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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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회귀를 주장한 니체는 얼마나 용의주도하고 영민한가? 우리는 자신이 과거 10만 년 전에 무엇을 했는지, 혹은 앞으로 10만 년 뒤에 무엇을 할지 전혀 모른다. 단지 지금 무엇인가를 의지하고 실행하려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10만 년 전에도 반복되었고, 그리고 10만 년 뒤에도 영원히 반복될 것이라는 것만을 안다. 그러니까 온갖 억압과 고통을 극복하여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해야만 한다. 자신의 삶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지금 노예의 굴종과 비겁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노예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고, 지금 주인의 당당함과 자유를 쟁취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주인으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다. 마침내 우리는 자신을 가두어 길들이는 담벼락을 무너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유롭고 싶은가? 그렇다면 니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5쪽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 임제어록

..이것은 물론 미래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 즉 자신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지나친 소망 때문에 현재의 삶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당연히 부모와 친척으로 상징되는 과거에 대한 집착은 현재를 역동적으로 살 수 있는 자유에 장애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임제는 생각한 것이다. -50쪽

인간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고 겸허하게 그 결과를 초월자에게 내맡긴다면, 종교적 정신은 충분히 인문적 정신과 양립 가능하다. 그렇지만 종교적 정신은 치열한 성찰과 불굴의 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나약한 정신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차피 최종결과는 초월자가 결정한다고 믿기 쉽기 때문이다.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기 전, 옛사람들은 진인사대철명이란 선비 정신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는 초월자에게 기대기보다는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비범한 인문적 정신이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대천명이란 말 그대로 초연했다.

... 동학은 종교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서학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서학, 즉 기독교가 인간 외부의 초월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초월종교였다면, 동학은 인간 내부에서 신성을 찾았던 내재종교였기 때문이다. -70쪽

20세기 이후 현대 인문학의 고뇌를 대변하는 키워드는 두가지이다. 타자와 차이가 바로 그것이다. ...왜 20세기에 들어서야 타자와 차이라는 개념이 부각되었을까? 이것은 20세기의 인간만이 자신의 욕망, 혹은 자신만의 고유한 내면을 긍정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과거 사람들은 욕망을 부정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금욕이나 절욕이 성숙함의 척도처럼 기능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들이 과거 사람들이 우리보다 성숙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정확히 말해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긍정했다가는 살아남기도 힘든 사회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거나 숨기고 있는 여성에게서 어떻게 낯섦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생각과 욕망에 상대방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때에만 그는 나에게 타자로 드러날 수 있다.

과거 사람들은 가정에서든 국가에서든 조화를 최고의 이념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느 경우든 조화라는 이념은 구성원들이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는다면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조화의 이념 속에서는 타자와 차이에 대한 경험이 발생할 수 없다. -126쪽

스스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아이히만에게 그녀는 '순전한 무사유'의 책임을 부과한다. 아이히만은 자신에게 부여되었던 상부의 명령이 유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유대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수행할 임무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성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고 강조하낟. -155쪽

좀바르트는 사치란 특정 시대만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본성에 가가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치가 인간이 가진 허영, 즉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으려는 원초적인 욕망으로부터 기원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스스로를 화려하게 꾸며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려고 한다. 비록 내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것은 사치가 진정한 의미의 사치가 되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향락", 다시 말해 에로티즘과 관련된 관능적 활기를 수반해야 한다는 좀바르트의 지적이다.
....마침내 좀바르트는 19세기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된 원인들에 대해 베버와는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생계 수단을 넘어서는 부가 축적되어야 한다.','성생활이 과거보다 자유로워야 한다','다른 계급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려는 계급적 구별 의식이 탄생해야 한다.'.'향락과 구별 의식이 기능할 수 있는 대두시가 충분히 발달해야 한다.' 이런 다양한 우발적으로 마주치게 되면서 산업자본주의로 표방되는 '거대한 사치'의 세계가 서양에서 열렸다는 것, 이것이 좀바르트의 진단이다. -239쪽

