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다!
쓰쓰이 도모미 지음,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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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 지난 수서때 신청했던 책이다. 작가 이름은 처음 보는데, 그림이 요시타케 신스케여서 신청했었나보다. 웃음지을만큼 꽤 재밌기도 하고 사소하지만 살짝 거슬리는 대목도 있고 그랬다. 일본 작품의 번역체는 역자가 달라도 뭔가 공통된 느낌이 있다. 일단 문장이 간결하다. 표현은 잘 못하겠는데 익숙한 어떤 느낌이 있다. 일본어를 몰라서 그 느낌의 근원이 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도 무심한듯 간결한 문장 속에 수많은 감정들이 들어있는게 느껴진다.

스무 명의 아이들이 한꼭지씩 '멋지다'를 이야기하는 구성이다. 거기에는 언뜻 멋질 리가 없어보이는 것들도 들어있다. 예를 들면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는 일, 콧구멍에 휴지가 박히는 일, 아무리 해도 잠이 안오는 일,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일 등등.... 하지만 읽다보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뭐 정확히 공감하지는 못한다 해도.^^ 모든 것에서 긍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건 아이들이 가진 대단한 능력 아닌가. 그걸 어른들이 일깨워주지는 못할망정 "그까짓게 뭐 대단한 거야?!" 이러면서 초를 치지지는 말아야겠다.

아주 아이스러운 '멋지다'도 있었다. 학교 화장실에서 아무리 물을 내려도 안내려갈 만큼 크고 굵은 똥. 그걸 보고 "우아, 대단하다. 나도 저런 똥 한번 쑥 싸 보고 싶은걸." 하는 이야기는 웃음이 난다. 벚꽃잎이 가득 쌓인 길을 맨발로 걸어본 아이의 이야기, 주먹밥을 좋아하는 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주먹밥을 만들어본 이야기, 애착이불이 아닌 애착'타월'이 너무 소중한 아이 이야기 등은 아주 생생하면서도 공감이 갔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걸리는 부분은 이런 거였다. [빡빡머리, 멋지다]꼭지에서 아이는 빡빡머리를 해보니 생각보다 멋지다고 말하는데, 머리를 민 이유가 특별활동 연습을 몇번 빠져서였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부모가 억지로 깎였다는 말인가? 그래서 화는 났지만 깎아놓고 보니 멋있다는 말인데, 이건 납득되지 않았다. 너무 미개한 일 아닌가?
[고추, 멋지다]는 아빠랑 목욕하면서 있었던 일인데 음냐... 뭔가 반 아이들이랑 읽기는 민망하달까?^^;;;
[남자끼리, 멋지다]는 남자 4인조가 한명 집에서 놀다가 뒤뜰에 심은 양배추에 함께 오줌을 갈기고, 어느날 보니 그 양배추가 훌쩍 커져 있더란 얘기였는데, 공공장소도 아니니 도덕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이런 행위로 남성성을 강조하는 것 또한 아주 미개하게 느껴진다. 작가분이 연세가 많으신가? 작품을 발표할 때 이런 점은 고려하시는게 어떨까 싶다. 내가 이런 민감성에서 평균보다 높은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이렇게 입안에 걸리는 가시가 좀 있긴 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함께 활동해보고 싶은 이유는 아이들에게도 '멋짐'을 발견해주고 싶어서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우리 모두에겐
'멋지다'가 들어있어.
마음속에도 몸속에도 가득
한가득 들어있어."
이런 작가의 서문처럼 말이다. 학급책 만들기 활동으로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한 학급 20명 아이들의 이야기인데 여기저기서 같은 고양이가 등장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었다. [쓸쓸함, 멋지다]를 쓴 아이는 그 고양이 옆에 앉아 자기 이야기를 쏟아 놓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 고양이. 그 이야기를 나누던 반 아이들은 '고양이 신문'을 만들기로 한다. 아이는 왠지 기운이 나는 걸 느끼며 '쓸쓸함도 멋지다'라고 결론 내린다.

