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되는 색상의 선명한 표지그림이 눈길을 끌고 좋았는데 본문 삽화로는 썩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취향 문제인 것 같다. 난 만화체의 삽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강한 것보다는 작고 귀엽고 부드러운 걸 좋아하는 취향. 취향이 다른 분들은 충분히 좋게 느끼실 것 같다.작가님의 작품 중 읽었던 게 있나 훑어보니 <오늘의 10번 타자>를 몇 년 전에 읽었었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다. 이 책에도 몇가지 흥미로운 소재와 감상 포인트가 있었다.화자가 세 명이다. 첫번째 화자 승찬이는 아파트 밖 주택 구역에 사는 아이이고 부모님은 배 과수원을 하신다. 승찬이네 학교는 인근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데 개구멍을 통과하면 가깝지만 정문으로 돌아가면 오래 걸린다. 이 '개구멍'이 중요한 소재다. 제목에도 나오듯이. 이 개구멍을 둘러싸고 아파트 밖 아이들과 아파트 주민과의 격차와 갈등이 드러난다.승찬이네는 고모할머니의 수술 때문에 객식구가 들어왔다. 고모할머니가 홀로 키우시는 형과 뭉치라는 이름의 강아지. 형은 승찬이보다 훨씬 크지만 어딘지 어눌하고 좀 다르다. 자폐로 추정되는 장애를 갖고 있는 듯하다. 뭉치는 넉살 좋게 승찬이를 쫓아다니는데, 어느날 등교길에 따라온 녀석을 쫓아버린 이후로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집 개도 아닌데 이 일을 어쩌지!두번째 화자가 바로 이 강아지 뭉치다. 뭉치 시점의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들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인물 한 명이 더 나온다. 아파트 주민인 할머니지만 커다란 여행가방을 풀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 시골 사시다 도시의 아들 집으로 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 이 할머니가 다친 뭉치를 데리고 들어가셨다. 그러니 승찬이가 못찾을 수밖에.할머니가 드디어 여행가방을 펼쳐놓는 일이 생긴다. 아파트 바깥의 공터를 텃밭으로 일구셨기 때문이다. 흙을 손에 묻히자 드디어 할머니는 되살아나셨다. 하지만 여기서도 '개구멍' 이슈가 부각된다. 돌아서 밭에 가는 건 노인들에게 너무 벅찬 일이었기 때문에. 아파트에는 개구멍 '뚫어파'와 '막아파'가 의견대립을 하게 된다. 할머니는 며느리를 자기쪽 편으로 만들고 싶지만 말 붙이기도 쉽지 않다. 이런 모든 과정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며 뭉치는 할머니랑 잘 지내고 있다. 세번째 화자는 승찬이네 반 유빈이다. 유빈이 엄마는 동대표이자 개구멍 막아파의 선두주자이며 아파트 진입 문제로 승찬이에게 자괴감을 안긴 인물이다. 유빈이는 마마보이이고 싶지 않고 승찬이와도 잘 지내고 싶지만 엄마 때문에 번번이 어긋나고 만다. 세번째 장은 유빈이의 둥이, 마마보이 탈출기라 하겠다. 아주 극적이거나 완벽하진 않지만 꽤 변화가 있다. 그 변화는 개구멍이 열리는 사건과도 연결된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는 세 개의 퍼즐이 조화롭게 들어맞는 이야기가 되었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 주변 아파트 재건축 중에 전근을 왔는데, 요즘 들어보니 재건축이 끝나고 입주가 시작되며 그동네에도 이런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새로 지은 크고 비싼 아파트의 텃세? 온갖 곳 다 걸어잠그기 등등. 동화 속 이야기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배척을 가르치는 어른들의 모습, 사랑을 베풀어주는 장애인 형의 모습, 도시살이를 하는 노인들의 모습, 과보호에 매몰되는 부모의 모습 등 주목할만한 다양한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