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 내가 케이크를 나눈다면 질문하는 어린이 1
소이언 지음, 김진화 그림 / 우리학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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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라는 화두처럼 거대하고 민감한 주제가 있을까? 어찌보면 정치란 공정을 주장하고 실현하는 과정인 것 같다. 하지만 정치를 잘했다는 평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거의 없는 것처럼 공정을 실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공정에 대한 시각차가 존재하며 체감도 각기 다르고 자신의 문제일 때와 남의 문제일 때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 공정함을 주제로 어린이책을 만들다니, 쉽지 않았겠다.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엔 만만해(?) 보인다. 그림이 많고(만화면도 있음) 설명은 길지 않다. 하지만 짚어야 할 점들을 잘 짚어가며 생각을 잘 인도해 주는 책이라고 느꼈다. 이런 주제로 수업을 하는 교사가 읽고 흐름을 잡기에도 좋고,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다면 더 좋을거라 생각한다.

이 책에는 초등 고학년으로 보이는 두 아이, 호두와 롱롱이가 나와서 대화를 나누다가 상황 제시가 되고, 그 주제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이 외에도 구석구석 삽화나 예화 등등 구성이 다채로워 아이들이 지루하게 느끼지 않을 것 같다. 호두와 롱롱이의 캐릭터가 고학년 교실 어느 구석에 있는 시니컬 한 명, 무난싱글싱글 한 명을 아무나 데려다 놓은 듯 친근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아이들은 공평하지 않음을 참지 못한다. 그런데 무조건 '똑같은' 것이 공평함일까? '똑같게' 해도 우리 마음에는 불편함과 복잡함이 생길 때가 있다. '옳음'이 빠졌을 때 그러하다. 그 '옳음'을 추가한 것이 공정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공정함은 '정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시대가 흐르며 공정함은 상당히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고 낮은 신분은 높은 신분의 지배를 받던 시대를 떠올려보면 말이다. 인류는 많은 피를 흘리며 누구나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왔다. 표면적으로는 거의.... 그렇다. 그러나 정말 노오오오오력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까? 여기에서 '출발선 논란'이 나온다. 이것을 조정하다보면 '역차별 논란'이 나온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고개를 끄덕일 공정함이란 게 세상에 있을까? 정말 어렵다고 느끼게 된다.

책의 후반부에 이 설명이 거의 결론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두 개의 잣대' 라는 비유다. 그대로 옮겨보겠다.
"우리에게는 공정함을 판단하는 두 가지 잣대가 있어요.
하나는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자기 잘못이 아닌데 차별받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거예요.
잣대가 두 개면 서로 충돌하기도 하지만 헤쳐 나갈 방법도 많아져요.
동전도 앞면과 뒷면이 있고, 어떤 일이든 빛과 그림자가 있잖아요?
어떤 일이든 이쪽으로도 생각해 보고 저쪽으로도 생각해 봐요.
잣대가 두 개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세상이 더 근사해져요."


그리고 마지막 장, '사회안전망' 이라는 용어에도 주목하고 싶다. "노력한 사람과 노력하지 않은 사람을 똑같이 대접하라는 게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는 똑같이 주어져야 하고 모두가 그걸 지켜야 한다는 말이랍니다. 우리는 그런 사회안전망을 꼭 만들어야 해요. 마치 커다란 트램펄린 같은 안전망 말이에요. 그래야 누구든 바닥으로 떨어져도 다시 위로 점프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의 불행 위에 쌓은 성취는 궁극적으로 행복하지 않을 뿐더러 위태롭기도 하다. 결국 공정성에 대한 고민은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에서 살기 위한 노력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큰 테두리의 결론을 내려도 개별 사안에서 인간은 늘 충돌할 것이다. 교실 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정도로 테두리를 쳐 놓으니 그 논란은 할 만한 것으로 느껴진다. 아이들과 꼭 다뤄볼 주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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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나무
J.M. 바스콘셀로스 원작, 이희재 만화 / 양철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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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 출판사에서 나온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초판을 읽었던 때가 고1 때였다. 무기력에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라 상태가 총체적으로 안좋았는데 그 책을 읽고 감정을 주체 못해 한동안 더 헤맸던 기억이 난다. 근데 그때 내가 느꼈던 게 뭐였을까 꼭 집어 알 수가 없다. 매맞는 외로운 악동 제제에 공감했던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그 아이를 사랑하는 뽀르뚜가라는 어른을 이해했던 것도 아닐 것이다. 삶에 찌든 나머지 자식의 아픔을 알긴 커녕 더 고통에 빠뜨리는 어른을 이해했을 리도 없다. 그냥 책 전반에 흐르는 슬픔이 나를 쥐고 흔들었을 뿐이다.
"소용없어. 내가 처음으로 만든 풍선이었어. 첫번째 풍선만이 가장 아름다워. 첫 풍선이 소용없게 되면, 더이상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아빠는 이미 없어졌어요. 제 마음 속에서 죽은 거나 다름없어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그 시절, 우리들의 그 시절엔 저는 몰랐습니다. 먼 옛날 한 바보 왕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제단 앞에 엎드린 채 환상의 세계에 이렇게 물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이런 문장들을 곱씹으며 눈물짓는 게 다였다. 가슴은 아픈데 뭔가 잡히지는 않는...