담임선생님이 게시판 한쪽에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아이들은 각자 작성한 기사를 가져다 붙인다. 그 '고양이 신문'이 책에 실려 있다. 기사라고 하기엔 자기 이야기거나 단상에 불과하지만 앞에 나온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인지 연결이 되기도 해서 귀엽고 재미있었다. 가장 돋보이는 건 그림이었을거다. 신스케의 그림인데 안그럴 수가 없잖아?^^

'멋지다'를 찾아내는 긍정의 아이콘이 아이들이라 해도, 요즘엔 이 아이성을 잃어버린 아이들도 많기 때문에 발상에 난관이 예상된다. 물론 기발한 '멋지다'로 감탄을 선사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어린시절이 그랬듯이 뭐하나 내세울게 없다고 느끼는 아이들도 있다. 작가는 몸이 약하고 이렇다할 재주도 없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나는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를 싫어하지 않았다. 왠지 귀여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어떤 일이든 '멋지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라고 고백한다. 안되는 일은 안되는 거다 -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 오 멋진데? 이런 과정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나와 아이들의 '멋짐'을 열심히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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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빨간콩 그림책 8
김미희 지음 / 빨간콩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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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필체에 그림체 또한 소박하다.
화려한 요리보다는 슴슴한 배추된장국 정도의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 안에 깊고깊은 우물같은 감정이 담겨있다.

제목도 단순하다. 엄마.
난 아직 엄마가 계시고 나 또한 엄마로 산지 꽤 오래됐다. 우리집 개녀석한테도 나는 엄마다.
택배 포장을 뜯고 표지를 보다가 식탁 위에 책을 세워 놓고 개녀석을 품에 안았다.
"자, 봐! 엄마! 엄마지? 여기 엄마가 있어!! 엄.마!"
이렇게 한 문장 안에 여러번이나 엄마를 되뇌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엄마란 이름은 그냥 숭늉같이 아무 맛이 없기도 하면서 그리운, 그런 맛인 것 같다.

아이는 엄마와 눈을 맞추지 않는다. 머리를 자르러 가면서 엄마는 앞만 보며 걷고, 아이는 그 뒤를 쭐레쭐레 따라간다. 하는 말도 정해져 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같은. 엄마도 늘 "그래" 라는 대답 뿐이다.

3년 전에 갑자기 처음보는 분이 엄마가 되었다. "이제부터 엄마라고 불러." 그게 다였다. 아이도 엄마도 말수가 적은가보다. 엄마는 화분에 물을 주며 속삭이듯 말을 건다. 아이는 그걸 보고 "나보다 화분을 좋아하신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아이가 마음을 표현하기로 마음먹은 일이 생겼다. 작은 선물과 서툰 편지를 엄마가 일하는 재봉틀 위에 두고 잠든 아이. 아침에 눈뜨자마자 재봉틀부터 살피는 아이. 그날 아침은 뭔가 달라졌을까?

엄마를 엄마되게 하는 건 무엇일까? 나는 20여 년을 엄마노릇 했어도 잘은 모르겠다. 그냥 내새끼라서 안쓰럽고 내새끼라서 다칠까봐 안달복달 하는 거다. 결국 내가 품고 낳았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동물적 모성조차 없는 엄마도 있다. 주로 슬프고 끔찍한 이야기.ㅠ 그런가하면 키움만 가지고도 충분한 엄마인 경우도 많다. 작가 또한 그런 엄마를 가졌다고 한다. 속표지 옆에 그 엄마께 보내는 짧은 말이 붙어있다.
"망설이다 이제야 편지를 보냅니다.
내 엄마가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젠가 페북에서 딸려나오는 어떤 사연글을 우연히 클릭해서 본 적이 있었는데 새엄마가 되어 노심초사하는 여성의 글이었다. 말없는 딸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지 몰라 애태우던 그이는 딸의 현장학습날 온갖 정성을 다해 도시락을 싸주었는데 먹지 않고 가져온 것을 보고 슬픔에 맥이 풀려 그만 누워버렸단다. 잠시후 아이가 조심스레 와서 하는 말. "먹기 싫었던게 아니고 너무 예뻐서 못먹었어요. 고맙습니다. 엄마."
그 글에 눈물과 응원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귀찮은거 싫어하는 나는 선택하지 않을 삶이지만, 이렇게 아름답게 엄마가 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지. 이 책은 그런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였다.

