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린 곰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더라. 분명 어떤 미디어를 통해서였을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기 시작해서 재밌다고 생각하고 단박에 읽었다면 그 기억의 흔적이 남아 있을 텐데, 널뛰기 독서를 하다 보니 읽게 된 동기조차 잊어 버렸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그래도 다 읽었고 만족스러웠다면 그것으로 된 게 아닌가.

 

아르토 파실린나는 핀란드에서 꽤 유명한 작가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작가다. 나도 집에 누군가 선물해준 <기발한 자살여행>이라는 책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사실 확실하지 않다) 읽진 않았다. 그러다가 제목도 기발한 <하늘이 내린 곰>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과 절판돼서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역시나 절판본 컬렉터의 본성이 발동되어 멀리 예스24 중고서점에 달려가 이 책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우시마주의 눔멘패를 찾아 보려고 구글맵의 도움을 받았지만 인근의 삼마티까지는 찾았지만 눔멘패는 찾지 못했다. 그래도 가위로 유명한 피스카스가 도시라는 사실 하나는 알았으니 일종의 소득이라고나 할까. 나중에 등장하게 되는 오울루도 찾았다. 또 서설이 길었다. 소설의 사람 주인공은 눔멘패 교구의 신의 존재를 불신하게 된 신학박사이자 루터교 목사 오스카리 후스코넨 그리고 ‘하늘이 내린 곰’은 불의의 사고로 어미 불곰을 잃게 된 수곰 제기랄/바알세불이다.

 

먹을 것을 찾아 사람이 사는 마을에 내려 왔다가 양조장을 습격해서 거나하게 취한 엄마 곰 일행은 내친 김에 결혼피로연 준비 중인 요리사의 식품 창고를 털어 횡재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끝났으면 좋으련만 요리사 아스트리드와 마주쳐서 대결을 벌이던 도주하는 중에 고압 전선에 감전돼서 요리사와 엄마 곰은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두 마리 테디들은 고아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신앙심을 잃은 후스코넨 목사에게 수곰 제기랄을 선물하면서 이 둘의 기상천외한 여정이 시작된다.

 

루터교 목사인 후스코넨은 길 잃은 사람 어린 양들을 돌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고아가 된 수곰 제기랄을 돌보고 수직 창던지기 같은 기괴한 취미를 갖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곰을 동면 들이면서 알게 된 오울루 출신의 동물학자 소냐 삼말리스토와 추문이 일면서 더 이상 눔멘패 교구에서 목사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아내 사라도 이혼해서 곁을 떠나고, 나이 50세에 자신의 곁에 남은 것은 이제 한 살 먹은 곰돌이라는 사실에 후스코넨 목사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기독교시민대학과 선원 자격으로 러시아로 향하는 유람선에 오른 후스코넨과 수곰 제기랄의 모험담이 발랄하게 이어진다. 목사는 제기랄에게 댄스와 성호 긋는 법 등 세계 종교의 다양한 제의를 가르친다. 이 녀석이 배움에 소질이 있는지 여행길에 꼭 필요한 가방 챙기는 기술과 심지어 다리미질을 즐기는 경지에 도달하기도 했다. 곰이 어찌 이런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냐는 질문은 서커스에게 일하시는 조련사 분에게 문의해 보시면 될 것 같다.

 

후스코넨 목사는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먹어대는 곰돌이 제기랄을 떼어 놓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애증의 관계 속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마치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러시아 아르한겔스크의 솔로베츠키예에서 무선기사 러시아 여성 타냐 미하일로브나와 합세해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면서 후스코넨과 제기랄은 기묘한 여정을 계속 이어간다. 1941년 애국전쟁 당시 소로카 점령 계획이 취소되면서 연합군과 추축군 팔백만명(약간은 뻥튀기가 아닐까)의 목숨을 구한 핀란드의 만네르하임의 결정에 대한 대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역사에서 가정법이란 참 무의미해 보이긴 하지만.

 

북국에서 시작된 그들의 여정은 흑해의 진주 오데사를 거쳐 다다넬즈 해협을 지나 에게 해로 진입해서 몰타 섬까지 다다랐다. 아 그전에 신앙심을 잃은 목사가 외계의 생명체와 교신하겠다는 세렌디프 프로젝트에 타냐에 말해주는 장면이 있지 않았던가. 자신이 아는 신 외의 다른 신을 찾고자 하는 목사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외계와의 교신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몰타 종교회의에서 대소동을 뒤로 하고 핀란드로 돌아온 후스코넨 목사는 소냐와 다시 재회하고, 외계에서 수신한 내용을 그녀가 알려 주면서 결말에 도달한다.

