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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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기가 막힌 뉴스 하나를 보았다. 강남구청에서도 댓글부대를 운영하면서 현재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서울시를 공격했다는 내용이다.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에 관한 재판이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공연하게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가 막힐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소셜미디어 확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바이라인이 달리지 않은 기사를 믿을 수가 없는 것처럼, 어느 개인의 생각을 바탕으로 생산된 정보들이 지나치게 범람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우려 때문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계정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다지 유용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과다하게 생산되는 정보들이 언제부터인가 부담스러워지 시작해서 더 이상 보지 않게 됐다. 사실 그럴 시간도 없고.

 

2세대 덧글부대를 주제로 삼은 장강명 작가의 신작 소설 <댓글부대>는 소설 띠지에 둘러진 “가장 빠르고 가장 독”하다는 말 그대로다. 소설이 다루는 대강의 줄거리는 합포회라는 비밀조직이 팀-알렙이라는 온라인마케팅 업체를 동원해서 보수적 아젠다를 전파하고, 자신들의 생각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일련의 진보적 카페들을 공격하고 파괴한다는 내용이다. 팀-알렙 소속의 찻탓캇, 삼궁 그리고 01査10 이렇게 세 명의 콤비들은 바이럴마케팅으로 진화하는 소셜미디어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해내고, 공격 타깃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바탕으로 주어진 임무를 멋지게 수행해낸다. 물론, 합포회에서는 그들의 이런 노고를 현금과 룸살롱에서의 접대로 치하한다. 한편, 찻탓캇이라는 미지의 인물은 임상진이라는 K신문사의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이들의 이야기가 합포회라는 비밀조직에 대한 폭로를 준비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끝에 가서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반전은 또다른 이야기지만.

 

팀-알렙을 조종하는 합포회 그리고 그 합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남산 노인이라는 권력구조는 태생적으로 말단에 있는 삼총사를 포식할 수밖에 없다. 과연 그들은 자신들이 큰그림에서 그려지는 바닥의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삼총사 중에서 그나마 약삭빠른 삼궁은 이철수 팀장의 배포 큰 행동과 남산 노인과의 만남을 통해 그저 보수나 받으며 자신이 하던 사이버테러에 사명감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어느 순간 댓글전투는 옳고 그름의 문제나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교조적인 차원으로 승화하게 된 것이다. 그 바탕에는 삼궁 자신도 핵심권력에 다가서서 한몫 챙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노림수의 발로겠지만.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기엔 당장의 물질적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기자 출신의 장강명 작가는 임상진이라는 문학적 페르소나를 통해 자신의 한때 밥벌이었던 기술을 유감없이 독자에게 선사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매장의 제목은 3제국의 악명 높은 선전기술자 괴벨스의 발언이라고 하는데(사실인지 확인은 안되었지만), 거짓보다 진실을 섞은 거짓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프로파간다가 눈에 띈다. 프레임 설정에 뛰어난 수구세력의 전술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가치관에 이미 확립된 20, 30대 보다 아직 가치관이 형성 중인 십대 청소년들을 타깃으로 삼아 ‘나강캠페인’을 전개한다는 팀-알렙의 전략에서는 약간의 전율이 일기도 했다. 십대를 지나온 지 너무 오래돼서 그네들의 심리에 대해 알 수가 없지만, 작가가 기술하는 내용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할까. 얼마 전, 영화에서 처음으로 접한 파쿠르에 대해서 작가가 다룬 점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유투브 동영상으로 본 귓방망이 댄스에 관한 이야기도 나와서 좀 신기했다. 이젠 정말 B급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양이다. 장강명 작가에게 세상 모든 이야기들은 어쩌면 소설의 소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짧고 빠른 그리고 강력한 메시지 전달이야말로 앞으로 사회에 진출하게 될 청소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핵심전략이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 메시지가 어떤 메시지냐가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덧글부대>에 등장한 것처럼 소수의 정보생산자들이 생산해낸 확인되지 않은 정보(언제부터인가 언론은 그들의 본령 중의 하나인 기사에 대한 팩트 체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것 역시 책에서 다루어진다)를 언론 혹은 다수의 개인이 받아서 확대재생산하고 다양한 방식의 상호작용을 통해 토네이도급의 나비효과를 초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소셜미디어가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미디어가 정치적 암흑세력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는 가정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소설 <댓글부대>의 내용이 작가의 상상력 그대로만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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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2-08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자 출신 작가답게 이번 신작에서도 인터뷰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했을 것 같아요. 이 책은 꼭 읽어보고 싶네요.

레삭매냐 2015-12-09 09:30   좋아요 0 | URL
모든 소설이 그렇지만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우선 소재는 파격적이고 최근 이슈를 포획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다만, 더 핵심적인 곳을 독하고 강하게 그리고 빠르게
잡아내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소설은 참 재밌습니다.