한비자는 "덕은 득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덕은 단순히 도덕적인 품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얻는 대상은 사람이다. ...덕은 무력이나 재력과는 다른 능력이다. 무력이나 재력으로는 몸을 잡아둘 수 있을 뿐, 마음을 얻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렇지만 덕은 마음가지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덕이란 글자는 얻는다는 뜻의 득이란 글자오 ㅏ마음이란 뜻의 심이란 글자가 합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유비는 도대체 어디에서 덕이 가진 놀라운 힘을 배웠던 것일까? 바로 노자의 도덕경이다.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 이것을 '은미한 밝음'이라고 말한다. 유연하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되고, 국가의 이로운 도구는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도덕경-268쪽

이상과 현실의 타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사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실이란 급류, 그러니까 모든 것을 휩쓸어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끄록 가려는 압도적인 강물과 같은 것이지요. 여러분은 지금 이런 급류 속에 있는 겁니다. 그럼 이상이란 무엇일까요? 그건 여러분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나무토막 같은 겁니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그 나무토막을 강바닥에 박고 버텨야만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급류의 힘이 너무 강해 질질 끌려가기 쉬울 겁니다. 그렇지만 강바닥에 박은 나무토막이 없다면, 우리는 급류의 힘에 저항할 수도 없을 겁니다.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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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을 부탁해 - 스펙도 빽도 없는 청춘을 위한 일 찾기 프로젝트
함께일하는재단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2년 3월
품절


"신촌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학교 정문 앞에서부터 전철역까지의 긴 길을 가득 메운 상가 중에 카페는 많은데 병원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왜 그럴까 생각하니 단순하게 보자면 결국 젊은 사람들이 카페는 좋아하지만 병원은 싫어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만약 정말 사랑하는 카페가 동시에 마음에 드는 병원이라고 인식되는 공간을 만든다면 어떤 식으로든 임대료는 내고 살아남으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 생각했죠."
-제너럴 닥터 김제닥-34쪽

드라마 <싸인>의 아이템은 장항준 감독이 14여 년 전부터 계획한 것이다. 우리는 드라마를 3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에 만나지만 많은 이들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준비를 한다.

"우리 직업이란 게 준비하고 기다리는 거예요. 엎어지면 그 동안의 보상은 하나도 못 받지만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없죠"

"기회라는 것이 뒷머리채가 없다고 하잖아요. 자기 옆을 후다닥 스쳐 지나가는 기회라는 녀석을 뒤에서 따라가 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이에요. 자기가 얼마나 굶주려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얼마나 갈증을 느끼고 기회를 노리느냐에 따라 다른 거죠. 온종일 언제 퇴근할까 시계만 보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스쳐 지나간 것도 모를 거예요."

"사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할 인물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내 꿈이 뭐고, 난 뭘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못 찾을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렇게 자기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삶도 스트레스라고 생각해요. 한번 해보고 아니면 접을 수 있는 것도 용기예요."-51쪽

대부분 사람들이 크고 예쁜 사과를 좋아하잖아요? 하지만 사람들 생긴 모습이 다 다르듯이 농산물도 못생겼거나 흠집 있는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농부로부터에는 겉모양과 상관없이 건강하고 좋은 농산물을 판매하는 "생긴 대로" 코너가 있어요. 애써 과일을 키운 농부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멀쩡한 농산물을 버리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은 가격 부담 없이 값싸게 구매할 수 있는 거죠. 처음엔 '못난이'코너라고 불렀는데 못났다, 잘났다 하는 것도 철저히 인간 중심으로 판단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 '생긴 대로'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생긴 대로 삽시다' 그런 의미지요

-쌈지농부 천호균 -70쪽

스스로 만든 건 독립심이 강해서라기보다는 출판해줄 곳이 없어서였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출판사를 찾아다니지도 않았어요. 워낙 폐쇄적인 성격이라 겪어보지 않아도 기성 시스템에 대해 짐작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게다가 저랑 비슷한 콘텐츠를 가지고 기성 시스템에 진출한 결과물들을 보잖아요? 그걸 보니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걸 알았죠. 결론은 포기할 수 없다는 쪽이었고요.

