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 개정판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1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육후연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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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아, 사람의 삶에는 기뻐하고 화를 내고 슬퍼하고 미워하는 등 다양한 감정이 있지만, 그것은 사람의 생에서 겨우 1퍼센트를 차지할 뿐, 나머지 99퍼센트는 그저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행복의 발소리가 복도에서 나기를 이제나저제나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으로 기다리다 젖어드는 허무함. 아, 사람의 삶은 정말 비참합니다.

나 역시 로제 룩셈부르크의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가 메스껍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깊은 흥미를 느꼈다. 이 책은 경제학에 관한 내용이지만 경제학 차원에서 읽으면 지겨울 따름이다. 정말 단순하고 뻔한 내용뿐이다. 아니, 어쩌면 경제학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너무 따분하다. 사람은 원래가 인색한 존재여서 영원히 인색하다고 하는 전제가 아니면 전혀 성립되지 않는 학문이 경제학인데, 인색한 사람에게는 분배니 뭐니 전혀 흥미가 없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다른 부분에서 묘한 흥미를 느꼈다. 가차없이 낡은 사상을 모조리 파괴해 가는 저자의 저돌적인 용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도덕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태연하게 지체없이 달려가는 유부녀의 모습마저 떠오른다. ...로쟈는 마르크시즘에 대해 일편단심의 슬픈 사랑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쑥스럽기 그지없는 부탁 하나 드릴게요. 어머니의 유품인 삼베 기모노. 그걸 누나가 내년 여름에 나 입으라고 손질해 주었죠. 그 옷을 내 관에 넣어 주세요. 나 입고 싶었습니다. 동녘에 밝아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안녕. 어젯밤의 취기는 완전히 가셨습니다. 나는 말짱한 정신으로 죽습니다. 한 번 더, 안녕.


누나.
난 귀족입니다.

전 애초부터 당신의 인격이나 책임감에 기대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저의 일편단심 사랑의 모험을 성취하는 것만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의 그 소원이 이루어져 제 마음은 숲속의 늪처럼 고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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