엄마는 거의 누구나 되지만, 좋은 엄마가 되기는 얼마나 힘든가. 자기 성취와 균형을 잡기도 힘들고, 집착하면 집착해서 망치고 방임하면 방임해서 망치고. 이 그림책의 색깔처럼 수수하고 따뜻한 엄마가 되는 길은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냥 그분들이 누구보다 충분히 좋은 일을 하셨다는 것만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엄마 쪽만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아이가 서툰 사랑을 표현했듯이.
이렇게 담담한 그림에 많은 느낌을 품어 만든 작가의 내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다른 에세이 소개를 보니 역경을 많이 거쳐오신 것 같다.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작가님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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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에게 웅진 모두의 그림책 30
전이수 지음 / 웅진주니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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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수 작가의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소개한 것이 재작년이었다. 그때 가르치던 아이들이 4학년, 2008년생들이었다. 전이수 작가도 2008년생.
“얘들아, 이 작가가 너희들이랑 같은 나이야. 지금 학교에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데, 학교에 다닌다면 너희들과 같은 4학년인 거지.”
그런데 올해 또 2008년생들을 맡았다. 올해는 6학년. 난 2008년생들과 인연이 많네. 그러고보니 전이수 작가도 이제 중학생이 되는구나.(나이로)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짤막하지만, 그래도 그 깊이 면에서 우리반 녀석들과 비교하면 한숨이 나온다. 온라인으로 글쓰기 피드백을 하다가 지친 날, 이 책을 보는 게 아니었다.ㅎㅎㅎ 니가 잘못한 거야! 그리고 이 작가는 무려 ‘영재발굴단’에 나왔던 영재라고. 평범한 아이들을 영재와 비교하는 만행을 저지르지 마라.^^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나랑 비교해도 그렇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던가? 하면 할수록 마음이 들볶이고 심신이 고단해지는 이런 생각들을, 나는 외면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보면 나 또한 내 아들보다도 어린 이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기 힘든 것이다.

작가의 전작 중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읽고 아이들에게 소개했던 책은 『새로운 가족』이라는 그림책이었다. 담긴 메시지도 좋았고, 그 이야기가 장애를 가진 동생을 입양한 자신의 가족 이야기라는 점도 감동이었고, 그림도 상징도 다 감탄할 만했다. 그 책이 서사가 담긴 그림책이었다면 이 책은 그림 에세이다. 떠오르는 단상들을 그림과 함께 엮은 책이다.

일단 그림 면에서, 작가는 성큼성큼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그림은 잘 볼 줄 모른다. 다만 작가가 아주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얼핏 어디서 본듯하다 싶은 작품도 있지만 배우고 시도하는 과정에 당연한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내용에서도, 기법에서도, 색감에서도 아주 다양한 느낌들이 난다. 아직 고정되지 않은 이런 다양한 시도를 거쳐 점점 자신만의 색깔을 갖게 될 것 같고, 자신의 색깔을 갖게 되더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길 독자로서 바란다.

글에서는 문득문득 어린아이의 느낌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성숙함을 느낄 때가 더 많다. 물론 자신이 살아온 세월과 경험의 벽을 넘을 수는 없겠지만, 이 아이는 어쩌면 어른인 나보다 더 많은 ‘생각의 경험’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부모의 지지와 조력이 가장 큰 힘이 되었겠고, 스스로의 자기관리 능력도 대단해 보인다. 코로나 원격수업으로 폐인이 되어가는 몇몇 아이들을 바라보며, 오래 지속된 홈스쿨링에서도 이렇게 발전하고 결과물을 생산해 나가는 일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건, 예술가의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매일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예술가의 힘.
그리고 그 엄마의 위력인 것 같기도 하다. 자식에게 자유로운 마당을 펼쳐주고 존중하고 조력하며 자식과 대화를 나누고 묻고 답하며 생각을 돕는 일. 내면의 힘이 어지간해선 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부모와 자녀의 영재성의 콜라보가 아닐까 싶다.

앞부분의 내용이 서정적, 사색적 내용이라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사회문제에 대한 작가의 소신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플라스틱 문제, 기아 문제, 노키즈 존에 대한 경험과 생각까지 담겨 있었다. 노키즈 존을 일부 납득하는 나는 좀 뜨끔했다.^^;;; 마지막 세 편의 글이 엄마에 대한 글이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고 신뢰가 얼마나 두터운지 놀라웠다. 정말 이 엄마는 아이들의 기둥이 되어 주었구나. 바깥에서의 어떤 성취보다 더 귀한 신뢰와 사랑이 아닐까 싶었다. 엄마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밤낮없이 바쁜 커리어우먼의 역할보다 더 많은 것을 했다고 본다. 나는 이렇게 살진 않았지. 무엇보다도 이렇게 단단할 기둥이 될 수가 없어서......