재는재로 2015-12-09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읽어봤는데참독해요 문제는읽고나니진짜보다더진짜같다는점이에요
인터넷의돌아다니는글 뉴스도이제못믿겠어요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 -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과 제국의 왕관을 놓고 벌이는 살아남은 자들의 전쟁
제임스 롬 지음, 정영목 옮김 / 섬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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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계속해서 일주일마다 한 권씩 역사물을 읽고 있다. 지난번에는 로저 크롤리의 <비잔티움 최후의 날>을 그리고 이번주에는 제임스 롬의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을 읽었다. 전공이 역사라 그런진 몰라도 역사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히려 소설보다 더 독서 진도가 빠르다.

 

세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신화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청년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정복이라는 부왕 필리포스 2세의 꿈을 이어 받아 성공시켰다. 한발 더 나아가,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라는 당시 알려진 세계 전부를 정복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인종 세계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명백한 비전을 가지고 정복전쟁에 나섰다. 그 결과, 페르시아와 이란 그리고 인도까지 원정에 나섰지만 오랜 전쟁에 지친 자신의 원정대 병사들도 알렉산드로스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군으로 이루어진 원정대의 핵심 병사들-그들은 실제적으로 용병에 가까웠다-에게 페르시아 제국으로 대변되는 동방세계는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탈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원대한 비전은 자신의 휘하 장군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능력과 이상을 가진 군주 밑에서 7명으로 이루어진 핵심 친위대 사령관들은 효율적인 전쟁기계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 모든 전제에는 한 가지 결정적 단서가 있었다. 가장 강한 알렉산드로스 밑에서라는.

 

오늘날 중앙아시아에 해당하는 박트리아를 거쳐 인도까지 성공적인 원정을 마치고, 자신의 아시아의 수도로 삼은 바빌론에서 아라비아 원정을 기획하던 중에 이 위대한 왕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기원전 323년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그의 사후, 이 놀라운 제국을 이을 후계자가 없었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그의 박트리아 출신 왕비 록사네는 훗날 알렉산드로스 4세라 불리는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지만 당시 아이가 왕자가 될지 공주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의 운명은 7명의 친위대 장군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바로 그 지점부터 수십 년간에 걸친 유혈 내전의 서막이 오르게 된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알렉산드로스에 필적할 만한 업적이나 능력도, 그리고 웅대한 비전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시대의 비극이었다.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에 미국 뉴욕주의 바드대학에서 그리어스와 문학 그리고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제임스 롬 교수는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의 역사적 신화에 도전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세계를 정복하고 있던 시대로부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서일까. 믿을 만한 사료들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사료들조차 신뢰하기에는 상이한 점들이 많아서 저자는 취사선택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했을 것 같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기록되지 않은 혹은 기록에 남지는 않았지만 미지의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때 역사학도로 무조건적으로 사료에만 의존하지 않으면 균형감각을 발휘하는 저자의 서술방식에 매료되었다. 아마 그래서 더 열심히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알렉산드로스 제국 상실의 시대에 등장한 여러 명의 풍운아들의 삶이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위대한 군주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 권좌에 가장 가까웠던 인사는 바로 왕의 인장이 상징하는 제국의 대권을 공식적으로 추인받은 페르디카스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죽기 전 해에 세상을 뜬 사령관 헤파이스티온이 생존해 있었다면, 그가 알렉산드로스의 사후를 책임졌겠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최고지휘관 회의에서 본국 마케도니아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던 안티파트로스와 병사들의 신망을 얻고 있던 유능한 장군 크라테로스에게 유럽을 맡기고 페르디카스와 레오나토스가 아시아의 섭정이 되어 알렉산드로스의 형제 필리포스를 허수아비 왕으로 삼는 것으로 제국의 위기를 봉합했다. 하지만 본국에 남아 아르가이 왕조를 지탱하던 한 축인 알렉산드로스의 모후 올림피아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위대한 아들의 억울한 죽음-독살설이 지배적이었다-을 신원해야 했고, 비록 이방인 왕비에게서 났지만 자신의 손자 알렉산드로스가 왕위에 올라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권좌를 위한 격렬한 투쟁에 현장에 뛰어 들었다. 문제는 그녀에게 왕권을 강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병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공주를 유망한 장군과 정략결혼시키겠다는 책략을 도모한다. 물론 그녀의 꿈은 결국 물거품이 되었지만 말이다.