 

문득 저자가 쓴 이 모든 소동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역설적이게도 신앙을 잃고 방황하던 후스코넨 목사는 수곰 제기랄과 고향에 돌아와 자신이 애타게 찾던 외계로부터 온 메시지가 다름 아닌 기독교의 기본적 진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던가. 과학적 사고가 지배하는 서구 사회 내면에 깔린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에게 귀의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르토 파실린나 작가의 책은 <하늘이 내린 곰>을 유일하게 읽어본 터라 그의 작품 스타일이 전반적으로 어떤지 판단하기엔 쉽지 않지만, 작품 소개를 대충 훑어 보니 다른 작품들에서도 비슷한 포맷이 유지하는 것 같았다. 일단 집에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책도 읽어 보고, 저자의 다른 책들도 하나씩 읽어 보고 싶다. 모든 것은 일단 내년으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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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11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작품들은 거의 이런 분위기인데
핀란드 사회 문제점을 잘 풍자해서 표현하고 있다네요. 전 그런것보다 다소
엉뚱한 소재로 흘러가는 게 좋아서 좋아하는데‘ 기발한 자살여행‘을 읽으시면 또다른 느낌을 가지실지도...
모르겠어요.^^

레삭매냐 2017-12-11 13:3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 처음 읽은 작가의 책이라
적응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엉뚱한 전개는 저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종횡무진 유럽대륙을 누비는 이야기가 매력적
이었습니다.

말씀해 주신 <기발한 자살여행>도 궁금해지네요.

sprenown 2017-12-11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발한 자살여행‘ 한권 읽어봤는데 위의 내용과 비슷하더군요. 자살하기 위해 유럽곳곳 여행하는것..우울증 환자가 많은 핀란드..역설적으로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여기서
행복을 느끼자는 얘기지요.^^.

레삭매냐 2017-12-11 18:01   좋아요 1 | URL
흥미를 돋우네요...
아무래도 올해에는 좀 무리일 듯 싶고
내년에 기회가 되는 대로 차례로 읽어
볼까 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수입] Colin Firth - Kingsman: The Golden Circle (킹스맨: 골든 서클) (2017)(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Various Artists / 20th Century Fox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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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에그시가 돌아왔다. 무엇보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그 유명한 대사를 남긴 콜린 퍼스가 어떻게 다시 살아 돌아오게 되는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전편에서 그토록 잔혹한 장면들이 두 번째 인스톨에서 얼마나 완화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에이전트 갤러헤드라는 이름으로 스웨덴 공주님과 심쿵한 연애사를 이어가던 에그시(태런 에저튼 역)는 킹스맨 지원자였다가 탈락한 찰리(에드워드 홀크로프트 분)의 공격으로 죽을 뻔한 위기를 맡게 된다. 역시 처음부터 신나는 액션 씬으로 시작하는구먼. 문제는 에그시의 차량에 남긴 찰리의 의수가 킹스맨 본부에 침투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영속을 가능하게 했던 컴퓨터칩과 살아 남은 기계팔에 대한 시네마틱 오마쥬라고나 할까. 어쨌든 해킹에 성공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당들은 런던의 킹스맨 본부와 에그시가 머물고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안전가옥을 단박에 폭파시켜 버린다. 누구지?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는 그룹이.

 

카메라 앵글은 이 지점에서 정글 모처에 자리 잡은 1950년대 미국식 생활양식을 재현한 포피 아담스(줄리 무어 분)의 아지트로 관객을 안내한다. 그리고 마약 카르텔의 무시무시한 두목 포피는 새로운 골든 써클 멤버 가입에 앞서 입후보자에게 조직을 배신한 조직원을 고기분쇄기에 넣어 갈라는 명령을 내린다. 흠 역시 그렇군.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포피 씨는 첨단 로봇개를 등장시키는데, 아마 영화 후반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의수를 잃은 찰리는 두목에게 더욱 강력하고 멋진 새로운 의수를 선물받는다. 그렇게 장착한 팔로 볼링공을 던져 볼링 레인을 쳐부수는 화끈한 장면이 뛰따른다.