유명해지고 남들의 주목을 받을수록 이 가족의 결정 반경이 좁아질까 봐 조금은 걱정이 된다. (쓸데없는 오지랖ㅋ) 그냥 이들이 시선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지내다 예술적 샘물이 가득 고였을 때 그걸 흘려보내기만 했으면 좋겠다. 평범해도, 특별해도, 대단해도, 별볼일 없어도 모두 귀한 인생이다. 그런 눈으로 이 어린 예술가의 작품을 편견없이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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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별에서 왔니
김현경 지음 / M&K(엠앤케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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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어린이용 미술해설서 <어린이를 위한 그림의 힘>을 읽었다. 작가분이 소설가인데 '심리소설'을 쓰셨다는 소개에 바짝 호기심이 생겼다. 그중 애니어그램을 다룬 '실용심리학소설'이라는 이 책이 가장 궁금했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 한가한 연휴가 되어서야 읽어봤네.^^

내가 대단하다 생각하고, 흉내는 못내지만 좋아하는 후배교사들 중에 애니어그램을 깊이 공부하고 연수도 하는 샘들이 많다. 그래서 나도 몇가지는 주워들었고 간단한 연수에 참여해 자가검사도 해보았다. 어느정도는 나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넘어 나를 발전시킨다든가 학급운영이나 상담에 이용한다든가 하지는 못했다.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정도는 아니기도 하다. 어쨌든 궁금증은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나의 근본이 궁금하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도 생각이 왔다갔다했다.

실용심리학을 다루었다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이므로, 등장인물과 서사가 있다. 한 가족의 이야기이며 주변 곁가지는 거의 없다. 그래도 분량은 400쪽을 훌쩍 넘는다. 한가족이라지만 7명이나 되거든. 거기에 자주 찾아오는 이모와 장남의 여자친구. 이렇게 해서 주인공은 9명이다. 느낌이 오시는가? 애니어그램에는 9개의 유형이 있다.

그중 5유형인 차남 나영수가 이 책의 화자다. 1유형인 원칙파 잔소리꾼 아빠, 7유형인 자유로운 영혼 엄마 슬하의 4남매, 그리고 동거인인 삼촌이 한집에 살고있다. 이들 가정엔 끊임없이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이에 대처하는 각 구성원들의 태도나 언행에서 그들의 성격을 추론해볼 수 있고, 실제로 내용중에 애니어그램과 연결을 시켜준다. (화자인 영수가 애니어그램에 관심이 생겨 연구하게 됐다는 설정)

좁은 집에 많은 인원이 복닥대며 서로에게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가족을 보면서, 아우 정말 싫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야 저게 가족이지 싶기도 하다. 물론 신경쓰는거 싫어하는 나는 절대 이집의 일원이고 싶지 않지만, 지지고 볶고 갈등하고 하면서도 생각을 키워나가고 끊임없이 조정해나가는 가족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한다. 애니어그램으로 기획된 서사이기에 그걸 빼면 좀 헐거워지긴 하겠지만, 가족의 이야기만으로도 읽기에 지루하지 않을 이야기였다.

옛날 연수때 검사 결과로 볼때 나는 1,9유형이 똑같이 높고 다음으로는 6유형이 높았다. 7유형이 가장 낮고 3,8유형도 낮다. 나머지(2,4,5)는 중간쯤이다. 이건 맞는 것 같다. 선택의 순간에서 내가 가장 먼저 포기하는 건 오락(유희)이다. 끝까지 남는 건 일(월급을 받거나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이걸 보면 7유형에서 가장 멀고 1유형에 가깝다. 그런데 그에 버금가게 놓칠 수 없는 건 쉼(휴식)이다. 이걸 보면 9유형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남 앞에 나서거나 리더가 되거나 유명해지거나 하는 일에는 그닥 관심이 없거나 부담스러워한다. 그걸 보면 3,8유형과 거리가 먼 것도 맞는 것 같다. 윤리, 도덕규범에 강박이 있고 '옳아야 한다'가 강한 것은 1유형의 특징이지만 경쟁을 꺼리고 피하는 것은 9유형의 특징이다. 그런데 '안전주의자'라는 표현을 보면 6유형 같기도 하다. 불안이 내면의 문제라는 점도. 1유형은 분노인데, 내 내면에 분노가 문제인가? 불안이 문제인가?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불안인 것 같다. 그러면 6유형인가?

이 책을 읽어보니 더 헷갈린다. 그런데 이책의 인물들로만 따져본다면 9유형인 삼촌은 나와 매우 거리가 멀다. 나는 직업을 자주 옮기고 자주 백수도 되는 생활을 불안해서 감당할 수 없을거다. 내가 편히 휴식하는 건 일한 후에 공인된 휴식이기 때문이다. 애교쟁이 6유형 막내딸과도 많이 다르다. 독재적 1유형 아빠와 가장 가깝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아빠만큼 세지 못해서 드러나는 행동은 같지 않지만.

