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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이의 수학여행 - 권재원 교육소설 ㅣ 함께교육 5
권재원 지음 / 서유재 / 2020년 5월
평점 :
책이 손에 안 잡힌 지가 석달이나 됐다. 오랜만에 6학년을 맡을 것이 예상되어 학급운영이나 수업에 대한 책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지워가며 읽어대던 중에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졌다. 지금까지 읽던 책들은 접어두고, 준비해오던 3월 활동도 일단 미뤄두어야 했다. 교실이 열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 상태로 전전긍긍하다 석달이 지나간다. 동화책 한 권쯤은 평일 밤에도 읽었었는데 그걸 주말에 읽기도 힘들 정도로 집중이 안 됐다. 모든 건 마음에 달린 일인가.... 불확실함과 불안은 독서의 효율마저도 떨어뜨린다. 난 지금도 불안하다.
그런데, 이 책을 말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치우고 말았다. 퇴근 후 저녁을 차려서 먹고, 치우고, 수박을 잘라 먹으며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고, 씻고 머리를 말린 후에 밤이 되어서야 잡은 책이었다. 내일이 출근이라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중간에 끊지 못하고 끝까지 읽은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교육소설이라고 한다. 교육소설 맞다. 근데 이렇게 뭔가 규정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선생님이라면 보세요.” 라든가 “자녀교육에 고민하는 학부모님들 보세요.” 이런 말을 굳이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고민이 들어있다. 꽤 깊은. 해법은 딱히 있지 않다. 있다면 근원적인 원론일 것이다. 그 고민에 공감하는 것으로도 이 소설은 가치가 있다. 난 깊이 공감했기에 내겐 가치가 있는 책이 됐다.
이 책의 화자는 권오석 선생님이다. 작가와 연령대도 같고 성도 같고 살아온 이력도 거의 같으며 성격이나 취향도 같다. (그러고보니 페이스북에서 작가가 개인 이야기를 꽤 많이 해주셨던가보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내가 알고 있을 정도니^^) 그러다보니 작가의 자전소설로 착각하며 읽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이 끝나자마자 “여러분, 이거 거짓말인 거 아시죠?”라며 독자의 착각을 톡톡 두드려 준다. 그렇겠다. 소설은 허구니까. 하지만 모티프는 작가의 경험에서 가져왔으며 주제는 작가의 마음 속에 담긴 말이 아니겠는가? 자전소설로 읽어도 큰 차이가 없을 만큼 그의 교직 인생이 담긴 이야기라 느껴진다.
도입처럼 느껴지는 첫 단편은 「나미 엄마」였다. 대치동의 아파트에서 날마다 딸과의 고성 싸움으로 예민한 권교사의 수면을 방해한 그녀는 놀랍게도 권교사 저서들(교육관련)의 애독자였다. 그 책을 밑줄치며 읽는 엄마는 누구이고 뼈골이 빠지게 사교육 뒷바라지를 하며 고래고래 애를 잡다 못해 비명과 울음까지 터뜨리는 엄마는 누구인가? 동일인이다. 이런 아이러니는 웃을 수만은 없는, 그렇다 웃픈, 현실이다.
두 번째 작품은 제목이 자극적(?)이다.「풍기문란 기간제 교사」이건 주인공의 젊은 시절 이야기다. 주인공은 기간제 교사였던 게 아니고 였을‘뻔’ 했었다. 아주 풍기문란한 기간제 교사가. 그 사연 안에 갖가지 것들이 들어있다. 사립학교 채용의 문제점 뿐 아니라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의 거취 문제, 그들의 신념과 현실의 괴리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까지. 주인공의(어쩌면 작가의) 한계와 이중성까지도 숨기지 않았다. 비난할 생각이 없다. 나는 훨씬 더하니까. 나는 그와 동시대인이지만 운동권도 아니었고 극렬좌파도 아니었기에 그 이중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을 뿐. 모두가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서 산다,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산다, 이런 구호마저도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기운이 빠졌고 회의감도 심하다. 그냥 쥐꼬리만한 양심이나 지키고 살기도 힘들다. 때로는 화려한 구호 속에 잠겼던 이들의 양심이 나보다도 못한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럼 또 다짐한다. 거창한 생각 말고 월급값이나 하면서 살자....ㅠ
두 번째 작품의 사유는 세 번째 작품으로 이어진다. 「노동자가 되기 싫어서, 노동자가 되고 싶어서」 권교사의 운동권 학창시절, 그를 따르던 동생은 현장 노동자였다. 하나가 된 듯 함께 뒹굴었지만 과연 그들은 하나였을까? 그는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노동자가 되기’ 싫다고 했다. 중년이 된 권교사는 어떤 학생을 만난 후 오래된 그 기억을 떠올린다. 그 학생은 기술을 다루는 특성화고에 가고 싶어했다. 말하자면 ‘노동자가 되고’ 싶어한 것인데, 그 열망은 성적이 부족하여 좌절되었다. 권교사의 마음속에 이 두 사람이 엮인다. 여러 상념들이 떠오른다. 그의 입에서 거의 들어보지 못한 말이 던져진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어떤 명쾌한 분석보다도 더 마음에 와닿는 말. 모르겠다는 말. 다만 그 학생이 첫 번째 과정에서 좌절했더라도 꿈을 이룰 수는 있기를 바란다.