 

한편 영국내 모든 킹스맨 조직을 잃은 에그시와 마법사 멀린은(랜슬롯이니 하는 아서 왕 시절의 원탁기사들이 에이전트로 등장하면 장면에서 여전히 우리는 신화시대에 살고 있구나 싶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을 때 프로토콜을 가동시켜, 미국내 친척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스테이츠먼 그룹과 접촉을 시도한다. 킹스맨의 사촌격에 해당하는 미국 스테이츠먼이 켄터키에서 위스키 공장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놀랍지도 않다. 윈체스터 장총을 만드는 회사가 아닌 게 어디냐 그래.

마약장수 포피 씨는 마약 합법화를 미국 행정부 대통령에게 요구하며,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이런 저런 이유로 마약을 사용하던 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에 나선다. 그녀의 희한한 논리는 왜 마약보다 더 무서운 커피, 담배, 총기규제는 하지 않으면서 마약만큼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합법화시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마약산업이 합법화된다면, 자신도 저명한 기업가로 사람들에게 추앙과 존경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설탕을 집어 달라는 찰리에게, 설탕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아냐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마약이 합법화돼서 가격이 낮아지게 되면, 자신의 프라핏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그리고 마약의 유통이 엄격하게 통제되기 때문에 불법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걸까. 어쨌거나 우리 스웨덴 공주님마저 마약에 중독되어 실실 웃거나 푸른 발진이 생기고 요상한 춤을 추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스테이츠먼의 유능한 요원 테킬라 씨도 오락용 마약을 하다가 감염되서 냉동인간이 되지 않았던가. 에그시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애인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포피 씨가 극비리에 제조 중인 해독제를 반드시 구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자, 처음에 질문을 던졌던 해리 하트는 어떻게 컴백시킬 것인가. 그는 분명 전편에서 미스터 밸런타인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죽지 않았던가. 바로 그 지점에서 미국 스테이츠먼들은 알파젤이라는 프로그램을 동원해서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설정을 내놓았다. 좀 황당하긴 했지만, 비슷한 케이스로 해리의 총에 맞은 에이전트 위스키를 살려 내기도 했으니 인정해 주도록 하자. 다만 알파젤 치료를 받은 사람은 퇴행성 기억상실증을 겪기도 한다고 하는데 해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젊은 시절 군에 들어가기 전의 꿈이었던 나비 전문가(lepidopterist)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어려운 영어단어를 다 만나게 되다니. 놀랍군.

 

어쨌든 해리의 에이전트 본능을 깨워 스테이츠먼의 에이전트 위스키 씨와 더불어 해독제를 구하기 위해 흰눈으로 덮인 몽블랑 설산에 올라 한바탕 액션을 시전해 준다. 아직 완벽하게 예전의 에이전트 상태로 복귀하지 못한 해리는 나비 환각에 시달리면서 에이전트 위스키가 적들과 한편이라고 판단하고 그에게 총알을 먹인다. 기겁한 에그시는 알파젤을 사용해서 위스키 요원을 치료한 뒤, 에이전트 진저(할리 베리 분)에게 뒷일을 맡기고 정글에 은신한 포피 씨를 처리하기 위해 떠난다.

 

개인적으로 오리지널을 능가하는 위대한 속편은 <터미네이터 2>가 유일하다고 생각하는데, 킹스맨 시리즈 역시 원전을 뛰어 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약의 합법화라는 현실세계에서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을 내걸고 투쟁에 나선 악당 포피 씨도 그렇지만(하긴 악당들이 원하는 게 언제 합리적이었던가) 군데군데 보이는 영화상의 허점들이 아무래도 전편의 감동 혹은 흥행을 이어지지 못하게 만들었던 게 아닌가. 전편에서 해리와 에그시 콤비가 무언가 케미를 만들어냈다면, 속편에서는 그런 점이 없어서 아쉬웠다. 차라리 영국의 킹스맨 에그시와 미국의 스테이츠먼 위스키 씨가 무언가 한 번 해봤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조금은 빤한 설정이 맥을 빠지게 만들었다.

