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앤디파트먼트에서 배운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전하는 가게> 만드는 법 - 배우고, 먹으면서 배우는 가게
나가오카 겐메이 지음, 허보윤 옮김 / Epigram(에피그람) / 2014년 11월
평점 :
일시품절


경기가 안 좋으면 사람들은 물건을 사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건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에도 질적 변화가 생깁니다. `제대로 된` 물건을 사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지요.

옛날에 한 유명 디자이너는 "자신의 명성으로 물건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상품에 디자이너의 이름을 붙여 판매하는 것은, 상품을 본래의 생활용품으로 대하지 않고, 디자이너의 명성이라는 가치를 담은 물건으로 전락시키는 일이므로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속하기`는 제작자가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물건이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금방 단종될 것이 분명하다면 롱 라이프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단명할 물건에 둘러싸여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물건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가지 추억을 쌓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작자가 계속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물건은 어딘지 모르게 외로워 보입니다.

돈이 많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팽배한 세상이다 보니 일단 많이 파는 것이 모든 일의 대전제입니다. 장사치든 정치가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거래든 사업이든 파는 행위의 최전선은 바로 파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판매하는 곳에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당신에게는 팔지 않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고, 그래서 무엇이든 돈만 지불하면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린다면, 사회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극단적인 말이었지만 매장의 자세가 그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희 가게도 이익을 우선시하지는 않지만, 이익에 대해 냉철하게 생각합니다. 롱 라이프 물건을 팔면서 가게가 롱 라이프 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됩니다. 대단한 돈벌이가 안 된다고 해도 유지는 할 수 있는 수준이면 괜찮아요. 그러나 적자인 채 재고만 쌓여간다면 가게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매장이 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하는 가게`에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는 매력이 있는 공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수적입니다. 적자냐 아니냐의 여부는 가게 규모와 그다지 상관없습니다. 가게 규모가 작아도 얼마든지 적자가 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생활용품점의 현실은 참담합니다. 생활용품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잡화를 팔면서 `라이프스타일 스토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무조건 싸면 그만인 유행품과 잡화 체인점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양 - 개정판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1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육후연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다림. 아, 사람의 삶에는 기뻐하고 화를 내고 슬퍼하고 미워하는 등 다양한 감정이 있지만, 그것은 사람의 생에서 겨우 1퍼센트를 차지할 뿐, 나머지 99퍼센트는 그저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행복의 발소리가 복도에서 나기를 이제나저제나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으로 기다리다 젖어드는 허무함. 아, 사람의 삶은 정말 비참합니다.

나 역시 로제 룩셈부르크의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가 메스껍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깊은 흥미를 느꼈다. 이 책은 경제학에 관한 내용이지만 경제학 차원에서 읽으면 지겨울 따름이다. 정말 단순하고 뻔한 내용뿐이다. 아니, 어쩌면 경제학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너무 따분하다. 사람은 원래가 인색한 존재여서 영원히 인색하다고 하는 전제가 아니면 전혀 성립되지 않는 학문이 경제학인데, 인색한 사람에게는 분배니 뭐니 전혀 흥미가 없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다른 부분에서 묘한 흥미를 느꼈다. 가차없이 낡은 사상을 모조리 파괴해 가는 저자의 저돌적인 용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도덕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태연하게 지체없이 달려가는 유부녀의 모습마저 떠오른다. ...로쟈는 마르크시즘에 대해 일편단심의 슬픈 사랑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쑥스럽기 그지없는 부탁 하나 드릴게요. 어머니의 유품인 삼베 기모노. 그걸 누나가 내년 여름에 나 입으라고 손질해 주었죠. 그 옷을 내 관에 넣어 주세요. 나 입고 싶었습니다. 동녘에 밝아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안녕. 어젯밤의 취기는 완전히 가셨습니다. 나는 말짱한 정신으로 죽습니다. 한 번 더, 안녕.


누나.
난 귀족입니다.