 

한편, 마케도니아의 군사력 앞에 무릎 꿇고 복종하던 도시국가 아테네의 신민들은 동방에서 숙적 알렉산드로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자신들의 민주정과 영화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반란의 깃발을 들게 된다. 아테네의 비둘기파를 대변하는 정치가 포키온은 필리포스 2세 사후, 젊은 알렉산드로스에게 도전했다가 그야말로 잿더미로 변한 이웃 테베의 비극적 참사와 더불어 굴욕적인 강화를 했던 옛 일을 상기시켰지만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동료 시민들에게 무시당했다. 이렇듯 신화가 된 전제군주의 죽음은 온 세계를 엄청난 격랑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올림피아스가 사윗감 후보로 삼은 레오나토스가 권력쟁투 레이스에서 첫 번째로 이탈하면서 각지에서 군웅할거 시대가 도래했다. 현실주의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제국의 보석이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에서 현란한 선전술을 이용해서 앞으로 이어진 300년 통치의 기반을 닦고 있었고-유명한 클레오파트라의 선조가 된다- 프리기아의 사트랍(총독)이었던 애꾸눈 안티고노스가 뛰어난 전투감각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대표선수로 부상했다. 여기에 전략적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이집트 원정에서 자신의 핵심부대인 은방패부대의 쿠데타로 목숨을 잃은 페르디카스를 지지하던 그리스인 서기 출신 에우메네스의 존재는 확실히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케도니아 귀족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가 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 못지않게 냉정한 현실주의자였던 에우메네스는 페르디카스가 죽은 뒤, 제국의 공적으로 지목되어 한때 무법자 생활을 하는 등 극한의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지만 다시 무대에 복귀해서 아시아의 최강자 안티고노스와 일합을 겨루는 위치에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결국 안티고노스와의 마지막 전투였던 가베네 전투에서 은방패부대의 배신으로 패하면서 그리스인의 꿈은 일장춘몽으로 스러지게 되었다. 서방의 카산드로스와 동방의 안티고노스가 최종 승리를 거두면서 알렉산드로스가 꿈꾸던 제국은 현재의 다극 세계와 비슷한 모습으로 귀결되었다.

 

배신과 동맹이 반복되고, 자기 휘하에 있는 병사와 지휘관들도 언제 상대방이 제시하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갈지 모르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전장을 지배한 알렉산드로스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승부사 기질이 넘치는 알렉산드로스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장기간에 걸친 원정 때문에 터져 나오는 병사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제왕의 동방원정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따르게 병사들은 실제로 용병에 다를 바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병력을 동원하는데 자금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저자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숱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무대의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에우메네스가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중의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있던 주어진 상황에 뛰어나게 대처할 수 있는 임기응변과 자금력이었다. 인도 원정에서 얻은 코끼리 부대 역시 이 대형동물을 보지 못한 서방세계 전사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고대 전사들에게 코끼리 부대는 아마 현대전의 중전차 같은 충격이 아니었을까.

 

확실히 서방세계에 알려져 있던 모든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의 세계통일 비전은 당시 유일무이한 아이디어였다. 정복민과 피정복민이라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 서방의 그리스문화와 동방의 오리엔트 문화를 동화시키겠다는 청사진-그 결과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했다-을 바탕으로 그리스 고위 지휘관들과 페르시아 여인들과의 대규모 합동결혼식을 주선하는 실천력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짧은 치세였다. 그가 장수하면서 자신의 비전을 계승할 수 있는 후계자를 키우는데 성공했더라면 현재의 역사는 과연 달라졌을까? 제임스 롬 교수가 지적하듯, 어쩌면 그것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근대적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군주의 혼혈정책에 반대하는 보수파 지배계급 마케도니아인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출신 병사들이 세계제국 건설이라는 알렉산드로스의 선전의 도구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복전쟁이 동방으로 진행되면서 알렉산드로스가 서방의 합리적 군주의 모델이 아닌 오리엔트 전제군주의 그것, 더 나아가 아몬 신의 아들이라는 신화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도 특이할 만하다.

 

