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극장 - 2023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그림책이 참 좋아 86
김규아 지음 / 책읽는곰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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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이라는 이 책을 뒤늦게 발견하고 읽어봤다. 이 작가님의 <밤의 교실>을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내겐 밤의 교실이 더 좋긴 하지만 이 책도 좋았다. 밤의 교실은 고학년에, 이 책은 저중학년에 권해주면 좋을 듯하다.

그림자 극장이라는 판타지 공간을 만들어 현실에서 걸려있는 빗장을 풀고 해소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작가님의 장치가 마음에 든다. 그림자는 다양한 은유로 작품에 즐겨 사용되는데, 여기서의 역할도 흥미롭고 적절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자매간의 다툼은 아주 흔한 이야기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순식간에 들끓게 만드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형제 갈등과 억울함이다. 이 자매에게는 이런 사건이 있었다. 학교숙제로 언니가 정성껏 만든 토끼 인형을 동생이 깨뜨린다. 언니는 울상이 되고 동생은 허겁지겁 본드로 수습을 해보려 하지만 더 망쳐질 뿐이다. 보다못한 언니는 하지말라며 동생을 밀쳤고 동생은 침대에 이마를 부딪쳐 상처가 난다. 그렇게 최악인 상태로 둘은 등교한다. 평소와는 다르게 멀찍이 떨어져 걷는 자매를 유심히 지켜보는 어른이 있었으니.... 바로 아파트 경비원 할아버지다.

자매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서로 마음을 전할 방법을 찾지만 결국 전하지 못한다. 동생은 인형뽑기기계에서 토끼인형을 뽑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언니는 편지지를 사지만 결국 전하진 못하고 하루가 간다.

이정도만으로도 드물게 착한 아이들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점점 실종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기 입장만 있고 남의 입장은 없다. 자기 입장만 보면 약간의 억울함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더 넓게 보면 그 억울함을 부각시킬 상황이 전혀 아님을 깨닫게 될 텐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도리도리하면서 자신의 억울함만 고래고래 주장한다. 여기에 어떤 해결이 있겠는가?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고, 그걸 표현하려고 머뭇거린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자매는 참 착한 아이들이다. 우리가 자녀들을 이만큼이라도 키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자매는 화해를 못하고 2층 침대에서 각각 잠이 들었다. 여기서 또다른 주인공, 이름이 막둥이인 이 집의 귀여운 강아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침대에 펄쩍 올라가 동생 옆에 웅크려 눕는 모습은 우리집 강아지의 포근함을 바로 연상시키는데.... 이때 막둥이의 그림자가 빠져나와 동생의 그림자를 깨운다. 둘은 창문으로 나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다니다 마지막에 어떤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가 '그림자 극장'에 도착한다. 거기에 계신 극장 주인은......!!

곧이어 언니도 극장에 도착하고 둘은 극장 주인이 추천해준 '어떤 하루' 라는 영화를 본다. 그 하루는 자매의 하루였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객관적 시점으로 상황을 보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선이 내 안에 갇히지 않는 것. 가끔 나는 어떤 아이에게 "너한테서 이렇~~게 빠져나와서 여기쯤에서 너를 봐. 어떤 모습인지.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너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은 거니?" 라고 속이터져서 말하곤 했는데, 그걸 '객관적 직면' 이라고 할까? 여기선 그림자가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자매와 막둥이, 토끼인형까지 네 그림자는 신나게 놀다 동트기 직전에 주인에게로 돌아온다. 가족의 아침은 평화롭고 자매의 등굣길은 다정하다. 그걸 지켜보는 경비 할아버지. 과연 그림자 극장은, 누군가에게 또 펼쳐질 수 있겠지?

한 번 마음이 어긋나면 끝장으로 치닫고 그걸 부모가 조장하며 절대 먼저 사과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시대의 사람들이 이 책을 함께 읽는다면 어떨까 싶다. 마음이 조금만 더 말랑해진다면, 그림자의 눈을 한번 가져본다면 이 세상의 무가치한 아귀다툼이 좀 그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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