만약 50명이 크레디트가 돼서 만든다고 하면 그 매거진은 오십 명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될까요? 제 생각에는 오히려 정반대로 가장 원치 않은 잡지가 나올 거라 생각해요. 이건 어떤 회사라도 마찬가지일거예요. 전자기기를 만드는 회사는 오십 명이 꿈꾸는 유토피아적 제품이 나올까, 아니면 오십 명이 생각하는 가장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는 제품이 나올까. 후자 아닐까요?

-유어마인드 대표 이로 -100쪽

우리나라에도 청년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마을공동체를 만든 사례가 있어요. 충남 홍성의 풀무학교가 있는 마을인데요. 지역 출신 청년들이 많이 있었어요. 1980년대 중반쯤에 이화여대 학생들이 농활을 와서 그 지역 청년들에게 반해 여러 쌍이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그 지역에 정착을 한 거죠.

- 커뮤니티 디자이너 임경수-179쪽

그래서 젊은 시절에 갑으로 살려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거죠.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하고 연봉 비교하고, 그거 40대 되면 엇갈려요.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즘 40대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만나면 사춘기예요.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되어 보이지만 늘 경쟁에 내몰려 있다 보니, 마흔쯤 되어서 내 인생은 뭔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 난 앞으로 뭐가 될까 등 사춘기 때나 하는 고민들을 하죠. 그런데 고생을 자초했던 친구들을 보면 당차고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있어요. 소득은 낮고 겉으로 보기에 근사해 보이지는 않죠.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내공에 의해서 그 사람이 결정이 되는데요. 대화를 한 10분만 나눠보면 느껴지거든요.

-에듀머니 대표 제윤경-216쪽

모두가 다 힘든 상황에서라면 그나마 청년이 제일 유리한게 아닌가. 오늘 당장 실패해도 잃는 게 크지 않으니 말이다.

-텀블벅 대표 염재승-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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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품절


나는 혼자 살고 싶었다. 내 일생을 바치고 싶었다. 자유롭게...

대학생이 된 후에도 나는 그런 결심을 되풀이했었다. 그러나 운명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롭지는 않다. 우리가 생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이 우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기치 않았던, 때로는 소망치 않는 방향과 형식 속에 생이 형성해 놓는다.
논리의 수미가 일관된 생을 우리는 희구한다. 그러나 생의 테제와 안티 테제는 논리에서처럼 당연한 일의적 단계를 밟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생은 너무나 혼돈적이고 어두운 밤의 측면과 꿈과 동경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작은 우연이 일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인간은 유리알처럼 맑게, 성실하고 무관심하게 살기에는 슬픔, 약함. 그리움, 향수를 너무 많이 그의 영혼 속에 담고 있다.
의식과 무의식이 일체가 되고 그와 객체 관계가 지양되는 투명한 순간은 우리에게 그렇게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분열된 의식과 전우주에 대한 고독감에 앓고 있다.
-30쪽

...우주선이 달세계로 가는 시대에 사는 인간은 영혼의 소박함을 잃은 지 오래된다. 사랑도 변형된 호기심인 경우가 많고 사랑의 행위에서도 지적인, 너무도 지적인 것이 현대인이다. 누구나가 자기의 원칙과 독백 속에 감금되어 있다. 자아에 망집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공관 속을 꿰뚫는 것은 현대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기적같은 희귀한 몇 개의 순간에서만 우리는 변신을 한다. 헌신과 희생이 가능해진다. 그 순간이 지나면 생은 다시금 어두운 것, 무표정한 것으로 된다.-31쪽

객관적으로 짧은, 그러나 주관적으로는 지루하게 긴 우리의 생에서 그래도 진주빛 광채를 지닌 기간이 있다면 그것은 유년기리라. 유년기 그것은 누구에게나 실락원이다.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라고 어떤 시인이 말했다. 어린 시절은 의외의 놀라움, 신비와 호기심, 감동에 넘친 지루하지 않은 한 페이지다. 그리고 우리는 몇 살이 돼도 그 장을 펼쳐 보고 싶어한다.

