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캘러핸이라는 실존인물의 자서전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전신마비 카툰 작가였다. 말그대로 '영화같은' 인생을 살다 갔다. 우리엄마보다 10년 젊으신데 10년 전 작고했으니 비교적 짧은 삶을 살다간 셈이다. 하지만 사는 동안 그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절망을 이겨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끝내 편해지지 않았다. 절망을 극복하기보다는 아예 절망하지 않기를, 역경을 이겨내기보다는 아예 역경이 다가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쫄보인생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3가지 정보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수 있음)
1.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다.
2. 빨간머리다.
3. 학교 선생님이었다.(엥....)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저를 원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는 버려졌고 입양되었고 그곳에서도 환대받지 못했다. 그는 일찍부터 술담배를 했고 알콜중독자가 됐다.

상처받은 짐승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그동안 받아마땅했던 모든 사랑과 위로와 관심과 어루만짐이 있어야 그 몸부림이 잦아든다. 그제서야 우리는 그의 눈을 바라보고 차분히 말을 건넬 수 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주어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걸 알지만 실제로는 잘 되지 않는다. 그가 이빨을 드러내고 있으니.

그의 짐승 몸부림에 난 미간을 찌푸렸다. 금단증세로 덜덜 떠는 손으로 병째로 술을 들이키고, 비틀거리며 걷고 아무말이나 하고 아무나 만나 위험한 일에 빠져들고... 만취된 두 사람이 차로 걸어갈 때 알아차렸다. 아 저렇게 해서 사고는 일어나는구나.... 그 결과는 너무 참혹했다. 병원에서의 시간, 온몸이 고정되어 겨우 말만 할 수 있는 그가 자원봉사자인 아누와 나누는 얘기가 너무 처절했다.(정확한 대사는 기억 안 남)
"하나님께 말한다면, 제발 마비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악마에게 말한다면, 내 영혼을 가져가도 좋으니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그러나 이미 그의 척추는 부서져 전신이 마비된 상태. 퇴원한 그는 휠체어에 앉아 방문간병인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그 끔찍한 변화에도 알콜중독만은 그를 떠나지 않고 남아있었다. 그는 '알콜중독자 모임'에 나간다. 집단상담 같은 모임인데 인도자인 도니와의 대화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주옥같은 대사가 오고가는 동안 깜빡깜빡 졸아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사를 많이 놓쳤다.;;;; 존은 도니가 제시한 12단계 프로그램을 하나씩 실행해나간다. 그와중에 환상속의 엄마를(그토록 원망하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보고 음성을 듣기도 하고, 음주운전으로 자신을 이꼴로 만든 친구를 만나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이때 그의 표정이 정말 편안해 보였다. 타인과의 화해(용서)는 그렇게 성공했다.

마지막 단계는 자신과의 화해(용서)일 터. 그는 이것을 무난히 해냈을까?

창피하게도 심각한 대화 도중 살짝 졸았던 이유는.... 이 영화는 극적인 역경극복 스토리가 아니다. 믿을 수 없는 변화가 한 순간에 일어나고 막 감격스럽고 그렇지는 않다. 그냥 그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쩌면 선택지가 없으니까. 그는 용서했다. 어쩌면 용서하지 않는 것이 더 괴로우니까. 케이트 디카밀로의 동화 <생쥐기사 데스페로>가 생각났다. 데스페로가 자신을 버리고 사지에 밀어넣은 아빠를 용서할 때 작가가 뭐라고 했더라? 


["아빠, 아빠를 용서해요"
데스페로는 그 말을 하는 것이 가슴이 둘로 쪼개지지 않을 단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했단다. 얘들아, 데스페로는 자기 자신을 구하려고 그 말을 한 거야.]

그렇게 존은 자신을 구했다. 영화 전반에 걸친 그의 표정변화는 동일배우라 믿기 힘들 정도로 일품이라고 생각한다. 타락한 짐승일 때의 표정-사고로 절망할 때의 표정-쓸쓸한 표정-체념한표정-편안한 표정-복잡한 표정-그리고 사랑과 기쁨의 표정도.

