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블루
김랑 글.사진 / 나무수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아는 크로아티아의 색깔은 지붕의 주황색이었는데, <크로아티아 블루>의 작가 김랑 씨는 단호하게 크로아티아는 ‘블루’라고 책의 제목을 통해 선언하고 있다. 이미 지난봄에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와 KBS1에서 방영된 여행 다큐멘터리 <걸어서 세계 속으로> “크로아티아”편을 봐서 이제 크로아티아는 나에게 천국보다 낯선 지명이 아니었다.

역시 다른 책들과 비교를 의식해서였을까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아드리아해의 보석 크로아티아의 도시들이 아닌 정말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도시들을 작가는 한 달이라는 넉넉한 시간을 소비하면서 소개하고 있다. 그전에도 이미 크로아티아에 가보았는지, 뭐랄까 기시적인 여유가 느껴졌다. 작가의 글 속에 묻어나는 그런 여유감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작가의 크로아티아 여정은 이탈리아와 맞닿은 국경의 이스트라 반도에서 시작한다. 로빈, 모토분 그리고 풀라의 사진들에서는 포토샵의 커브 기능이 불쑥 떠올랐다. 아마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는 실제의 풍경들이 그런 빛깔을 띠고 있을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고대 로마유적들이 이탈리아의 그것보다도 잘 보존되어 있다는 말에 이탈리아 고대 유적이라면 깜빡 죽는 나는 호기심 어린 눈을 깜빡였다. 그래서였는진 몰라도 풀라의 고대 원형 경기장의 자태는 로마의 콜로세움 이상의 감동이었다. 아마 여행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바로 이런 맛이겠지, 전혀 모르고 있던 것들에 대한 깨달음?

이스트라 반도에서 워밍업을 한 작가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이동을 한다. 가장 가까운 서유럽의 도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닮았다는 자그레브는 비엔나처럼 강을 끼고 있다고 한다. 비엔나에 다뉴브강이 있다면, 자그레브에는 그 다뉴브강의 지류인 사바강이 있었다.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비엔나와는 한 때 같은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도시였던 만큼 그 동질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그레브를 잇는 다음 여행지는 플리트비체로 유명한 디나라 알프스 지역이었다. 예전에 그림을 공부했다는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에는 왜 이 책의 제목에 “블루”가 들어가는지 그 이유가 말없이 설명되고 있다. 게다가 작가가 길에서 만난 짧은 인연들을 조그맣게 속삭이는 글들 역시 마음에 들었다. 세상살이와 관계에 싫증이 난 나그네들이 길 위의 인연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참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아마 그래서 관계는 애증이 뒤범벅되어 있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자, 이제 마지막 코스인 달마티아 해변으로 가보자. 작가는 책의 절반가량을 이 달마티아 해변에 할애하고 있다. 달마티아 코르출라 섬이 고향인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를 읽고서, 아메리카 대륙을 침탈하는데 선봉에 선 콜럼버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달마티아 편은 정말 나그네의 본성을 가진 이들의 역마살을 자극한다.

자다르, 비비녜, 프리모스텐, 스플리트를 거쳐 두브로브니크에 달하는 작가의 크로아티아 탐험에 질투심이 일기 시작했다. 여행 초반부에는 버스와 기차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작가가 어느 순간 렌터카로 달마이타의 곳곳을 누비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어쩌면 탁월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하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차편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해야 하니 말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간택으로 황궁이 이어진 스플리트의 반질반질한 돌바닥길과 도대체 무슨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궁금한 골목길의 향연은 여전히 미지의 여행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역시 크로아티아 여행의 백미는 바로 두브로브니크였다. 지금도 나의 컴퓨터 스크린의 월페이퍼는 두브로브니크의 고성을 그린 일러스트가 차지하고 있다. “드디어 다시 왔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고백이 참으로 사무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나 나의 습관대로 구글맵으로 작가의 이동 루트를 따라가 봤다. 두브로브니크는 모국 크로아티아에서 떨어진 육지의 섬처럼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예전에는 같은 나라였던 보스니아에 의해 육로로는 분리되어 있었다.

<크로아티아 블루>는 멋진 사진과 감성을 자극하는 김랑 작가의 에세이들이 줄지어 소개되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인연들과의 사연에는 절대적으로 공감하게 되지만, 불쑥불쑥 등장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연애담 편에는 솔직하게 말해서 짜증이 났다. 그 연애담의 알파와 오메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강요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사실 타인의 연애담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알고 싶지도 않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말이다. 출판사에서 편집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을 왜 집어넣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달마티아 해변에서 바라보는 아드리아해의 옥빛 바다 색깔은 그 무엇에 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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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실종
안드레이 쿠르코프 지음, 양민종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지난 주말에 텔레비전에 하는 우크라이나 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을 볼 수가 있었다. 내가 보기 시작한 부분은 예전에 소피아 로렌 주연의 <해바라기>의 배경이 되었던 폴타바라는 곳으로, 엄청나게 광활한 평원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1970년에 제작된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80년대로, 그동안 공산권 국가였던 소련을 상징하는 “해바라기”라는 꽃 때문에 우리나라 상륙이 불허되고 있었다고 했던가. 그냥 화초로만 알았던 해바라기가 우크라이나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작물이라는 사실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 막 읽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배경으로 해서 펼쳐지는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펭귄의 실종>이 떠올랐다.