어릴 때 우리는 모두 초시간적이고 불사신이었다. 존재의 상처를 모르는 이상주의자였다. 성장한 뒤에도 어린 마음을 상실치 않은 이상주의자, 즉 영원한 유아는 현실과 부딪칠 때 늘 생사를 건 모험을 하게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어린애로서 즉 이데알리스트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일 뿐더러 정정 파국을 가져온다"
생에 좌초한 '어린애들' 위에 디디고 서서 개가를 올리는 것은 어느 세대에나 영원한 속물들, 인간을 목적으로 알지 않고 수단으로 아는 바리새인들, 현명한 준법자들, 투철한 리얼리스트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 이데아가 없다.
따라서 유년기가 없다. -32쪽

나의 지병인 페시미즘을 고쳐 줄 사람은 너밖에 없다. 생명에의 애착을 만들어 줄 사람은 너야. 오늘 밤 이런 것을 읽었다. '사랑? 사랑이란 무엇일까? 한 개의 육체와 영혼이 분열하여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염, 기타의 각 원소로 환원하려고 할 때 그것을 막는 것이 사랑이다.' 어느 자살자의 수기 중의 일구야.
장 아제베도!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 줘! 정말 너의 도움이 필요해. 나도 생명 있는 뜨거운 몸이고 싶어. 가능하면 생명을 지속하고 싶어.-43쪽

이상과 꿈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에게도 뜻밖인 형태로. 동화같이, 분홍 솜사탕 맛같이 느껴지는 유년기, 인식에 모든 것을 바쳤던 10대와 20대. 타자(사회)와 대면한 이래의 여러 가지의 괴로움, 아픔. 상처로 뒤덮인 20대 후반기... 지금 회상해 보면 한마디로 내가 '어렸었다'는 느낌뿐이다. 꿈이 너무 컸었다. 요구가 너무 지나쳤었다. 나 자신에게 타인에게 우주 전체에게...-155쪽

뮌헨에서 첫 아이를 낳았을 때였다. 나의 입원실에 면회 시간에 찾아온 남편은 커다란 냄비를 들고 있었다. 그 속에는 미역국이 담겨 있었고 호주머니에서 김초밥도 나왔다. 구구을 먹었더니 미역이 잘 안 씻겨서 지금지금 돌이 씹혔고 김밤의 밥은 설었다. 그러나 나는 가능한 한 맛있는 표정으로 끝까지 다 먹었고, 남편은 그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같은 방에 누워 있는 다른 해산부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총집중 되었다. -176쪽

이것이 나의 생활인가 하고 느낄 때 우리는 그 의식의 각성을 소중히 포착해야 한다. 그리고 파고 들어가야 한다. 분명 그것은 나의 생활은 아닌 것이다. 누구나의 생활에 불과한 것이지 자기를 사물이나 타자의 속에 소외해 버린 일반적인 아무나의 삶이지 그것은 일회적이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184쪽

남녀 또는 부부의 모든 드라마는 그들이 타인이라는 데서 비롯한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이 우리에게 방해되는 존재인가를 매일 체험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한 타인이 둘이 모여서 생활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돌연 행복을 발견해야 할 의무라도 있는 듯한 태도로 임한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 있을 때도 충분히 불행했고 여러 가지 문제에 싸여 있던 것이다. 그런 복잡하고 문제에 넘친 불행한 양인이 모였다고 해서 돌연 인간의 행복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일까? -210쪽

우리 영혼이ㅡ 모든 고뇌는 우리가 다시는 유년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인식과 또다시 돌아갈 수 없는 유년기에의 절망적인 향수에 기인하는 것이라 한다. 유년기란 나와 외계가 일체를 이루고 있었고 즉 자와 타자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었던 천국적인 시대인 것이며 우리의 존재에는 죄의 때가 묻어 있지 않았었다. ..이 시대의 잃어버린 기억을 더듬어서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254쪽

정화는 만 1년 6개월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못 걷는다. 누가 붙잡아 주면 발자국을 뗄 정도다. 이 정도는 다른 아이는 돌도 훨씬 전에 하는 것이라 한다. 나도 모르겠다. 이 아이가 처음이니까. 정화는 늦되던 올되던 나에게는 절대인 것이다.-266쪽

나는 정화가 엎어져도 절대로 안 일으켜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와 싸워도 절대로 원인을 묻거나 야단치지 않는다. 소란과 싸움 속에서만 어린애는 생을 배우는 것이니까. -282쪽

