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린 곰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더라. 분명 어떤 미디어를 통해서였을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기 시작해서 재밌다고 생각하고 단박에 읽었다면 그 기억의 흔적이 남아 있을 텐데, 널뛰기 독서를 하다 보니 읽게 된 동기조차 잊어 버렸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그래도 다 읽었고 만족스러웠다면 그것으로 된 게 아닌가.

 

아르토 파실린나는 핀란드에서 꽤 유명한 작가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작가다. 나도 집에 누군가 선물해준 <기발한 자살여행>이라는 책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사실 확실하지 않다) 읽진 않았다. 그러다가 제목도 기발한 <하늘이 내린 곰>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과 절판돼서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역시나 절판본 컬렉터의 본성이 발동되어 멀리 예스24 중고서점에 달려가 이 책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우시마주의 눔멘패를 찾아 보려고 구글맵의 도움을 받았지만 인근의 삼마티까지는 찾았지만 눔멘패는 찾지 못했다. 그래도 가위로 유명한 피스카스가 도시라는 사실 하나는 알았으니 일종의 소득이라고나 할까. 나중에 등장하게 되는 오울루도 찾았다. 또 서설이 길었다. 소설의 사람 주인공은 눔멘패 교구의 신의 존재를 불신하게 된 신학박사이자 루터교 목사 오스카리 후스코넨 그리고 ‘하늘이 내린 곰’은 불의의 사고로 어미 불곰을 잃게 된 수곰 제기랄/바알세불이다.

 

먹을 것을 찾아 사람이 사는 마을에 내려 왔다가 양조장을 습격해서 거나하게 취한 엄마 곰 일행은 내친 김에 결혼피로연 준비 중인 요리사의 식품 창고를 털어 횡재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끝났으면 좋으련만 요리사 아스트리드와 마주쳐서 대결을 벌이던 도주하는 중에 고압 전선에 감전돼서 요리사와 엄마 곰은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두 마리 테디들은 고아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신앙심을 잃은 후스코넨 목사에게 수곰 제기랄을 선물하면서 이 둘의 기상천외한 여정이 시작된다.

 

루터교 목사인 후스코넨은 길 잃은 사람 어린 양들을 돌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고아가 된 수곰 제기랄을 돌보고 수직 창던지기 같은 기괴한 취미를 갖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곰을 동면 들이면서 알게 된 오울루 출신의 동물학자 소냐 삼말리스토와 추문이 일면서 더 이상 눔멘패 교구에서 목사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아내 사라도 이혼해서 곁을 떠나고, 나이 50세에 자신의 곁에 남은 것은 이제 한 살 먹은 곰돌이라는 사실에 후스코넨 목사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기독교시민대학과 선원 자격으로 러시아로 향하는 유람선에 오른 후스코넨과 수곰 제기랄의 모험담이 발랄하게 이어진다. 목사는 제기랄에게 댄스와 성호 긋는 법 등 세계 종교의 다양한 제의를 가르친다. 이 녀석이 배움에 소질이 있는지 여행길에 꼭 필요한 가방 챙기는 기술과 심지어 다리미질을 즐기는 경지에 도달하기도 했다. 곰이 어찌 이런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냐는 질문은 서커스에게 일하시는 조련사 분에게 문의해 보시면 될 것 같다.

 

후스코넨 목사는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먹어대는 곰돌이 제기랄을 떼어 놓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애증의 관계 속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마치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러시아 아르한겔스크의 솔로베츠키예에서 무선기사 러시아 여성 타냐 미하일로브나와 합세해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면서 후스코넨과 제기랄은 기묘한 여정을 계속 이어간다. 1941년 애국전쟁 당시 소로카 점령 계획이 취소되면서 연합군과 추축군 팔백만명(약간은 뻥튀기가 아닐까)의 목숨을 구한 핀란드의 만네르하임의 결정에 대한 대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역사에서 가정법이란 참 무의미해 보이긴 하지만.

 

북국에서 시작된 그들의 여정은 흑해의 진주 오데사를 거쳐 다다넬즈 해협을 지나 에게 해로 진입해서 몰타 섬까지 다다랐다. 아 그전에 신앙심을 잃은 목사가 외계의 생명체와 교신하겠다는 세렌디프 프로젝트에 타냐에 말해주는 장면이 있지 않았던가. 자신이 아는 신 외의 다른 신을 찾고자 하는 목사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외계와의 교신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몰타 종교회의에서 대소동을 뒤로 하고 핀란드로 돌아온 후스코넨 목사는 소냐와 다시 재회하고, 외계에서 수신한 내용을 그녀가 알려 주면서 결말에 도달한다.

 

문득 저자가 쓴 이 모든 소동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역설적이게도 신앙을 잃고 방황하던 후스코넨 목사는 수곰 제기랄과 고향에 돌아와 자신이 애타게 찾던 외계로부터 온 메시지가 다름 아닌 기독교의 기본적 진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던가. 과학적 사고가 지배하는 서구 사회 내면에 깔린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에게 귀의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르토 파실린나 작가의 책은 <하늘이 내린 곰>을 유일하게 읽어본 터라 그의 작품 스타일이 전반적으로 어떤지 판단하기엔 쉽지 않지만, 작품 소개를 대충 훑어 보니 다른 작품들에서도 비슷한 포맷이 유지하는 것 같았다. 일단 집에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책도 읽어 보고, 저자의 다른 책들도 하나씩 읽어 보고 싶다. 모든 것은 일단 내년으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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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11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작품들은 거의 이런 분위기인데
핀란드 사회 문제점을 잘 풍자해서 표현하고 있다네요. 전 그런것보다 다소
엉뚱한 소재로 흘러가는 게 좋아서 좋아하는데‘ 기발한 자살여행‘을 읽으시면 또다른 느낌을 가지실지도...
모르겠어요.^^

레삭매냐 2017-12-11 13:3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 처음 읽은 작가의 책이라
적응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엉뚱한 전개는 저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종횡무진 유럽대륙을 누비는 이야기가 매력적
이었습니다.

말씀해 주신 <기발한 자살여행>도 궁금해지네요.

sprenown 2017-12-11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발한 자살여행‘ 한권 읽어봤는데 위의 내용과 비슷하더군요. 자살하기 위해 유럽곳곳 여행하는것..우울증 환자가 많은 핀란드..역설적으로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여기서
행복을 느끼자는 얘기지요.^^.

레삭매냐 2017-12-11 18:01   좋아요 1 | URL
흥미를 돋우네요...
아무래도 올해에는 좀 무리일 듯 싶고
내년에 기회가 되는 대로 차례로 읽어
볼까 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