전편 <펭귄의 우울>을 읽자마자 후속편인 <펭귄의 실종>을 읽고 싶어서 한동안 몸살이 다 날 지경이었다.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집단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은 주인공 빅토르 졸로따례프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지, 그리고 후속편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심장수술을 받은 펭귄 미샤가 없어졌다고 하는데 과연 빅토르는 미샤를 찾을 수 있을지 점증하는 의문점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한 책은 내 손안에 들어오는데 자그마치 4일이나 걸렸다. 참다못해 결국 온라인 미리 보기 서비스를 이용해서 몇 장이나마 컴퓨터로 읽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책을 받자마자 600쪽이 넘는 분량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 전작 <펭귄의 우울>에서 빅토르와 펭귄 미샤 그리고 소냐의 관계가 위태롭긴 했지만 잔잔하게 전개가 있었다면, 후속편 <펭귄의 실종>에서는 펭귄 미샤를 구하기 위한 빅토르의 눈물겨운, 때로는 목숨을 건 모험이 그야말로 소용돌이친다.

남극에서 우연히 만난 브로니코프스키의 도움과 부탁으로 다시 키예프로 돌아온 빅토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한 때 유사가족이라고 생각했던 니나의 배신과 펭귄 미샤의 실종이었다. 사실, 전자보다 후자의 사건에 더 충격을 받은 빅토르는 곧바로 미샤의 수배에 나선다. 그가 접한 펭귄 미샤의 소식은 러시아 마피아의 손에 이끌려 모스크바로 끌려갔다고 하는 비보였다. 그 와중에 그는 달팽이 이론을 설파하는 세르게이 파블로비치라는 미래의 국회의원 지망생을 후원자로 두게 된다. 전작에서 수도뉴스의 편집장 이고르 르보비치의 역할이 새로운 캐릭터에게 전이되는 순간이었다.

모스크바에 간 빅토르는 브로니코프스키의 미망인(놀랍게도 한국계 여성이었다!)과 짧은 로맨스를 뒤로하고, 펭귄 미샤를 구하기 위해 전쟁통인 체첸으로 발길을 돌린다. <펭귄의 우울>이 우크라이나 그것도 키예프라는 도시에 한정적이었다면, <펭귄의 실종>에서는 우크라이나-모스크바 그리고 체첸을 아우르는 광대한 스케일을 그 무대로 한다. 펭귄 미샤를 구하기 위해, 자청해서 노예가 된 빅토르는 자의와는 관계없이 화장장에서 일하게 된다. 죽음의 교역이 이루어지는 화장장에서 러시아 연방군과 체첸인들 간의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이런 삶과 죽음이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 과연 빅토르는 펭귄 미샤를 찾게 될 것인가? 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는 미스터리 스릴러 초대장을 독자들에게 발부한다.

