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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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 기본적으로 나와는 다른 시공에 사는 이들의 다양함과 다름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로런 그로프의 소설집 <플로리다>는 그런 점에서 충실하게 소설의 기본 의도를 충족시켜준다.

 

모두 11편의 소설이 담긴 <플로리다>에는 플로리다와 어떻게든 얽힌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 <둥근 지구, 그 가상의 구석에서>였다. 주인공의 이름은 주드. 그의 아버지는 인종차별주의자이자 파충류를 연구하는 교수로 플로리다에 지천으로 널린 뱀을 연구하는데 여념이 없다. 말 없는 소년 주드는 책을 사랑하는 북부 출신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그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확실해 보이는 숫자를 사랑했다. 아버지가 전쟁으로 부재하는 동안, 어머니는 그 지긋지긋한 뱀 표본들을 늪지에 던져 버리고 살아 있는 놈들은 삽날로 머리를 날려 버린다.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자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트라우마를 지닌 소년 주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대로 잃고 남자로 성장한다. 난 왜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소설에는 다양한 새들이 등장하는데 다른 소설에도 따오기며 갈매기 같은 새들이 비슷한 구성으로 나온다. 소설의 전문가라면 이 새들의 상징성에 대해 분석해 보고도 싶지만 그럴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 관계로 패스. 올해는 시간이 되면 <스토너>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이런 저런 이유로 노숙자가 된 이들도 등장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플로리다의 가난한 지역에 둥지를 주인공의 집 아래 사는 노숙자 커플이 등장하기도 한다. 동네를 달리며 보이는 가족어항 속의 인간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늪지의 개구리가 들려주는 당김음이란 단어도. 그런데 영어로 당김음은 어떤 단어지?

 

열대지방은 플로리다를 강타하는 허리케인은 조용한 삶에 대한 타격으로 읽힌다. 이별한 남편이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여자와 있다가 죽었다는 주인공에게 허리케인의 아이월속에 갇히자 남편을 비롯한 망자들이 방문한다. 한 해 연금보다 비싼 샴페인을 마시는 호사를 누리는 인간도 허리케인이라는 자연재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인간의 모든 운명은 비극적으로, 행운이라는 측면으로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역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한 때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주인공은 스테이션 왜건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고 노숙자의 길에 나선다. 수중에 돈이 떨어져 가는 마당에 자존심은 허기 앞에 굴복한다. 바에서 만난 어린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그의 집 냉장고를 털다가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최악이라고 선언했던가. 차마저 털리자 진짜 본격적인 노숙자의 길에 나서게 된다. 인간의 육신에서 뿜어내는 악취를 걷어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이 공복이 주는 나락으로의 초대였다. 바에서 청소 일을 찾기도 하지만 자신을 돌봐주던 이가 병으로 쓰러지자 허름한 모텔에서의 생활도 곧 끝이 난다. 야영장에서 자신이 가진 초라한 먹을거리를 나누고, 제인 일행에 합류한다. 그렇게 몰락은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나는 궁금하다, 한 때 대학의 교수 일도 하던 주인공이 왜 번듯한 직장을 찾지 않고 또 비록 재가하긴 했지만 어머니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지. 타인의 삶은 내가 가진 기준점으로 결국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일까.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의 간호를 맡았던 아름다운 여성이 브라질의 살바도르란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기묘한 운명에 대한 서사도 흥미롭다. 시간은 그녀에게서 아름다움을 빼앗아 갔지만, 언니들이 보장하는 한 달 간의 화려한 휴가를 즐기기 위해 주인공은 남국의 빛나는 바닷가를 찾는다. 그리고 고급 호텔로 향하지만, 갑작스레 도달한 폭풍우에 휘말려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다. 물론 호텔에서 일하는 이들이 그녀를 말리지만, 그녀의 행동을 막을 순 없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가장 원하지는 가게 주인으로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 새벽을 맞는다. 휴가지에서 가장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상황을 로런 그로프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기 드 모파상에 대한 애증을 지니고 두 아들들을 데리고 어머니이자 작가인 그녀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이포르란 곳으로 향한다. 프랑스에 대한 미국인들의 동경이 전면에 등장한다. 아이들이 프랑서 어를 그야말로 습자지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길 원하지만 어린 나이의 아이들에게 너무 과한 요구가 아니었을까. 계속해서 등장하는 모파상이 쓴 소설에 대한 평가와 매독에 걸려 광증에 시달리다 죽은 파렴치한 색정광이었다는 사실이 전면으로 충돌한다. 미국에 비해 저렴하고 질 좋은 부르고뉴 와인을 한껏 마시면서 어머니인 그녀는 지난 십년 동안 미뤄온 기에 대한 평가를 싫어한다고 결론짓는다. 오랜 기간 습득한 프랑스 어지만 결국 이방인의 언어에 불과하다는 자각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신이 떠나온 플로리다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사친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극적인 뉴스를 오랫동안 터지지 않았던 와이파이가 터지자 알게 된다. 진실의 유예가 때로는 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 않던가.