실존했던 역사가 빚어내는 스토리텔링의 힘은 압도적이다. 저자 제임스 롬은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들을 스토리텔링에 얹고, 자신의 역사적 상상력을 양념 삼아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야망과 전쟁 그리고 상실이 그려내는 한 편의 대서사시를 창조해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등장한 무대의 주인공들은 결정적 순간마다 숱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모두가 오랜 갈등과 번민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대부분 잘못된 판단이었고 오히려 역사의 흐름은 우연의 힘에 따라 좌우될 때가 많았다. 제국을 꿈꾸었던 영웅 알렉산드로스의 삶도 그러했는데 하물며 우리네 삶은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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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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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으면서 지식 혹은 깨달음의 지평을 넓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름지기 책 읽는 이들이라면, 책을 통해 얻게 된 사유를 행동으로 전환시켜서 실천에 옮겨야 하는데 대부분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읽게 된 정민 선생의 <책벌레와 메모광>은 개인적으로 앞으로 나의 책읽기에 대해 어떤 지향점을 제시해 준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저자인 정민 선생은 한양대 국문과 교수님이라고 하는데, 내게는 왠지 한학을 하시는 선비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선생은 우리 선현들이 남긴 한문 글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시고 계신 것 같다. 방대한 저작을 남긴 다산 선생의 편지글들을 모으시고, 다산 학풍의 바탕이 되는 초서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바다 건너 하버드 대학 옌칭도서관에 연구를 하러 가셔서도 자료 수집에 여념이 없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쓰신 글의 소개 순서가 좀 엇갈리긴 하지만 연구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들과 당신이 남기신 메모를 딱풀로 책제본하시는 광경을 보면 모든 것이 속도로 결정되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전형적인 선비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선생의 제본 철학은 단순하게 모은 자료를 남기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정선한 자료들을 하나로 만드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공부하게 된다는 지론이다. 기계적으로 딱풀을 이용해서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수집하게 된 과정을 메모로 남기고(선생은 포스트잇을 사용하시기 보다 선현들의 발자취를 따라 붓과 먹을 이용해서 첨언 남기시길 즐기시는 모양이다) 다시 한 번 읽어 보시면서 비로소 수집한 자료를 완성하는 것이다. 메모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듯, 당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설득력 있는 메아리라고 부르고 싶다.

 

책읽기가 개인의 사유를 자극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생각이라는 건 항상 그렇지만, 너무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기록하지 않으면 달아나 버리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책 읽고 나서 보잘 것 없는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 상세하게 메모를 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해 보면 전자의 품질이 월등하게 낫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메모 공책을 따로 준비해서 책 읽다 말고 영감을 받은 내용들을 그 때마다 적어야 하는데, 이게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면 책 읽기의 맥이 빠지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정민 선생의 쓰신 대로 생각에 날개를 달리게 하고, 사고에 엔진을 붙이려면 이 정도 수고는 마다해야지 않을까.

 

책벌레 이야기보다 메모광 이야기가 먼저 튀어 나왔는데, 우리 선현 중에는 간서치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이덕무 선생에 관한 고사가 책에서 자주 등장한다. 가난 때문에 집에 불을 때지 못해 동상에 걸려 가면서 독서와 필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서는 가슴 한편에 찡한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비싼 책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워, 누가 희귀한 고서를 소장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여러 번 청해 구해다가 독서와 필사를 하고 약속대로 반드시 돌려주었다고 한다. 그런 신뢰가 바탕이 되어 책주인이 먼저 나서서 책을 빌려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고 했던가. 멋진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나도 멋진 장서인을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해왔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여전히 주문을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책의 권두를 시작하는 한중일 삼국의 장서인 비교도 흥미롭다. 한국의 경우에는 책을 훼절시켜 가면서까지 장서인의 기록을 지우려고 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소유 관계의 단절을 뜻하는 ()”라는 글자를 찍었단다. 좀 정감이 없다고 해야 할까. 중국에서는 책을 소유할 때마다 개의치 않고 줄줄이 장서인을 찍어댔다. 정민 선생의 글 중에 책 읽는 사람이 주인이다라는 표현을 얼핏 본 것 같은데, 바로 공감할 수가 있었다. 어제도 독서모임에서 개인이 집에서 소장할 수 있는 책의 양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렇게 책을 사 모은들 읽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며(왠지 찔끔하다)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책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도 널리 읽을 수 있도록 선물로 주거나 기증하는 게 독서라는 책의 본령을 위해서도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천은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꾸준한 책읽기와 그에 따른 메모하는 습관을 권장하는 이 책의 메인 테마 외에도 소소하면서도 유용한 독서 정보들이 <책벌레와 메모광>에는 담뿍 담겨 있다. 가령 예를 들어 누군가 책에 꽂아둔 은행나무 잎의 경우를 살펴보자. 나도 개인적으로 그런 적이 몇 번 있는데 가을날의 독서를 즐기다 바닥에 떨어진 은행 이파리를 그냥 재미로 책에 꽂아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선현들은 책벌레의 공격으로부터 책을 보호하기 위해 은행나무 잎을 책에 꽂았다고 한다. 한 수 배웠다. 그리고 진한 향기의 운초도 비슷한 효과를 거두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두어(蠹魚)라 불리는 책벌레는 물론 이와 벼룩 퇴치에도 효과만점이라고. 오징어 먹물 이야기는 또 어떤가. 요즘 오징어 먹물을 이용한 파스타나 염색약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붓글씨를 오징어 먹물로 쓴다는 말은 또 처음 들어봤다. 오징어 먹물로 글을 쓰면 마치 펄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멋져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종이에 스미지 않고 박락이 떨어지면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오징어 먹물로 사기꾼들이 계약서 작성 등에 장난질을 치기도 했다니 색다른 소재를 이용한 글쓰기의 운치를 즐기는 선비들의 풍류에 비할 바가 아닌 것 같다.