표제작인「명진이의 수학여행」은 정말 표제작다운 작품이다. 마음이 먹먹해서 읽기 힘들었다. 사랑이 넘치는 교사가 아니라도 아이의 상황 앞에서 눈물이 흘러넘칠 때가 있다. 난 아이들과 사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절대 사양이고, 졸업하고 찾아오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마른 교사인데도, 가슴이 무너질 때가 있단 말이다. 그건 책임감일까 모성애의 또다른 발현일까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간혹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나처럼 메마른 교사도 그러한데 다른 샘들은 오죽하랴. 모든 직종이 힘들지만 교사들이 이런 이유로 힘들다고 하면 개소리하고 있네 라며 코웃음치지 말고 그럴 때도 있겠구나 하고 고개 한 번 끄덕여주면 안될까.
너무 똑똑하고 당돌한 나머지 내 수업을 무시하나 싶은 명진이를 받아들여주는 것은 권교사니까 가능했을 것 같기도 하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하니까.ㅎㅎ 학생 앞에서 자격지심을 느끼면 그건 참 피차 힘든 상황인데.... 나같은 평범한 둔재 교사는 꽤나 마음고생을 했을 것 같지만 천재교사 권교사는 그걸 초월하니 명진이의 문제가 보였다. 그것은 침몰이었다.
사회적인 침몰과 신체적인 침몰.... 두가지가 함께 찾아온 명진이는 참혹했다. 그 앞에서 자신의 무기력에 분노하는 권교사... 그러나 작은 기적은 있었다. 명진이가 사회적 침몰에서 구조된 건, 권교사의 무심한 사려깊음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해결 안되는 어려운 상황도 현장에는 많다. 다만, 아이들이 ‘아픔을 느낄 줄 아는 인간’이었다는 점이 명진이와 그들을 구원했다. (안타깝지만 그것도 안되는 인간들도 가끔 존재한다...ㅠ)
“다만 알지 못할 뿐이다.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힘든지 알지 못할 뿐이다. 설사 들어서 알고 있다 하더라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 고통을 알고, 그 고통을 같이 느끼면 아이들은 천사가 된다. 고통은 아이들을 천사로 만든다.” (137쪽)
“도덕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알아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람은 결코 선해질 수 없다. 그리고 그 느낌은 고통을 함께 겪지 않고 그 고통에 죄책감과 후회를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141쪽)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간신히 극적으로 침몰을 면했다. 그건 최악의 또다른 침몰의 상황 때문이었으니, 일반적인 상황에서 스스로 돌아보고 성찰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ㅠㅠ 명진이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시계는 흩어지는 벚꽃 그림자로 물든 숫자를 보여 주었다.
4월 16일.”
교사들의 마음속에 트라우마로 남은 날. 우리는 아이들을 침몰에서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 그때나. 지금이나.ㅠㅠ
「애국 소년단」은 중년이 된 권교사의 제자, 권교사의 어린 시절이 교차되어 나온다. 둘의 공통점은 정의감에 고양되어 있으나 그게 실상은 가당치 않다는 점이다. 아는 건 많은데 시야가 좁으면 그렇게 된다. 제자에게 건넨 권교사의 일갈에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눈을 감고 그 부끄러움을 느끼는 제자에게는 희망이 있다. 물론 이미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하지만.
마지막「자전거 도둑」 박완서 작가의 장편과 같은 제목인 이 작품에는 아주 황당한 중1 소년의 이야기가 담겼다. 작고 귀여운데 섬뜩한.... 이 아이의 섬뜩함은 누가 만들었는가? 교사는 거기서 아이를 건져줄 수 있는가?
지금까지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거침없이 진행되어왔다. 한 편 한 편 내에서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도.... 명진이의 수학여행이 절정이라면, 이 작품은 결말을 내야 한다. 아 그런데 이 작품의 마지막은 그냥 무력하고 냉정한 현실이었다. 이렇게 똑똑하고 멋진 권교사가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정말 더 이상의 이야기가 없다. 나한테는 이런 아이를 끈기 있게 가르치고 이끌어서 세상을 알게 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나한테는 TV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선생님이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따위의 눈물겨운 일화가 없다. 물론 나도 그런 일화 몇 개쯤은 만들고 싶었다. 선생이라면 누군들 그런 생각이 없을까? 하지만 28년이나 선생질 하고서 창작물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만 깨달았을 뿐이다.”
권교사는 왜 이처럼 허무해보이는 차디찬 말로 결말을 맺었을까? 나는 이 책의 마지막 문단에 답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해석은 독자 마음대로니까. 소수의 리그와 그에 맹렬히 집착하는 사회에서 교사 개인에게 주어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나의 짐작보다 이 책은 여렸다. 누굴 꾸짖거나 호령하지 않았다. 심지어 훈계조차도 하지 않았다.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랑 비슷한 경력인 교사의, 그가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피할수 없는 학교의 일상을 보여줬을 뿐이다. 잊을 수 없는 구절이 있다. 뜬금없다고 할 것이다.
"가슴이 따뜻하게 떨렸다." (134쪽)
이 대목이었다. 나는 이 느낌을 안다. 일년에 한번이라도 이 느낌이 모든 고생을 위로한다.
오늘은 모든 샘들께 이 느낌을 공유하고 싶다.(내가 뭐라고ㅎㅎ) 솔직히 내가 가장 바라는 건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