 

소설집 <플로리다>는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에 이어 내가 두 번째로 만난 작가의 작품이었다. 공간으로서 플로리다는 내가 가보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 가보지 못할 곳이겠지만, 그 공간을 채운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들이 그려내는 이야기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곳에서 태어나 여생을 보내고 싶은 장소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긋지긋한 무더운 여름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곳일 수도, 휴가를 마치면 돌아가야 하는 삶의 터전일 수도 있는 그런 곳이겠지. 뭐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동경의 장소일 수도. 나에게 소설 <플로리다>는 작가가 전달하는 다양한 메시지들이 넘실거리는 그런 어떤 것도 가능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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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5-03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운명과 분노> 를 재미있게 읽었는데(오바마 대통령의 유혹..) 이번에는 레삭매냐님 리뷰에 유혹당합니다^^ 저는 <운명과 분노>를 읽으며 왠지 자꾸만 <스토너>가 떠올랐거든요. 레삭매냐님 이번 작품에서 그랬다 하시니 괜히 반가워하며 공통점을 찾아봅니다. 팬심ㅎㅎ;; 로런 그로프도 <스토너>를 애정하는 거 아닐까 상상도 하면서 혼자 히죽합니다. 평안한 일요일 보내시길요. ^^

레삭매냐 2020-05-03 12:37   좋아요 0 | URL
유혹, 성공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운명과 분노>보다
이번에 만난 <플로리다>에 더 애정이
가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뷔페 같은 스타일이라고나 할
까요. 작가의 자전적인 스토리도 담겨
있는 것 같아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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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풀베다 다시 읽기 프로젝트 No. 10]

 

서가와 내가 쌓아 놓은 책탑 어딘가에 루이스 세풀베다가 손주들을 위해 쓴 동화 2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서가 수색을 마쳤으나 찾지 못했다. 결국 책탑들을 허물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냈다.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달팽이부터 읽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 버스 안에서 개 이야기를 읽으면서 루이스 세풀베다가 쓴 열 개의 책을 추모의 달에 읽는데 성공했다. 내가 생각해고 장하다. 나머지 책들은 찬찬히 읽어야지.

 

이번에 세풀베다 작가는 동화를 소비할 아이들과 어른이들을 위해 마푸체 인디오들 그러니까 대지의 사람들이라 불리는 이들의 땅으로 인도한다. 달팽이 때처럼 이번에도 인간이 주인공이 아니다. 마푸체 말로 충직함이라는 뜻의 아프마우, 그러니까 개가 주인공이다. 개의 새로운 주인인 윙카들은 아프마우를 데리고 누군가를 쫓고 있다. 부상당한 인디오. 왜 그를 쫓는 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프마우에 삶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아프마우는 독일 셰퍼드다. 피치트레와(어린 강아지) 시절에 어미에게서 떨어져 눈밭에 파묻힌 아프마우는 그대로 죽을 뻔했다. 하지만 재규어 나웰의 도움으로 살아나 마푸체 인디오의 손에 맡겨진다. 그리고 아프마우란 이름을 얻고 평생의 페니(친구)가 될 아우카만을 만난다.

 

문제는 나무 농장을 만들기 위해 대지의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나타난 윙카들이 쏜 총에 지혜롭고 자애로운 웬출라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아프마우도 아우카만과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아프마우에게 자신의 진짜 친구인 아우카만을 사냥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인 만큼 상당히 교훈적이다. 세풀베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들에서 집요하게 추구하는 주제인 지구별에서 조화로운 공존이 전면에 등장한다. 우리는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에 대해 대지의 사람들처럼 감사하는가? 추격 중에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프마우도 들쥐를 잡아먹으면서 응구네마푸(대지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정령>에게 감사하고, 나머지는 독수리에게 남겨준다. 느껴지는 바가 없는가?