어른이 되어(2003년쯤?) 청년사에서 이 책이 이희재 님의 만화로 나왔다. 그당시 학급문고에 사놓았다가 닳고닳아 몇 년 후 처분했던 기억이... 어른이 되어 만화로 본 라임오렌지 나무엔 첫 느낌이 거의 그대로 살아있었다. 제제를 비롯하여 캐릭터들도 어색하지 않았다. 첫 풍선을 찢긴 후 처절하게 얻어맞고 글로리아 누나와 울며 속삭이던 그 느낌도, 뽀르뚜가 아저씨와 물놀이를 하던 강가에 누워 "왜 우리 아빠한테 절 달라고 하지 않으세요?" 물을 때의 그 울컥함, 망가라치바가 앗아가버린 진정한 사랑에 삶의 끈을 놓듯이 앓아누워버린 제제의 안타까운 모습도 다 생생히 살아있었다.

10년도 넘게 흘러 양철북 출판사에서 이 만화가 다시 출간되니 반갑다. 그때 샀던 책을 갖고 있지 않아서 비교는 못하겠지만 거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나이를 더 먹었지. 어쩌면 제제 아빠나 뽀르뚜가 아저씨 보다도 더. 그래도 볼 때마다 가슴을 선뜻선뜻 베는 듯한 느낌은 여전하다.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일찍 철이 든 작은 아이 하나가 이렇게 슬프고 먹먹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다니 참 신기하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 나보다 큰 감정의 경험들을 했다. 구박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가정폭력, 필요없는 아이라는 소외감,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준 아저씨와의 만남, 그 귀한 존재를 금방 데려간 버린 세상....
"아기예수, 넌 나빠."
아이는 어떻게 그 아픔을 삭이며 어른이 되었을까.

어린 제제가 가정 안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제대로 사랑받아보지 못했다는 걸, 고딩 때 처음 읽었을 때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왜 저를 사가지 않으세요?" 라는 말이 제제가 정말 특이한 아이라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난 그때 어렸으면서도 부모를 이해하려 했던 건가.... 지금 보니 제제의 말은 너무 당연한 거다. 핏줄이란 울타리는 절대적인 게 아니다. 아빠는 용서를 빌었고 제제는 용서했지만, 사랑할 순 없었을지도 모른다. 제제의 말대로 '마음 속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실제로 자주 일어난다. 어른은 아이에게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처음 읽었던 그때부터 제제는, 나라는 독자에게 너무 작고 어리고 애틋하고 사랑스런 존재였지만 사사건건 사고치는 악동인 것도 사실이다. 동네 사람들을 골탕먹이고, 누나를 '갈보'라고 욕하고, 아빠 앞에서 "난 발가벗은 여자가 좋아~"라는 노래를 부른다. 이걸 요즘 버전으로 바꿔 보자. 나는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아이의 지독한 외로움과 소외감에 한줄기 빛이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일까?

독한 아픔에서 천천히 딛고 일어나 어른이 된 제제. 마지막으로, 제목인 라임오렌지 나무(밍기뉴)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본다. 뽀르뚜가 아저씨처럼 절절히 사랑하지도 현실적인 어떤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밍기뉴는 제제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그 나무는 제제가 고른 나무였고, 제제만의 나무였고, 그를 통해 상상했고 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기 때문에. 사경을 헤매던 제제를 일으켜 세운 건 그래서 밍기뉴였다. 아이들은 환경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마다 자신들의 밍기뉴를 찾을 수만 있다면......

