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 -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과 제국의 왕관을 놓고 벌이는 살아남은 자들의 전쟁
제임스 롬 지음, 정영목 옮김 / 섬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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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계속해서 일주일마다 한 권씩 역사물을 읽고 있다. 지난번에는 로저 크롤리의 <비잔티움 최후의 날>을 그리고 이번주에는 제임스 롬의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을 읽었다. 전공이 역사라 그런진 몰라도 역사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히려 소설보다 더 독서 진도가 빠르다.

 

세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신화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청년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정복이라는 부왕 필리포스 2세의 꿈을 이어 받아 성공시켰다. 한발 더 나아가,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라는 당시 알려진 세계 전부를 정복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인종 세계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명백한 비전을 가지고 정복전쟁에 나섰다. 그 결과, 페르시아와 이란 그리고 인도까지 원정에 나섰지만 오랜 전쟁에 지친 자신의 원정대 병사들도 알렉산드로스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군으로 이루어진 원정대의 핵심 병사들-그들은 실제적으로 용병에 가까웠다-에게 페르시아 제국으로 대변되는 동방세계는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탈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원대한 비전은 자신의 휘하 장군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능력과 이상을 가진 군주 밑에서 7명으로 이루어진 핵심 친위대 사령관들은 효율적인 전쟁기계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 모든 전제에는 한 가지 결정적 단서가 있었다. 가장 강한 알렉산드로스 밑에서라는.

 

오늘날 중앙아시아에 해당하는 박트리아를 거쳐 인도까지 성공적인 원정을 마치고, 자신의 아시아의 수도로 삼은 바빌론에서 아라비아 원정을 기획하던 중에 이 위대한 왕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기원전 323년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그의 사후, 이 놀라운 제국을 이을 후계자가 없었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그의 박트리아 출신 왕비 록사네는 훗날 알렉산드로스 4세라 불리는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지만 당시 아이가 왕자가 될지 공주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의 운명은 7명의 친위대 장군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바로 그 지점부터 수십 년간에 걸친 유혈 내전의 서막이 오르게 된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알렉산드로스에 필적할 만한 업적이나 능력도, 그리고 웅대한 비전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시대의 비극이었다.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에 미국 뉴욕주의 바드대학에서 그리어스와 문학 그리고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제임스 롬 교수는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의 역사적 신화에 도전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세계를 정복하고 있던 시대로부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서일까. 믿을 만한 사료들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사료들조차 신뢰하기에는 상이한 점들이 많아서 저자는 취사선택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했을 것 같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기록되지 않은 혹은 기록에 남지는 않았지만 미지의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때 역사학도로 무조건적으로 사료에만 의존하지 않으면 균형감각을 발휘하는 저자의 서술방식에 매료되었다. 아마 그래서 더 열심히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알렉산드로스 제국 상실의 시대에 등장한 여러 명의 풍운아들의 삶이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위대한 군주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 권좌에 가장 가까웠던 인사는 바로 왕의 인장이 상징하는 제국의 대권을 공식적으로 추인받은 페르디카스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죽기 전 해에 세상을 뜬 사령관 헤파이스티온이 생존해 있었다면, 그가 알렉산드로스의 사후를 책임졌겠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최고지휘관 회의에서 본국 마케도니아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던 안티파트로스와 병사들의 신망을 얻고 있던 유능한 장군 크라테로스에게 유럽을 맡기고 페르디카스와 레오나토스가 아시아의 섭정이 되어 알렉산드로스의 형제 필리포스를 허수아비 왕으로 삼는 것으로 제국의 위기를 봉합했다. 하지만 본국에 남아 아르가이 왕조를 지탱하던 한 축인 알렉산드로스의 모후 올림피아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위대한 아들의 억울한 죽음-독살설이 지배적이었다-을 신원해야 했고, 비록 이방인 왕비에게서 났지만 자신의 손자 알렉산드로스가 왕위에 올라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권좌를 위한 격렬한 투쟁에 현장에 뛰어 들었다. 문제는 그녀에게 왕권을 강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병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공주를 유망한 장군과 정략결혼시키겠다는 책략을 도모한다. 물론 그녀의 꿈은 결국 물거품이 되었지만 말이다.

