룽산으로의 귀환 - 장다이가 들려주는 명말청초 이야기 이산의 책 50
조너선 스펜스 지음, 이준갑 옮김 / 이산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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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에서 학계의 교수님들이 품이 많이 들고 노력 대비 비생산적인(?) 교양서보다는 논문 위주의 집필활동에 전념한다는 말을 듣고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 출신의 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책들을 읽어 보면, 일반 독자가 원하는 수준의 역사교양 서적 저술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좀 연식이 되긴 했지만, 비교적 근간에 속하는 조너선 스펜스의 <룽산으로의 귀환> 역시 예의 범주에 속하는 걸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대개의 역사 저술은 왕조교체나 어떤 특정 인물이 역사를 주도했다는 양식의 거시사 위주였다. 그런 연유로 우리의 역사의식 역시 거개가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예전에도 그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서양 역사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보통 사람들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개인의 수기나 연대기, 소송과 재판기록, 출생증명서 또는 다양한 방식의 교회 기록을 바탕으로 한 미시사가 대세인 모양이다. 마오쩌둥이나 강희제, 옹정제(반역의 책) 같은 주요한 역사 인물에 그동안 초점을 맞췄던 조너선 스펜스는 <룽산으로의 귀환>에서 17세기 명말청초 격변의 시기를 살았던 어느 부잣집 도련님이 남긴 각종 기록에 눈을 돌린다. 거시에서 미시로의 귀환이라고나 할까.

 

중국 저장 성 사오싱 출신의 장다이가 바로 조너선 스펜스 교수가 <룽산으로의 귀환>의 주인공이다. 삼대에 걸쳐 그 어렵다는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지역 유지인 장씨 집안의 장손이었던 장다이 역시 어려서부터 독서인으로 출발해서 과거를 통한 중앙 진출을 꿈꿨다. 하지만 조상이 그랬다고 해서 후손 역시 똑같은 길을 걸을 순 없었나 보다. 나중에 다양한 수기와 역사 서술을 거뜬하게 소화해낼 정도의 학식은 갖추었지만 아쉽게도 과거와는 운이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신 장다이는 부유한 집안의 경제적 배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취미활동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역사 전공 분야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명나라 시대 후반에 이르러 급격하게 진행된 부재지주 현상에 대한 경제사학적 분석이 마음에 들었다.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 가문의 예술인들에 대한 풍족한 지원이 르네상스 문예부흥의 단초를 제공했듯이, 부유한 문화자본이야말로 명대 강남 지방에서 등불놀이, 가극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가 발전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룽산으로의 귀환>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조금 의아했던 점 중의 하나는 명말청초라는 그야말로 천지개벽하는 내우외환의 시대에 장다이가 살던 강남의 사오싱/항저우 지방은 어쩌면 그렇게 천하태평했을까라는 점이다.

 