전 애초부터 당신의 인격이나 책임감에 기대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저의 일편단심 사랑의 모험을 성취하는 것만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의 그 소원이 이루어져 제 마음은 숲속의 늪처럼 고요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고대의 그리스인들은 죽으면 우리의 영혼이 여행을 떠난다고 믿었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려면 삼천 년이 걸리는데 돌아왔을 때 자신의 몸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남아 있어야 영혼이 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래서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그 정도로 보존에 신경을 쓰진 않아요."

나는 다시 아이들이 오기 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아침을 하는 대신 나는 매일 아침 이탤리언델리에 가서 갓 구운 롤빵과 거피를 사마셨다. 집안일에서 이렇게 멀어졌다는 사실이 나를 황홀하게 했다. 하지만 전에는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것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매일 아치 창가의 의자나 보도의 옥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런 곳에 와서 아침을 먹는다는 사실에 대한 경이와 기쁨 대신 지루하게 반복되는 외로운 삶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익숙한 삶을 버리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어.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지만, 치러야 할 대가겠지. 남자와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우는 중이야. 섹스에 대해 편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쉽지는 않지. 워낙 그렇게 살았던 게 아니니까. 젊지도 않은데 새로 뭔가를 배운다는 게 쉽지 않아.

우리가 다시 만났더라도 옛날과 다른 뭔가가 시작되진 않았을 것이다. 혹 만나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있는, 드러낼 수 없는 사랑만이 제자리에서(누군가는 바보 같은 결말로 이어지거나 쓸쓸하게 감정이 식고 말 것이 두려워 승부수를 두지 않는 이런 사랑을 두고, 진짜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달콤한 실개천이나 지하의 암반수처럼 계속 살아남는 것이다. 그 위를 덮은 이새로운 정적과 봉인의 무게를 안은 채 그 어떤 모험도 무릅쓰지 않고.

그녀는 제자리에서 온갖 가능성들을 다 생각해 보았다.

책 읽기는 이제 그만두자.
불우한 가정이나 가난한 나라에서 애들을 입양해다 아이들의 상처와 ㅕㄹ핍을 보듬으며 시간을 보내볼까.
교회에 가서 신앙을 키워볼까. ...

침대에 앉은 채 그녀는 이 모든 생뚱맞은 공상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아마 지금처럼 사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온당하고 상식적인 거래일 터이다. 사실 그 거래는 이미 진행되고 있기도 했다. 이미 일어날 일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 역시 선명하게 인식하자. 날이 가고 해가 갈테고, 비슷비슷한 감정들이 반복되겠지. 아이들이 자라나고, 아이들이 한두 명 더 태어나고, 그 아이들 역시 자라버리고 나서, 그녀와 브렌던은 해마다 나이 먹고 늙어갈 것이다.


전에는 한 번도 자신이 장차 일어날 일,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미래에 이렇게나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결혼이 큰 변화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최종적인, 마지막 변화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 혹은 그 누구라도 상식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 이외에 다른 무엇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 그게 자신의 행복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 그게 바로 자신이 한 거래의 대가라는 것을 그녀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비밀스러울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전혀 없는 그런 삶의 전망.

이 삶에 집중하자. 그녀는 생각했다. 갑자기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바로 이 삶이 내가 가진 전부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혜덕화 2015-03-22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이 삶이 내가 가진 전부이다.
이 문장때문에 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군요.
아주 따뜻한 봄날입니다.

LAYLA 2015-03-23 01:58   좋아요 0 | URL
살아본 언니가 쓴 책의 내공이 있더군요 :)

다락방 2015-03-2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네번째 인용문 때문에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방금 검색해보니 중고 있길래 주문했어요 ㅋㅋㅋㅋㅋ

LAYLA 2015-03-23 01:5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좋아하실 거 같아요. 올리브 키터리지를 다 읽지 않았는데(망할 크레마) 올리브 키터리지랑 느낌 비슷했거든요 ㅎㅎㅎ
 
본격소설 - 상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저도 옆에 앉아서 책이라도 읽어드릴까요? 미즈무라 씨가 잠들때까지.