미국 대통령이 마약에 감염된 자국민들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참에 약쟁이들을 모두 치워 버리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강행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긴 지금 대통령이 트럼프라는 점을 고려했던 걸까. 현실세계도 영화와 별반 다른 바가 없구나. 포피 씨가 인질로 잡고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노래를 하게 만든 엘튼 존 경의 발연기도 상콤했다. 그리고 보니 나도 문득 그가 부른 “크로커다일 록”이 들어보고 싶어졌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자, 이제 스웨덴 국왕의 후계자가 된 에그시가 다음 시리즈에서는 바이킹의 후예가 되어 무언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액션을 보여 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럼 광전사 베르세르크 에그시로 변신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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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1-01-0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ㅎ
 
마지막 패리시 부인 미드나잇 스릴러
리브 콘스탄틴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정말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탐 리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가난한 청년 탐 리플 리가 그린리프의 신분을 얻어 비상하다가 추락해 버리는. 아니 소설에서는 완전범죄였던가. <마지막 패리시 부인>의 콘스탄틴 자매는 리플리를 전범으로 한 앰버 패터슨이라는 매력적인 팜므 파탈을 재창조해냈다. 미주리 시골 마을 세탁소집 딸 출신의 앰버는 리플리를 능가하는 능력과 집요함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캐릭터다. 다만 여기서 발생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는 그녀가 공략대상으로 삼은 남자가 유부남으로 이미 행복해 보이는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훈남 중의 훈남 잭슨 패리시라는 점이다.

 

모든 일에는 시간과 끝을 알 수 없는 노력이 드는 법이다. 소설의 첫 번째 파트는 팜므 파탈 앰버 패터슨의 시각으로 시작한다. 앰버는 치밀한 사전조사로 낭포성 섬유증으로 사랑하는 동생 줄리를 잃은 대프니 패리시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한다. 그저 친한 친구로서? 천만에 대프니가 가진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위험한 도박에 나선 것이다. 자신의 불타는 야망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은 가차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 붙인다. 그렇게 해서 버니 니콜스와 배틀리 부인을 멋지게 제거한다. 26세의 젊은 앰버는 미주리에서 무언가 불미스러운 일을 뒤로 하고 성공을 쫓아 뉴욕으로 왔는데, 어떤 점에서 본다면 그녀가 벌이는 게임은 무척이나 위험해 보인다. 그러니까 밑바닥에서 성공한 잭슨의 케이스를 거치지 않고, 오로지 부유한 사람들이 이미 축적해 놓은 것을 얄팍한 계획으로 얻겠다는 것이 그녀의 속셈이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대프니의 곁에서 끊임없이 경고를 날리는 메러디스의 신중함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사실 잃을 게 많은 이들이 항상 더 신중한 법이고, 삶에 보이지 않는 위험 요소들을 제거하는데 열성적이지 않은가.

 

콘스탄틴 자매는 미주리 시골 마을에서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낸 어떻게 보면 빤한 캐릭터 앰버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부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들을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들처럼 그렇게 콕콕 집어내는지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필력을 보여준다. 강렬한 짤막한 전개를 바탕으로, 그야말로 널뛰는 듯한 감정의 소유자 앰버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훌륭하게 통제하면서 패리시 가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장면에서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 정도 노력이라면 자력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그레그라는 준수한 청년도 자신에게 끝없이 구애를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앰버의 야망은 그레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컸고, 결정적으로 앰버는 패리시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

 

대프니 패리시는 앰버가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앰버는 오로지 잭슨을 유혹해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 때문에 다른 위험요소들은 볼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2장에서 대프니는 모두에게 완벽한 남편 잭슨이 사실은 공감능력을 상실한 소시오패스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쇼였던 것이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실 뻔한 대프니의 아버지를 구하는 장면은 오로지 대프니와 결혼하기 위한 가식적인 행동이었다. 자녀들은 모름지기 고상한 프랑스 어를 구사해야 하고,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같은 고전을 즐겨 읽는 사람도 잭슨 같은 소시오패스일 수도 있다는 생강이 순간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결혼 후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소시오패스 잭슨은 대프니에게 성적 학대는 물론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그녀의 삶을 옥죄오기 시작한다. 과연 앰버 패터슨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와 결혼하기 위해 그렇게 몸부림을 쳤을까 싶을 정도였다. 내것이 아닌 타인의 것을 탐내는 이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닐까.

