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
강희진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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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진 작가의 두 번째 책을 읽었다.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그의 데뷔작 <유령>을 2011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만났다. 리니지 서버에서 벌어진 내복단에 대한 이야기가 얼핏 기억나는데, 올해 새로 나온 그의 작품 <이신>은 400년 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패배의 기록인 병자호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작가가 제목으로 고른 <이신>은 주인공의 이름(이씨 왕조의 신하로 살라고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이자, 지금은 다른 왕(청나라의 실질적 건국자 홍타이지)을 섬기는 이신(貳臣)이라는 중의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다. 벌써 제목에서부터 기구한 주인공의 운명에 대한 기운이 느껴진다.

 

소설 <이신>은 인조반정(1623)과 정묘호란(1627) 그리고 병자호란(1636)이라는 시대의 굵직한 사건들을 모티브로 삼는다. 우선 주인공 이신은 광해군의 경호대장으로 쿠데타가 일어나자 끝까지 왕을 호위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왕조 국가 조선에서 사대부가 들고 일어나 국왕을 갈아 치우는 쿠데타가 성공한 경우는 이전의 중종반정과 인조반정 두 번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실패해서 역모로 규정되고, 연루된 집안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선조의 손자인 능양군은 졸지에 반정공신들에 의해 옹립되어 왕위에 오른다. 어찌 되었건 간에 왕이 되어 백성들을 평화롭게 해주었으면 좋았으련만, 17세기 동아시아는 그야말로 풍운의 시절이었다.

 

조선이 임진왜란 때 거국적인 노력으로 왕조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준 명나라에 대해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 하여 사대의 예를 다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명나라는 내부의 부패와 타락 그리고 북로남왜라 하여 외부에서 끊이지 않는 침략으로 국가의 존망이 그야말로 경각에 달리게 되었다. 때마침 만주 여진족의 지도자 누르하치와 그의 뒤를 이은 홍타이지가 중원 공략의 야욕을 불태우며 명나라 침략에 나선다. 이런 격랑의 시기에 조선은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인조의 앞선 광해군은 이런 동아시아 정세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절묘한 중립외교를 구사하며 발흥하던 청나라의 침공에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정으로 집권한 인조와 서인세력은 광해군 시절의 모든 정책을 부인하며 막강한 청나라를 오랑캐로 무시하며 오로지 천조국 명나라 섬기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 대한 후과가 바로 정묘호란과 뒤이은 병자호란이라는 희대의 국난이었다.

 

홍타이지의 허를 찌르는 기습작전으로 맹렬하게 저항하는 성들을 우회하여 조선의 수도 한양을 급습하여 결국 남한산성에 갇혀 농성하던 인조 정권의 항복을 받아낸 홍타이지는 우리의 주인공 이신을 조선에 자신의 대리인인 칙사로 파견하여 조선의 내정을 주무르게 된다.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사설이 길었다. 소설의 주인공 이신은 무관의 후예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무예를 배웠지만 서얼 출신이기 때문에 철저한 반상제인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출세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글공부마저 때려치운다. 인조반정으로 자신의 집안은 물론이고 사랑하던 연화의 집안마저 몰락하면서 평안도 산골로 피신하여 나름 행복한 시절을 구가한다. 이신의 이런 짧은 행복한 시절은 오래 가지 못하고, 정묘호란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고 청나라의 포로가 되어 심양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그는 청나라 고관들의 신발을 만드는 갖바치에서 전쟁터에 끌려 나갔다가 황제 홍타이지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하면서 인생역전 드라마를 쓰게 된다. 물론 작가의 소설적 상상이겠지만, 역시 그럴 법한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홍타이지의 총신에서 죽을 죄를 지어 사형 당하는 순간, 특별사면을 받아 조선에 파견된 이신은 강화도 공략전에서 오랑캐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수많은 조선 부녀자들의 죽음을 목도한다. 그것은 9년 전 압록강가에서 심양으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하느니 스스로 차가운 물속에 뛰어든 또 다른 죽음의 데자뷰였다. 탁상공론으로 국가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처와 딸들을 지키지 못했던 조선 사대부들은 병자호란이 끝나고 심양에서 돌아온 환향녀들을 모욕하고 내쫓는 만행을 서슴지 않는다. 사대부들은 입으로만 주자의 성리를 논했을 뿐, 실질적인 인간의 도리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녀의 절개를 지키라며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강상죄를 강요했다. 그에 비해 그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과거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겠다는 이신이야말로 비록 사대부는 아닐지라도 지켜야할 인간의 도리를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그의 삶의 유일한 목표가 사라지는 순간 그의 인생유전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지만 말이다.