영수가 가족들을 관찰하고 파악해가며 상황에 따른 구성원들의 대처를 이해하고 예측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영수 또한 전문가가 아닌 입문자인 바, 마지막에 가장 크게 터진 녀석이 바로!!ㅎㅎ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던데, 또 각각 본가의 풍파를 안고 결혼한 가정이니 그 바람이 오죽할까. (그러니까 500쪽 가까이나 되는 책이 됐지.ㅎ) 절대 이 가족의 일원은 되고 싶지 않고 이중에 본받고 싶은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이 가족의 삶을 높이 사고 싶다. 적어도 회피하지는 않아서. 아이구, 저렇게 깨져서 어째~ 하는 순간이 이들에겐 새로운 성찰과 조정의 시작이었다. 요즘에 이런 가정은 흔치 않다.

애니어그램 면에서 보면 나의 경우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진 못했는데, 아예 처음 접하는 경우라면 꽤 많은 걸 알게 될거라고 본다. 나의 경우도 책을 읽으며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나 데굴데굴 머리를 굴려보아서 좋았다. 결론은 못내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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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운명은 푸른숲 역사 동화 13
한윤섭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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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화의 새 장을 열었던 '푸른숲역사동화'의 최근작. 발간됐을 때 화제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몇달이 지나서야 읽어봤다. 내용이 무거워보이고 읽는데 오래걸릴 것 같은 느낌은 빗나갔다. 앉은자리에서 정신 들어보니 어느새 책의 후반부였다. "안돼~~ 왜 벌써 끝나~~"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다.^^

삯바느질을 하는 엄마의 11살 아들 수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엄마가 근근히 얻어다주는 밥만 먹고 지내던 작고 연약한 수길이 어느날부터 산에서 나뭇짐을 해나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시작한 걸까. 아이는 "팔자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다른 말로는 "암흑에서 벗어나고 싶다."고도 했고.

그 시기는 봉건제도가 마지막 위세를 떨치던 조선 말기였고, 일제가 침입해 수탈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엔 암흑이 있다. 개인의 암흑도 시대의 암흑도 있다. 노력해서 그 암흑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살만한 세상일 것이다. 지금, 여기는 어떠한가? 쉽게 말할 수가 없다. 분명히 세상은 좋아졌고, 편해졌고, 생명의 위협과 굶주림은 줄어들었지만 암흑이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의 배경은 역사상 그 암흑이 가장 깊었던 시대라고 생각한다.

신분제도가 엄연히 남아있어 태생의 한계를 절대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점이 수길을 절망케 했지만, 그래도 수길이 운명을 개척하는데는 다양한 계층 사람들의 조력이 있었다. 그중에는 장터의 칼갈이 아저씨도, 마을 최고의 부자 양반과 그의 손자도, 보잘것없는 나뭇짐을 받고 글을 가르쳐준 선비도 있었다. 이들은 때로는 각성으로, 때로는 교육으로, 때로는 입에 풀칠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소년의 앞길을 비춰주었다.

조력이 없다면 혼자서 길을 밝히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떨쳐 일어나는 데는 스스로의 내면의 힘이 가장 크다. 소년의 경우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이어져온 내력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중요한 소재 중 하나는 '무덤'(묘자리)인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함구하던 어머니가 결국 아들을 데리고 간 곳은 을사의병 때의 격전지였다. 무덤은 컸다. 전사자들이 한꺼번에 묻혔기 때문이다.ㅠ

역사동화지만 이 책에선 실존했던 역사인물이 그대로 등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완전한 허구라고 보이지도 않으며 어느정도 대입이 가능하다. 안부자 가문은 이회영 일가를 연상시키고, 결국 이 일가를 따라 만주행에 동참하는 수길은 신흥무관학교의 무명 병사를 떠올리게 한다. 수길의 첫 걸음이 이 책의 마지막장이다. 거기까지의 과정만으로도 이 책은 꽉 채워져있고 한달음에 읽혔다.

어떤 시대든 사람들이 자기 삶을 선택하는 방향은 갖가지다.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정답은 없겠지만 후대가 보았을 때 귀하게 여겨지는 선택은 있는 법이다. 수길이 선택한 길, 그가 받아들인 '운명'이 그를 어떤 길로 몰고 갔는지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남편을 일찍 보낸 엄마가 아직 새파랗게 어린 아들까지 떠나보내던 그 새벽밥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내가 느끼기엔 치열한 전투나 피맺힌 수탈의 현장이 묘사된 이야기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하지만 한 소년의 생각과 실행을 쫓아간 이 조용한 이야기도 그 못지 않게 울림이 큰 것 같다. 이 책을 아이들과 읽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시대와 차원은 다르지만 또다른 의미에서 '암흑'일수도 있는 이 시대에, 수길처럼 자신의 운명을 찾아 전진하는 아이들이면 좋겠다. 나도 자신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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