우리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또 요구할 수도 없다. 아이가 우리에 의한 존재이고 우리의 것이나 동시에 자유로운 의식이고 절대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주체성에 눈이 뜬 후의 아이게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우정뿐인 것이다. -285쪽

정화가 자라나고 성숙하고 소녀에서 여자로 되고 사랑을 하게 될 날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가슴이 뜨거워진다. 찬란하고 행복한 청춘을 보내게 해주고 싶다. 정화가 의식 못하도록, 내 존재가 정화에게 눈에 띄고 방해되지 않도록 은밀한 방법으로 정화의 행복을 형성해 주고 싶다. 얼마나 아름다운 기억이 나의 소녀 시절에도 있었는가? 감동과 희열과 행복감이! 그것의 전부를 아니 그보다 몇백 배를 정화가 갖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울었던 눈물과 괴로움은 전부 생략시켜야 한다. 절대로 '버림받은 느낌'을 주지 않아야 한다. 어떤 고뇌와 슬픔 속에서도 '무엇인지'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 노골적으로는 '어머니'가 있는 느낌, 다시 말하면 이뢰심이 아니고 보다 깊고, 보다 간접적으로 아이의 절망을 도와 주고 싶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293쪽

사랑의 마약 밀매상적 요소

남에게 보여서 부끄러운 사랑은 마약 밀매상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없느니만 못하다.
대낮을 견딜 수 있는 사랑이라야 한다.

1964.4.1-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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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12-03-2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 전혜린 참 좋죠? 이십대 초반 시절 전혜린에 푹 빠졌던 기억이 나요. 그녀의 삶과 사랑이 모두 연기같고 영화처럼 느껴지며 몹시도 동경했던 기억두 나구요..
좋은 하루 보내요 라일라.

LAYLA 2012-03-23 00:04   좋아요 0 | URL
나이에 얽매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스물 일곱에 전혜린을 읽다니 왜 이렇게 슬푸죠?? 언제 스물일곱이 되어버린 걸까요 무서워라!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접시 위에 놓인 이야기 5
헬렌 니어링 지음, 공경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9월
구판절판


대충 말고 철저하게 살자. 부드럽게 말고 단단하게 먹자. 음식에서도 생활에서도 견고함을 추구하자. -10쪽

육식 대 채식

9.비윤리적이다.
"어떻게 그런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나요?"
시카도 도살장에서 겁에 질린 방문객이 도살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도살자는 "선생을 대신해 우리가 더러운 일을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라고 쏘아붙였다. 방문객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동물을 직접 죽이지 않고 고기를 먹는 사람은 누구나, 도살자에게 그 일을 의뢰하고 있는 셈이다. -67쪽

우리는 조상들이 몰랐던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전혀 모르는 질병들을 얻게 되었다.

- 닥터 M.L 레머리
모든 종류의 식품에 관한 논문,174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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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3-19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시네요^^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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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현실이 되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야. 꿈을 꾸는 동안에는 그 꿈이 너무 간절하지만 막상 그것을 이루고 나면 별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거든. 그러니까 꿈을 이루지 못하는 건 창히한 일이 아니야. 정말 창피한 건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게 되는 거야. 그때 내가 원한 건 네가 계속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거였어. 그래서 너를 홍콩에 보내줬던 거야.-107쪽

아영은 매사에 계산적이어서 반드시 준 만큼 돌려받고 무엇에든 다치지 않을 만큼 충분한 거리를 두어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서울 깍쟁이였다. 대신, 자신이 신세를 진 만큼 반드시 갚아주려는 자존감과 자신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에 대해선 철저히 사랑하고 통제하려는 소유욕을 가진 여자였다. 그 영역 안에는 물론 나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녀가 보기에 내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아마도 형이 변호사라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그런 속물적인 면에 가끔 실망도 했지만 그녀의 매력과 애교는 그런 실망감을 능히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녀가 가진 최고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생에 대한 의심없는 열정과 자신이 인생에 쏟아붓는 노력만큼 반드시 보상을 받겠다는 확고한 의지였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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