어린 제제가 아리오발도 씨를 따라다니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악보를 팔던 장면을 영화로 보고 싶다. 그 고운 목소리의 제제는 어른이 되어서도 노래를 부를까? 아이는 금방 자란다. 하지만 어린시절은 그 안의 어떤 방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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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동 명탐정 바다로 간 달팽이 21
정명섭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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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동.... 30년 전 추억이 돋는 동네 이름이라 눈길이 갔다. 그 옆의 광명시 철산동에 살았는데 그때는 광명시에 지하철이 없을 때라 개봉역까지 걸어가야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지금 가보면 다른 동네 같겠지? 어쨌든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동네 아닐지. 주인공들은 이 동네에 사는 백수(나 다름없는) 추리작가를 꿈꾸는 탐정 민준혁 씨와 그의 조수 중딩 안상태 군.

나는 처음 보는 작가인데 그동안 나온 작품들이 아주 많고(목록을 보니 제목을 들어본 작품은 꽤 있다) 이 주인공 콤비가 나오는 전작들도 있는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작품의 세계는 끝이 없구나. 이 책은 흥미진진했다. 청소년은 나의 관심 의무 대상이 아닌지라 청소년 소설은 자주 읽지 않는데, 막상 읽어보면 재미난 작품들이 많다. 더구나 이 책은 추리물이니.

탐정이 그 이름에 걸맞게 지적이고 샤프하며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에 자기관리도 철저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를 풍기는 경우와, 백수에 허풍에 속이 빤히 보이는 허접한 처신을 하는 허당인 경우 중 어느 주인공이 더 매력적일까? 실존인물이라면 전자를 높이 사겠지만 소설 속 인물로는 후자를 선택하겠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준혁 씨 같은. 평상시에는 몇몇 잡기 빼고는 잘하는 것도 없고 헛다리 짚기 일쑤며 인격도 고매하지 못한 모습에 친근한 이웃(약간 한심한) 같은 느낌을 갖다가, 결정적인 순간 발휘되는 그의 기지와 살신성인에 박수를 보낼 때 짜릿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ㅎㅎ

이 책에선 세 편에서 다른 사건을 다루는데 1,3편은 조수 안상태가, 2편은 탐정 준혁 씨가 화자로 나온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내겐 사건들이 모두 새롭고 강렬했다. 1편 [지켜주는 자의 목소리]의 사건은 정식으로 의뢰받은 사건이다. 늦둥이 고3 아들이 뭔가에 빠져 이상해졌는데 무엇인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였다. 중딩 안상태의 특기인 해킹 짓으로 비번을 따고 들어가 본 까페는 '사령 까페'라나? 초보 미신 같은 신념에 어른들도 빠지고 그 꼬임에 멀쩡한 고등학생까지 빠지는.... 마음 둘 데 없는 방황기의 학생들을 포섭해 이용해먹는 파렴치한 놈들은 다 콩밥을 먹여야된다. 한편으로 심리적인 면에서 위태로운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면(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많다.) 이런 범죄의 가능성이 얼마나 활짝 열려있는가 탄식할 일이다.

두번째 사건 [불타는 교실]에선 상태가 화자가 될 수 없었다. 상태 본인이 피의자가 되어 도피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들은 조수 상태의 활약상이 큰데 이 사건은 오롯이 민준혁 탐정 홀로 해결해야 되는 일. 탐정은 조수의 누명을 벗길 뿐 아니라 고질적인 학교폭력, 학생들간 권력관계의 실상까지 까발린다. 속이 시원할 일이다. 하지만 마음이 몹시 찜찜했다. 착하지만 마음 약한 담임선생의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아서. 악 앞에서는 착함이 선이 아니다. 오히려 강함이 선이 될 수 있다. 냉철한 강함을 갖고 있고 싶다. 즉, 갖고만 있고 써먹을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에고 무거운 이마음.ㅠ

마지막 [리얼리티 쇼]에서 사건은 살인사건....ㄷㄷㄷ 방송국 리얼리티 쇼에 지원한 두 사람 외 몇 명은 고립된 섬에서 카메라에 둘러싸인 채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그것도 피의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말이다. "범인은 이 안에" 으으으 오싹하다. 실제로 그 안에서 제 2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탐정 조수 콤비는 사건해결과 동시에 악의 수장인 '진모태'의 정체까지 밝혀낸다. 그러나 자축 팥빙수를 먹는 그들의 눈앞에 진모태가 다시 나타남으로써 둘의 활약 이야기는 to be continued 임을 예고하며 책은 끝난다.