 

교묘한 사기꾼이자 위장술의 대가 앰버는 자신이 언제까지나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유하고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을 지닌 잭슨이나 대프니가 자신의 진짜 정체를 영영 모를 거라고 오판했던 점이 그녀가 몰락하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었다. 성공에 매진하는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지점을 작가들은 예리하게 파고 들었다. 대프니의 진짜 친구 메러디스는 그녀에게 경고장을 발부했고, 소시오패스 남편에게서 탈출할 기회를 엿보던 대프니는 절호의 찬스라고 판단하고 즉각 행동에 착수했다.

 

정신없이 몰입해서 소설을 읽다가 문득 곧 이 소설도 영화화 되겠구나, 어쩌면 콘스탄틴 자매들은 그것까지 고려해서 소설을 집필하지 않았나 하는 상상이 됐다. 다만, 어떻게 보면 너무 빤한 이야기를 영상화하는 장면은 또 다른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되기도 했다. 소설이 주는 문학적 가치나 고유한 아우라 같은 것은 제외하고, 순전히 재미라는 점에서 리브 콘스탄틴의 <마지막 패리시 부인>은 정말 재밌는 소설이었다. 개인적 상상이긴 하지만, 잭슨이 다시 대프니에게 처절한 복수에 나서는 후속편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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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에서 아침을 : 일반판
닐 조단 감독, 킬리언 머피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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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감상일자 : 2017년 12월 1일 ~ 2일

 

패트릭 맥케이브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킬리언 머피의 주연의 영화 <플루토에서 아침을>을 봤다. 소설도 출간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책은 출간되지 않았다. 그래도 전작 <푸줏간 소년>은 나와 있어서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면서 영화도 보고 있는 중이다. 책이나 영화 모두 시작했지만 미처 끝내지는 못했다. 영화와 소설의 전개가 상당히 비슷해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더라.

 

아일랜드 출신 퍼트리샤 “키튼” 브래던이 소설/영화의 주인공이다. 그의 생부는 교구를 책임진 리암 신부(리암 니슨 분)로 사제 관저에서 일하던 아일리 버긴과 사이에서 키튼을 낳게 된다. 거 참 출발부터 거창하기 짝이 없구만. 우리의 관찰자 귀여운 울새 녀석들이 전달해 주는 정보만으로도 충분하다고나 할까. 출생의 비밀을 한가득 안고 태어난 키튼은 위탁가정에 보내져, 어려서부터 트랜스젠더의 끼를 활짝 펼쳐 보이기 시작한다. 의붓 누나의 옷을 입고 다니는 것으로 바를 운영하는 양모를 놀래키는 건 기본이었지 아마. 작문 수업 시간에는 자신의 출생에 대한 원색적인 글로 선생님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호모라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같이 어울려 다니던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찰리, 어윈 그리고 로렌스 패거리는 댄스 클럽에서 퇴짜를 맞고 오토바이 폭주족들과 함께 어울리며 플루토에서 아침식사를 꿈꾸기도 한다. 태생적으로 사랑이 부족했던 키튼 양은 그놈의 진실한 사랑(true love)을 찾아서 그리고 유령 아가씨(phantom lady)인 어머니 아일리를 찾아 잠들지 않는 도시 런던으로 떠난다. 그 때 글램 록 밴드의 리더 빌리 햇처 야릇한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가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일원이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거처가 IRA 전사들의 무기 은닉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키튼은 절벽 밑으로 숨겨둔 총들을 모두 던져 버린다. 그 때 등장해서 키튼을 총으로 쏘고 파묻겠다고 협박한 IRA 전사 중의 한 명이 <푸줏간 소년>이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했다. 수백년된 그놈의 지긋지긋한 종교분쟁 이슈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친구 로렌스가 IRA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폭탄 테러로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찌어찌해서 런던까지 흘러 들어간 키튼은 팬텀 레이디를 찾는데 여념이 없다. 키튼이 비가 내리는 잉글랜드 아니 대영제국을 대표하는 도시 런던을 누비는 장면은 처량하기만 하다. 탈바가지를 쓴 알바를 뛰기도 하고, 거리의 여인이 되어 변태(브라이언 페리 분)를 만나 교살당할 뻔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샤넬 넘버 5로 위기를 모면한 키튼은 그럭저럭 도시에 적응한 삶을 살게 된다. 마술사 버티 본(스테판 리 분)을 만나 그의 조수로 두 번째로 연예계에 종사하기도 하면서, 그놈의 진실한 타령이 이어지기도 한다. 버티가 키튼에게 사랑을 고백하자, 안타깝게도 자신은 여자가 아니라고 키튼은 버티에게 고백한다. 버티는 그것도 이미 알고 있다고 했던가. 마릴린 먼로가 등장하는 그 유명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Nobody's perfect."라는 대사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아무도 완벽하진 않지.

