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고백>, 제목 한 번 단순하다. 문득 원작의 표지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텅 빈 교실에 덩그러니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는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책의 가격은 1,470엔 오늘 환율로 계산해 보니 2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가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미나토 가나에 작가의 <고백>은 정가가 11,000원이었다. 책값이 대한해협을 건너면서 반값이 된 걸까? 하긴 우리나라에서 소설 한 권에 2만 원 정가를 붙였다간 바로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원산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고백>과 만날 수가 있었다.

신인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데뷔작이라는 <고백>의 구성과 전개는 놀랍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라는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되는 살인과 그에 대한 응징으로서의 복수 그리고 미스터리 스릴러 양식에 충실한 <고백>은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그리고 전도자라는 다소 종교적인 색채의 장들을 읽다 보면 왜 미나토 가나에 작가가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바로 알 수가 있다. 중학교 종업식 날, 담임인 모리구치 유코는 학생들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수영장에서 추락사한 것으로 알려진 자신의 딸 마나미는 사고사가 아니라 그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이라고. 게다가 그 범인은 자신의 반에 있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미나토 가나에는 장마다 화자를 다른 이로 배치해서 실제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 점은 일본 영화계의 대부인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 <라쇼몽>을 연상시킨다. 어느 사무라이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가, 사건의 목격자들의 의해 왜곡되고 변질하는 과정이 <고백>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열린 결말로 매조지 되었지만, 미나토 가나에 작가는 선과 악의 명백한 기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상식적인 윤리의 존재 여부다.

중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들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반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담임 유코 선생님.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에 대해 복수하고 싶어 하는 동시에, 자신의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기술되지만, 그 누구도 타인을 처벌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이런 갈등은 다음 장인 순교자 편에서 열세 살 살인자에 대한 집단 폭력으로 폭발하게 된다.

한편, 작가는 한 때 일본에 추세처럼 유행하던 열혈 선생님 상에 대한 안티캐릭터를 창조해낸다. <고쿠센>의 양쿠미나 GTO(우리나라에는 ‘반항하지마’로 소개됨)의 오니즈카 같은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안위 따위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열혈 선생님이 아닌 싱글맘으로 자신의 딸을 기르는 모리구치 유코를 첫 번째 화자로 등장시킨다.

각 장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각자의 처지에서 자신이 말하는 ‘누군가’에게 지지를 얻기를 원한다. 그 누군가는 아마도 책을 읽는 독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어느 정도는 화자들의 말에 수긍이 가기도 했다. 그만큼 미나토 가나에 작가의 기술은 설득력이 넘친다. 이런 원형 순환구조를 통해, 독자들은 모든 것을 설계한 범인은 누구이며, 도대체 무슨 동기를 가지고 이런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를 추적해 나간다.

책장을 넘길수록, 사전에 작가가 그야말로 지뢰밭처럼 치밀하게 준비해둔 복선의 늪에서 소설의 앞부분을 다시 읽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된다. 작가는 화자들의 말을 통해, 언급된 것들에 대한 지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어느 것 하나 빼먹지 않고, 다시 한 번 등장시켜서 확인을 시켜 주거나 혹은 서사에 재활용하는 탁월한 기법으로 독자들을 결말로 이끌어낸다.

올해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이라는 표현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흡입력을 자랑하는 소설 <고백>! 개인적으로 초반에는 대화체가 아닌 일방적 독백체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일단 익숙해지자 놀라운 속도로 다 읽어 버렸다. 살인과 복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긴 했지만, 전율 넘치는 반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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