책을 읽으면서, 러시아 내부에 은연중에 작동하는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 그림자를 느낄 수가 있었다. 나중에 빅토르가 다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게 되면서, 죽은 세르게이의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했을 때 보이는 보스의 반응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침공군의 뒤를 따라 우크라이나 지역에 침입했던 나치 학살부대 “아인자츠그루펜”의 활약이 그 어느 곳보다 왕성했던 곳이 바로 우크라이나가 아니었던가.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에 쇠락해 버린 것처럼 보였던 범슬라브주의에 대한 향수도 주된 키워드로 다가왔다.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체첸공화국 그리고 아드리아 해의 크로아티아에 이르기까지 빅토르가 누비는 곳은 모두 옛 공산주의 소비에트 시절의 영광에 대한 아쉬움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그 누가 뭐래도, 우리가 남이가? 라는 슬라브 민족의 동질성이랄까. 한편, 과거로부터의 해방된 자유를 만끽하는 그네들의 이중적인 모습들도 동시에 찾아볼 수가 있었다. 바로 그 분절점에 우리의 주인공 빅토르와 펭귄 미샤가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소설을 관통하는 또 다른 키워드로는 “약속”을 꼽고 싶다. 펭귄 미샤를 풀어주겠다는 체첸 갱단 두목 하차예프의 약속 그리고 무엇보다 펭귄 미샤를 남극에 보내겠다는 빅토르의 신념에 찬 약속은 소설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다. 물론 펭귄 미샤를 구하는 일이 과연 자신의 목숨을 걸만한 일인가에 대한 의문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인공 빅토르 개인의 관계 결핍을 채우는 펭귄 미샤의 존재는, 유사가족 니나의 무존재 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어느 한 작가의 글을 읽고 나서, 그 나라의 현대문학을 이야기한다는 게 무리일 것이다. 그래도 러시아 현대문학 작가 중에서 나름대로 대중성을 확보한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펭귄 시리즈를 통해, 고뇌하는 개인의 단면과 산적한 여러 문제에 대한 사회적 접근을 어느 정도나마 체험하고 이해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느껴졌다. 안드레이 쿠르코프 작가의 다른 작품들의 출간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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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스바루>를 읽고 리뷰해주세요.
굿바이, 스바루 - 뉴욕 촌놈의 좌충우돌 에코 농장 프로젝트
덕 파인 지음, 김선형 옮김 / 사계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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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론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덕 파인이라는 이가 누구인지 몰랐다. 뉴욕 토박이로 도미노 피자와 맥도널드의 세례를 받으면서 십수년간 신문기자로 세계를 누비며 활약하던 저자가 어느 날 갑자기 친환경, 탄소 중립 시민으로 유기농 농사를 짓겠다고 뉴멕시코의 깡촌 펑키 뷰트 목장에 등장했을 때 조금은 황당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기름 잡아먹는 하마인 자신의 애마 스바루 대신 탄소 시민에 제격인 폐식용유로 가는 자동차를 타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더더욱!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자동차인 스바루는 미국식 생활방식의 상징이다. 게다가 덕 파인은 대형할인점인 월마트에서 파는 전기구이 통닭에 환장한다. 다시 말해, 화석 연료를 태우며 도로를 질주하고, 패스트푸드 음식의 길들여진 온라인 세대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깡촌에 내려가서 국가가 친절하게도 제공하는 전기 송전을 거부하고, 유전자 조작으로 풍성한 식탁 대신 갖은 고생 끝에 자신이 직접 재배한 유기농 식품들을 먹을 궁리를 했단 말인가. 아 참, 홍수와 우박 같은 자연재해도 빼먹지 말아야겠다.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미국식 유머에 갖가지 텔레비전 드라마의 소스들을 동원해서(번역하면서 친절하게도 주해를 달아준 김선형 씨에게 감사드린다), 어떻게 보면 전혀 낭만적이지 않고 문명의 이기가 주는 편리함 대신, 불편함과 경제적 효용에 대한 제고 사이에서 고민하는 도시문명인의 고뇌를 적절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게다가 기초대사에 필수적인 단백질마저 자급자족하겠다고 어렵사리 수배해서 구한 판 시스터즈(염소 두 마리)는 호시탐탐한 덕 파인이 애지중지하는 장미 넝쿨에 눈독을 들인다. 공중에서는 이웃에 둥지를 튼 빨간꼬리매가 작가의 달걀 공급책인 닭과 병아리들을 채가고, 육상에서도 포식자 카이요리(코요테)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의 닭들을 노리는 위기상태가 계속된다.

이런 난관 가운데, 앞으로 2년간 자급자족 경제를 이루겠다는 작가의 노력은 가상하기만 하다. 이 책 초반부의 키워드는 ‘배움’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이가 어떻게 해서 농촌경제 공동체에 일부가 되는가, 그것은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시행착오와 비용을 써가면서, 그렇게 덕 파인은 한 가지씩 차례로 배워 나간다. 아무 생각 없이 입에서 아삭거리는 칠레산 사과들이 뉴멕시코까지 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과정과 화석 연료의 연소가 필요한 걸까. 게다가 유전자 조작으로 재배된 토마토는 수천 마일을 날아 혹은 달려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물러지지가 않는다. 우리는 왜 이런 본질적인 현상에 대해 무관심하고 그저 손쉽고 싼 먹거리들의 구매에만 관심을 두는 걸까.

태양열이나 풍력 혹은 지열 같은 대체 에너지원들이 있음에도, 우리의 화석연료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만 지고 있다. 어느 순간, 그 에너지 공급이 차단되거나 혹은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게 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보다 한발짝 앞서 이런 여러 문제에 심각성을 깨달은 덕 파인은 자신이 직접 친환경적이면서도 탄소 시민으로서의 의무에 눈을 뜨고, 뉴멕시코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선구자적인 삶의 표본이라고나 할까.