 


그렇게 달달하게 진행될 것 같았던 이야기는 느닷없이 고향 찰리가 등장하고, 점점 IRA 활동에 개입하게 되는 어윈이 결국 총에 맞아 죽는 비극이 벌어진다. 기억을 더듬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전개의 순서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어윈의 아이를 지우기 위해 낙태시술소에 갔던 찰리는 결국 발걸음을 돌린다. 영국 병사들이 자주 들르는 댄스홀에 들렀다가 폭탄 테러라는 날벼락을 맞고 영국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두들겨 맞으면서도 헛소리를 늘어 놓는 장면은 정말 최고였다. 경찰들을 가지고 놀다시피 하던 키튼의 구금 기간이 끝나고 결국 그가 무고하다는 걸 알게 된 경찰들은, 갈 곳 없는 키튼이 계속해서 유치장 신세를 지겠다고 하자, 끌어내서 거리에 내동댕이 친다. 그래도 아주 인정머리가 없는 경찰은 아니었는지 대머리 경찰 아저씨는 키튼에게 갱생한 거리의 여인들과 함께 일할 새로운 일자리(핍쇼걸)를 소개해 준다. 아 정겨워라.

 


비교적 조용한 나날들을 보내던 키튼에게 리암 신부가 찾아와, 마침내 팬텀 레이디의 소재를 알려 준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파드레 리암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이 영화에서 손을 꼽고 싶은 장면 중의 하나였다. 소설에서는 모두 56개의 챕터로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아마 36개로 축약되어 있었지 싶다. 소설의 구성을 충실히 따르는 면면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텔레폰 레이디를 변장해서 자신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어머니 아일리는 만난 키튼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조용히 떠난다. 어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제 관저에 머물고 있던 찰리를 찾은 키튼은 누군가 던진 화염병에 사제 관저가 전소되면서 죽을 뻔한 위기를 맞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우연히 팬텀 레이디와 조우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 소설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북디파지토리에 주문했다가는 해를 넘겨서 책을 받을 것 같았다. 지난 달에 주문한 앨런 홀링허스트의 <라인 오브 뷰티>가 마침내 오늘 도착했다. 아주 두툼했다. 그래서 국내에서 애정하는 하드커버 버전으로 중고책을 주문했고 어제 받았다. 빠르기도 하여라. 언제 다 읽게 될 진 모르겠지만, 거북이 속도로 읽어볼 계획이다. 아무래도 책하고 소설은 또 다른 느낌이겠지.

 

출생의 비밀로부터 시작해서 트랜스젠더로서의 삶, 영국인이 아닌 아일랜드 인으로 뿌리도 없는 본토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키튼의 처지가 왜 그리도 안쓰러워 보이던지. 하도 들어서 이제는 진부해져 버린 ‘트루 러브’(아, 마돈나의 그 시절 노래가 생각나는구나, 쏘리 트루 러브가 아니라 트루 블루였다!) 타령까지 이어지는 엄마 찾아 삼만리 스토리라는 신파에 쓸려 다니다가, 느닷없이 해묵은 갈등인 IRA라는 정치적 이슈까지 넘실대는 <플루토에서 아침을>은 정말 매력적인 영화였다.

 

이제 슬슬 원작 소설을 아주 조금씩 야금야금 그렇게 읽어 보자. 완독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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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8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박인원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떻게 해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알게 되었고 이 책을 읽게 되었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어느 신문에서 장정일 작가의 글을 보고서였던 것 같은데.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책 세 권을 빌려 왔다. <몰락하는 자>,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그리고 <옛 거장들> 이렇게 세 권이었다. 그 중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에 가장 관심이 갔지만, 우선 <몰락하는 자>부터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읽는 다는 게 중요하지 다른 뭐가 중요하겠냐만.

