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를 읽고 있다가 동화 <잃어버린 책>을 읽고 깜짝 놀랐다. 아니 어쩌면 같은 날 읽은 책의 주제가 이리 쌍둥이같단 말인가! 이 책은 마치 다시 책으로의 동화버전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장르가 전혀 다르니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문제의식이란 책에 빠지지 못하는(깊이읽기가 안되는) 요즘 세대에 대한 안타까움이고 그 원인은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매체들이 어린시절부터 이들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다시 책으로의 저자에 따르면 우리 뇌의 읽기 회로는 타고난 것이 아니며 후천적인 성취라고 한다. 게다가 뇌는 가소성을 가지고 있어 읽기방식에 따라 매우 다른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해 세대에 가능하던 것들이 디지털 세대에서는 어렵거나 거의 가능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릴 수 있다. 즉 잊혀진, 또는 쇠퇴한 기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쇠퇴해가는 기능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공감과 상상력이다. <다시 책으로>는 제3장 [위기에 처한 깊이 읽기]에서 깊이읽기가 주는 다양한 능력들을 소개했는데 그중 공감에 대해 비중있게 설명했다.
"읽기라는 행동은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풀려나 타인에게로 옮겨가는 일이 일어나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80쪽)
"타인의 삶에 들어가 보는 것이 우리 자신의 삶에도 강력한 의미를 갖는다는..... 다시 자신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더욱 확장되고 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도 바뀌어 있습니다."(81쪽)
"타인의 관점을 취해봄으로써 우리가 지닌 공감의 감각이 방금 읽은 것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세계에 관한 우리 내면의 지식까지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습된 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인간다워지도록 도와줍니다."(82쪽)


<잃어버린 책>은 올해 웅진주니어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작년 수상작인 <걸어서 할머니집>이 너무 좋아서 이 상에 대한 신뢰도를 갖고 구입했다. 역시 좋았다. 책속 주인공들과 교감할 정도의 독서경험이 있는 아이라면 흠뻑 빠져들 것이다. (요즘 그런 아이가 별로 없다는 문제점에서 <다시 책으로>가 나왔겠지만...) 주인공들의 책속 친구인 클로디아(클로디아의 비밀), 윌버(샬롯의 거미줄), 비버(사자와 마녀와 옷장), 토끼(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을 아는 아이라면 더욱 반색을 하겠지. 특히 사자와 마녀와 옷장,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은 나에게도 아주 특별한 독서경험이었기에 나도 이 책이 무척 반가웠다.


대비되는 두 친구가 나온다.
용미. 엄마의 미용실 구석에서 책과 대화하며 어린시절을 보냈고 4학년인 지금까지도 매인 곳 없이 자유롭게 지낸다.
한나. 극성맞은 엄마의 스케줄에 맞춰 사느라 너무나 지쳐있다. 무거운 첼로가방에 처진 어깨.
용미는 가출을 꿈꾼다.(반항이 아니라 모험의 개념이다.) 소신있던 용미엄마도 한나엄마의 협박에 넘어가 용미를 학원에 집어넣은 어느날, 가출은 감행된다. 어쩌다보니 한나도 같이.

여기서부터는 판타지다. 버스에서 잃어버린 책을 찾으러 분실 책 보관소에 오게 된 순간부터. 거기엔 아이들을 기다리던 옛 상상속의 주인공들이 있었고, 독자들에게 끝내 잊혀져 먼지가 되어버린 주인공들이 있었다. 두 소녀는 한나의 첼로를 빗자루 삼아 모험을 떠난다. 모험 속에서 우리는 까마귀 아브라삭스도 만나고 트롤, 마귀할멈도 만나고 '책의 마녀'도 만나볼 수 있다.

모험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다시 미용실 창고를 아지트로 삼았다.(미용실 창고엔 철거직전의 분실책 보관소에서 가져온 책들이 한가득) 이곳에서 아이들이 하고 있는 일이 책소개 동영상 촬영과 공유라는 점도 놀라웠다. 아니 이거야말로 <다시 책으로> 8장에서 주장하는 '양손잡이 읽기 뇌 만들기'와 일맥상통하는 것 아닌가? 아이들이 공유한 경험이 친구들에게 흘러들어 새로운 독자를 만들어내듯이, 이 책으로 호기심이 자극된 독자들이 더 깊은 독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그리하여 모든 아이들이 상상속의 친구들을 만들고 때로 그 친구들에게 위로와 격려,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빨간머리 앤이 영원한 것은 그녀가 지금까지도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친구를 공유한 친구들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신나고 끝이 없는지.... 그럴 여유를 아이들에게 주는 세상이면 좋겠다. 눈앞에 스마트폰은 좀 치우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