좌충우돌 덕 파인의 펑키 뷰트 목장 체험기는 계속되고 있다. 책 뒷부분에 수록된 웹사이트 목록에서 가장 먼저 그의 개인 홈피에서 현재진행형인 그의 모험을 훑어 봤다. 에필로그를 통해 덕 파인은 여러 가지 친환경, 유기농 탄소 시민의 5가지 실천적 과제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의 6번째 교리로,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왜 자연을 보호하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바이오 연료를 사용하면서 탄소 배출을 억제하며 친환경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반드시 절대적으로 숙지하고 이해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우리는 아주 가끔 친환경주의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인식은 하고 있으면서도,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부터라도 승용차를 타고 출근하는 대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야겠다. 이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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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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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백>, 제목 한 번 단순하다. 문득 원작의 표지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텅 빈 교실에 덩그러니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는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책의 가격은 1,470엔 오늘 환율로 계산해 보니 2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가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미나토 가나에 작가의 <고백>은 정가가 11,000원이었다. 책값이 대한해협을 건너면서 반값이 된 걸까? 하긴 우리나라에서 소설 한 권에 2만 원 정가를 붙였다간 바로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원산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고백>과 만날 수가 있었다.

신인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데뷔작이라는 <고백>의 구성과 전개는 놀랍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라는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되는 살인과 그에 대한 응징으로서의 복수 그리고 미스터리 스릴러 양식에 충실한 <고백>은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그리고 전도자라는 다소 종교적인 색채의 장들을 읽다 보면 왜 미나토 가나에 작가가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바로 알 수가 있다. 중학교 종업식 날, 담임인 모리구치 유코는 학생들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수영장에서 추락사한 것으로 알려진 자신의 딸 마나미는 사고사가 아니라 그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이라고. 게다가 그 범인은 자신의 반에 있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미나토 가나에는 장마다 화자를 다른 이로 배치해서 실제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 점은 일본 영화계의 대부인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 <라쇼몽>을 연상시킨다. 어느 사무라이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가, 사건의 목격자들의 의해 왜곡되고 변질하는 과정이 <고백>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열린 결말로 매조지 되었지만, 미나토 가나에 작가는 선과 악의 명백한 기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상식적인 윤리의 존재 여부다.

중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들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반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담임 유코 선생님.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에 대해 복수하고 싶어 하는 동시에, 자신의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기술되지만, 그 누구도 타인을 처벌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이런 갈등은 다음 장인 순교자 편에서 열세 살 살인자에 대한 집단 폭력으로 폭발하게 된다.

한편, 작가는 한 때 일본에 추세처럼 유행하던 열혈 선생님 상에 대한 안티캐릭터를 창조해낸다. <고쿠센>의 양쿠미나 GTO(우리나라에는 ‘반항하지마’로 소개됨)의 오니즈카 같은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안위 따위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열혈 선생님이 아닌 싱글맘으로 자신의 딸을 기르는 모리구치 유코를 첫 번째 화자로 등장시킨다.

각 장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각자의 처지에서 자신이 말하는 ‘누군가’에게 지지를 얻기를 원한다. 그 누군가는 아마도 책을 읽는 독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어느 정도는 화자들의 말에 수긍이 가기도 했다. 그만큼 미나토 가나에 작가의 기술은 설득력이 넘친다. 이런 원형 순환구조를 통해, 독자들은 모든 것을 설계한 범인은 누구이며, 도대체 무슨 동기를 가지고 이런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를 추적해 나간다.

책장을 넘길수록, 사전에 작가가 그야말로 지뢰밭처럼 치밀하게 준비해둔 복선의 늪에서 소설의 앞부분을 다시 읽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된다. 작가는 화자들의 말을 통해, 언급된 것들에 대한 지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어느 것 하나 빼먹지 않고, 다시 한 번 등장시켜서 확인을 시켜 주거나 혹은 서사에 재활용하는 탁월한 기법으로 독자들을 결말로 이끌어낸다.

올해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이라는 표현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흡입력을 자랑하는 소설 <고백>! 개인적으로 초반에는 대화체가 아닌 일방적 독백체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일단 익숙해지자 놀라운 속도로 다 읽어 버렸다. 살인과 복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긴 했지만, 전율 넘치는 반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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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알라딘 3기 서평단 활동 안내


1. 서평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고뇌의 원근법]
서양미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원작들과 만날 수 있는 극히 한정적이고 책으로나마 갈증을 달래던 차에 서경식 작가의 <고뇌의 원근법>을 통해 그동안 모르고 있던 작가들의 작품들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오토 딕스나 에곤 실레 같은 독일 작가들에 대한 발견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2. 나의 베스트 5


1) 고뇌의 원근법
2) 보이지 않는 사람들
- 21세기에도 여전히 화두인 인권에 대한 세계적인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3) 운명의 날
- 중세에서 근대로의 진행의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의 재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4)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미스 리틀 선샤인>이라는 보석 같은 영화와 만나게 해준 고마운 책!
5) 핀란드 디자인 산책
- 우리와는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북구의 나라 핀란드와 디자인에 대한 소개가 마음에 들었다.

3. 서평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100도씨]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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