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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알바 ㅣ 텍스트T 9
김태호 지음, 이예빛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4월
평점 :
김태호 작가님의 신간. 이번에는 청소년소설이고, 단편집이다. '제후의 선택' 같은 작가님의 고학년 단편에서 느끼던 몰입감과 다양하고 무거운 주제의식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만화같은 그림체의 표지 느낌부터가 어린이용이 아니고, 이야기의 느낌도 대체로 다 서늘하다. 하지만 무거운 현실을 그려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제를 담는데 공을 들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학년 동화들만 해도 "와 슬프다. 참혹하다. 근데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어쩌라고?"를 채우려고 작가가 무척 고민했다는 느낌이다. 실제 그러셨는지는 모른다. 그냥 내 느낌이 그렇다는 뜻.^^;;;
그러다보니 작품들은 모두 지향점을 갖는다. 일차적으로 그 지향점은 "살자"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나의 삶을 살아내자.
세번째 작품 [지박령 열차]에서 그려내는 지하철 순환선의 풍경은 어둡고 섬뜩하다. 삶을 버리려 할 만큼 아픈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고, 그들을 가슴에 묻은 이들의 고통은 또 얼마나 클까. 순환선에서 '지박령'이 되어 돌고도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결국 "살아"가 아니겠나.
"널 까맣게 태워버린 사람보다 널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고." (71쪽)
네번째 작품 [선녀 콤플렉스]는 여러 느낌이 혼재되어 가끔 고개가 갸웃해지기도 하는 작품이었다. 선녀가 날개옷을 잃고 지상세계에 붙잡힌 옛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을 연상시키는 내용이 수시로 나오는데, 그게 다정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지극히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아, 위험한 게 맞았어....ㅠㅠ 하지만 "엄마, 나 살고 싶어!"라고 간절히 말하는 해라. 작가는 이 작품을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걸까. 그 모두의 귀에 가 들리기를 바란다.
일차적이고 가장 긴박한 외침이 '살아!" 라면 그 다음은 "똑바로 살아" 내지는 "당당히 살아" 혹은 "충만히 살아"가 될 것 같다. 표제작이자 첫 작품 [신의 알바]에서 과거 자기 무리의 밥이었던 영지를 다시 만나 같은 방식으로 거리낌없이 셔틀을 시키던 수민은 단단히 덫에 걸려버린다. 그러게, 왜 그렇게 살았니. 비행에 대한 댓가는 누구나 치러야 한다. 스스로가 갚는다면 그나마 견딜 만할 것이요, 강제로 갚음을 당한다면 그건 지옥일 터이다. 난 세상이 이렇게 표나게 공평하고 잘못에 대한 응징이 눈에 보였으면 하는 욕구가 있나보다. 이런 생각에도 위험요소는 있고, 자력구제는 지양되어야 한다. 더글로리 드라마를 내가 좋아하지 않듯이. 하지만 나의 마음 한구석은 말한다. "그니까, 똑바로 살아!"
두번째 작품 [유학생 고준하]가 이 책에선 가장 덜 서늘하고 말랑하고 밝다. 어른(엄마)의 등장이 이렇게 다행스럽고 바람직하기 있음? 유혹과 본능을 거슬러 유예기간과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는 것은 청소년기에 꼭 필요하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고, 아름답고 소중하게 가꾸기 위해서다. "섣부르게 살지 마" 라고 할까.
다섯번째 작품 [콩]에는 짧은 단편임에도 복합적인 이슈들이 담겨있다. 한국계 베트남인 '콩'의 고난, 딸을 사고로 잃은 엄마의 허전함과 아픔, 신체적로는 우세해지는데도 치국의 폭행과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호의 심리, 그리고 콩과 수호의 짧은 우정(사랑?)과 이별 등... 단편 대가의 작품이라 할 만했다. 왠지 영상으로도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잘 만들고 연기를 잘한다면 영상미가 훌륭하고 심리묘사도 탁월한 작품이 나올 것 같은.
마지막 작품 [비의 경계선]에서 인물들이 거친 빗속을 헤매다니는 장면은 꼭 언젠가 꾸었던 꿈속 장면인 것처럼 느껴졌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 작품에 이르러 나오는 '경계선' 이라는 키워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니 작가의 계산이 참 치밀하고 정교하다는 생각도 든다. 뒷표지에 보면 "삶의 어느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아이들은 각자의 성장통을 오롯이 겪어내고 끝내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라는 말이 쓰여있다. 공감하면서, 이중 어떤 작품은 성장통이라는 말도 사치일 만큼 극한에 몰려있는 인물들을 표현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태호 작가님 문장의 흡인력은 대단해서, 다음장을 저절로 넘기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작품은 막 성큼성큼 건너뛰어지기도 했다. 눈이 막 앞서가서....^^;;; 그러다 다시 돌아와 읽었다. 그런 긴장감을 유지하고 작품을 이끌어간다는 건 엄청난 힘인 것 같다. 청소년소설은 솔직히 나랑 접점이 별로 없어서 굳이 찾아읽으려 애쓰진 않는데, 이 책은 궁금해서 덥썩 읽어보았다. 흥미롭고 의미있는 독서였고, 주변에 청소년이 있다면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