 

황제의 칙사이자 자객인 이신의 눈부신 활약으로 잇달아 벌어지는 연쇄살인의 배후가 인조 임금에 대한 역모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도달한다. 신권에 의해 옹립된 허수아비 인조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노회한 권력가로서의 모습이 소설 <이신>에서 다채롭게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척화파의 대표주자 김상헌의 허언을 통해 그의 본 모습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

 

영화 <광해>가 승정원일기에 빠진 보름치 부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했다면, 소설 <이신>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혼란한 시절에 대한 강희진 작가의 상상력의 소산이다. 그리고 그 부분은 정확하게 세월호 사건의 그것과 겹친다. 심리적 트라우마가 완치되지 않은 시점에 만난 소설 <이신>은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더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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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 선생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남진희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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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베르토 볼라뇨 전작 읽기에 도전하고 있다. 작년 말에 그의 메타 소설 <2666>이 출간되었을 때, 주춤하던 볼라뇨 읽기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냉큼 사서 읽기 시작했지만, 어마어마한 분량과 미지의 독일 작가 아르킴볼디를 추적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2666>의 두 번째 권까지 읽고 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심정으로 볼라뇨의 초기작 <팽 선생>을 읽었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으로 처음 시작한 볼라뇨 읽기를 하면서 그의 작품 모두가 걸작은 아니라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특히나 이번에 읽은 <팽 선생>은 더더욱.

 

실존했던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는 소설 <팽 선생>은 1938년 프랑스 파리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데카당스하던 시절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볼라뇨와는 달리 당시 시대 배경에 무지한 독자로서 볼라뇨의 저작 의도가 쉽게 읽히지 않았다. 당시 파리에서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어가고 있던 페루 출신의 시인 세자르 바예호의 죽음과 관련된 일단의 사건을 볼라뇨는 소설에서 재구성한다.

 

우선 화자는 제목에도 등장하는 최면술사 피에르 팽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베테랑 용사로 연금 생활자다. 한편,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쿠데타로 촉발된 인민전선 합법정부와의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1938년,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에 점증하는 파시즘의 위협이 당시 프랑스의 어느 병원에서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죽어가던 망명시인 세자르 바예호의 죽음과 묘하게 중첩된다. 지인이었던 레노 부인의 부탁으로 바예호를 치료해 보려고 하지만, 의사들의 집요한 방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페인 남자들’의 반협박에 가까운 매수에 팽 선생은 그만 넘어가고 만다. 이 과정에서 금전의 유혹에 쉽게 굴복하는 지식인의 유리알 같은 지조의 단면이 엿보인다.

 

현실과 비현실적인 상황을 넘나드는 최면술사 팽 선생의 위험한 줄타기에 솔직하게 몰입할 수가 없었다. 책의 말미에 실린 역자 후기가 없었다면(사실 가능하면 역자 후기는 읽지 않으려고 한다) 이 소설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소설 <팽 선생>을 통해 로베르토 볼라뇨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차라리 오독이라도 뚜렷한 내러티브가 보인다면 그런대로 수긍할 수 있겠지만, 신비주의를 신봉하는 최면술사의 기묘한 체험이 주를 이루는 소설에서 지향점을 찾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소설이 볼라뇨의 <안트베르펜>에 이은 두 번째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스타일이나 문체 혹은 내러티브에 대한 작가의 지향점이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했음의 한 가지 변명이 될까 모르겠다. 발음조차 쉽지 않은 파시스트 플뢰뫼르보두의 등장, 한 때 멘토로 생각하던 리베트 선생에 대한 피에르의 팽의 신랄한 비난 그리고 기욤 테르제프와 이렌느 졸리오퀴리의 기묘한 관계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에 연관된 등장인물들이 모두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특히 피에르 퀴리의 죽음이 사고가 아닌 타살이었다는 플뢰뫼르보두의 주장과 그의 영매 분야 연구 이야기는 일견 황당해 보이기도 한다. 과연 플뢰뫼르보두의 주장이 사실일까? 아니면 흔하디흔한 음모론일까.