어릴때 홈즈 시리즈에 열광했었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축약본이었고 어른이 되어선 추리소설을 거의 읽지 않아서, 추리소설로서의 이 책의 위치랄까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작은 데 잘 꽂히는 나는 '이 상황에서 이런게 가능해?' 라고 고개를 갸웃하며 읽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가능성만으로 사건 과정이 이루어지진 않겠지. 어쨌든 심장 쫀쫀한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중딩 상태를 통해 이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그늘을 보여준다는 것. 하지만 그늘 속에서도 한줄기 햇빛을 받으려 가지를 뻗는 상태의 모습은 짠하고도 기특하다. 부모도 없고 할머니마저 술주정뱅이에 동생까지 챙겨야 하는 상태는 '돈 되는 일을 하려고' 준혁 씨 옆에 붙었지만 둘의 콤비는 서로에게 윈윈이다. 유능감은 자존감으로 자존감은 건강함으로 이들을 이끌 것이다. 그늘에 처한 많은 청소년들이 이런 기회를 찾기를, 찾았을 때 그 길이 보이는 사회이길 제발, 바란다.

이 책을 읽고 작가님의 다른 책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라>를 빌려왔다. 그리고 다른 책에서 준혁 씨와 상태를 또 만나면 몹시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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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녕의 빵점 도전기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53
정연철 지음, 최보윤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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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문고 중 신간이다. 4학년 정도에 딱 적당할 듯한 내용으로 단편 3편이 들어있다. 물론 3학년도 좋고, 5학년도 부담없이 읽고 이야기 나누기에 좋겠다.

각 편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이들은 각기 다르지만 다 읽고 나면 뭔가는 통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먼저 다른 점을 말한다면,
[공기의 여왕]의 미지는 교실에서 존재감이 없다. 아니 그정도가 아니라 기피 대상이다. 잘하는 건 없고 못생기고 몸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루하루 벌어먹기도 바쁘고 피곤한 엄마는 미지를 깨끗이 씻겨주지도 살뜰히 보살피지도 못한다. 미지 또한 스스로 자기를 챙길 만큼 야무진 성격은 못 된다. 나 어릴 적 우리 엄마가 이랬다면 난 딱 미지와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엄만 날마다 삼남매를 비누냄새 나도록 빡빡 씻기고 기계로 깎은 듯 고르게 연필을 깎아주고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싸주셨다. 공부는 잘했지만 몸으로 하는 건 뭐든 젬병이었던 나는 그럭저럭 구박은 받지 않으며 지냈다. 미지의 상황이었다면 난 회복불능이었을 것. 환경은 이리도 중요하다. 난 운이 좋았던 거지.

[암호명 땅콩]의 예준이도 부모님이 바쁘다는 건 미지와 같지만 과보호 아래 있다는 점이 좀 다르다. 엄마를 대신해 외할머니가 일거수일투족을 챙겨준다. 지친 할머니가 예고없이 며칠 시골에 내려가시자 엄마는 그 며칠도 불안해 도우미를 구하는데, 여의치 않아 결국 여고생 예슬이 이 일을 맡게 된다. 이 이야기의 재미는 예슬이 예준에게 전수하는 적당한 일탈에 있다.

[백준녕의 빵점 도전기]의 준녕이는 완전 다른 캐릭터다. 이 아이한테 젤 쉬운 건 공부다. 책 읽는 것, 문제 푸는 것, 영어 외우는 것, 이런 건 준녕이한테 '그냥 되는 것'이다. 고무된 엄마는 아이에게 영재교육을 시키고 싶어한다. 과한 기대에 짓눌린 준녕이에게 나타나는 증상이 있다. 바로 '독한 방귀'다. '방귀쟁이 며느리'에서 착안하신 것일까?^^