다시 본다면 그의 카툰 내용에 집중하고 싶다. 시각정보에 약한 데다 졸기까지해서 카툰 내용까지는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사고와 처지에 대한 감정이입이 심해서 참 힘들게 영화를 봤다. 그는 용서하고 편안해졌는지 몰라도 내 상상은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난 '스페셜'하지 않아도 좋으니 '워리'하지 않게 살고 싶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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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디어 피플 6
이사벨 토머스 지음, 마리아나 마드리즈 그림, 서남희 옮김, 우성주 감수 / 웅진주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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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피플 시리즈 / 이사벨 토머스 외 / 웅진주니어>

인물이야기(옛날 식으로 부르면 위인전)를 아이들에게 읽히는 게 쉽지 않다. 옛날 우리 어릴때 집에 책이라면 부모님이 맘먹고 사주신 계몽사 위인전집밖에 없었던 때는 어쩔 수 없이 그것만 읽었지만, 지금은 학교도서관에만 가도 온갖 탐스러운 책들이 넘치니까.... 인물이야기는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린다. 하지만 독서의 편식을 방지하는 의미에서라도 난 가끔 인물시리즈를 수업에 활용한다. 국어에서 전기문 단원이 나올 때, 인물의 말과 행동에서 그의 생각을 유추하거나 인물의 삶을 통해 그의 가치관을 판단하는 수업을 할 때 인물이야기 전집을 도서관에서 학급대출해서 횔용한다. 이럴 때 두꺼운 책들은 시간의 제약 때문에 활용하기 힘들고, 나는 주로 비룡소에서 나온 <새싹 인물전> 시리즈를 활용했다. 이 시리즈는 저학년용이라 보통 단위수업시간 내에 읽을 수 있고 국내외 인물 골고루 60권까지 나와있어 권수도 넉넉하여 활용하기 아주 좋았다.

그러다 올해 이 책이 나온 걸 보고 오잉? 요것도 좋겠는걸? 하고 지난 1학기 도서실 수서 때 구입했다. 사놓기만 하고 못읽어보다가 오늘 그 중 2권을 대표로 가져와 읽어봤는데 참 괜찮다.
1. 글보다 그림이 많은 구성이라 일단 접근성이 좋다. 표지도 각 권마다 다른 색으로 칼라풀하다. 내용 이전에 비주얼을 따지는 까탈스런 아해들에게도 먹히겠다.ㅎㅎ 본문의 그림도 총천연색은 아니지만(몇도인쇄? 그런거 잘 몰라서...) 그림체도 각각 개성있고 그림책처럼 그림에도 많은 이야기나 정보들이 들어있다. 글자체도 일반적인 인쇄체가 아니고 개성있는 폰트들이 사용되었다. 모든 책이 이렇다면 정신없겠지만 가끔 이렇게 읽으면 새로워서 좋다.

2. 새로운 인물들을 조명해서 좋다. 완전 최초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존 위인전들에선 흔히 다루지 않던 인물들, 프리다 칼로나 '안네의 일기'의 안네 프랑크 등이 포함되어 있다.

3. 이건 무조건 장점이라 할 순 없지만 분량과 구성상 부담없이 빠르게 읽을 수 있어 다양한 독서력이 섞여있는 교실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나누기 좋다. 단 분량이 적다고 해서 내용이 단선적인 건 아니다. 업적과 교훈을 강조한 일반적인 위인전과는 느낌이 다르다. 일생의 애환을 조명했다고 할까. 전권을 다 읽지는 못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인터넷서점의 분류로는 1,2학년용으로 되어있는데 내가 볼 때는 저학년도 읽는데는 무리가 없겠으나 내용을 다루려면 중학년 이상은 되어야 할 것 같다. 예를들면 '넬슨 만델라'를 읽었는데 그는 비폭력투쟁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부분은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 상식적인 덕목에는 위배되므로 아이들이 어려워할 수도 있겠다. 모든 일에는 상황적 맥락이 있으므로 그가 살아간 시대와 그의 생애를 통해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게 아이들이 배워야 할 감수성일테고, 그래서 인물책 독서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활용가능한 책들이 늘어나면 그게 내 책꽂이에 꽂힌 게 아니라 해도 든든해지는 느낌이 있다.^^ 현재 7권까지 나와있는데 이 시리즈가 적어도 30권까지는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같이 읽고 골라 읽기 좋거든....)