 

살아생전에 오직 세 권의 시집만을 출간한 세자르 바예호가 사후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처럼, 그의 죽음을 다룬 소설 <팽 선생>을 쓴 볼라뇨 역시 그와 비슷한 운명을 걸었다. 특히 다른 나라 언어로 쓰인 문학 작품에 야박할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미국 시장에서 볼라뇨 신화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그렇게 볼라뇨는 <팽 선생>에서 앞으로 그의 작품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주제인 파시즘의 점증하는 위협, 예술과의 복잡한 관계 설정, 비밀조직, 질병, 외로움 그리고 세상과 타협한 인간 군상의 모습 등에 초점을 맞춘다.

 

어느 개인의 죽음(세자르 바예호)을 당시 팽창하던 파시즘의 위협과 상대적인 민주적 질서의 붕괴 혹은 개인이 누려야할 자유의 소멸에까지 연결시키는 사고의 확장은 나같이 평범한 독자에게는 확실히 쉽지 않은 과제인 것 같다. 이조차도 로베르토 볼라뇨가 <2666>과 <야만스러운 탐정들> 같은 걸작으로 명성을 날리지 못했다면 그의 초기 작품 <팽 선생>과 만날 일도 없었으리라. 개인적으로 전작읽기에 도전하는 볼라뇨의 작품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그만한 가치가 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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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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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다작으로 유명한 그의 최근작 <몽환화>를 읽었다. 그렇게 많은 책을 내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꿋꿋하게 지키면서 이렇게 재밌는 소설을 창작해내는 작가의 재능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하긴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 <몽환화>의 결말에서 이런 재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슬쩍 드러내기도 했다. 역시 고수답다.

 

전설에나 존재하는 노란색 나팔꽃에 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몽환화>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별 개의 사건으로 출발한다. 도쿄 시내 복판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과 중학교 2학년 소년이 마주한 아스라한 기억 속의 첫사랑이라고나 할까. 고수는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에 반드시 인과관계를 설정한다. 그러니 독자는 주의할 지어다. 소설의 어느 부분에서고, 초반의 설정된 이야기가 등장해서 사건 해결에 핵심적인 기능을 하니 말이다.

 

그렇게 두 개의 사건은 많은 시간이 흘러 핵심 사건인 아키야마 슈지 사건에 도달한다. 작가는 두 명의 남녀 주인공에게 사건 해결의 임무를 부여한다. 한 명은 한 때 올림픽 수영 국가대표를 꿈꾸었던 약관의 아키야마 리노, 그녀는 슈지 할아버지의 손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첫사랑의 주인공인 가모 소타군. 둘은 인생유전이라는 삶의 거친 바다에서 표류 중인 결핍의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심인성 현기증으로 인생의 목표였던 수영을 그만 둔 리노와 후쿠시마 지진으로 원자력 공부에 인생을 걸었던 소타는 불가피하게 인생 좌표의 수정을 해야할 운명이다. 이 둘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꽃을 사랑하던 아키야마 슈지 씨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캐는 중차대한 과제가 주어졌다.

 

아, 여기에 사이드킥 한 명도 빼놓을 수가 없다. 사건 담당 하야세 형사다. 자신의 과오로 가정파탄에 이른 하야세 형사는 아들 유타의 보은을 한다는 의미로 사건 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이 세 명의 주인공이 소설 <몽환화>를 이끌어 가는 명실상부한 삼두마차다. 물론, 하야세의 개입에는 아들 유타의 강력한 압박도 단단히 한몫했다. 그리고 보니 하야세의 개입이야말로 의외의 개연성이라고나 할까. 소설을 읽고 나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출생의 비밀부터 시작해서 살인사건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한창 유행하는 막장 드라마의 요소는 두루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그보다 훨씬 더 품격이 있지만 말이다.

 

소설 <몽환화>는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형사의 그것보다 리노와 소타의 추리력과 과감한 결단력에 더 의존한다. 아버지와의 불화라는 고전 그리스 시대 이래 해결되지 않는 가정불화의 끝에 서 있던 소타는 원자력 공부를 할 정도의 실력으로 냉철한 추리력을 발휘해서 미제 사건에 뛰어 든다. 리노는 약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탐문을 하고 주변 인물을 동원해서 어쩌면 사건의 키를 쥐고 있을 지도 모르는 미지의 여성 이바 다카시(소타의 첫사랑) 추적에 나선다. 예전 같으면 어림 없었을 시간과 노력의 수고를 최근에 발전된 IT 기술인 휴대전화, 이메일 그리고 블로그나 SNS 서비스 같은 방식으로 처리해 나가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문득 또 앞으로 20년 뒤에는 어떤 방식으로 현재의 모습을 대신할지 궁금해졌다.

