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준녕의 빵점 도전기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53
정연철 지음, 최보윤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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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문고 중 신간이다. 4학년 정도에 딱 적당할 듯한 내용으로 단편 3편이 들어있다. 물론 3학년도 좋고, 5학년도 부담없이 읽고 이야기 나누기에 좋겠다.

각 편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이들은 각기 다르지만 다 읽고 나면 뭔가는 통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먼저 다른 점을 말한다면,
[공기의 여왕]의 미지는 교실에서 존재감이 없다. 아니 그정도가 아니라 기피 대상이다. 잘하는 건 없고 못생기고 몸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루하루 벌어먹기도 바쁘고 피곤한 엄마는 미지를 깨끗이 씻겨주지도 살뜰히 보살피지도 못한다. 미지 또한 스스로 자기를 챙길 만큼 야무진 성격은 못 된다. 나 어릴 적 우리 엄마가 이랬다면 난 딱 미지와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엄만 날마다 삼남매를 비누냄새 나도록 빡빡 씻기고 기계로 깎은 듯 고르게 연필을 깎아주고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싸주셨다. 공부는 잘했지만 몸으로 하는 건 뭐든 젬병이었던 나는 그럭저럭 구박은 받지 않으며 지냈다. 미지의 상황이었다면 난 회복불능이었을 것. 환경은 이리도 중요하다. 난 운이 좋았던 거지.

[암호명 땅콩]의 예준이도 부모님이 바쁘다는 건 미지와 같지만 과보호 아래 있다는 점이 좀 다르다. 엄마를 대신해 외할머니가 일거수일투족을 챙겨준다. 지친 할머니가 예고없이 며칠 시골에 내려가시자 엄마는 그 며칠도 불안해 도우미를 구하는데, 여의치 않아 결국 여고생 예슬이 이 일을 맡게 된다. 이 이야기의 재미는 예슬이 예준에게 전수하는 적당한 일탈에 있다.

[백준녕의 빵점 도전기]의 준녕이는 완전 다른 캐릭터다. 이 아이한테 젤 쉬운 건 공부다. 책 읽는 것, 문제 푸는 것, 영어 외우는 것, 이런 건 준녕이한테 '그냥 되는 것'이다. 고무된 엄마는 아이에게 영재교육을 시키고 싶어한다. 과한 기대에 짓눌린 준녕이에게 나타나는 증상이 있다. 바로 '독한 방귀'다. '방귀쟁이 며느리'에서 착안하신 것일까?^^

이처럼 다른 세 아이에게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자존감과 자기주도성의 필요' 라고 할까? 표면적으로는 미지의 경우가 가장 어려운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냄새난다고 따돌림당하며 움츠러든 미지에게 반전의 기회가 오기는 참 어렵다. 다행히 적당히 따뜻하고 적절히 관심을 보여주시는 담임선생님이 계셨다. (너무 들이대는 관심은 내가 참 싫어해서) 미지의 머리에서 이가 떨어진 날, 선생님은 미지를 상담실로 데려가 찬찬히 살펴보시고는 집에 먼저 가라고 하시는데, 그때 기어들어가듯 "급식..."이라고 하는 말에 "아 맞다. 선생님이 그 생각을 못 했구나." 하며 미안해 하시다가 "여기 좀 있다가 종치면 급식 먹고 가." 라고 하신다. 그리고 엄마에게 연락하셔서 미지는 그날 엄마랑 미용실에도 가고 머리도 감을 수 있었다.

부모의 여력이 없는 경우에 주변인의 조력은 숨쉴 구멍이 되어준다. 교사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교사가 그것을 하는 과정에 난관이 높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심하게 예의없거나 공격적인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마음을 내어주기는 어렵다. 위의 미지 선생님처럼 했을 때, 같은 행동을 두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학부모도, 희한한 논리로 교사 숨통을 조이는 학부모도 있다. 성인군자 같은 훌륭한 선생님도 계시긴 하지만 나같은 평범한 교사는 상처받고 꺾인다. 미지 선생님 정도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그냥 평범한 교사다. 다행히 미지는 마음이 참 예쁜 아이였고 '공기의 여왕'이 된 미지에게 부러움과 환호를 보내는 반 아이들도 단순하고(^^) 예쁘다. 판을 깔아준 선생님의 배려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모든게 맞아떨어진 해피엔딩이다. 실제는 좀더.... 아니 훨씬 어렵다. 교사의 조력이 아이들 간의 격차를 얼마나 좁혀줄 수 있을까. 이건 교사들의 고민이자 화두이면서 도전해본 교사들의 트라우마이기도 하니까.... 말하자면 길다.ㅠㅠ 어찌됐든 포기해서는 안 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예준이 이야기가 제일 유쾌했다. 도우미로 온 여고생 예슬이 때문이다. (아무리 급했다지만 이걸 그냥 맡긴 예준이 엄마도 허당) "그건 몸에 해로운데" "그건 나쁜 건데" 하는 예준이에게 라면, 햄버거, 만화, 노래방 등등 일탈의 맛을 체험시킨다. 마지막에 할머니가 돌아오셔서 푸짐하고 따뜻한 식탁의 해피엔딩. 예준이는 이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거다. 비례하여 일탈의 횟수도.ㅎㅎㅎ

준녕이는 말하자면 엄친아라서 친구들이 보기엔 밥맛일 수도 있지만 본인은 억울할 것이다. 그냥 나는 그게 잘되는 것 뿐이라고! 너네들도 잘되는 게 있잖아. 서로 다른 것 뿐이지. 그런데 이나라에선 공부가 잘되는게 최우선이라 나머지 재능들을 압도할 뿐 아니라 '방귀'로 상징되는 압박을 가하기까지 하니 문제인 것이다. 어쨌거나 준녕이는 표지 그림처럼 시원한 방귀를 뀌고도 모자라 빵점 시위까지 했으니, 앞날이 기대된다 하겠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재능이 있다고는 하지만 "세상은 왜이리 불공평한가요." 울부짖고 싶게 만드는 다재다능 팔방미인들도 있다. 갈수록 더 그런 것 같다. 교실에서도 못하는 게 없어보이는 아이와 재능을 찾아보기 어려운 아이들이 공존하며 그 간격은 더 커지는 느낌이다. 그 사이에 자존감이 존재한다.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라고 했던 이효리 씨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재능에 관계없이 본인의 존재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남이 가진 재능에 의미를 크게 두는 사람이라면 평생 나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살겠지....^^;;;; 이 책이 아이들의 자존감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크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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