이처럼 다른 세 아이에게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자존감과 자기주도성의 필요' 라고 할까? 표면적으로는 미지의 경우가 가장 어려운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냄새난다고 따돌림당하며 움츠러든 미지에게 반전의 기회가 오기는 참 어렵다. 다행히 적당히 따뜻하고 적절히 관심을 보여주시는 담임선생님이 계셨다. (너무 들이대는 관심은 내가 참 싫어해서) 미지의 머리에서 이가 떨어진 날, 선생님은 미지를 상담실로 데려가 찬찬히 살펴보시고는 집에 먼저 가라고 하시는데, 그때 기어들어가듯 "급식..."이라고 하는 말에 "아 맞다. 선생님이 그 생각을 못 했구나." 하며 미안해 하시다가 "여기 좀 있다가 종치면 급식 먹고 가." 라고 하신다. 그리고 엄마에게 연락하셔서 미지는 그날 엄마랑 미용실에도 가고 머리도 감을 수 있었다.

부모의 여력이 없는 경우에 주변인의 조력은 숨쉴 구멍이 되어준다. 교사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교사가 그것을 하는 과정에 난관이 높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심하게 예의없거나 공격적인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마음을 내어주기는 어렵다. 위의 미지 선생님처럼 했을 때, 같은 행동을 두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학부모도, 희한한 논리로 교사 숨통을 조이는 학부모도 있다. 성인군자 같은 훌륭한 선생님도 계시긴 하지만 나같은 평범한 교사는 상처받고 꺾인다. 미지 선생님 정도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그냥 평범한 교사다. 다행히 미지는 마음이 참 예쁜 아이였고 '공기의 여왕'이 된 미지에게 부러움과 환호를 보내는 반 아이들도 단순하고(^^) 예쁘다. 판을 깔아준 선생님의 배려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모든게 맞아떨어진 해피엔딩이다. 실제는 좀더.... 아니 훨씬 어렵다. 교사의 조력이 아이들 간의 격차를 얼마나 좁혀줄 수 있을까. 이건 교사들의 고민이자 화두이면서 도전해본 교사들의 트라우마이기도 하니까.... 말하자면 길다.ㅠㅠ 어찌됐든 포기해서는 안 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예준이 이야기가 제일 유쾌했다. 도우미로 온 여고생 예슬이 때문이다. (아무리 급했다지만 이걸 그냥 맡긴 예준이 엄마도 허당) "그건 몸에 해로운데" "그건 나쁜 건데" 하는 예준이에게 라면, 햄버거, 만화, 노래방 등등 일탈의 맛을 체험시킨다. 마지막에 할머니가 돌아오셔서 푸짐하고 따뜻한 식탁의 해피엔딩. 예준이는 이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거다. 비례하여 일탈의 횟수도.ㅎㅎㅎ

준녕이는 말하자면 엄친아라서 친구들이 보기엔 밥맛일 수도 있지만 본인은 억울할 것이다. 그냥 나는 그게 잘되는 것 뿐이라고! 너네들도 잘되는 게 있잖아. 서로 다른 것 뿐이지. 그런데 이나라에선 공부가 잘되는게 최우선이라 나머지 재능들을 압도할 뿐 아니라 '방귀'로 상징되는 압박을 가하기까지 하니 문제인 것이다. 어쨌거나 준녕이는 표지 그림처럼 시원한 방귀를 뀌고도 모자라 빵점 시위까지 했으니, 앞날이 기대된다 하겠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재능이 있다고는 하지만 "세상은 왜이리 불공평한가요." 울부짖고 싶게 만드는 다재다능 팔방미인들도 있다. 갈수록 더 그런 것 같다. 교실에서도 못하는 게 없어보이는 아이와 재능을 찾아보기 어려운 아이들이 공존하며 그 간격은 더 커지는 느낌이다. 그 사이에 자존감이 존재한다.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라고 했던 이효리 씨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재능에 관계없이 본인의 존재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남이 가진 재능에 의미를 크게 두는 사람이라면 평생 나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살겠지....^^;;;; 이 책이 아이들의 자존감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크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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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과 나 사계절 아동문고 96
송미경 지음, 모예진 그림 / 사계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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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돌 씹어먹는 아이>를 시작으로 송미경 작가님의 책들을 다 읽고 서평도 대부분 썼다. 이분의 작품에는 늘 감탄하는데, 다루기 힘든 소재라든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취재가 대단해서 등의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나도 접해본, 나도 익히 아는 주변의 익숙한 배경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이런 글을 어떻게 쓰지'라는 감탄이 나오는 건 왜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눈에 크게 보이는 건 두 가지다. 시선과 문체.