 

4년 전 선생의 <삶을 바꾼 만남> 온라인 연재를 인연으로 출판사가 주최한 강진답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오래전 역사학도로 수많은 답사를 다녀봤지만, 개인적으로 그 답사를 최고로 꼽고 싶다. 남도답사를 직접 인도해 주시며 방문한 곳곳에 얽힌 사연을 설명해 주시던 선생의 모습을 보고 이 분이야말로 21세기 모바일시대에 풍유를 아는 보기 드문 선비구나 싶었다. 그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당신의 분야에서 학문에 정진하시는 모습을 <책벌레와 메모광>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어 감개무량했다. 아울러 선생 삶의 천진한 즐거움을 일별할 수 있어 좋았다. 강진답사 4행시 장원으로 받은 부채는 아까워 쓰지 못하고 고이 모셔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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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1-29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약용의 초서 방법을 직접 실행해보고 싶은데, 손으로 기록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한글 워드로 책의 문장을 베껴서 치는데 이것도 의외로 시간이 많이 들어요.

레삭매냐 2015-11-30 09:17   좋아요 0 | URL
요즘 필사를 위한 책들이 또 트렌드인가 봅니다.
그전에는 컬러링 책들이 트렌드였는데 말이죠.

전 손글씨가 엉망이라 차마 도전도 못해보겠네요.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워드로 치는 것도 쉽지 않
을 것 같은데요 :)

대장물방울 2015-12-10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그러신 레삭매냐 님도 축하드려요. 흐흣 : )

레삭매냐 2015-12-14 13: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대장물방울님 ~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
로저 크롤리 지음, 이재황 옮김 / 산처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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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소설만 읽다가 간만에 역사 서적을 읽었다. 며칠 전 출판사 대표들이(책만사) 뽑은 올해의 책 인문사회자연과학 부분에 선정됐다는 기사가 결정적이었다. 지난 화요일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가독성이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폭발해서 금세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어젯밤에 피크를 올려서 오늘 아침에 완독했다. 처음 들어본 작가였는데 영국 출신 교사이자 역사가인 로저 크롤리의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이 바로 그 책이다. 지중해 세계와 오스만 제국을 주력으로 삼는 작가로 기존에 <바다의 제국들>과 <부의 도시, 베네치아>가 출간됐다. 세 책 모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 특이하다.

 

오래 전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존 줄리어스 노리치 경의 대작 <비잔티움 연대기>와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을 다룬 책도 읽어서 그런지 그 때 읽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공방전의 실제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와 수석대신 할릴 파샤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스 11세와 제노바 출신 용병대장 조반니 주스티니아니 같은 이름들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1453년 5월 29일 화요일, 당대 그리스인들이 그리고 튀르크인들이 모두 로마제국(룸)이라 불리던 지중해의 진주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됐다. 이 사건은 로저 크롤리 작가가 본격적인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이 시작되기 전, 다룬 프롤로그 부분에서 역사의 결정적 순간이었다고 적었던 말라즈기르트(만지케르트) 전투를 능가하는 시대의 변곡점이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단순하게 어느 한 도시가 이슬람 세력에게 함락된 것이 아니라, 15세기 발흥하던 이슬람 세력의 대표선수 오스만 제국의 서방진출을 최전방에서 막고 있던 기독교세계의 보루가 무너진 결정적 순간이었다. 더 나아가 중세시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분기점이기도 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건설된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은 천년 넘게 수많은 적들의 침략 앞에 선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서쪽 유럽 쪽의 삼중장벽은 침공군에게 숱한 좌절을 안겨 주었으며, 크리소케라스 만은 쇠사슬 장벽으로 그리고 동쪽의 마르마라 해는 빠른 물살 때문에 바다에서의 공격을 막아 주고 있었다. 그렇게 제국의 수도는 4차 십자군 전쟁 때 같은 기독교도들에게 약탈당한 것과 내전 때 내부세력의 협력으로 성문이 열린 것을 제외하면 침략자에게 공략당한 적이 없었다.

