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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 기본적으로 나와는 다른 시공에 사는 이들의 다양함과 다름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로런 그로프의 소설집 <플로리다>는 그런 점에서 충실하게 소설의 기본 의도를 충족시켜준다.
모두 11편의 소설이 담긴 <플로리다>에는 플로리다와 어떻게든 얽힌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 <둥근 지구, 그 가상의 구석에서>였다. 주인공의 이름은 주드. 그의 아버지는 인종차별주의자이자 파충류를 연구하는 교수로 플로리다에 지천으로 널린 뱀을 연구하는데 여념이 없다. 말 없는 소년 주드는 책을 사랑하는 북부 출신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그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확실해 보이는 숫자를 사랑했다. 아버지가 전쟁으로 부재하는 동안, 어머니는 그 지긋지긋한 뱀 표본들을 늪지에 던져 버리고 살아 있는 놈들은 삽날로 머리를 날려 버린다.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자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트라우마를 지닌 소년 주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대로 잃고 남자로 성장한다. 난 왜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소설에는 다양한 새들이 등장하는데 다른 소설에도 따오기며 갈매기 같은 새들이 비슷한 구성으로 나온다. 소설의 전문가라면 이 새들의 상징성에 대해 분석해 보고도 싶지만 그럴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 관계로 패스. 올해는 시간이 되면 <스토너>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이런 저런 이유로 노숙자가 된 이들도 등장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플로리다의 가난한 지역에 둥지를 주인공의 집 아래 사는 노숙자 커플이 등장하기도 한다. 동네를 달리며 보이는 가족어항 속의 인간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늪지의 개구리가 들려주는 ‘당김음’이란 단어도. 그런데 영어로 당김음은 어떤 단어지?
열대지방은 플로리다를 강타하는 허리케인은 조용한 삶에 대한 타격으로 읽힌다. 이별한 남편이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여자와 있다가 죽었다는 주인공에게 허리케인의 “아이월” 속에 갇히자 남편을 비롯한 망자들이 방문한다. 한 해 연금보다 비싼 샴페인을 마시는 호사를 누리는 인간도 허리케인이라는 자연재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인간의 모든 운명은 비극적으로, 행운이라는 측면으로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역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한 때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주인공은 스테이션 왜건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고 노숙자의 길에 나선다. 수중에 돈이 떨어져 가는 마당에 자존심은 허기 앞에 굴복한다. 바에서 만난 어린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그의 집 냉장고를 털다가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최악이라고 선언했던가. 차마저 털리자 진짜 본격적인 노숙자의 길에 나서게 된다. 인간의 육신에서 뿜어내는 악취를 걷어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이 공복이 주는 나락으로의 초대였다. 바에서 청소 일을 찾기도 하지만 자신을 돌봐주던 이가 병으로 쓰러지자 허름한 모텔에서의 생활도 곧 끝이 난다. 야영장에서 자신이 가진 초라한 먹을거리를 나누고, 제인 일행에 합류한다. 그렇게 몰락은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나는 궁금하다, 한 때 대학의 교수 일도 하던 주인공이 왜 번듯한 직장을 찾지 않고 또 비록 재가하긴 했지만 어머니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지. 타인의 삶은 내가 가진 기준점으로 결국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일까.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의 간호를 맡았던 아름다운 여성이 브라질의 살바도르란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기묘한 운명에 대한 서사도 흥미롭다. 시간은 그녀에게서 아름다움을 빼앗아 갔지만, 언니들이 보장하는 한 달 간의 화려한 휴가를 즐기기 위해 주인공은 남국의 빛나는 바닷가를 찾는다. 그리고 고급 호텔로 향하지만, 갑작스레 도달한 폭풍우에 휘말려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다. 물론 호텔에서 일하는 이들이 그녀를 말리지만, 그녀의 행동을 막을 순 없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가장 원하지는 가게 주인으로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 새벽을 맞는다. 휴가지에서 가장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상황을 로런 그로프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기 드 모파상에 대한 애증을 지니고 두 아들들을 데리고 어머니이자 작가인 그녀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이포르란 곳으로 향한다. 프랑스에 대한 미국인들의 동경이 전면에 등장한다. 아이들이 프랑서 어를 그야말로 습자지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길 원하지만 어린 나이의 아이들에게 너무 과한 요구가 아니었을까. 계속해서 등장하는 모파상이 쓴 소설에 대한 평가와 매독에 걸려 광증에 시달리다 죽은 파렴치한 색정광이었다는 사실이 전면으로 충돌한다. 미국에 비해 저렴하고 질 좋은 부르고뉴 와인을 한껏 마시면서 어머니인 그녀는 지난 십년 동안 미뤄온 기에 대한 평가를 ‘싫어한다’고 결론짓는다. 오랜 기간 습득한 프랑스 어지만 결국 이방인의 언어에 불과하다는 자각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신이 떠나온 플로리다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사친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극적인 뉴스를 오랫동안 터지지 않았던 와이파이가 터지자 알게 된다. 진실의 유예가 때로는 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 않던가.
소설집 <플로리다>는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에 이어 내가 두 번째로 만난 작가의 작품이었다. 공간으로서 플로리다는 내가 가보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 가보지 못할 곳이겠지만, 그 공간을 채운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들이 그려내는 이야기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곳에서 태어나 여생을 보내고 싶은 장소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긋지긋한 무더운 여름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곳일 수도, 휴가를 마치면 돌아가야 하는 삶의 터전일 수도 있는 그런 곳이겠지. 뭐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동경의 장소일 수도. 나에게 소설 <플로리다>는 작가가 전달하는 다양한 메시지들이 넘실거리는 그런 어떤 것도 가능한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