 

수상쩍은 물을 마시고 거칠고 난폭해진 윙카들은 성장해서 롱코 웬출라프의 뒤를 대지의 사람들의 리더가 된 아우카만에게 총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방인들에게 대지는 그저 수탈과 착취의 대상일 뿐이다. 대지의 사람들처럼 공존하는 삶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윙카들에게 총을 맞고 도주하는 아우카만을 조용하게 숨겨준 것도 바로 레무()가 아니었던가. 코로나 사태에 즈음해서 우리 체(사람들)들이 바이러스 감염이 무서워 집에만 있자, 지구별의 공기가 다 깨끗해지고 서커스를 탈출한 동물들이 거리를 누비고 희귀종 거북이가 안심하고 바닷가에서 번식을 한다지 않은가. 내가 사랑하는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불행하게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생전에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그를 덮친 바이러스로 현실이 되었다.

 

지구별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여전히 요원해 보이지만, 그 시간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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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 - 루이스 세풀베다 산문집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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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풀베다 다시 읽기 프로젝트 No. 8]

 

7년 만에 다시 만난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는 새로웠다. 책을 읽고 나면 가능하면 리뷰를 쓰려고 하는데 아마 7년 전에는 책만 읽고 나서 리뷰는 쓰지 않았던 모양이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까맣게 잊고 있던 이야기들은 읽을수록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지난주부터 세풀베다 작가를 추모하는 독서를 하고 있는데, 부작용도 조금 있다. 8권의 책들을 연달아 읽다 보니 뭐랄까 작가가 추구하는 주제 의식의 정점에 도달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좀 헷갈리는 점도 있었다. 우적우적 씹어 먹는 마구잡이 독서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세풀베다를 읽을 것이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만 알았던 세풀베다 작가의 이면이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에 기록된 것을 처음에 읽을 적에는 모르고 있었던가. 1979년 여름,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패배자들은 니카라과에 모여 부패한 소모사 독재 정권을 몰아내고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 현장에 우리의 세풀베다도 있었다. 놀랍다! 그가 행동하는 게릴라 전사였다니.

 

그런 작가의 행동주의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 동지들에 대한 이름을 들으면서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을 계속했다. 물론 대다수가 번역되지 않았더라. 안드레아 카밀레리의 책들은 절판되었고, 마리오 베네데티, 그가 마리토라고 부르는 우루과이 작가의 책은 달랑 한 권 그나마 읽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보니 내가 처음에 세풀베다를 알게 되었을 때도 그를 통해 수많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가들의 이름을 추체험했었지. 나중에는 볼라뇨가 배턴을 이어 받았고. 세상은 여전히 넓고, 읽은 책들은 그야말로 산더미 같구나.

 

세풀베다 문학의 원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이 산문집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콜롬비아의 어느 젊은 아가씨는 미녀 대회에 참가해서 푼돈을 벌기 위해 비전문가에게 불법 성형수술을 받았다가 십대 나이에 죽고 마는 비극을 맞는다. 아메리카 대륙의 북반구에 있는 어느 자본가는 폰지 사기로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잃고 망연자실했던가. 극단적 대척점에 서 있는 삶의 양태를 뛰어난 저널리스트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독재 시절, 모스크바에서 단파 주파수로 절망과 패배에 젖어 있던 칠레 민중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던 소비에트 천사 카티야의 죽음에 대한 애도도 담겨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엄혹한 시절 자신과 뜻을 같이 하던 동지들에 대한 추모에 대해서도 세풀베다 작가는 지면을 아끼지 않는다. 이제 홀로 남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가 누구일지 나는 궁금했다.

 

인간 백정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칠레 민주주의의 봄이 찾아 왔을 때, 산티아고 빈민가의 사진 속에 담겨 있던 순수한 표정의 아이들을 찾은 세풀베다의 르포는 비극의 재현일 수밖에 없다. 지난 8년 동안, 15세 소년 마르코스는 거리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세실리아는 거리에서 몸을 팔다가 오빠에게 두들겨 맞았다. 어느 소년은 희망이 없으니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던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독재 정권에 싸운 중년의 저널리스트는 민주화가 되었지만, 가난과 절망에 시달리는 민초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이것이야말로 저널리스트가 지녀야 할 미덕이 아닌가. 아무리 고통스러운 사실이라도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같은 언론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아끼지 않는다. 어디 그게 지난 천년 칠레에서만 있었던 일인가. 불편부당을 모토로 삼으면서도, 오보를 일삼고 편향적 자세로 사실을 호도하는 게 그들의 현실이다. 특종을 취재하는 게 아니라 만들기 위해 플레이어로 나서는 그들을 우리는 기레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기레기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그들은 기더기라고 불리더라. 그런 이들과 품격이 다른 세풀베다는 목숨을 걸고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애쓴 동지들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진혼한다. 언론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언론고시 준비보다 세풀베다의 글을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저널리스트가 아닌 돈벌이를 위한 직업으로서 기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지 모르겠다. 자신이 선택한 시스템 탓은 하지 말고.