 

불과 지난 주에 읽은 책이건만 왜 다른 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오직 글렌 굴드만 기억나는 걸까. 1932년 캐나다 터론토에서 태어나 50평생을 불꽃 같이 살고, 우리에게 <골트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역사에 남을 레코딩을 남겨 주고 떠난 기인 피아니스트. 위키피디아를 검색해 보니, 유대인으로 오해 받기도 했다고 한다. 나도 오래 전에 한창 클래식 음악을 듣던 시절에 그가 죽기 전에 녹음을 마친 소니에서 나온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샀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했던 CD들이 지금은 어디에 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한 때는 그렇게 소중했었는데 말이다. 사실 대위법 같은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주로 피아노나 바이올린 소품을 즐겨 들어서 굴드의 <골트베르크>에는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게 되면서 1955년에 그가 녹음해서 변방의 피아니스트에서 일약 세계적 피아니트스로 발돋움하게 된 녹음도 찾아 들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튜브는 시대의 총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소설 <몰락하는 자>는 천재 글렌 굴드를 중심으로 소설의 화자인 철학자 “나”와 굴드의 천재성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몰락하는 자” 베르트하이머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특히나 음악 분야에서는 노력으로 천재성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진부한 이야기는 굳이 더 할 필요가 없겠지. 소설에서 베르트하이머도 충분히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었지만, 굴드의 연주를 듣는 순간 철학자 나처럼 연주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나는 그렇게 아끼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학교 선생님의 딸에게 그냥 줘버리지 않았던가. 내가 부모에게 반항하는 취지에서 피아노 연주자의 길에 들어섰다고 했던가? 아니면 베르트하이머였던가. 불과 읽은 지 일주일 밖에 안된 책에 대해서도 이렇게 기억을 하지 못하다니. 솔직하게 말해서 오로지 이 책을 읽으면서 의 관심은 글렌 굴드 뿐이었다.

 

 

유튜브로 그의 1955년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감상했고, 나아가 바흐의 <푸가의 기법>도 들어봤다. 항상 자신이 애용하는 피아노 의자를 가지고 다니며 뜨거운 수건으로 손을 마사지하고, 자신이 연주하는 멜로디에 허밍을 넣었다지 아마. 아마 어쩌면 정격연주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이들에게 현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이단아였으리라. 연주회장의 긴장과 스릴을 무척이나 싫어했던 굴드는 집안에서 아늑한 환경에서 들을 수 있을 레코딩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실제로 1964년 4월 10일 로스앤젤레스 연주를 마지막으로, 실황연주로 그의 음악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나와 죽은 베르트하이머 그리고 굴드가 빈에서 호로비츠를 사사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굴드가 내가 생각하는 그 피아노의 거장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에게 사사받았는지는 미지수다. 굴드에게 영향을 준 연주자로는 폴란드 출신 미국 피아니스트 조제프 호프만이라고 하는데, 나로서는 생소한 인물이다. 아르투로 슈나벨 정도까지는 알지만 말이다. 한때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클래식 음악은 부르주아 계급을 위한 음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단 진입장벽부터 쉽지가 않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러 갈 때, 청바지에 편한 복장으로 간다는 소릴 들어 보았는가.


소설에 등장하는 세 명의 피아니스트 역시 집안이 부유해서, 자식의 피아노 공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른 예술 장르와는 달리 피아노 같은 경우에는 사적인 레슨비가 절대로 필요하다.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과 천재성 그리고 경제적 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몰락하는 자 베르트하이머는 가난한 타인에게는 아낌없이 선행을 타인에게 베풀지만 자신과 동생에게는 유독 혹독하다. 마침내 결혼해서 자신의 그늘에서 탈출한 동생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안락한 집을 떠나 멀리 스위스에까지 가서 자살한 모습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은 떠나 갔을 지 모르겠지만, 이승에 남은 이에게는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겨 주지 않았던가.

 

베르트하이머가 피아노 연주의 세계를 떠나 정신과학에 안착했다면, 철학자인 나는 멀리 스페인의 마드리드 프라도 가에서 에세이 작가로 새출발에 나섰다. 다만, 그 주제가 굴드론이라는 문제였지 않았을까. 그만큼 천재성의 스펙트럼이 보여주는 자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의 범주를 가뿐하게 뛰어넘는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뭐 그렇게 가는 거겠지.

 

결말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책을 펼쳐 보니 죽은 베르트하이머의 방에 들어가 마침 레코드 플레이어 위에 놓여 있던 굴드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듣는 장면으로 끝난다. 역시 그랬군. 이번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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