 

7세기 발흥한 이슬람 세력의 무자비한 공격을 ‘그리스의 불’이라는 당대 최고의 공격력을 지닌 비밀병기로 제압하면서 난공불락이라는 콘스탄티노플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천년역사를 자랑하는 비잔티움 제국은 1299년 건국된 오스만 제국을 비롯해서 기존의 셀주크투르크, 십자군 원정과 발칸 반도의 불가르 족 등의 계속되는 침입과 서방 가톨릭 세계와 필리오퀘로 대변되는 신학적 교리 논쟁, 숱한 내전을 겪으면서 쇠락해 가기 시작했다. 46쪽에 나오는 빵 가격과 목욕물을 데우면서도 성자와 성부의 품격 논쟁을 인용한 부분에서는 저자의 유머 감각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제국을 유지하는데 핵심적 자원과 인적 보고였던 동방의 아나톨리아를 오스만 제국에게 상실하면서 제국의 쇠퇴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사실 15세기 초반 제국의 영토는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일부와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흑해 연안의 일부 도시가 전부였다. 영락한 과거의 제국은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1451년 19세의 나이로 오스만 제국의 다섯 번째 술탄의 자리에 오른 청년 메흐메트 2세는 아버지 무라트 2세가 죽고 형제들을 일소하면서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암호명 “빨간 사과”라 불리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서 새로운 제국의 수도로 삼아야겠다는 야망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뛰어난 정복가였던 무라트 2세를 이은 청년 술탄의 야심을 얕잡아 본 서방의 교황과 기독교왕국들은 가톨릭과 정교회 통합에 부정적이었던 비잔티움 제국의 위기를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지원을 꺼렸다. 해상을 주름잡던 베네치아 공화국과 제노바 역시 자신의 이권 챙기기에만 몰두했지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공략이 훗날 지중해 무역과 자신들의 거점 유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술탄은 즉위 초기 친위대의 반란을 제압하고, 현상유지를 주장하는 할릴 파샤로 대표되는 보수파 대신들을 설득해서 마침내 빨간 사과 공략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카이사르와 알렉산드로스를 잇는 세계제국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은 메흐메트 2세는 즉위와 동시에 빨간 사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계획 아래, 비밀리에 공략 준비를 진행시키기 시작했다. 헝가리인 오르한이라는 대포기술자를 채용해서, 비잔티움 제국의 심장부인 삼중장벽을 쳐부술 막강한 화력의 대포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터키에 해당하는 아나톨리아 대부분과 발칸 반도를 실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술탄에게 신성한 무슬림 전사로서 지하드 성전을 수행하는 가지 전사의 이미지로 무슬림 전사들의 참전 의지를 고취시켰다.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는 그가 말하던 대로 ‘알라의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로 이슬람 세력이 차지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유럽의 십자군 원정 같은 침략의 전초기지로 활용될지 모를 일이었다. 아울러 화승총과 대포 같은 최신식 군사기술 그리고 전쟁에서 고래로 무엇보다 중요한 병참 보급의 중요성을 잘 파악하고 술탄은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콘스탄티노플 공략에 나서게 된다. 보스포로스 해협을 통한 해상보급을 차단하게 위해 유럽 대륙 쪽의 가공할 만한 요새 보아즈켄(루멜리 히사르)을 건설해서 콘스탄티노플의 목을 죄기 시작한다.

 

이렇게 화려한 공격군에 비하면 방어군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했다. 자발적으로 참전한 주스티아니를 비롯한 유럽 지원군을 비롯한 대략 7,000명 남짓한 방어군으로 조금 과장되긴 했겠지만 20만에 달하는 공격군을 상대하는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사방으로 포위된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티움 수뇌부는 서방세계의 지원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교황의 파문 조치와 필리오퀘 논쟁 그리고 250년 전 4차십자군 원정 때 당한 기억을 잊지 않은 그리스인들이 가진 상호간의 불신 그리고 서방세계의 분열은 십자군 원정 같은 단일대오로 이슬람세력에 대항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서방세계에서 원조가 끊긴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메흐메트 2세가 이끄는 공격군의 승리가 손쉽게 이루어지진 않았다. 해상전투에 여전히 약점을 가지고 있던 오스만군의 해상공략 작전은 번번이 실패로 귀결되었고, 크리소케라스만에 해상 전투함을 투입시키는 상상을 초월하는 작전도 방어군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안겨 주긴 했지만, 공략전에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콘스탄티노플 공략을 무한정으로 끌 수 없었던 술탄은 이탈리아 함대를 필두로 한 서방지원군과 육상에서 “가공할 백기사” 헝가리의 후녀디 야노시가 이끄는 십자군이 도나우 강을 건넜다는 낭설이 오스만 병영에 퍼지면서 병사들이 소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최후가 될 공세에서 메흐메트 2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마지막 승부를 걸기로 결심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저 크롤리는 세심하게 나뉜 공격 시간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비잔티움 제국 최후를 명징하게 기술한다. 비잔티움 제국은 오스만 군대의 최후 공격을 막을 수도 있었으나, 언제나 전쟁의 승부가 그렇듯 의도하지 않은 사소한 우연의 개입으로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술탄의 승리로 끝났다.

