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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베어
해나 골드 지음, 레비 핀폴드 그림, 이민희 옮김 / 창비교육 / 2022년 3월
평점 :
요즘 잠시 내가 동화를 재미로 읽는지 습관으로 읽는지 왜 읽는지 모르겠던 참에, 오랜만에 진짜 재밌어서 책장이 넘어가는 책을 만났다. 대자연에서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 나는 이런 건 꿈도 못꾸는 사람인데도, 아니 그래서인지 유독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모험이 너무 위험해서, 마지막에는 ‘아무리 픽션이라도 너무 말이 안된다’ 라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만 살짝 눈감으면 이야기는 너무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엄마를 사고로 잃은 에이프릴은 아빠와 단 두 식구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에이프릴은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다. 다른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기에 에이프릴은 너무 특이하고, 아빠는 아직 엄마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아빠와 6개월간 단둘이 멀리 떠나있을 기회가 생긴다. 기후 과학자인 아빠가 북극권의 베어 아일랜드의 기상대에서 관측을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베어 아일랜드는 작은 섬이고, 기상대 외에 인간이 거주하는 구역은 없었다. 말하자면 무인도에 단둘이 있는 셈이었다.
그런 곳에 어린 딸을 데리고 간다는 것, 게다가 관측에 몰두하느라 딸을 거의 신경쓰지 않는 것 등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특이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니까. 게다가 에이프릴은 내가 평생 본 어떤 아이들과도 다르다.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에이프릴의 감각은 굳이 인간 관계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감각이 닫힌 요즘 아이들이 에이프릴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생각되는 나도 사실은 에이프릴의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소통할 사람도 없고 오락도 없는 (TV도 휴대폰도 없는!) 그곳에서 무슨 낙으로 지낸담! 그러고보니 나는 중간 위치가 아니라 그냥 요즘 애들하고 거의 같다고 봐야겠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지루하지 않았다. 아빠가 바쁜 것이 오히려 에이프릴에게는 좋았다. 혼자서 마음껏 섬을 탐사하며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에이프릴은 만나게 되었다. 곰을. 이 책의 제목인 ‘라스트 베어’를 말이다!
섬에 오기 전 아빠는 섬에 곰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고 단언했었다. 그런데 이 곰은 어떻게 혼자서 이 섬에 존재하고 있는 걸까? 사실 북극곰은 우리가 아는 북실북실 침대인형 같은 귀요미가 아니다. 위험하고 무서운 야생동물이다. 에이프릴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친구가 되었다. 곰은 거대했지만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깡말랐고 어딘가 몹시 아프고 불편해 보였다. 앞발 하나가 인간이 버린 쓰레기들에 묶여 거의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 에이프릴은 비상식량을 곰에게 나누어 주었고,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가 발을 옥죄는 것들을 풀어주었다. 이제 곰은 에이프릴의 기척을 느끼면 기쁨으로 달려오는 존재가 되었다.
종이 다르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 존재가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껴가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에이프릴은 결국 곰이 혼자 이 섬에 생존하게 된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지구온난화와 관련 있었다. 몇 년 전 이 일대의 만년설이 급속히 녹아버렸던 것이다. 곰은 동료와 가족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유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지구온난화의 상징동물이 된 북극곰. 그들이 공익광고에 나와서 말하는 이유와 같다.
내가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던 점은, 이 당돌한 꼬마가 저 커다란 곰을 원래 터전으로 데려다주려 한 점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말이야. 결국 그들은 죽음의 위험에 처하지만, 뒤따라 온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난다. 북극권의 끔찍하게 차가운 바다에서 아무리 조력자가 따라왔다 하더라도 난파된 상황에서 살아났다는 건 좀 만화적인 설정인 것 같다. 어쨌든 다행스럽고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사랑하는 둘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가장 그들다운 방식으로 이별한다. 그것이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자연의 법칙이므로.
곰의 모든 사정을 훅 직감했던 날, 에이프릴이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내가 뭐라도 할게. 약속해.“
그런 에이프릴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빠한테 따진다. 그렇게 관측을 해서, 그래서 뭘 하냐고. 아무것도 안할 바엔 관측은 왜 하는 거냐고. 아빠는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한다. 그게 우리의 상황인 것이다.
이 책은 가장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급박한 변화가 우리 코앞에 닥쳤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니 그동안 인간이 쌓아왔다는, 그 자랑스러운 문명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정보화는 또 어떤가. 그 모든 것들은 자연과 인간을 철저히 단절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제 땅의 숨소리를 듣고 이해하는 존재는 에이프릴처럼 정말 별나고 특별한 사람 외에는 없지 않을까.
이 작가를 잘 모르지만 간단한 소개를 보니 에이프릴과 비슷한 점이 있는 분이 아닌가 싶다. 국내 출간된 책이 한 권 더 있는데 그것도 읽어보고 싶다. 그 메시지들이 단단하게 닫힌 문을 강력하게 두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