 

어쨌든 소설 <몽환화>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설정된 과거의 유산이 그들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작가는 <몽환화>에서 이를 빚이라는 이름의 유산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미래가 되고 또 어느 순간엔가는 과거가 되는 것처럼 그 어느 누구도 현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지금의 모습도 결국 과거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었던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진짜 존재하는지 아닌지 모를 노란색 나팔꽃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멋진 추리물을 창조해내는데 성공했다. 그 결론에 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몽환화>를 읽는 최고의 재미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는 또 눈길이 가는 점이 있다. 절대 사소한 사실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캐릭터의 특질을 나타내는 복장에 대한 설명, 누가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 어쩌면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야말로 그 사람을 상징하는 코드가 아닐까. 하야세 형사가 고급 호텔에서 리필이 되는 비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탐문을 하기 위해 가게에 들러 필요도 없는 커피를 마시고 화과자를 사는 소타군의 모습에서 일본인 일반을 분석할 수도 있다. 미국 작가라면 이런 사소한 일상 대신 돌직구를 날리지 않았을까? 아들 유타군의 은인에 대한 의례적인 연하장과 서신 교환이 결정적인 단서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이마저도 요즘에는 일반화된 이메일로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여느 소설책처럼 술술 읽히는 마성의 내러티브 전개가 참 마음에 들었다. 아직 덜 여문 듯한 캐릭터들의 활약에 조금 의문이 가긴 했지만 신구 세대를 오가며 탐문하는 고전 스타일도 빠트릴 수 없는 재미였다. 어쩌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올드 스쿨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최신 기술의 도입에 있어서도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는 중용의 미덕을 다룰 줄 아는 작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전설의 꽃 노란색 나팔꽃인 <몽환화>를 최대한 구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표지도 마음에 든다. 트랜스페어런트 스타일의 표지의 있고 없고 차이가 이렇게 대단한지 또 몰랐다. 참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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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4년 5월 20일 화요일 오후 5-7시
장소 : 서울 명동 해치홀

 

지난 주에 이창래 선생 북콘서트가 열린다는 랜덤하우스 공지를 보고 나서 한참을 고민했다. 아니 평일 오후 5시부터라니. 직장인들은 휴가 혹은 반차를 내고 오라는 말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창래 선생의 책을 작년부터 사모으기 시작했지만 정작 읽지 않고 있다가 지난 달에 혹독하게 감기를 앓으면서 데뷔작인 <영원한 이방인>과 비교적 근간인 <생존자>를 단박에 읽어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어렵사리 구한 <가족>도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 랜덤에서 절판된 <가족>과 <척하는 삶>을 재출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

 

며칠을 그렇게 고민하다가 결국 신청했고, 어제 북콘서트 참석 안내 문자가 도착했다. 지화자~ 그런데 어제 바로 문제가 발생했다. 같이 코업으로 일하는 동료가 오늘 사정으로 결근한다는 비보였다. 이럴 수가! 나마저 자리를 비울 수 없는데... 눈 앞이 캄캄했다. 원래 오늘 두 시간 정도 일찍 퇴근해서 명동으로 가는 플랜이었는데 다 망가졌다.

 

 

 

북콘서트 끝나고 싸인 받을 책까지 골라 놓았는데 이게 어쩔 거란 말인가. 그렇다고 이런 절호의 기회를 포기할 수가 있으랴. 북콘서트는 몰라도 책에 싸인이라도 받자는 심정으로 일을 다 마무리하고 5시 반에 출발했다. 명동행 지하철을 잡아 타고 가까스로 6시 20분경 도착했는데 그 사람 많은 명동에서 북콘서트 장소인 엠플라자의 해치홀을 찾지 못해 황금 같은 시간을 다 까먹어 버렸다네. 일본인 중국인 그리고 태국인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평일 저녁의 명동을 배회하고 있었다. 문득 해외여행 갔을 적에 출퇴근하는 그 나라 사람들 틈에서 관광객처럼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던 생각에 문득 웃음이 나왔다.

