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빨간콩 그림책 8
김미희 지음 / 빨간콩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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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필체에 그림체 또한 소박하다.
화려한 요리보다는 슴슴한 배추된장국 정도의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 안에 깊고깊은 우물같은 감정이 담겨있다.

제목도 단순하다. 엄마.
난 아직 엄마가 계시고 나 또한 엄마로 산지 꽤 오래됐다. 우리집 개녀석한테도 나는 엄마다.
택배 포장을 뜯고 표지를 보다가 식탁 위에 책을 세워 놓고 개녀석을 품에 안았다.
"자, 봐! 엄마! 엄마지? 여기 엄마가 있어!! 엄.마!"
이렇게 한 문장 안에 여러번이나 엄마를 되뇌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엄마란 이름은 그냥 숭늉같이 아무 맛이 없기도 하면서 그리운, 그런 맛인 것 같다.

아이는 엄마와 눈을 맞추지 않는다. 머리를 자르러 가면서 엄마는 앞만 보며 걷고, 아이는 그 뒤를 쭐레쭐레 따라간다. 하는 말도 정해져 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같은. 엄마도 늘 "그래" 라는 대답 뿐이다.

3년 전에 갑자기 처음보는 분이 엄마가 되었다. "이제부터 엄마라고 불러." 그게 다였다. 아이도 엄마도 말수가 적은가보다. 엄마는 화분에 물을 주며 속삭이듯 말을 건다. 아이는 그걸 보고 "나보다 화분을 좋아하신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아이가 마음을 표현하기로 마음먹은 일이 생겼다. 작은 선물과 서툰 편지를 엄마가 일하는 재봉틀 위에 두고 잠든 아이. 아침에 눈뜨자마자 재봉틀부터 살피는 아이. 그날 아침은 뭔가 달라졌을까?

엄마를 엄마되게 하는 건 무엇일까? 나는 20여 년을 엄마노릇 했어도 잘은 모르겠다. 그냥 내새끼라서 안쓰럽고 내새끼라서 다칠까봐 안달복달 하는 거다. 결국 내가 품고 낳았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동물적 모성조차 없는 엄마도 있다. 주로 슬프고 끔찍한 이야기.ㅠ 그런가하면 키움만 가지고도 충분한 엄마인 경우도 많다. 작가 또한 그런 엄마를 가졌다고 한다. 속표지 옆에 그 엄마께 보내는 짧은 말이 붙어있다.
"망설이다 이제야 편지를 보냅니다.
내 엄마가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젠가 페북에서 딸려나오는 어떤 사연글을 우연히 클릭해서 본 적이 있었는데 새엄마가 되어 노심초사하는 여성의 글이었다. 말없는 딸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지 몰라 애태우던 그이는 딸의 현장학습날 온갖 정성을 다해 도시락을 싸주었는데 먹지 않고 가져온 것을 보고 슬픔에 맥이 풀려 그만 누워버렸단다. 잠시후 아이가 조심스레 와서 하는 말. "먹기 싫었던게 아니고 너무 예뻐서 못먹었어요. 고맙습니다. 엄마."
그 글에 눈물과 응원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귀찮은거 싫어하는 나는 선택하지 않을 삶이지만, 이렇게 아름답게 엄마가 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지. 이 책은 그런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였다.

엄마는 거의 누구나 되지만, 좋은 엄마가 되기는 얼마나 힘든가. 자기 성취와 균형을 잡기도 힘들고, 집착하면 집착해서 망치고 방임하면 방임해서 망치고. 이 그림책의 색깔처럼 수수하고 따뜻한 엄마가 되는 길은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냥 그분들이 누구보다 충분히 좋은 일을 하셨다는 것만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엄마 쪽만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아이가 서툰 사랑을 표현했듯이.
이렇게 담담한 그림에 많은 느낌을 품어 만든 작가의 내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다른 에세이 소개를 보니 역경을 많이 거쳐오신 것 같다.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작가님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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