개인적 감상으로 <프리다 칼로>를 읽고나니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서 '일부라도 실제 작품을 실어주지!' 라는 답답함이 생겼다. 네~ 바로 그거예요. 그럼 이제 도서관의 600번 코너로 가시는 거죠.ㅎㅎ 아이들도 이처럼 독서가 확대되어가면 좋겠다. 영화 <프리다>도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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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아이들 - 초등 교사 천경호의 학교 이야기
천경호 지음 / 이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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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아이들의 실수는 혼내면 안되고 교사의 실수는 나를 갈아마셔도 입이 열개라도 할말 없는 일이며 학부모의 실수는 아님말고 하면 끝이다.^^;;; 학폭도 담임교체도 병가도 한번 겪어보지 않은 내가 이런 소릴 하면 안되지만, 어쨌든 교사의 입지가 좁아지고 손발이 묶인 것은 내가 당해보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다. 올해 수업중이나 쉬는시간에 아이들이 살짝 삐거나 긁히는 상처가 몇번 났었는데 그때 나의 대처를 보고 보건교사님이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셨다. "그렇게까지 하셔야 되는군요..." 그렇다. 나는 그렇게까지 한다.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 기저에 깔린 것은 나에 대한 보호본능이다. 나는 공격당하고 싶지 않다. 나를 공격하는 대상을 사랑할 인성을 갖추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안심한 상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불안한 상태에서는 아이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즘 교사의 입지는 불안하고 위태하다.

이 마당에 공교육과 교사의 역할, 아이들에 대한 신뢰와 성장을 끈질기게 말하는 교사가 있다. <리질리언스>를 쓰신 천경호 선생님이다. 그 책을 쓰신 후 선생님은 페이스북에 거의 매일 교실이야기나 교육에 대한 단상을 올리셨는데 글을 읽다보면 공감, 감탄, 때로는 밤고구마 물없이 삼킨 답답함, 이후엔 이해, 존경 뭐 이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떠오르곤 했다. 날마다 올리신 그 글들은 여러가지 상황이었지만 일관성이 있었다. 바로 <리질리언스>가 교실에 실현되는 과정이었다. 그 글들이 묶여 이렇게 또 한권의 책이 되었다. 기억나는 글 중 책에 없는 것도 있다. 말하자면 추려서 엮었다는 뜻이 되겠는데, 한 사람의 꾸준한 글쓰기가 이렇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힘을 갖게 되는 과정도 놀라웠다.

페이스북의 글들은 일회성이고 그룹짓기 힘든 것에 비해 책을 보니 주제별로 묶은 구성이 아주 좋았다. 1부 [내가 만난 아이들]에선 아이들과의 만남을 다룬다. 교사와 친구들을 힘들게 하는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나온다. 아이와의 문답을 그대로 실은 경우도 있다. 이게 좀 매뉴얼로 머리속에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아이의 문제행동을 볼 때 나는 표정과 말투부터 변한다. 하수 중에 하수라고 하겠다.;;;; 저자의 대화에서 보면 비난 금지, 감정은 들어주기, 바른 행동은 지도하기, 옳은 선택을 하도록 돕기 등의 원칙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뢰'다. 아이가 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신뢰. 선을 추구할 수 있다는 신뢰. 실제로 우리는 무수히 뒤통수를 맞았고 저자 또한 그러했지만 그 신뢰만큼은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 그것이 리질리언스의 기본이며, 우리가 저버린 아이들은 사회의 불안요인으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2부 [교사는 마지막 둑]에서는 저자의 교사관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참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내가 서 있어야 할 의미를 주는 것이라 감사하기도 하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성숙한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아 그건 내가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자나.... 성숙한 주변인의 필요성은 경험상 정말 절실하다. 그래서 '환경'을 따지는 것이다....ㅠ 하지만 주변에 정말정말 없다면 최후로 교사라도 되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둑'이라는 제목을 뽑았나보다. 그 둑이 무너지는(혹은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지만....

