈글 늙음을 담보로 걸고.... 소원 한가지를 사용할 때마다 임금님은 기운없고 주름패인 노인이 되어갔다. 그 댓가로 공주는 비범해졌을까?

첫 번째 소원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공주가 되게 하라." 공주님은 예쁜 대신 날카로워졌다.
두 번째 소원 "가장 착한 공주가 되게 하라." 공주는 착한 대신 빛을 잃고 시들시들해져갔다.
안타깝게 지켜보던 임금님은 마지막 소원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책에 직접 나오진 않는다. 그 소원을 아이들과 짐작해보는 대화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하여간 마지막 소원을 쓰고 공주는 행복해졌다. 그 모습은 첫 장면의 딱 그 모습이다. 평범하고 해맑은....

"내가 너를 위해서 어떻게 했는데!!"
드라마에서 자주 들어본 절규의 대사다. 쭈글쭈글 늙어버린 임금님처럼 부모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자녀의 성공(남보다 앞선 성취)에 걸지만 결국 모두 불행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지 못하는 억울한 부모는 저런 절규를 하게 된다. 이런 모습은 크게 혹은 작게 우리 사회에 아주 흔한 풍경이다.

비범함의 욕구와 평범함의 만족은 아주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할 문제다. 자식이 아니라 본인의 문제일 때도 그렇다. 타고난 성향도 작용하기 때문에 뭐라 단정해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범함이 사랑의, 자존감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 그림책 마지막 장의 문장 "너에 대해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는 거야." 처럼 "너이기 때문에, 너 자체로 소중해."라는 메세지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두번째로 읽은책은 <스티커 토끼> 이 책은 아이들을 '규정'하는 어른들을 꼬집는다. 이 아이는 까탈쟁이, 얘는 순둥이, 얘는 싸움닭, 독불장군, 까불이, 투덜이....

20마리 아기토끼의 엄마아빠가 며칠 집을 비우며 할머니에게 아기들을 맡겼다. 할머니는 부모의 설명을 참고해 아이들 등에 스티커를 붙였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스티커가 날아가버려 그건 헛일이 되어버렸는데, 지내며 보니 스티커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딱지붙이기(규정짓기)의 무의미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경험은 이 주제에 대하여 살짝 이의를 제기한다. '규정짓기'의 위험성에는 백번 공감하지만 아이들의 성향에 대한 이름짓기가 전혀 무의미하거나 백해무익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누가봐도 그러한' 면이 없지 않다. 그걸 가지고 맞네 틀렸네 옳으네 그르네 착하네 못됐네 하는게 문제지 아이들이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그게 상당히 고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으니 그 가능성 안에서 아이들을 봐야 한다는 점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 외 조용한 밤, 무슨 벽일까?, 두둑의 노래 등도 인상적인 책이었다. 먹고 산책하고 수다떠느라 북스테이지만 북에는 많이 집중하지 못했다. 뭐 그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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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지도 샘터역사동화 5
조경숙 지음, 안재선 그림, 이지수 감수 / 샘터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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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역사동화를 부지런히 찾아읽고 시대배경별로 정리도 해두었는데 한참동안 뜸했다가 오랜만에 신간을 한권 읽게 됐다.

제목이 비밀지도. 첫장에 대동여지도가 나온다. 김정호의 지도 작업에 대한 이야기인가? 아니 그보다 약간 후대의 이야기였다. 19세기 후반. 이 시대, 특히 이 사건을 주제로한 역사동화는 이 책이 처음이 아닐까 한다. 그 사건이 드러나기 전 책의 초반에는 계속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이 역사동화는 어떤 역사적 사건을 다루었을까?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책임지려고 분주히 심부름을 하며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애쓰는 재동이라는 소년이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실존 인물은 '이소바야시'라는 일본인이다. 일본에서 사업차 왔다는 이 인물은 재동이의 눈썰미와 영리함을 알아보고 길안내를 요청한다. 어머니의 약값이 필요했던 재동이는 짭짤한 품삯에 감사하며 함께 길을 나선다.

그는 약을 팔러 다닌다고 했다. 초반부에 그는 꽤나 인간적인 신사의 모습으로 보인다. 재동이도 힘을 다해 뭐라도 그를 도우려 애쓰고, 힘든 일도 함께 겪으며 그들에겐 얼핏 동지애가 싹트는 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일본인의 행태는 볼수록 수상쩍다. 영리한 재동이는 이것을 놓치지 않는데.... 마침내 눈치챈 그의 비밀은....

제목이 '비밀지도'인데다 첫장에 대동여지도가 나오니 그 일본인의 수상쩍은 비밀행위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의 신분은 원래 군인이었고 조선의 주요 지역을 다니며 비밀리에 지도를 제작하고 있었다. 조선 침략을 위한 사전 준비였음은 물론이다. 재동이는 그 놀라운 사실에 남몰래 몸을 떨며 어떻게 이것을 저지할 수 있을까 궁리했지만 틈이 나질 않는다. 마지막으로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재동의 작전은 멋지게 성공.... 이소바야시는 넋이 나간 채 입만 벌리고 있어야 했다.

책은 그렇게 끝났고, 어린이 독자들은 재동이와 같이 환호할 수 있겠지만 실상을 보면 일본이 계획한 지도제작은 실패하지 않았다. 실패는 커녕 놀라울만큼 치밀하게 제작되고 활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실존인물 이소바야시는 갑신정변 때 흥분한 군중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한 번도 쓰여진 적 없는 이런 소재의 역사동화가 새롭게 나온 것을 반갑게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의 고난과 일제의 만행, 독립운동 등을 다룬 역사동화도 의미있지만 일본의 치밀한 사전작업, 그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던 조선의 속수무책도 다시 봐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현재의 길을 안내해주는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역사는 지금의 순간을 어떻게 평가할까? 자신이 선 곳을 바르게 보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작가분이 새로운 소재의 역사동화를 쓰신 김에 갑신정변 등의 한마디로 평가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건들도 다루어 주시면 흥미있게 읽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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