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아이들 - 초등 교사 천경호의 학교 이야기
천경호 지음 / 이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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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아이들의 실수는 혼내면 안되고 교사의 실수는 나를 갈아마셔도 입이 열개라도 할말 없는 일이며 학부모의 실수는 아님말고 하면 끝이다.^^;;; 학폭도 담임교체도 병가도 한번 겪어보지 않은 내가 이런 소릴 하면 안되지만, 어쨌든 교사의 입지가 좁아지고 손발이 묶인 것은 내가 당해보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다. 올해 수업중이나 쉬는시간에 아이들이 살짝 삐거나 긁히는 상처가 몇번 났었는데 그때 나의 대처를 보고 보건교사님이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셨다. "그렇게까지 하셔야 되는군요..." 그렇다. 나는 그렇게까지 한다.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 기저에 깔린 것은 나에 대한 보호본능이다. 나는 공격당하고 싶지 않다. 나를 공격하는 대상을 사랑할 인성을 갖추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안심한 상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불안한 상태에서는 아이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즘 교사의 입지는 불안하고 위태하다.

이 마당에 공교육과 교사의 역할, 아이들에 대한 신뢰와 성장을 끈질기게 말하는 교사가 있다. <리질리언스>를 쓰신 천경호 선생님이다. 그 책을 쓰신 후 선생님은 페이스북에 거의 매일 교실이야기나 교육에 대한 단상을 올리셨는데 글을 읽다보면 공감, 감탄, 때로는 밤고구마 물없이 삼킨 답답함, 이후엔 이해, 존경 뭐 이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떠오르곤 했다. 날마다 올리신 그 글들은 여러가지 상황이었지만 일관성이 있었다. 바로 <리질리언스>가 교실에 실현되는 과정이었다. 그 글들이 묶여 이렇게 또 한권의 책이 되었다. 기억나는 글 중 책에 없는 것도 있다. 말하자면 추려서 엮었다는 뜻이 되겠는데, 한 사람의 꾸준한 글쓰기가 이렇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힘을 갖게 되는 과정도 놀라웠다.

페이스북의 글들은 일회성이고 그룹짓기 힘든 것에 비해 책을 보니 주제별로 묶은 구성이 아주 좋았다. 1부 [내가 만난 아이들]에선 아이들과의 만남을 다룬다. 교사와 친구들을 힘들게 하는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나온다. 아이와의 문답을 그대로 실은 경우도 있다. 이게 좀 매뉴얼로 머리속에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아이의 문제행동을 볼 때 나는 표정과 말투부터 변한다. 하수 중에 하수라고 하겠다.;;;; 저자의 대화에서 보면 비난 금지, 감정은 들어주기, 바른 행동은 지도하기, 옳은 선택을 하도록 돕기 등의 원칙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뢰'다. 아이가 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신뢰. 선을 추구할 수 있다는 신뢰. 실제로 우리는 무수히 뒤통수를 맞았고 저자 또한 그러했지만 그 신뢰만큼은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 그것이 리질리언스의 기본이며, 우리가 저버린 아이들은 사회의 불안요인으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2부 [교사는 마지막 둑]에서는 저자의 교사관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참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내가 서 있어야 할 의미를 주는 것이라 감사하기도 하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성숙한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아 그건 내가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자나.... 성숙한 주변인의 필요성은 경험상 정말 절실하다. 그래서 '환경'을 따지는 것이다....ㅠ 하지만 주변에 정말정말 없다면 최후로 교사라도 되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둑'이라는 제목을 뽑았나보다. 그 둑이 무너지는(혹은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지만....

3부 [내가 깃들고 싶은 교실]에서는 리질리언스를 키워주기 위해 저자가 교실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소개했다. <리질리언스>책에도 나왔지만 이 책에서 더욱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책읽어주기와 온책읽기는 나도 심혈을 기울여 하고 있는 활동이라 위안이 되었다. 칭찬과 감사 나누기는 늘 하다가 흐지부지 되었다가 올해는 꾸준히 밀고 나가고는 있지만 항상 회의가 든다. 주 1시간씩 할애해서 이걸 하고 있는데 그럴 가치가 있는거야? 칭찬할 점 찾기는 왜저렇게 못하고 감사는 왜 만날 똑같은 소리만 하는거야? '원래 그렇다'는 저자의 말씀에 조금 안심이 된다. 원래! 인간은 비난이 앞서고 원래! 인간은 남의 장점보다 단점을 찾아 자신을 돋보이려는 존재다. 그저 꾸준함 외에 왕도는 없구나. 저자는 특히 감사를 가르치는 것의 중요함을 역설한다. 젊었을 때 나는 이걸 낯간지럽다고 생각했었는지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했었는지 본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감사함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모습에선 분개를 했었지. 가르치지도 않고 말이다.^^;;; 저자가 중요시하는 덕목들을 보면 좀 고전적인(?) 가치라는 느낌이 드는데 나는 그게 신뢰가 간다. 살아갈수록 더욱 그렇다. 그 외 학교폭력교육보다 '우정을 가르치는 교육'에도 크게 공감한다.

4부 [교사가 할 일을 제대로 하게 하라]가 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저자에게도 출판사에게도 고마움을 느꼈다. 저자는 이를 위해 교원단체에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간혹 자기 할 일도 제대로 안하는 폭탄교사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책은 별도고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방과후, 돌봄, 학폭 등 온갖 사회적 요구들을 학교로 밀어던져 결국 교사의 업무가 되게 하는 일들을 중단하고 개선해야 한다. 교사도 전문성을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천경호 선생님을 보며 든든함을 느끼는 건 그가 가진 '확신' 때문이다. 때로는 그의 확신에 빌붙어 나도 좀 당당해져보고 싶다. 요즘같은 교사불신-교사공격-교사자학-소극적 교육활동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우리의 일에 대한 의미와 확신을 갖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전하는 자세는 많은 이들에게 힘을 준다. 나는 소극적일 뿐 아니라 살짝 비관적인 자세도 갖고 있어서 남은 건 '월급값 정신' 뿐이라(사실 월급값 정신만 똑때기 지키기도 어려움) 그거 하나로 어찌어찌 명퇴까지 버텨보자 하고 있는지라 때로 저자의 말씀이 '공자님 말씀' 같이 들릴 때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단순히 당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가 애써 공부하고 있는 학문(긍정심리학)에 기반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교실에서 이 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다. 이것의 어려운 점은 이론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 기다림과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이론가임과 동시에 타고난 실천가다. 성질급한 나는 글만 읽어도 벌써 혈압이 오를 때가....^^;;; 그러나 기다림과 인내가 그저 막연한 것일 때보다 확신에 근거한 것일 때는 조금 더 버틸 힘이 생길 것이다. 이 책이 나에게, 또 여러 선생님들께 그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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