 

배신자가 되기보다는 아옌데 동지와 함께 모네다 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싸운 젊은 지식인들에 대한 서사는 감동 그 자체였다. 아옌데 동지의 유언대로, 또 다른 투쟁을 위해 항복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운명은 가혹했다. 인간 백정들은 전쟁 포로보다도 못하게 세풀베다와 동지들을 대우했다. 구타와 고문은 일상이었고, 그 과정에서 숱한 이들이 희생되고 실종 처리됐다. 저자가 말하는 잊지도 용서하지도 말자는 말이 이해됐다.

 

이 산문집은 마냥 심각한 이야기들로만 구성된 게 아니다. 망명지 독일의 자유를 만끽했던 자유개에드워드에 대한 이야기, 사랑하는 애인 소라야를 다른 축구 선수에게 뺏긴 뒤 골잡이로 활약하면서 그물망을 가를 때마다 옛 애인을 이름을 외치던 낭만적인 과라니 족 축구 선수 등 그야말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해 싸운 전사다운 기개가 살아 숨쉬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 세풀베다의 첫 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의 모티프가 된 이야기도 등장했지 아마.

 

아침 출근길에 재판에 회부된 고령의 독재자에 대한 뉴스를 들었다. 어느 청취자가 아무리 죄를 지었다지만 고령의 노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렇게 상세하게 보도하는 게 무슨 유익이 있냐는 질문을 하더라. 그 독자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에 사죄와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잊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세풀베다 작가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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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에 속삭이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5
임철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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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렇게 건성건성 읽어도 되는 걸까. 임철우 작가의 <돌담에 속삭이는>을 도서관에서 빌린 지 두 달여 만에 단숨에 다 읽어 버렸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이었던가. 다행히 도서관이 휴관 모드에 돌입해서 연체처리된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빌린 책들을 읽지도 못하고 반납할 뻔 했으니.

 

지난 주말에 만날 외국 번역책들만 읽다가 간만에 우리 소설들을 만났다. 좀 양심에 켕겼던 모양이다. 우리 것이 최고여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1948년 제주에서 벌어졌던 월산리 군경에 의한 학살 사건을 다룬 <돌담에 속삭이는>는 희생된, 무엇보다 꽃송이가 된 이들을 위한 진혼곡이 아닐까 싶다.

 

소설의 화자는 대처에서 살다가 제주로 내려온 한민우다. 누군가는 반역의 섬이라고 부르는 제주에서 한도 이방인이자 역사의 피해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 중에 끌려가 억울하게 죽은 뒤 수장당하고, 아들의 꿈을 지배한다. 몸이 건강하지 못했던 어머니 역시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한이 살아야 했던 세상이 어땠을지 감이 오는가. 숨을 죽여 살던 한에게 비슷한 궤적으로 죽음을 맞은 몽이 남매가 모습을 드러낸다.

 

같은 한()을 지닌 이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한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72년 전, 산사람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낮을 지배하는 군경들이 몽이 남매가 사는 마을에 들이닥쳐 갖은 만행을 저지른다. 이데올로기도 아닌 순수한 분노의 업보라고 해야 할까. 어제까지만 해도 웃는 낯으로 대하던 마을 사람들에게 무기를 쥐어 주고 상대의 가슴팍을 찌르라니,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인가. 아무리 자신이 살기 위해 그랬다고 하지만, 그런 일을 하고서도 아무 일 없이 살 수는 없었을 것이리라.

 

한이 우연히 만나게 된 윤씨 할머니는 몽이 남매에 대한 그리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하는 비극에 대한 서사를 이어간다. 그리고 보니 그가 기르는 망고 역시 유기견이었다고 했던가. 역사에 의해, 국가 폭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방기된 이들의 역사를 임철우 작가는 짚어낸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문한다.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독서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책이 그래야만 하는 것 아니었다. 때로는 역사와 삶의 무게를 짊어지는 역할도 그리고 기억과 추모도 책이 가진 숙명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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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4-26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년이 온다 느낌일 것 같기도 하고요
ㅜㅜ 눈을 감고 있다는게 인지 될 때, 섬뜩함과 슬픔이 함께 늦껴젔어요

레삭매냐 2020-04-27 13:39   좋아요 0 | URL
책만 보다가 미처 표지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네요.

적어 주신 대로, 애써 외면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소년이 온다> 주술적 리얼리즘
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느낌
입니다.
 
