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꿈꾸다


 그날 새벽은 참 이상했다. 꿈속에서 물에 빠진 듯, 축축하기도 하고 찝찝하기도 한 것이 영 잠자리가 불편했는데, 깨어보니 옆에는 아무도 없고 이런! 내 등과, 맞닿았던 이부자리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 ‘이크! 큰일났다. 자다가 오줌을 쌌는가?’ 아랫도리를 만져보니 속옷은 젖지 않은 것 같다. 축축한 곳에 냄새를 맡아보아도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이 뭐지? 뭔가 이상했다.


 우리는 국민학교 때부터 경쟁이 일상이어서 그때부터, 공부를 좀 한다 하는 아이들은 그룹으로 과외공부를 했다.


 그 넘은 6학년 3, 나는 6학년 2. 반에서 톱을 달리는 아이들이라서 같이 그룹 과외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넘은, 엄마가 시장통에서 가장 큰 과일점을 했고, 우리집보다 큰 집에서 살았으며 가족들이 모두 훤칠하니 키도 크고 피부도 하얀 것이 부르주아 냄새가 나는 집안의 아들이었다그리고 그 넘의 형제들은 모두 거의 성인이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 넘은 늦둥이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집안에서 엄청 사랑을 받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넘이 자기 집에서 같이 자면서 공부도 하고 다음 날 새벽에 과외도 같이 하러 가잔다. 자기가 혼자 공부하면서 너무 외로워하니까 부모님이 허락을 하셨단다.(당시에는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서 한 집에 전등 하나씩 켜고 살던 시절이었으며 그것도 특선, 일반선으로 구분하여 사용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려면 촛불을 켜고 해야 해서 불편하기도 하고 또 화재의 위험도 있고 해서 주로 새벽에 과외 공부를 했다.)


 우리집에서야 집도 좁은데, 좋은 집에서 친구와 공부한다니 허락을 하셔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자는데, 잠자리는 그 넘의 할머니가 펴주고 자다가 목 마르면 마시라고 물을 한 대접 상 위에 놓아주었다.


 그런지 2-3일 만에 이런 이상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아니, 이 나이에 오줌을 싼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당연하다. 나는 오줌을 가린 이후 그때까지 십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옷에 오줌을 싼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기 전에 반드시 용변을 보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용변을 보는 것이 아주 습관이 되어 있었고, 그날도 잠이 깨자마자 화장실부터 찾았는데, 하지만 현실은, 이부자리와 내 옷이 젖어 있으니 아니라고 변명할 여지도 없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것도 남의 집에서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화장실에는 가야하고 과외공부는 가야했기에 책을 주섬주섬 챙겨서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 넘은 벌써 일어나서 마당에 서 있었고 그 넘의 할머니는 빨랫줄에 젖은 듯한 이불을 널고 계신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방에 있는 내 요도 젖었는데 그럼 쌍으로 오줌을 쌌다는 말인지? 그런데 그 넘이고 할머니고 내 옷의 등이 젖은 것을 보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곰곰 생각해보니 상

위의 대접도 비어있었던 것 같다.


 그때야 당연히 잠옷이 따로 없었다. 외출복이 잠옷이고 잠옷이 외출복이었다. 래서 등이 젖은 옷을 입고 과외공부를 하러 갔다.


 그런데 과외 선생님이 젖은 내 등을 보더니 ? 오줌 쌌나?”이런다. ‘아니,

생님, , 치과 집 순이하고 양조장 집 분이도 있는데 창피하게 와 이러십니까?’


 나는 그것이 오줌이 아니라고, 또 오줌이라 해도 내가 싼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강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은 창피했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그 넘은 빙긋이 웃기만 한다. 그 넘 심성에 나를 오줌싸개라고 놀릴법한데(그 넘은 내

가 보기로 악간 심술이 있었다.), 그러지도 않았다. 그것이 나는 더 이상했다.


 그 넘이 나를 배려해서 한 행동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사실 그 넘

은 딱 두 번 나에게 오줌싸개했는데, 그것도 남이 없을 때 조용히 얘기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날의 일은, 내가 공부도 잘하고, 그리고 옷에 오줌을 쌀 나이도 지났기 때문에, 같이 공부하는 그룹의 칠, 팔 명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끌지도 못

하고 무사히 넘어 갔다.


 하지만, 그 일로, 그 넘이 나를 오줌싸개라 불렀기 때문에 나는 그 넘의 집에는 다시는 가지 않았는데, 며칠 후 그 넘이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느그 반 국어 시험 쳤나?”이런다 아니.” “우리 반은 국어 시험 벌써 쳤는데, 문제가 어렵더라. 내가 시험 문제 가르쳐 줄게.” 이러면서 아주 자세하게 문제와 답들을 가르쳐준다.


 나는 옳다구나, 이번 시험은 백점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그 넘의 설명을 외웠다그리고 드디어 우리 반의 국어 시험 날, 시험지가 배부되었는데 그 넘이 가르쳐 준 문제와 보기 그대로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문제 뭐 더 읽어 볼 필요도 없다. 그 넘이 가르쳐 준 답을 하나도 틀림없이 콕콕 집어 써넣었다.


 그런데 다음 날 시험 점수를 확인하시던 선생님께서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나를 부른다. 그리고 시험지를 보여주시는데, 허걱! 그 넘이 가르쳐 준 답이 모조리 틀렸다. !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그 넘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땅을 쳤다.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그 넘을 너무 믿은 나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통감했다.


 아! 사악한 넘. 그러고 보니 오줌 싼 것도 나에게 덮어씌워 망신을 주려고 한 것이 틀림없었다. 오줌은 지가 싸놓고 나에게 덮어씌웠거나, 아니면 지가 오줌 싼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내 등에 물을 부었거나. 아니 어떻게 오줌을 쌌는데 등만 젖느냐 말이다. 아무튼 지난 일을 밝혀낼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것이 그 넘의 흉계요 음모라고 확신했다.


 나쁜 넘. 그러고 나서 그 넘은 내가 시험 잘 쳤는지도 묻지도 않았다. 나도 물론 시험 잘 친 듯이 시치미 뚝 떼고 있었는데, 마음속으로는 이 넘에게 언젠가는 두

, 세 배로 갚아 줄 것이라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


 하지만 국민학교 시절 내내 복수의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고 사실, 나는 꽁하는 성격이 아니라 털털 털어버리는 성격이라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도 그때뿐이었을 것이다 - 중학교부터는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했기 때문에, 복수는커녕 지금까지 그 넘의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이 세월만 흘려보냈는데,


 인간의 본성이란 것이 참으로 바뀌기 어려운 것인지, 그래서 항상 손해를 보지만, 아직도 나는, 남을 잘 믿는다. 그리고 그날의 오줌 사건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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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05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 친구분이 완전 장난아니셨네요. 그때는 분하셨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이렇게 좋게(?) 추억하실수 있는거 같아요. 항상 믿는 사람이 더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이 결국 행복한거 같아요. ˝톱을 달리는 아이들˝에서 감탄을 합니다~!!

하길태 2021-07-05 21:32   좋아요 1 | URL
ㅎ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그렇네요, 이제는 다 지난 일들이 되었네요.^^

붕붕툐툐 2021-07-05 2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등으로 싼 오줌이라닛! 확실히 음모가 느껴집니다!ㅎㅎ

하길태 2021-07-05 21:35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런 것 같지요?
이제야 나의 결백이 밝혀지는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