저도, 라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한 이야기에 빗대서 하는 말이다.

-정말 재미있는 말을 하네, 이 도련님은.
-아니에요, 진심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그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마음껏 이야기한 덕분인지, 아니면 나이가 젊은 덕분인지 밤을 새웠는데도 오히려 피곤이 사라진, 속이 비칠 듯한 피부를 지닌 얼굴이 밝아오는 아침공기 속에 보인다. 그 투명한 얼굴이 다가와, 낯선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았다. 거기에 예상치 못했던 다정함이 깃들어 있는 것은 이대로 덜컥 자버리면 남자로서 실례라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고마워, 하지만 그러면 오히려 잠을 못 자. 라고 유스케의 배려를 맥없이 웃어넘긴 나는 몸을 휙 돌려 식당 끝에 있는 침실로 도망치듯 철수했다.

샐러리맨 같지도 않았다. 샐러리맨은 최소한의 훌련된 사교성이라는 것을 몸에 익히고 있는 법이다. 남자에게는 그런 면이 없었다.

외할머니 역시 아침식사로 빵을 들지만, 그 아침식사는 이 세 자매의 아침식사와는 달랐다. 비록 유스케의 할머니들이 이 세 자매와 물리적으로 같은 것을 입고 먹는다 해도, 그것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도저히 같아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별장하고 몇 년 차이 안 나는데, 우리 엄마는 당신은 몇십 년 전부터 별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은근히 형수네 가족을 깔본다니까. 그쪽이 훨씬 더 부잔데 말이야."
"부자야?"
"...거품이 터져서 지금은 꽤 빚을 끌어안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 같은 샐러리맨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부자야."
"응"
"하기야 빚도 격이 다른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런 내가 기지에서 영어를 조금 배운 뒤, 바로 미국인 중위네 집에 메이드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건축자재는 물론이고 창도 커튼도 가구도 통째로 미국에서 직수입해온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이죠. 채광은 너무 밝다고 느껴질 정도고, 게다가 토스터, 오븐, 냉장고, 세탁기 등- 그런 좋은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것이 반짝반짝 빛나며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달세계에 던져진 거나 마찬가지였으나 별로 놀라움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놀라는 데에도 지식과 경험 교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 여자는 참 어려워. 네 어머니는 얼굴도 머리도 보통이라 그저 그런 인생으로 만족하니까 편한데 말이야. 그런데 한쪽은 좋은데 한쪽이 나쁘면 불행하지. 머리보다 얼굴이 괜찮으면 자만해져서 못 올라갈 나무를 올려다보다가 실패해버려. 얼굴보다 머리가 좋으면 분에 넘치는 욕심은 갖지 않지만, 자기 머리에 걸맞은 인생이 못 될 테니까 역시 재미없지. 너는 못생긴 건 아니지만 옛날부터 똑똑해서 머리 쪽이 몇 단 위니까, 그게 곤란하단 말이야. 어지간한 집에 태어났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말이지...

- 남자는 달라?

- 그야 다르지. 남자는 말이야, 머리만 좋으면 돼. 거기에다 나처럼 잘생겼으면 무서운 게 없지.

그러고 나서 며칠 지난 뒤에 퇴근하고 돌아온 겐지 아저씨가 다음 일요일에 내가 가정부로 일할 곳을 찾아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PX에서 가져온 듯한 미국제 나일론 스타킹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때 내 일생이 결정되었던 것이겠죠. 아직 젊고, 좋고 나쁘든 무엇이나 마음에 크게 그림자를 드리울 때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바시는 인도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과 복잡한 사회를 미국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인도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동시에 젊은 나라이며, 아직도 자신을 알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우다얀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수바시와 결혼했다. 쉽지 않은 일을 감행하긴 했지만 이 역시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 쌍의 귀고리 중 한쪽을 잃어버렸을 때 나머지 한쪽을 간직하는 것이 소용없는 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