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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모르는 엔딩 ㅣ 사계절 1318 문고 116
최영희 지음 / 사계절 / 2018년 11월
평점 :
최영희 작가의 책을 4권째 읽었다. 인간만 골라골라 풀, 알렙이 알렙에게, 현아의 장풍, 그리고 이 책. 계속 더 읽어보고 싶어진다. 청소년대상의 책들이 대부분인데 최근 어린이용도 나왔네. 찾아 읽어봐야겠다.
이 책은 다섯 편이 들어있는 단편집이다. 각편은 짧지만 장편인 현아의 장풍에서 느꼈던 작가의 스타일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외계인에 대한 상상과 현실 청소년의 결합. 작가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며, 어릴 적부터 외계인의 흔적을 쫓던 사람이다. 외계인에 대한 작가의 상상은 엉뚱하고 어떤 때는 황당하다. 과학소설이라 하기에는.... 하지만 아직 누구도 밝히지 못한 존재에 대한 설정이 어찌 논리적일 수가 있을까. 그 상상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게다가 웃기기까지 한데 뭘 더 바랄까.ㅎㅎ
장르는 SF지만 현실을, 그중에서도 청소년에 대한 짠함과 애정이 담긴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작가의 장점으로 꼽고 싶다. 왜 저뢔~ 왜 저러는지 알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질리게 하는 청소년들 옆에 가는 건 어른들로선 쉽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들 속에서 청소년들에게 다가갔다. 하나같이 별볼일없는 루저같아 보이는 그들 속의 감춰진 빛남을 살짝 보여준다. 별거는 아니다. 그냥 그들 속에 있는 아픔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는 양심, 귀여움 그런 거다. 이 세상을 지속하는데 그거면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응원하게 된다. 이땅의 청소년들을.
외계인과 청소년이 나오는 이야기는 세 편이다.
1.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
"우리나라 중2 때문에 외계인이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는 누가 만들어낸걸까?(혹시 중등 선생님들? 아님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은 부모들?^^) 그런데 이 허접한 유머를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삼다니 작가도 참 어지간하시다.ㅋㅋㅋㅋ 트룹행성에서 워싱턴 DC 비밀 사무소에 파견한 공무원 한 명이 한국 관광객들에게서 우연히 이 유머를 들었다. 물론 그는 이게 농담인줄 모르고 자기 행성에 보고했으며, 행성에선 대한민국 고양시 낙석중학교로 밀착감시 요원을 보냈다.
그 레이다망에 중2병 지대로인 우기영이 걸려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공원벤치에서 우기영에게 비키라고 역정내는 노인이 걸려들었다. 문서에 적힌 특성상 노인을 중딩으로 확신한 요원은 그를 우주선으로 납치했고 어쩌다보니 우기영까지 딸려가게 되었다. 실수를 인식한 그는 노인을 돌려보내고 우기영을 스캔하는데.... 그가 작성해야 하는 '대한민국 중딩에 대한 보고서'에는 어떤 내용이 실렸을까? 스포를 최대한 안 해야하지만 마지막을 얘기하자면, 결국 남은 건 없다. 우기영의 기억도 행성의 기록도. 그러나 그 요원의 기억속에는 깊이 남았는데, 그는 나중에 또 와서 우기영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하며, 그것을 위해 여행적금을 붓기 시작했다고.ㅎㅎㅎㅎ
2. 최후의 임설미
여기에서 외계인은 츠바인행성의 첩자다. 츠바인행성의 문명은 지구보다 뛰어나고 인류멸종 끝에 지구를 접수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지금은 유예상태다. 가공할 폭발물을 낙석중학교 아래에 매설했고 투표권자들이 만장일치하면 몰살이 실행된다. 투표권자는 자연히 그곳이 서식지인 중딩들이며 투표의 방식은 바로.... 중딩들이 실내화로 고집하는 삼선슬리퍼라니....ㅋㅋㅋ 아니 이런 얘기를 하는데도 책을 집어던지지 않고 더 붙잡게 만드는 필력은 뭐란 말이냐. 내가 언젠가 저놈의 삼선슬리퍼가 얘깃거리가 될 줄 알았다만, SF에 등장할 줄은.....ㅎㅎ 그런데 아주 중요한 인용구가 나온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 없다."
다수의 삼선슬리퍼 사이에서 홀로 흰 실내화를 신는 임설미는 정상인가? 아닌가? 중딩들아, 말 좀 해봐라. 획일화를 싫어하는 너희들이 스스로 강력한 획일화의 틀을 만드는 아이러니에 대해서. 너희 안의 임설미들이 행복하길 빈다. 그들의 행복을 방해하면 안 된다. 중딩들아.
3. 너만 모르는 엔딩
표제작이고 웃음코드도 강력하며, 무려 다중우주론에 기반한다. 여기에서 외계인은 호재의 인생설계를 해주는 흡 씨다. 그는 지구 유람을 왔다가 아예 눌러앉게 되었으며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지구인의 전도에 의해서 예수를 영접해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다중우주론에 기반한 미래 설계 및 가능성의 분기점 추출 장치'를 갖고 있어서 인생설계 일을 하며 근근히 살아간다. 지구인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점집'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가 설계해준 미래는 다양한 가능성의 복잡한 계산 끝에 조합된 것이므로 함부로 수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호재에게는 수정하고 싶은 계획이 생겼으니.... 끔찍한 여사친과의 미래를 제거해버렸는데, 왜, 하필...... 아, 이래서 인생이란 모르는 것인가. 웃음이 나온다.ㅎㅎㅎ
웃음 사이에 작가는 꼭 살며시 찡한 문장을 넣어두곤 했는데 여기서는 흡 씨의 대사다. 그는 시간여행을 하겠다고 한다. 그분을 찾아서....
"그분이 가능성의 분기점을 다루는 걸 봤어요. 가능성의 분기점들이 펼쳐질 때마다 늘 한 가지 원칙에 따라 선택을 하시더라고요. 세상 아이들이 한 명이라도 덜 다치는 쪽으로.... 그분은 저기 사거리에 서서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쓸쓸히 돌아갔어요. 저는 그 시간으로 돌아가 그분을 따라갈 겁니다. 진짜 그분이라면 여쭤보고 싶어요. 왜 사랑이란 이토록 무모하고 모순투성이이며 남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지....." (102~103쪽)
나머지 두 편은 인공지능이 지금보다 더 발달된 미래를 다루고 있다. 그중 [그날의 인간 병기]는 발달된 미래에도 전혀 달라진 것 없는 중딩들의 행태를 보여준다. 괴롭히는 놈과 당하는 놈.... 실수로 입게 된 사이버웨어를 통해 어찌됐든 속시원히 갚아 주었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이놈이나 저놈이나 대책없기는 마찬가지. 어휴....^^;;;
마지막 편 [알파에게 가는 길]은 대체인간, 그러니까 로봇인 미카가 주인공이다. 그는 기억을 복원해 자신의 원래 정체를 알아냈다. 베타 진아. 베타는 알파를 찾아간다. 둘의 재회는....
이 작품은 아마도 전작인 <안녕, 베타>에서 파생된 것 아닐까 한다. 그 작품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이 책은 책 속 주인공들 같은 B급 학생들도 중간에 던지지 않고 잘 읽을 것 같다. 그리고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야기도 써 주세요. 외계인도 꼭 나오게."
기대하고,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