 

한편, 마케도니아의 군사력 앞에 무릎 꿇고 복종하던 도시국가 아테네의 신민들은 동방에서 숙적 알렉산드로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자신들의 민주정과 영화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반란의 깃발을 들게 된다. 아테네의 비둘기파를 대변하는 정치가 포키온은 필리포스 2세 사후, 젊은 알렉산드로스에게 도전했다가 그야말로 잿더미로 변한 이웃 테베의 비극적 참사와 더불어 굴욕적인 강화를 했던 옛 일을 상기시켰지만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동료 시민들에게 무시당했다. 이렇듯 신화가 된 전제군주의 죽음은 온 세계를 엄청난 격랑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올림피아스가 사윗감 후보로 삼은 레오나토스가 권력쟁투 레이스에서 첫 번째로 이탈하면서 각지에서 군웅할거 시대가 도래했다. 현실주의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제국의 보석이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에서 현란한 선전술을 이용해서 앞으로 이어진 300년 통치의 기반을 닦고 있었고-유명한 클레오파트라의 선조가 된다- 프리기아의 사트랍(총독)이었던 애꾸눈 안티고노스가 뛰어난 전투감각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대표선수로 부상했다. 여기에 전략적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이집트 원정에서 자신의 핵심부대인 은방패부대의 쿠데타로 목숨을 잃은 페르디카스를 지지하던 그리스인 서기 출신 에우메네스의 존재는 확실히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케도니아 귀족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가 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 못지않게 냉정한 현실주의자였던 에우메네스는 페르디카스가 죽은 뒤, 제국의 공적으로 지목되어 한때 무법자 생활을 하는 등 극한의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지만 다시 무대에 복귀해서 아시아의 최강자 안티고노스와 일합을 겨루는 위치에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결국 안티고노스와의 마지막 전투였던 가베네 전투에서 은방패부대의 배신으로 패하면서 그리스인의 꿈은 일장춘몽으로 스러지게 되었다. 서방의 카산드로스와 동방의 안티고노스가 최종 승리를 거두면서 알렉산드로스가 꿈꾸던 제국은 현재의 다극 세계와 비슷한 모습으로 귀결되었다.

 

배신과 동맹이 반복되고, 자기 휘하에 있는 병사와 지휘관들도 언제 상대방이 제시하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갈지 모르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전장을 지배한 알렉산드로스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승부사 기질이 넘치는 알렉산드로스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장기간에 걸친 원정 때문에 터져 나오는 병사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제왕의 동방원정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따르게 병사들은 실제로 용병에 다를 바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병력을 동원하는데 자금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저자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숱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무대의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에우메네스가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중의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있던 주어진 상황에 뛰어나게 대처할 수 있는 임기응변과 자금력이었다. 인도 원정에서 얻은 코끼리 부대 역시 이 대형동물을 보지 못한 서방세계 전사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고대 전사들에게 코끼리 부대는 아마 현대전의 중전차 같은 충격이 아니었을까.

 

확실히 서방세계에 알려져 있던 모든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의 세계통일 비전은 당시 유일무이한 아이디어였다. 정복민과 피정복민이라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 서방의 그리스문화와 동방의 오리엔트 문화를 동화시키겠다는 청사진-그 결과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했다-을 바탕으로 그리스 고위 지휘관들과 페르시아 여인들과의 대규모 합동결혼식을 주선하는 실천력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짧은 치세였다. 그가 장수하면서 자신의 비전을 계승할 수 있는 후계자를 키우는데 성공했더라면 현재의 역사는 과연 달라졌을까? 제임스 롬 교수가 지적하듯, 어쩌면 그것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근대적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군주의 혼혈정책에 반대하는 보수파 지배계급 마케도니아인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출신 병사들이 세계제국 건설이라는 알렉산드로스의 선전의 도구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복전쟁이 동방으로 진행되면서 알렉산드로스가 서방의 합리적 군주의 모델이 아닌 오리엔트 전제군주의 그것, 더 나아가 아몬 신의 아들이라는 신화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도 특이할 만하다.

 

실존했던 역사가 빚어내는 스토리텔링의 힘은 압도적이다. 저자 제임스 롬은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들을 스토리텔링에 얹고, 자신의 역사적 상상력을 양념 삼아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야망과 전쟁 그리고 상실이 그려내는 한 편의 대서사시를 창조해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등장한 무대의 주인공들은 결정적 순간마다 숱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모두가 오랜 갈등과 번민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대부분 잘못된 판단이었고 오히려 역사의 흐름은 우연의 힘에 따라 좌우될 때가 많았다. 제국을 꿈꾸었던 영웅 알렉산드로스의 삶도 그러했는데 하물며 우리네 삶은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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