우리였던 그림자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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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풀베다 다시 읽기 프로젝트 No. 6]

 

집의 서가에서 세풀베다 작가의 책들을 하나둘 찾는 중이다. 경장편, 동화, 기행 산문 그리고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종합선물 세트를 받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예전에 읽은 책들은 읽은 책대로 또 미처 만나 보지 못한 책들은 그런 대로 꾸역꾸역 읽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다 좋다는 그런 결론이다.

 

우선 표지에 대해서 말해 보자. 어느 그림자 같은 인물의 사진이 보인다. 그는 누구일까? 볼 것도 없이 노동자와 농민의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다. 1973911,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렸던가.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한 칠레 군부는 불법적 무력 쿠데타로 합법적 정부인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켰다. 그 후에 벌어진 일은 모두가 알다시피 비극이었다. 수많은 청년들이 비밀경찰에게 끌려가 고문당하고 살해당했다. 그리고 실종 처리됐다. 살아남은 자들은 침묵 속에 살거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망명을 선택해야했다.

 

군사독재 15년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세력은 승리했고 불완전하지만 칠레의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숨죽였던 민주 인사들이 부활의 날갯짓을 하기 시작하고, 해외를 떠돌던 망명자들이 귀국하던 어느 시점의 이야기가 <우리였던 그림자>에서 펼쳐진다.

 

산티아고 모처의 공장에 3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들의 정체는 왕년에 공산주의자 혹은 사회주의 활동가로 활약한 전사들이다. 그들은 그림자라는 별명의 전문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림자는 전설적 아나키스트의 손자로 칠레 민중의 저항 씬에서 그야말로 전설 같은 존재다. 그의 이름은 페드로 놀라스코. 글록 권총을 지닌 왕년의 로빈 후드는 옛 동지들을 만나러 가던 중에 부부싸움 끝에 어느 부인이 거리로 내던진 두알턴테이블에 맞아 거리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아내 콘차의 룸펜 남편 코코 아라베나는 그림자의 권총과 연락처를 챙겨 나머지 영웅들의 모의에 합류한다.

 

모두가 희망으로 들떴던 칠레 혁명의 흥망성쇠를 직접 체험했던 세풀베다는 이방의 독자가 알 수 없는 숱한 조직들과 무엇보다 그들에게 소중했던 자유를 위해 풀잎처럼 스러져간 전사들의 연대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림자의 조상들은 중세 의적처럼 은행을 털어 자본가들이 착취한 돈을 민중에게 나눠준다. 놀라스코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소용이 다하자 깔끔하게 권총으로 삶을 마무리했다. 그런 게 가풍이라나 뭐라나.

 

우리의 그림자는 산티아고 시내를 신출귀몰하며 자신의 뒤를 쫓는 짭새들을 농락한다. 더 나아가 신참 짭새 크레스포에게 불의에 대한 저항을 해볼 의향이 있냐고 대범하게 묻기도 한다. 소설의 어떤 부분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세풀베다가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반세기 전의 저항을 너무 낭만적으로 포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들었다. 대의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자유를 위해 싸운 투사들의 투쟁이 민주화 이후 세대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저자는 회의한다. 우리가 586세대에 대해 가진 일종의 부채의식과 비슷한 게 아닐까. 유효기간이 지난 청구서 같은.

 

그런 전설의 그림자가 고작 부부 싸움에 창밖으로 내던져진 턴테이블에 맞아 죽다니! 세풀베다는 이런 역설을, 민주화된 칠레정부가 엄혹했던 시절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좌익을 탄압했다는 사실에 대입한다. 인민 전선이 정권을 잡았던 시절에는 마오주의로 무장하고 투쟁의 대오에서 그 누구보다 빛났던 남자 코코가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 시절에는 그저 집에서 <7인의 사무라이>, <저수지의 개들> 같은 비디오나 보면서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된 마누라를 위해 조잡한 알리바이나 짜고 있다는 게 믿어지는가? 그나마 막판에 가서 그림자를 대신해서 옛 전우들과 거하게 한탕으로 마무리했으니 다행이지.

 

고인을 추모하며 시작한 세풀베다 다시 읽기 프로젝트는 나름 순항 중이다.

<알라디노의 램프>를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도저히 못 찾겠다. 다시 사서 읽어야 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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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4-26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순항을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짝짝짝^^ 존경♡

레삭매냐 2020-04-26 09:52   좋아요 0 | URL
그나저나 요사 샘의 오래된 신간부터 시작
해서 존 맥피 그리고 팀 오브라이언들의
책들도 나와서 다음 주부터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요.

호흡을 고르고, 시간은 많으니 찬찬하게
가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