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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ㅣ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88
박혜선 지음, 이윤희 그림 / 시공주니어 / 2019년 3월
평점 :
엄마의 우울증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 그러나 이야기는 서럽지 않고 재미있었다. 상황이 힘든 사람은 있어도 악한 사람은 없었다. 난 이런 이야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갈데까지는 가지 않는 이야기....?
동화의 주인공으로는 주로 말썽쟁이들이 많이 나오지만 이 책의 종현이는 보기드문 모범생이다. 사려깊고 예의바르고 차분하고 준비성 있고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자기 할 일은 제 시간에 알아서 해 놓는다. 우와, 완벽하다. 이런 아이가 자식이거나 제자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종현이가 이런 자신의 정체성을 원망하고 떨쳐버리려는 순간이 온다. 바로 엄마 때문이다.
첫장면, 저녁 식탁의 대화는 살얼음판 같다. 할머니는 무슨 그런 병이 있냐 하고 아빠는 신경이 곤두서 있고 엄마는 꺼질듯 무기력하다. 엄마의 우울증 진단이 내려진 후 집안의 모습이다. 결국 종현이는 할머니의 혼잣말을 듣는다. "할 일 없으니 별 병이 다 걸리지."
든든한 할머니 덕에 그동안 엄마는 마음놓고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직장을 잃고 다시 구하지 못해 집에 있게 되자 설 자리를 못 찾고 헤매다 우울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할머니의 혼잣말을 들은 종현이는 결심한다. 내가 엄마를 성가시게 만들겠다고.
이때 롤모델이 된 친구가 같은반의 안하람이다. 생각보다 말과 행동이 열 걸음은 앞서가는 아이. 하루가 멀다 사고를 치고, 하람이 엄마는 쫓아다니며 뒷수습에 정신을 못차린다. 종현이가 과연 이 모델을 닮을 수 있을까?^^
원판 불변의 법칙이라고, 타고난 게 얼마나 징글징글한 건데, 어림도 없다. 하지만 정말로 최선을 다하다보니 몇가지 사고치기엔 성공했고, 결국 엄마는 학교에 불려오게 됐다. 그때까지 종현이와 하람이, 학급 친구들이 벌이는 이야기들이 꽤나 재미있다. 엄마의 우울증이라는 소재는 조용히 따라갈 뿐 주로 천방지축 안하람과 그를 닮으려는 이종현의 분투가 이야기를 끌어간다. 캐릭터들은 나름 다 매력이 있다. 뒷목 잡게 만드는 안하람을 미워하지 못하고 웃음을 깨무는 선생님도 훌륭한 교사 여부를 떠나서 참 좋은 사람이다. 선생님은 일탈하려 몸부림치는 종현이의 어깨를 말없이 두드려 주거나 꼭 안아주기도 했다. "왜 저만 봐줘요. 이건 차별이잖아요." 라는 항변을 듣기까지. 그리고 종현이가 바란대로 엄마는 상담을 오게 됐다.
나이들어서 그런지 종현이의 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의 시어머니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사돈댁이 와서 화내며 탓하기까지.... 열심히 살림하고 손자 키워줬을 뿐인데 이제와서 어쩌라고? 이 집을 나가야 되나 고민하는 노인네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손자와 함께 엄마 생일선물로 줄 시집을 고르며 고민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참 고맙다. 얼핏 눈에 띈 시집제목은 <여행> 많은 것을 암시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의 제목이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이건 청개구리 안하람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학급에 유행시킨 말이기도 하다. 교사 입장에선 열받지만, 자신이 납득한 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게 이유없는 어깃장이거나 가당치 않은 궤변이 아니라면 귀기울여줄 필요가 있다. 모범생이라는 틀에 끼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도 못하던 종현이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자, 그리하여 종현이는 자기 목소리를 찾으며 한걸음 성장한다. 하지만 이종현이 안하람 되지는 못할 것이다. 이한철의 '안되는 건 안돼' 라는 노래가 있다.
"일등이 꼴찌하기 어려울걸 어려울걸~
잘해봤자 안되는 건 안 돼~"
생긴 대로 사는 것이다. 내가 나이고, 이런 나는 세상에 나 뿐이니까.
가끔은 나도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살 것이다. 사실 난 그 말을 꽤 잘 하는 편이다.ㅎㅎ
시공주니어문고 중학년용이고 주인공들 연령도 4학년이다. 분량은 중학년 수준이지만 내용상 5,6학년도 괜찮겠다. 4학년 아래로는 어려울듯. 아이들은 어른과는 다른 시각에서 재미를 느낄 것 같은데, 어른들이 권하고 싶은 책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