3부 [내가 깃들고 싶은 교실]에서는 리질리언스를 키워주기 위해 저자가 교실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소개했다. <리질리언스>책에도 나왔지만 이 책에서 더욱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책읽어주기와 온책읽기는 나도 심혈을 기울여 하고 있는 활동이라 위안이 되었다. 칭찬과 감사 나누기는 늘 하다가 흐지부지 되었다가 올해는 꾸준히 밀고 나가고는 있지만 항상 회의가 든다. 주 1시간씩 할애해서 이걸 하고 있는데 그럴 가치가 있는거야? 칭찬할 점 찾기는 왜저렇게 못하고 감사는 왜 만날 똑같은 소리만 하는거야? '원래 그렇다'는 저자의 말씀에 조금 안심이 된다. 원래! 인간은 비난이 앞서고 원래! 인간은 남의 장점보다 단점을 찾아 자신을 돋보이려는 존재다. 그저 꾸준함 외에 왕도는 없구나. 저자는 특히 감사를 가르치는 것의 중요함을 역설한다. 젊었을 때 나는 이걸 낯간지럽다고 생각했었는지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했었는지 본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감사함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모습에선 분개를 했었지. 가르치지도 않고 말이다.^^;;; 저자가 중요시하는 덕목들을 보면 좀 고전적인(?) 가치라는 느낌이 드는데 나는 그게 신뢰가 간다. 살아갈수록 더욱 그렇다. 그 외 학교폭력교육보다 '우정을 가르치는 교육'에도 크게 공감한다.

4부 [교사가 할 일을 제대로 하게 하라]가 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저자에게도 출판사에게도 고마움을 느꼈다. 저자는 이를 위해 교원단체에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간혹 자기 할 일도 제대로 안하는 폭탄교사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책은 별도고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방과후, 돌봄, 학폭 등 온갖 사회적 요구들을 학교로 밀어던져 결국 교사의 업무가 되게 하는 일들을 중단하고 개선해야 한다. 교사도 전문성을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천경호 선생님을 보며 든든함을 느끼는 건 그가 가진 '확신' 때문이다. 때로는 그의 확신에 빌붙어 나도 좀 당당해져보고 싶다. 요즘같은 교사불신-교사공격-교사자학-소극적 교육활동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우리의 일에 대한 의미와 확신을 갖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전하는 자세는 많은 이들에게 힘을 준다. 나는 소극적일 뿐 아니라 살짝 비관적인 자세도 갖고 있어서 남은 건 '월급값 정신' 뿐이라(사실 월급값 정신만 똑때기 지키기도 어려움) 그거 하나로 어찌어찌 명퇴까지 버텨보자 하고 있는지라 때로 저자의 말씀이 '공자님 말씀' 같이 들릴 때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단순히 당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가 애써 공부하고 있는 학문(긍정심리학)에 기반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교실에서 이 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다. 이것의 어려운 점은 이론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 기다림과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이론가임과 동시에 타고난 실천가다. 성질급한 나는 글만 읽어도 벌써 혈압이 오를 때가....^^;;; 그러나 기다림과 인내가 그저 막연한 것일 때보다 확신에 근거한 것일 때는 조금 더 버틸 힘이 생길 것이다. 이 책이 나에게, 또 여러 선생님들께 그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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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말꼬리 잡기 101 키워드 톡톡 시리즈 3
김종상 지음, 송영훈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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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 잘했던 과목 중 하나가 한문이다. 그런데 뭐든 안쓰면 녹스는 법인가.... 지금은 쉬운 한자도 막상 쓰려면 헷갈리고 읽기도 많이 까먹었구나 느낀다. 고사성어는 학교에서 다 배우진 않았지만 그정도는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상을 보니 모르는게 많다는 걸 얼마전에 깨달았다.