어떻게 이런 내면을 들여다보았지? 어떻게 이 작은 것을 흘리지 않고 포착했지?라는 감탄을 하게 만드는 작가의 시선. 그리고 화려한 문장도 없이 평범한 것 같지만 느낌이 각별한 그 문체. 이 책에서도 그 두 가지를 다 느꼈다.

표지엔 커다란 동물에 기대어있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실제 크기 비례와는 맞지 않는 그림이다. 왜냐하면 그 동물은 햄스터이기 때문. 햄릿은 주인 미유가 붙여준 이름이다.

반려동물과의 애틋한 사랑은 자주 다뤄지는 소재다. 개나 고양이라면 나도 충분히 공감한다. 근데 햄스터는 좀.... 나도 예전에 고슴도치 세 마리를 키워 본 경험이 있다. 첫 녀석이 죽었을 때는 아들딸이 눈이 빨개지도록 울고, 묻어주고 했었는데.... 둘째, 셋째 때는 그냥 그랬다. 이후 개를 키우면서 느꼈다. 다 같은 반려동물이 아니구나. 공감능력(어떻게 보면 지능?) 여부에 따라 천지차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햄스터란 그닥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번식력이 너무 왕성한 것도, 서로를 잡아먹는 것도 커다란 비호감 요소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이 책에는 공감되었다. 위에 언급한 작가의 능력이다.

햄스터 이야기와 함께 얽혀 나가는 또 한 줄기의 이야기는 '가족'이다. 미유와 친구들의 혈액형 이야기는 복선이었다.(바로 눈치챌 수 있지만) 미유는 자신이 '가족'이 아님을 알게 된다. 입양되었던 것이다. 이모와의 애정이 각별해서 나는 이모가 미혼모인가 추측했는데 그건 너무 넘겨짚은 거였다.^^;;; 하여간 미유는 마음의 풍랑을 겪는다. 격렬하진 않지만 아프게. 햄스터의 병과 치료, 죽음의 과정과 미유의 정체성에 대한 아픔은 얽혀 나아가며 커다란 진동을 이룬다. 미유가 햄릿을 보내는 과정은 성장통이었다고 하겠다. 인생을 배웠다고 할까. 독자들도 잔잔히 따라 배운다. 인생은 만남이며 또 헤어짐이라는 것을. 하필 할머니 생신날에 세상을 떠난 햄릿. 할머니가 생신상 앞에서 가족들에게 주신 말씀이 진리다.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죽는 게 당연한 거지. 헤어지지 않는 만남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 그래도 사랑하며 살았으면 되는 거야."

문학작품을 통해서 난 주로 인간의 찌질한 본성을 많이 접해왔는데, 이 책은 그 반대다. 입양가족의 흔들림 없는 사랑. 솔직히 내가 가늠하기엔 어려운 사랑이다. 그래도 현실성이 없다는 둥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 이런 분들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니까. 미유 친엄마(미혼모)일 거라 내가 오해했던 이모의 사랑은 참 특별하다. 어찌 그리 정이 많고 깊을 수 있을까. 또 침착하고 단단한 엄마의 사랑도 그렇다. 엄마는 미유에게 가족의 의미를 알려준다.
"가짜 딸이 어디 있니? 너는 햄릿도 우리 가족이라고 하잖아. 햄릿이 가짜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 없잖아. 우리와 생김도 다르고 말도 안 통하고, 심지어 조금밖에 같이 안 살았는데도."

사랑의 그릇이 달라 나는 이분들을 흉내내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들이 알려준 가족의 의미, 그리고 만남과 헤어짐의 순리는 꼭 기억하겠다. 아니다, 순서를 바꾸겠다. 헤어짐과 만남이라고.

미유는 햄릿을 보내는 편지에 '나중에 만나서 모든 걸 이야기하자'고 적었다고 했다. 조그만 한 생명을 보내며 정성을 다하고 손을 맞잡는 미유와 친구들에 모습에 마음이 먹먹하고,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감정을 차단하고 살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게 나와 작가님의 차이 아니겠어. 작가님은 아마도 많이 힘드실 거야.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렇게 살아야 글이 나온다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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