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동 명탐정 바다로 간 달팽이 21
정명섭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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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동.... 30년 전 추억이 돋는 동네 이름이라 눈길이 갔다. 그 옆의 광명시 철산동에 살았는데 그때는 광명시에 지하철이 없을 때라 개봉역까지 걸어가야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지금 가보면 다른 동네 같겠지? 어쨌든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동네 아닐지. 주인공들은 이 동네에 사는 백수(나 다름없는) 추리작가를 꿈꾸는 탐정 민준혁 씨와 그의 조수 중딩 안상태 군.

나는 처음 보는 작가인데 그동안 나온 작품들이 아주 많고(목록을 보니 제목을 들어본 작품은 꽤 있다) 이 주인공 콤비가 나오는 전작들도 있는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작품의 세계는 끝이 없구나. 이 책은 흥미진진했다. 청소년은 나의 관심 의무 대상이 아닌지라 청소년 소설은 자주 읽지 않는데, 막상 읽어보면 재미난 작품들이 많다. 더구나 이 책은 추리물이니.

탐정이 그 이름에 걸맞게 지적이고 샤프하며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에 자기관리도 철저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를 풍기는 경우와, 백수에 허풍에 속이 빤히 보이는 허접한 처신을 하는 허당인 경우 중 어느 주인공이 더 매력적일까? 실존인물이라면 전자를 높이 사겠지만 소설 속 인물로는 후자를 선택하겠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준혁 씨 같은. 평상시에는 몇몇 잡기 빼고는 잘하는 것도 없고 헛다리 짚기 일쑤며 인격도 고매하지 못한 모습에 친근한 이웃(약간 한심한) 같은 느낌을 갖다가, 결정적인 순간 발휘되는 그의 기지와 살신성인에 박수를 보낼 때 짜릿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ㅎㅎ

이 책에선 세 편에서 다른 사건을 다루는데 1,3편은 조수 안상태가, 2편은 탐정 준혁 씨가 화자로 나온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내겐 사건들이 모두 새롭고 강렬했다. 1편 [지켜주는 자의 목소리]의 사건은 정식으로 의뢰받은 사건이다. 늦둥이 고3 아들이 뭔가에 빠져 이상해졌는데 무엇인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였다. 중딩 안상태의 특기인 해킹 짓으로 비번을 따고 들어가 본 까페는 '사령 까페'라나? 초보 미신 같은 신념에 어른들도 빠지고 그 꼬임에 멀쩡한 고등학생까지 빠지는.... 마음 둘 데 없는 방황기의 학생들을 포섭해 이용해먹는 파렴치한 놈들은 다 콩밥을 먹여야된다. 한편으로 심리적인 면에서 위태로운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면(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많다.) 이런 범죄의 가능성이 얼마나 활짝 열려있는가 탄식할 일이다.

두번째 사건 [불타는 교실]에선 상태가 화자가 될 수 없었다. 상태 본인이 피의자가 되어 도피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들은 조수 상태의 활약상이 큰데 이 사건은 오롯이 민준혁 탐정 홀로 해결해야 되는 일. 탐정은 조수의 누명을 벗길 뿐 아니라 고질적인 학교폭력, 학생들간 권력관계의 실상까지 까발린다. 속이 시원할 일이다. 하지만 마음이 몹시 찜찜했다. 착하지만 마음 약한 담임선생의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아서. 악 앞에서는 착함이 선이 아니다. 오히려 강함이 선이 될 수 있다. 냉철한 강함을 갖고 있고 싶다. 즉, 갖고만 있고 써먹을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에고 무거운 이마음.ㅠ

마지막 [리얼리티 쇼]에서 사건은 살인사건....ㄷㄷㄷ 방송국 리얼리티 쇼에 지원한 두 사람 외 몇 명은 고립된 섬에서 카메라에 둘러싸인 채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그것도 피의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말이다. "범인은 이 안에" 으으으 오싹하다. 실제로 그 안에서 제 2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탐정 조수 콤비는 사건해결과 동시에 악의 수장인 '진모태'의 정체까지 밝혀낸다. 그러나 자축 팥빙수를 먹는 그들의 눈앞에 진모태가 다시 나타남으로써 둘의 활약 이야기는 to be continued 임을 예고하며 책은 끝난다.

어릴때 홈즈 시리즈에 열광했었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축약본이었고 어른이 되어선 추리소설을 거의 읽지 않아서, 추리소설로서의 이 책의 위치랄까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작은 데 잘 꽂히는 나는 '이 상황에서 이런게 가능해?' 라고 고개를 갸웃하며 읽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가능성만으로 사건 과정이 이루어지진 않겠지. 어쨌든 심장 쫀쫀한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중딩 상태를 통해 이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그늘을 보여준다는 것. 하지만 그늘 속에서도 한줄기 햇빛을 받으려 가지를 뻗는 상태의 모습은 짠하고도 기특하다. 부모도 없고 할머니마저 술주정뱅이에 동생까지 챙겨야 하는 상태는 '돈 되는 일을 하려고' 준혁 씨 옆에 붙었지만 둘의 콤비는 서로에게 윈윈이다. 유능감은 자존감으로 자존감은 건강함으로 이들을 이끌 것이다. 그늘에 처한 많은 청소년들이 이런 기회를 찾기를, 찾았을 때 그 길이 보이는 사회이길 제발, 바란다.

이 책을 읽고 작가님의 다른 책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라>를 빌려왔다. 그리고 다른 책에서 준혁 씨와 상태를 또 만나면 몹시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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