사실 고사성어를 남발하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사람마다 말하기나 글쓰기에 개인적 특징이 있겠지만 난 유식한 말을 쓸 일이 별로 없어서인지 고사성어를 사용하는 화법은 거의 쓰지 않는다. 아주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표현이라면 모를까 다른 표현이 있는데 굳이 갖다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잘못 썼다가는 안쓰느니만 못한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고 말이다.-_- 그렇더라도 일단 알기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르면서 필요없다 하는 건 여우의 신포도가 될 테니까. 고사성어는 일종의 관용적 표현인데 위에도 언급했듯이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면 매우 경제적이면서 효율적인 표현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대상이 이해한다는 전제 하에) 그러던 차에 서평도서 중 이 제목이 보여 이때다 하고 신청했다.

목차를 쭉 훑어보니 음.... 각오한 대로 모르거나 긴가민가 하는 사자성어들이 꽤나 눈에 띈다. 이 책이 초등용인 걸 감안하면 부끄러운 수준이다.ㅎㅎ 잘되었다. 이김에 101개는 확실히 알아두자.

가나다순의 사전식 배열로 되어있어 모르는 사자성어가 나왔을 때 찾아보기 좋겠다. 펼친화면 두 쪽에 하나씩의 사자성어가 소개되어 있는데 왼쪽 페이지에는 한자풀이가, 오른쪽 페이지에는 유래된 이야기나 사용예시 이야기가 들어있다. 간단하고 효율적인 구성이라 생각된다. 고사성어의 고리타분한 느낌을 극복하고자 왼쪽면 하단에 해시태그를 넣은 정성이 귀엽게(?) 느껴졌다.ㅎㅎ

이 책을 아이들이 앉은자리에서 통독을 하기는 어렵겠다. 아이들 관심사와 독서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번에 읽기보다 조금씩 여러번 읽는 것이 익히기에는 더 좋을 것 같다. 학급에 보면 아이들마다 특별히 관심 갖는 분야가 있다. 역사, 과학, 속담 등등.... 그런 경우에 그 분야에선 또래 수준을 훨씬 넘는 지식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이 책도 그래서 전학년 대상이 될 수 있겠다. 가족과 함께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가 장담하는데 부모님 중에도 이거 다 아시는 분은 드물다. 함께 웃으며 익히면 가족 분위기도 좋아지겠다. 내가 방금 딸한테 문제를 냈다.
"계란유골이 무슨 뜻이게?"
"계란에 뼈가 있다...? 음...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뜻인가?"
"땡! 틀렸어."
"엇, 뭐지? 들어보긴 했는데!"
이런 식이다.ㅎㅎ

아이들도 언어표현의 여러 도구들을 갖는게 좋다. 남의 표현을 이해하는 데도 필요하고. 읽으라고 들이댈 것까진 없지만 오며가며 익히고 모를때 찾아볼 수 있도록 교실에 한권 비치해 두면 좋겠다. 유용한 학급문고 한 권이 생겼네. 감사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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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를 읽고 있다가 동화 <잃어버린 책>을 읽고 깜짝 놀랐다. 아니 어쩌면 같은 날 읽은 책의 주제가 이리 쌍둥이같단 말인가! 이 책은 마치 다시 책으로의 동화버전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장르가 전혀 다르니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문제의식이란 책에 빠지지 못하는(깊이읽기가 안되는) 요즘 세대에 대한 안타까움이고 그 원인은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매체들이 어린시절부터 이들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다시 책으로의 저자에 따르면 우리 뇌의 읽기 회로는 타고난 것이 아니며 후천적인 성취라고 한다. 게다가 뇌는 가소성을 가지고 있어 읽기방식에 따라 매우 다른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해 세대에 가능하던 것들이 디지털 세대에서는 어렵거나 거의 가능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릴 수 있다. 즉 잊혀진, 또는 쇠퇴한 기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쇠퇴해가는 기능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공감과 상상력이다. <다시 책으로>는 제3장 [위기에 처한 깊이 읽기]에서 깊이읽기가 주는 다양한 능력들을 소개했는데 그중 공감에 대해 비중있게 설명했다.
"읽기라는 행동은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풀려나 타인에게로 옮겨가는 일이 일어나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80쪽)
"타인의 삶에 들어가 보는 것이 우리 자신의 삶에도 강력한 의미를 갖는다는..... 다시 자신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더욱 확장되고 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도 바뀌어 있습니다."(81쪽)
"타인의 관점을 취해봄으로써 우리가 지닌 공감의 감각이 방금 읽은 것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세계에 관한 우리 내면의 지식까지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습된 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인간다워지도록 도와줍니다."(82쪽)