 

로저 크롤리는 주로 패자인 기독교 세계의 역사가들이 남긴 기록에 중도적인 입장에서 접근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여준다. 함락 직후 콘스탄티노플 시내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약탈극에 대해서도, 중세 시점에 봤을 때 그렇게 잔혹한 것만은 아니었노라고 변론하고 있다. 사실 술탄에게 장기간의 포위전에 지친 병사들을 자극하기 위해 무슬림 율법에 정한 대로 사흘 간의 약탈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원문에는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미신을 빼면 시체’였다는 메흐메트 2세에 대해서도 훗날 서방세계에서 묘사한 대로 흡혈귀 같은 존재라기 보다 주어진 현실주의자로서 냉혹한 판단력을 지닌 군주로 그리고 있다. 사실 술탄은 이슬람 원칙에 충실한 독실한 무슬림은 아니었고, 하나의 종교를 바탕으로 하나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세속화된 군주의 전형이었다.

 

에필로그 부분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당대에는 미처 몰랐던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도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오스만의 서진을 손놓고 지켜보고 있던 기독교 국가들은 서방을 모두 집어 삼키려는 술탄의 정복전쟁이 발등에 떨어진 뒤에야 비로소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됐다. ‘빨간 사과’ 함락 이후 장장 2세기에 걸친 오스만의 서방원정은 빈에서 간신히 기독교 연합군이 막은 후에야 끝이 났다. 순망치한이라는 말처럼 제노바 식민지였던 갈라타(페라)는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술탄의 수중에 들어가게 됐다. 베네치아 역시 동방무역을 위한 지중해 거점들을 모두 상실하고, 본국조차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지중해 무역을 대신해서 신대륙이 개발되면서 세계 역사의 중심은 대서양으로 이동했다. 활자인쇄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콘스탄티노플 공략전은 수많은 기록자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구전으로 전승되던 기록들은 이제 문자화되어 역사에 남게 되었다. 아울러 야만적인 튀르크인들이라는 이미지도 이 과정에서 형성되어 굳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여전히 서구사회에 횡행하는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원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로저 크롤리는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문헌들을 참고하면서, 신뢰할만한 기록뿐만 아니라 과장되거나 야사로 치부될 수 있는 흥미로운 다양한 자료들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는다. 훈련 받은 역사가답게, 취사선택할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전쟁 양태의 변화는 물론이고, 기독교 종파 분쟁의 뿌리, 오스만과 비잔티움 제국 왕위 계승문제, 복잡한 각국의 외교 관계, 합리적 이성 대신 미신에 근거한 (위서를 바탕으로 한) 예언과 징조, 전쟁터에서의 잔혹행위, 각자의 유일신을 믿는 이들의 광신적인 행동에 이르는 다양한 면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요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국정화 교과서 파동이 한창인데, 왜 역사서술의 다양성이 필요한지 로저 크롤리의 저술이 그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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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노이의 불평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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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시작한 모던 라이브러리 100 리스트에 9번째로 필립 로스의 초기 걸작이라고 칭송받는 <포트노이의 불평>을 추가했다. 작년에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반절쯤 읽고 나서 덮어 두었다가 지난주에 다시 도전해서 완독했다. 출간된 지 46년이 지나도록 필립 로스가 구사하는 언어는 영화 <아메리칸 파이>(이 영화도 이제 한물갔지만)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로 원색적이면서도, 섹스에 미친 주인공 앨릭잰더 포트노이의 심리분석 혹은 자기 내면적 고백을 통해 현대인의 욕구불만의 원천을 탐색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고난을 당한 지난 이천년 동안 핍박받아온 유대인의 억압된 리비도를 비록 지면으로나마 마음껏 분출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올해 서른세 살 먹은 뉴욕의 잘나가는 엘리트 변호사 앨릭스 포트노이는 시민의 공복으로 근무하고 있다. 월반을 밥먹듯이 하고 고등학교 수석졸업은 물론이고, 중부의 앤티오크 대학을 졸업하고 그야말로 성공의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가 지금 슈필포겔이라는 정신과 의사 앞에서 자신의 수치스럽고 어두운 과거에 대해 남김없이 까발리고 있는 중이다. 인간기회위원회 부감독관이라는 지위에 맞지 않을 법한 상스러운 비속어를 남발하는 이 유대인 청년에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보험쟁이로 정식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아버지 잭 포트노이는 평생 변비에 시달리며 주인공 앨릭스와 누이 해너를 키어왔다. 아버지보다 포트노이를 더 괴롭히는 가족 구성원은 바로 어머니 소피다. 유대 율법에 따라 자식들을 키워내는 것이야말로 자기 삶의 진정한 목표라고 설정한 어머니는 사춘기로 이제 막 접어드는 아들 포트노이를 옥죄기 시작한다. 이에 대한 반항이라고 해야 할까? 이성 그것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여성에 대한 성적 상상으로 앨릭스는 희대의 마스터베이션 전문가가 되기에 이른다. 우윳병, 양말, 야구글러브 심지어 저녁식사로 먹을 간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한 포트노이의 성적 일탈은 그 끝을 모르고 뻗어 나가기 시작한다. 이 음침한 청년의 과거 고백이 시간당 수백 달러가 드는 뉴욕의 어느 정신과 클리닉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포트노이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었던 걸까? 정신과 상담이 자신의 치료(?)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주인공은 시간과 금전을 투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그의 억압된 리비도는 말을 나눌 상대 혹은 공격대상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마마보이로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청년은 오랜 체험을 바탕으로 자아를 억눌러야만 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처럼 거의 일방적인 포트노이의 모놀로그가 끝없이 이어진다.

