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과 나 사계절 아동문고 96
송미경 지음, 모예진 그림 / 사계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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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돌 씹어먹는 아이>를 시작으로 송미경 작가님의 책들을 다 읽고 서평도 대부분 썼다. 이분의 작품에는 늘 감탄하는데, 다루기 힘든 소재라든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취재가 대단해서 등의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나도 접해본, 나도 익히 아는 주변의 익숙한 배경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이런 글을 어떻게 쓰지'라는 감탄이 나오는 건 왜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눈에 크게 보이는 건 두 가지다. 시선과 문체.

어떻게 이런 내면을 들여다보았지? 어떻게 이 작은 것을 흘리지 않고 포착했지?라는 감탄을 하게 만드는 작가의 시선. 그리고 화려한 문장도 없이 평범한 것 같지만 느낌이 각별한 그 문체. 이 책에서도 그 두 가지를 다 느꼈다.

표지엔 커다란 동물에 기대어있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실제 크기 비례와는 맞지 않는 그림이다. 왜냐하면 그 동물은 햄스터이기 때문. 햄릿은 주인 미유가 붙여준 이름이다.

반려동물과의 애틋한 사랑은 자주 다뤄지는 소재다. 개나 고양이라면 나도 충분히 공감한다. 근데 햄스터는 좀.... 나도 예전에 고슴도치 세 마리를 키워 본 경험이 있다. 첫 녀석이 죽었을 때는 아들딸이 눈이 빨개지도록 울고, 묻어주고 했었는데.... 둘째, 셋째 때는 그냥 그랬다. 이후 개를 키우면서 느꼈다. 다 같은 반려동물이 아니구나. 공감능력(어떻게 보면 지능?) 여부에 따라 천지차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햄스터란 그닥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번식력이 너무 왕성한 것도, 서로를 잡아먹는 것도 커다란 비호감 요소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이 책에는 공감되었다. 위에 언급한 작가의 능력이다.

햄스터 이야기와 함께 얽혀 나가는 또 한 줄기의 이야기는 '가족'이다. 미유와 친구들의 혈액형 이야기는 복선이었다.(바로 눈치챌 수 있지만) 미유는 자신이 '가족'이 아님을 알게 된다. 입양되었던 것이다. 이모와의 애정이 각별해서 나는 이모가 미혼모인가 추측했는데 그건 너무 넘겨짚은 거였다.^^;;; 하여간 미유는 마음의 풍랑을 겪는다. 격렬하진 않지만 아프게. 햄스터의 병과 치료, 죽음의 과정과 미유의 정체성에 대한 아픔은 얽혀 나아가며 커다란 진동을 이룬다. 미유가 햄릿을 보내는 과정은 성장통이었다고 하겠다. 인생을 배웠다고 할까. 독자들도 잔잔히 따라 배운다. 인생은 만남이며 또 헤어짐이라는 것을. 하필 할머니 생신날에 세상을 떠난 햄릿. 할머니가 생신상 앞에서 가족들에게 주신 말씀이 진리다.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죽는 게 당연한 거지. 헤어지지 않는 만남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 그래도 사랑하며 살았으면 되는 거야."

문학작품을 통해서 난 주로 인간의 찌질한 본성을 많이 접해왔는데, 이 책은 그 반대다. 입양가족의 흔들림 없는 사랑. 솔직히 내가 가늠하기엔 어려운 사랑이다. 그래도 현실성이 없다는 둥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 이런 분들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니까. 미유 친엄마(미혼모)일 거라 내가 오해했던 이모의 사랑은 참 특별하다. 어찌 그리 정이 많고 깊을 수 있을까. 또 침착하고 단단한 엄마의 사랑도 그렇다. 엄마는 미유에게 가족의 의미를 알려준다.
"가짜 딸이 어디 있니? 너는 햄릿도 우리 가족이라고 하잖아. 햄릿이 가짜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 없잖아. 우리와 생김도 다르고 말도 안 통하고, 심지어 조금밖에 같이 안 살았는데도."

사랑의 그릇이 달라 나는 이분들을 흉내내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들이 알려준 가족의 의미, 그리고 만남과 헤어짐의 순리는 꼭 기억하겠다. 아니다, 순서를 바꾸겠다. 헤어짐과 만남이라고.

미유는 햄릿을 보내는 편지에 '나중에 만나서 모든 걸 이야기하자'고 적었다고 했다. 조그만 한 생명을 보내며 정성을 다하고 손을 맞잡는 미유와 친구들에 모습에 마음이 먹먹하고,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감정을 차단하고 살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게 나와 작가님의 차이 아니겠어. 작가님은 아마도 많이 힘드실 거야.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렇게 살아야 글이 나온다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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