<잃어버린 책>은 올해 웅진주니어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작년 수상작인 <걸어서 할머니집>이 너무 좋아서 이 상에 대한 신뢰도를 갖고 구입했다. 역시 좋았다. 책속 주인공들과 교감할 정도의 독서경험이 있는 아이라면 흠뻑 빠져들 것이다. (요즘 그런 아이가 별로 없다는 문제점에서 <다시 책으로>가 나왔겠지만...) 주인공들의 책속 친구인 클로디아(클로디아의 비밀), 윌버(샬롯의 거미줄), 비버(사자와 마녀와 옷장), 토끼(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을 아는 아이라면 더욱 반색을 하겠지. 특히 사자와 마녀와 옷장,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은 나에게도 아주 특별한 독서경험이었기에 나도 이 책이 무척 반가웠다.


대비되는 두 친구가 나온다.
용미. 엄마의 미용실 구석에서 책과 대화하며 어린시절을 보냈고 4학년인 지금까지도 매인 곳 없이 자유롭게 지낸다.
한나. 극성맞은 엄마의 스케줄에 맞춰 사느라 너무나 지쳐있다. 무거운 첼로가방에 처진 어깨.
용미는 가출을 꿈꾼다.(반항이 아니라 모험의 개념이다.) 소신있던 용미엄마도 한나엄마의 협박에 넘어가 용미를 학원에 집어넣은 어느날, 가출은 감행된다. 어쩌다보니 한나도 같이.

여기서부터는 판타지다. 버스에서 잃어버린 책을 찾으러 분실 책 보관소에 오게 된 순간부터. 거기엔 아이들을 기다리던 옛 상상속의 주인공들이 있었고, 독자들에게 끝내 잊혀져 먼지가 되어버린 주인공들이 있었다. 두 소녀는 한나의 첼로를 빗자루 삼아 모험을 떠난다. 모험 속에서 우리는 까마귀 아브라삭스도 만나고 트롤, 마귀할멈도 만나고 '책의 마녀'도 만나볼 수 있다.

모험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다시 미용실 창고를 아지트로 삼았다.(미용실 창고엔 철거직전의 분실책 보관소에서 가져온 책들이 한가득) 이곳에서 아이들이 하고 있는 일이 책소개 동영상 촬영과 공유라는 점도 놀라웠다. 아니 이거야말로 <다시 책으로> 8장에서 주장하는 '양손잡이 읽기 뇌 만들기'와 일맥상통하는 것 아닌가? 아이들이 공유한 경험이 친구들에게 흘러들어 새로운 독자를 만들어내듯이, 이 책으로 호기심이 자극된 독자들이 더 깊은 독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그리하여 모든 아이들이 상상속의 친구들을 만들고 때로 그 친구들에게 위로와 격려,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빨간머리 앤이 영원한 것은 그녀가 지금까지도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친구를 공유한 친구들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신나고 끝이 없는지.... 그럴 여유를 아이들에게 주는 세상이면 좋겠다. 눈앞에 스마트폰은 좀 치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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