 

초기작 <포트노이의 불평>에서 필립 로스는 훗날 자기 문학의 전매특허가 되는 성을 통한 모든 문제의 해석이라는 주제의식을 수립한다. 우디 앨런의 영화에 등장하는 잘난 유대인의 전형이라는 이미지는 그의 소설 속에서도 다르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필립 로스 소설에 등장하는 성공한 일련의 유대인들의 이미지는 유년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비범한 학업 성취에서부터 비롯되는 것 같다. 성공한 변호사라든가 대학교수, 작가 혹은 아트 디렉터들의 이야기 심지어 불평마저도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대척점에 서 있는 성공하지 못한 이들의 인생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 아닌가. 이 성숙하지 못한 유대인 남자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자신이 만나는 여성들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하지 못하고 그저 하룻밤의 정사 상대로 생각하는 경향을 눈에 띄게 드러낸다. <포트노이의 불평>에서도 자신이 꿈꿔온 모든 성적 판타지를 완성시켜준 이방인 여자친구 메리 제인 리드를 멍키라고 폄하하며 훈육시키려는 모습에서 경악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은 자신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포트노이에게는 어림도 없는 수작에 불과하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는 나쁜 남자의 모범답안 같은 존재다. 그동안 자신을 성적으로 착취한 포트노이를 멍키가 언론에 다 까발리겠다고 하자 불안에 벌벌 떠는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직접 행동에 나선 교육받은 진보적 사회주의자로 행세하면서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위선적인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기도 한다.

 

매력적인 금발 이방인 여자를 정복하는 것이야말로 신이 주신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기는 듯 행동하는 포트노이의 행동방식은 개인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누가 보기에도 무신론자인 포트노이가 얼토당토않은 선민의식을 발동시켜서 임신했다고 착각한 케이 캠벨에게 유대인으로 개종하라는 건 또 무슨 짓인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앨릭스 어머니 소피의 집요한 세뇌공작은 성공을 거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모르는 부지불식간에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타자에게 요구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가진 도덕적 우월감의 또다른 표현방식이 아니었을까. 그런 치졸한 방식의 정신승리야말로 앨릭스 포트노이가 극복하려는 강박관념의 원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심리적 압박이야말로 그들이 이방인들의 세계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남아 성공을 거둔 원동력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한편,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엄청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천재 피아니스트로 또다른 유대인 어머니의 자랑거리였던 로널드 림킨의 유서를 빗대어 조롱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 역시 어머니의 심리적 조종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다 자란 엄마의 마리오네트일 뿐이다. 매순간 매력 넘치는 멋진 이방인 여성과의 무분별한 섹스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은 수컷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신의 카운슬러 닥터 슈필포겔에게 악을 쓴다. 도대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런 개인의 성적 혼돈상태는 여권신장, 인종차별철폐 그리고 반전평화운동이 전 미국을 뒤덮던 1960년대 말의 시대상을 상징한다. 과연 슈필포겔 박사는 우리의 불쌍한 포트노이에게 어떤 처방을 선사할 것인가. 아니 그가 과연 치료는 가능한 걸까?

 

필립 로스의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은 야누스의 얼굴 같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혹자에게는 전무후무할 정도로 파렴치한 외설적인 소설로 읽힐 수도 있고, 또다른 이에겐 부모의 억압 아래 자란 불쌍한 청년의 신경쇠약을 극복하기 위한 파란만장한 성적 오딧세이로도 읽힐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트노이의 불평>은 어느 단편적인 해석에 의존하기에는 너무 다채로우면서도 논쟁적인 소재들을 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필립 로스는 이 소설이 발표된 후에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던 것 같다. 최근 읽은 필립 로스 후기 소설에 비해, 그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포트노이의 불평>은 거칠고 도발적이다. 그 점의 이 소설의 또다른 매력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누구 말대로 이 책을 두 번 읽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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