보통의 저술 같았다면 바로 그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갔을 텐데 역시 고수는 달랐다. 탐미적인 경향의 심미주의자였던 장다이의 실체에 좀 더 독자를 인도하기 위해 <쾌락동호회>라는 제목으로 첫 장을 시작한다. 학업으로 성취를 이루지 못하자 장다이는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려 많은 돈을 들여 형형색색의 등을 수집하고, 음주와 가무를 즐기는 그야말로 강남 한량의 생활을 만끽한다. 다양한 경력의 친구들과 숙부와 함께 만든 차 동호회에서는 난설차 끓이는 법을 연구하고, 민물 게를 시식해 보기도 하고, 사비를 들여 가극단을 조직하는 시세말로 하면 연예기획사를 차려 다양한 문화활동에 전념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모두 만력, 천계 그리고 숭정 연간에 명나라가 북쪽에서는 만주족의 청나라가 부흥하여 명나라의 국경을 위협하고, 남동 해안에서는 일본 왜구와 해적이 출몰하여 국가가 비상시기로 돌입하는 과정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환관 정치로 인한 부정부패, 과중한 세금으로 국가 재정은 파탄의 지경에 이르렀고, 북서 지방의 농민반란, 각종 전염병의 만연으로 국가는 망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문화 중심이었던 남부 사오싱에서 백성들은 장다이가 공을 들여 기획한 가극과 등불 잔치를 즐겼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장다이는 후세가 기억할 만한 출중한 기록 작업에 착수했다. 한 가지는 전란기에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도암몽억>이었고, 다른 하나는 명조 17대 황제의 역사를 다룬 <석궤서>였다. 수도였던 베이징은 물론이고 결국 강남의 사오싱까지 휩쓴 전란의 후유증은 부잣집 도련님인 장다이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앗아가 버렸다. 명나라 멸망 후, 잠시 아버지가 모셨던 노왕의 후예를 따르기도 했으나 조정에 출사하지도 않은 일개 유생이 다른 명조의 유신들처럼 절개를 지키며 왕조와 운명을 함께 한다는 설정은 한량 장다이의 품성과는 맞지 않았던 걸까. 장씨 집안의 모든 재산과 3만 권에 달하는 장서를 모두 잃고, 도망자 신세였던 47세의 중년의 장다이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 자신이 아는 유일한 세계였던 사오싱 룽산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중국 역사서의 전범을 제시한 태사공 사마천 선생의 전례를 따라 기전체 방식으로 필생의 역작으로 자부할 만한 <석궤서> 집필에 여생을 바치게 된다. 본기보다 열전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역사 서술 방식 때문에 장다이는 자기 집안의 출중한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도 넉넉하게 넣을 수 있었다. 조너선 스펜스 교수는 조금은 야박하게 그의 역사 서술 방식의 단점을 꼬집기도 하지만, 장다이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역사를 쓴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궁핍한 경제상황 속에서 어디까지나 자비를 들여 쓴 역사 저술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나저나 장다이는 그 어려운 시기에 상당한 비용이 드는 지필연묵을 도대체 어떻게 조달했을지 궁금하다. 하긴 전란의 위기 속에 원고 뭉치를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다닌 위인에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으려나.

 

그렇다고 조너선 스펜스가 장다이의 저술에 대해 비판만 하는 것은 또 아니다. 비록 장다이가 취사선택과 편집이라는 방식을 통해 자기 가문 출신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회피한 것도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상이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게 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문점에 대해서도 기술한 점에 대해서는 또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오리고기 먹자판’(115쪽)을 벌였다가 고생한 장면을 시시콜콜하게 설명해주는 장면에서 장다이의 유머가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장다이는 <석궤서>와 <석궤서후집>을 저술하는 가운데, 당대에 다루기 미묘한 주제였던 권력주체 청조(淸朝)와 오삼계 같은 인물의 기술에 대해서도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룽산으로의 귀환>은 확실히 역자의 유려한 번역 덕에 읽는데 부담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 중의 하나는 지명이야 그렇다 치고 저술에 등장하는 중국 역사 인물에 대한 현지식 표기가 좀 불편했다. 오월시대의 명재상이었던 범려는 판리로, <귀거래사>의 주인공 도연명의 본명인 도잠은 타오첸으로 하니 한 번에 탁하니 닿지가 않는다.

 

잘 나가던 청장년기에 비해, 망국의 유민 장다이의 말년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국가를 비롯한 모든 사물의 흥망성쇠가 있듯 개인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우한 시기가 개인의 성찰을 일구듯, 전란기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 다니던 중에 쓴 도암의 “꿈같은 기억”이야말로 부잣집 도련님으로 평생을 살았던 장다이 삶의 압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자칫하면 영원히 잊혔을 17세기 중국 강남 지방에 살던 장다이의 삶을 그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재창조해낸 서양 학자 조너선 스펜스의 놀라운 저술에 감복할 따름이다. 아직 읽지 못한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다른 저작들을 차근차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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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 2017-08-09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통사람들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미시사˝라니 신선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과거 사람들의 생활상은 거의 고전문학을 통해서 짐작만 해왔는데 미시적인 방식으로 접근한 역사교양서를 읽으면 오히려 <토지> 같은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말씀대로 중국 역사 인물의 이름을 현지식으로 표기했다는 점은 좀 아쉽네요. 저처럼 우리 한자식 표기에 익숙한 사람은 가독성이 떨어질 것 같아요.

