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블루
김랑 글.사진 / 나무수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아는 크로아티아의 색깔은 지붕의 주황색이었는데, <크로아티아 블루>의 작가 김랑 씨는 단호하게 크로아티아는 ‘블루’라고 책의 제목을 통해 선언하고 있다. 이미 지난봄에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와 KBS1에서 방영된 여행 다큐멘터리 <걸어서 세계 속으로> “크로아티아”편을 봐서 이제 크로아티아는 나에게 천국보다 낯선 지명이 아니었다.

역시 다른 책들과 비교를 의식해서였을까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아드리아해의 보석 크로아티아의 도시들이 아닌 정말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도시들을 작가는 한 달이라는 넉넉한 시간을 소비하면서 소개하고 있다. 그전에도 이미 크로아티아에 가보았는지, 뭐랄까 기시적인 여유가 느껴졌다. 작가의 글 속에 묻어나는 그런 여유감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작가의 크로아티아 여정은 이탈리아와 맞닿은 국경의 이스트라 반도에서 시작한다. 로빈, 모토분 그리고 풀라의 사진들에서는 포토샵의 커브 기능이 불쑥 떠올랐다. 아마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는 실제의 풍경들이 그런 빛깔을 띠고 있을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고대 로마유적들이 이탈리아의 그것보다도 잘 보존되어 있다는 말에 이탈리아 고대 유적이라면 깜빡 죽는 나는 호기심 어린 눈을 깜빡였다. 그래서였는진 몰라도 풀라의 고대 원형 경기장의 자태는 로마의 콜로세움 이상의 감동이었다. 아마 여행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바로 이런 맛이겠지, 전혀 모르고 있던 것들에 대한 깨달음?

이스트라 반도에서 워밍업을 한 작가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이동을 한다. 가장 가까운 서유럽의 도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닮았다는 자그레브는 비엔나처럼 강을 끼고 있다고 한다. 비엔나에 다뉴브강이 있다면, 자그레브에는 그 다뉴브강의 지류인 사바강이 있었다.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비엔나와는 한 때 같은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도시였던 만큼 그 동질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그레브를 잇는 다음 여행지는 플리트비체로 유명한 디나라 알프스 지역이었다. 예전에 그림을 공부했다는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에는 왜 이 책의 제목에 “블루”가 들어가는지 그 이유가 말없이 설명되고 있다. 게다가 작가가 길에서 만난 짧은 인연들을 조그맣게 속삭이는 글들 역시 마음에 들었다. 세상살이와 관계에 싫증이 난 나그네들이 길 위의 인연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참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아마 그래서 관계는 애증이 뒤범벅되어 있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자, 이제 마지막 코스인 달마티아 해변으로 가보자. 작가는 책의 절반가량을 이 달마티아 해변에 할애하고 있다. 달마티아 코르출라 섬이 고향인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를 읽고서, 아메리카 대륙을 침탈하는데 선봉에 선 콜럼버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달마티아 편은 정말 나그네의 본성을 가진 이들의 역마살을 자극한다.

자다르, 비비녜, 프리모스텐, 스플리트를 거쳐 두브로브니크에 달하는 작가의 크로아티아 탐험에 질투심이 일기 시작했다. 여행 초반부에는 버스와 기차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작가가 어느 순간 렌터카로 달마이타의 곳곳을 누비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어쩌면 탁월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하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차편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해야 하니 말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간택으로 황궁이 이어진 스플리트의 반질반질한 돌바닥길과 도대체 무슨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궁금한 골목길의 향연은 여전히 미지의 여행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역시 크로아티아 여행의 백미는 바로 두브로브니크였다. 지금도 나의 컴퓨터 스크린의 월페이퍼는 두브로브니크의 고성을 그린 일러스트가 차지하고 있다. “드디어 다시 왔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고백이 참으로 사무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나 나의 습관대로 구글맵으로 작가의 이동 루트를 따라가 봤다. 두브로브니크는 모국 크로아티아에서 떨어진 육지의 섬처럼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예전에는 같은 나라였던 보스니아에 의해 육로로는 분리되어 있었다.

<크로아티아 블루>는 멋진 사진과 감성을 자극하는 김랑 작가의 에세이들이 줄지어 소개되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인연들과의 사연에는 절대적으로 공감하게 되지만, 불쑥불쑥 등장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연애담 편에는 솔직하게 말해서 짜증이 났다. 그 연애담의 알파와 오메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강요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사실 타인의 연애담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알고 싶지도 않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말이다. 출판사에서 편집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을 왜 집어넣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달마티아 해변에서 바라보는 아드리아해의 옥빛 바다 색깔은 그 무엇에 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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