 

천신만고 끝에 해치홀을 찾아 갔는데, 이미 북콘서트는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염치 불구하고 북콘서트장에 들어서니 앉을 자리도 없게 그렇게 대성황이었다. 늦게 와서 앉을 자리 타령하는 것도 참.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외국인이 엄청 많았다는 점이다. 확실하게 외국에 널리 알려진 작가답게 다국적군의 편성이 다채로웠다. 앞의 부분은 다 잘라 먹고 Q&A 시간의 마지막 두 질문만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창래 선생의 마지막 스피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선생이 영어로 말해 주면 통역사가 우리말로 통역해주는 그런 과정이었는데 확실히 일반 북콘서트보다 진행이 더디고,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 그리고 긴 호흡의 번역의 경우 전달 부분이 좀 아쉬웠다고나 할까. 이번에 랜덤을 통해 자신의 기존에 출간된 책들이 리이슈되서 출간된 점 그리고 영어로도 많이 읽히지만 새롭게 번역되어 한국말로 읽히는 것도 좋다고 말한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앞 부분도 들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쩌랴 늦어서 다 듣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시간 부족으로 질의응답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 고대하던 싸인을 득템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많은 이들이 나처럼 싸인을 받고 싶어했으나 이창래 선생의 다음 일정 상 그러지 못해 너무 짧게 진행된 싸인회가 아쉬웠다. 어쨌든 난 감명 깊에 읽은 <생존자>와 최신잔 <이런 만조에> 원서에 싸인을 받았다. 싸인 받기 전에 책이 두 권인데 괜찮겠냐고 물으니 선뜻 괜찮다는 말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행사장 입구에서 이번에 재출간된 <가족>과 <척하는 삶>을 정가 14,800원에서 800원 할인된 14,000원에 팔고 있었는데 아직 서점에 깔리지 않은 지라 서점 할인율 10%만 되더라고 사려고 실탄을 준비해 갔는데 가격을 보고는 포기했다. 하긴 책 세권에 싸인을 해달라고 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었겠지. 그리고 싸인회에서 아쉬운 점 하나는 싸인해 주실 이름을 적을 메모지와 볼펜을 준비한 관계자 분이 싸인 받으려고 선 왼편에 계시지 않고 오른편으로 가버리셔서 못내 당황했다. 너무 급하게 행사장으로 가느라 항상 가지고 다니는 볼펜과 메모지조차 준비하지 못해 당황해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메모지는 관계자분에게 하나 얻고, 볼펜은 앞의 분에게 빌려서 허겁지겁 그렇게 싸인 받을 영문 이름을 적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이창래 선생 앞에서 영어 스펠을 하나하나 부르는 쇼를 연출한 뻔 했다.

 

예전에 퓰리처상을 받은 주노 디아스의 싸인을 받았는데, 오늘 싸인 받은 이창래 선생이 앞으로 더 뛰어난 창작 활동을 보여 주셔서 퓰리처상을 넘어 노벨문학상까지 받게 될 그날을 고대해 본다. 나도 노벨상 받은 작가 분의 싸인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하게 될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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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5-2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명 받은 책 너무 근사하네요. 아직 이창래 작가님 책은 못 읽어 봤는데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생존자
이창래 지음, 나중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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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미 중의 하나는 책수집이다. 전작을 하는 작가라면 물론이고, 앞으로 읽게 될 작가의 책도 하나둘 사 모으는 그런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지난 가을엔가 나의 취미 대상으로 물색된 작가가 있으니 바로 이창래 선생의 책들이었다. 이 리뷰 바로 앞에 쓴 <영원한 이방인>에서도 말했지만 국내에 출간된 이창래 선생의 책은 오늘 이야기할 <생존자>외에는 거의 구할 수가 없는 그런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헌책방이 있지 않은가. 헌책방을 통해 절판된 <영원한 이방인>과 <가족>을 차례로 구했다. 비교적 근간에 해당하는 <생존자>도 물론 구했다, 다만 아직 읽지 않았을 뿐. 신작도 아마존을 통해 구입했다. 하지만 책을 사두고도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읽지 않고 있다가 어느 순간 독서열이 폭발해 버렸다. <영원한 이방인>을 읽고 나서, 상당한 두께 때문에 망설이던 <생존자>를 단박에 읽어냈다. 그것도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하던 와중에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책쟁이다.

 

소설 <생존자>는 한국전쟁의 비극으로 시작한다. 전쟁이 언제나 그렇듯 민간인의 희생이 가장 크지 않았던가. 주인공 준 싱어는 전쟁을 겪으면서 아버지와 오빠를 그리고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을 차례로 잃고 고아가 된다. 가히 충격적인 상실로 시작되는 그녀의 연대기는 고난의 행진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36년의 시간이 흘러 공간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겨진다. 미국에 정착해서 골동품상으로 성공한 준은 암세포가 자신의 육신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업을 정리하고 8년 전 자신의 곁을 떠나 세계를 유랑하는 아들 니콜라스를 찾아 나선다. 살아남기 위해 전쟁 중엔 무슨 짓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녀가 이제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이창래 작가는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안고 사는 준에 이어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정착하지 못하는 또 다른 영혼 헥터 브레넌을 창조한다. 헥터와 준 그리고 그들이 한국의 어느 고아원에서 만난 실비 태너는 소설 <생존자>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캐릭터 삼총사다. 준이 전쟁에서 가족을 잃었다면, 아버지를 잃고 전쟁판에 뛰어든 소년 헥터는 삶과 죽음이 실낱같은 차이로 나뉘는 전쟁터에서 인간 고유의 정체성을 상실했다. 전쟁이 끝난지 33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렇기 때문에 50대 중년이 되어서도 그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삶을 계속한다. 그나마 그의 정착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던 도라 역시 불운의 아이콘 준의 등장으로 잃게 된다.

 

두 명만으론 부족했을까? 여기에 한국전쟁보다 좀 이른 만주사변 시기에 일본군의 만행으로 선교사업을 하던 부모님을 처참하게 상실한 실비 태너의 악몽이 겹쳐진다. 광란이 지나간 뒤, 미국으로 건너가 착실한 아가씨로 성장하지만 그런 광기를 직접 체험한 사람이 보통의 삶을 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의 참화로 고아가 된 한국의 아이들을 도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르핀 중독자가 된 목사 사모의 이야기는 반복되는 비극의 재연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생존자>를 통해 강력한 작가의 반전 메시지를 읽을 수가 있었다. 도대체 이보다 더 센 표현과 주제의식으로 전쟁을 반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모두 전쟁 때문에 상실을 겪은 준과 헥터 그리고 실비의 과거가 소설의 들줄이라면, 현재 진행되는 준의 유일한 혈육 니콜라스를 찾는 과정은 소설의 한축을 차지하는 씨줄일 것이다. 이창래 선생은 <영원한 이방인>에서도 보여 주었던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해서 과거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등장인물들이 이런 지독한 상실감에 시달리는 것일까에 대한 과정의 서사를 보여준다. 준이 고용한 탐정 클라인스가 하차하면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헥터가 죽어가는 준을 데리고 아들 니콜라스를 찾아나선 장면은 미국 로드무비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한다.

 

어쩌면 소설 <생존자>가 한국전쟁을 무대로 했다는 점에서 국내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가 그리는 한국전쟁은 단지 비극을 전개하기 위한 무대일 뿐이다. 장소가 굳이 한국일 필요는 없다. 그것이 일본이나 베트남 혹은 아프간이라도 상관없다. 작가는 그런 공간적 배경보다는 전쟁이 초래하는 보편적 비극에 방점을 찍고 있다. 보편 인류의 마음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흔이 어떻게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찰과 분석이 이창래 선생이 <생존자>에서 이룬 문학적 성과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가 예상한 한국전쟁의 디테일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 보다 더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해봤다.

 

한국전쟁보다 소설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앙리 뒤낭이 쓴 <솔페리노의 기억>이 아닐까 싶다. 1859년 6월 24일 유럽의 숙적 프랑스 연합군과 오스트리아 연합군의 30만 명이 맞붙은 치열하고 비참했던 전쟁 후기는 헥터와 실비 그리고 준 모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예의 사건은 지남철처럼 종양으로 죽어가는 준과 그녀를 돕는 헥터를 결국 솔페리노까지 끌어들인다. 서로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을 정교하게 지어낸 뒤에, 죽어가는 엄마의 아들 찾아 삼만리라는 멜로까지 곁들인 다음 마주치게 되는 크고 작은 비밀들이 이어지고, 삶이 곧 구원이라는 도정(道程)을 읽으면서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이보다 그려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데뷔작 <영원한 이방인>에서 이창래 선생이 이민자 소설이라는 특수한 양식을 충실하게 수행해 냈다면, <생존자>에서는 보다 세련되고 정교한 방식으로 보편 인류애에 접근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창래 선생의 이런 소설적 전략이야말로 미국 주류 문단에서 호평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독자 지평의 확장이라는 점에서도 보편적 삶의 진실에 다가서는 이런 자세야말로 누구에게나 호응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먼저 660쪽에 달하는 책의 두터운 두께에 나처럼 절대 겁먹지 마라. 일단 이창래 선생이 구사하는 서사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책의 두께는 한낱 형상에 지나지 않으니까. 이제 슬슬 <가족>과 원서로 구입한 <온 서치 어 풀 시>를 읽어 볼 때가 된 것 같다. 선생의 팬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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