오늘도 좋은 글 고맙습니다^^

레삭매냐 2017-08-09 11:4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저자가 미국 사람이다 보니
현대 중국식 표기를 하게 된 게 아닌가
싶네요.

최근에 글항아리에서 명말 사대부들의
삶을 다룬 책이 나온 것 같은데 분량
이나 단가가 후덜덜해서 읽어 보고는
싶은데 망설이는 중입니다.

2017-08-09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0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 중고서점 동탄점 오픈

 

이웃 화성 동탄 반송동 메타폴리스에 새로운 알라딘 중고서점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재빠르게 달려갔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메타폴리스로. 예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어서 헤매지 않고 금세 갈 수가 있었죠. 평일이라 그런지 차가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예전에 주말에 갔을 적에는 정말 고생했거든요.

 

 

주차를 A블럭에 하는 바람에 건너가야 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와서 조금 어리둥절해 했지만 금세 적응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도 봤던 대로 건너가다 보니 여전히 공사 중인 곳들이 많더군요. 아마 동탄의 핫플레이스다 보니 주차공간이 부족해서 추가 공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알라딘은 홈플러스 매장을 좋아하는지 메타폴리스 지하에도 홈플러스가 있더군요. 인천 계산동과 북수원 홈플러스에도 아마 매장이 있었죠. 북수원에는 종종 방문하지만 계산홈플러스 알라딘에는 못가 봤네요. 개인적으로 가본 곳 중에서 최고는 구월동 알라딘 매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 드디어 도착!

어느 매장이나 동일한 디자인으로 고객을 맞이하는 간판입니다.

아무래도 신도시에 입점한 탓인지 깨끗하고 좋습니다. 문득 그 전에는 어떤 매장이 자리를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쇼핑몰의 경우,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단 입점했다가 폐점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희 동네 피트인의 경우에도 1년 정도 지나 자리를 잡아 가는 분위기더군요.

 

 

오늘 들어온 책이 무려 1,602권이라고 합니다. 아마 신규 출점의 경우 갠춘한 책들을 몰아 주는 경향이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 오늘 동탄점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미 사전에 살 책들을 조사해 왔기에 다른 책들은 사지 말자는 주문을 걸었습니다.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예상에 두지 않았던 책들을 만나 사게 되거든요. 어느 분은 같은 서점에 머물면서 자신이 찾던 책을 다른 고객이 사가는 경험도 했다고 하시더군요. 전 그전에 분당 서현점에 롤랑 바르트의 <기호와 제국>을 사러 갔다가 비슷한 체험을 했었습니다. 분명 있다고 하는데 해당 서가에 없는 겁니다. 스택이 잘못 되었거나 누군가 들고 있다는 말이겠죠. 아쉬웠었는데 이젠 절판이 되어 더더욱 아쉽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다 못 읽고 반납한 기억이 납니다.

 

 

역시 신간코너가 눈에 들어옵니다. 라이벌 그래24 중고서점에서는 대부분 책들의 가격이 정가의 50% 선에서 정해져 있지만 알라딘에서는 책의 컨디션에 따라 최상, 상, 중 그리고 하급으로 분류를 하죠. 그래서 왕건이 아이템을 득템하는 그런 재미가 있습니다. 알라딘에서도 물론 최상급 컨디션의 중고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긴 하지만 카드나 기타 등등의 혜택을 이용하면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죠.

 

 

오늘 팔고 간 책 코너입니다. 인터넷으로 조회를 해도 잘 나오지 않는 따끈따끈한 책들을 구할 수가 있는 코너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오던 레이 황 교수의 <장제스 일기를 읽다>도 바로 이 코너에서 데려왔습니다.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라 반드시 중고책으로 구하리라 결심을 하고 있던 차에 만나서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산 기억이 납니다.

 

 

 

사전에 조사해 간 책 두 권부터 우선적으로 책바구니에 담았습니다. 하나는 필립 큔 교수의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이란 책입니다. 책과함께 출판사에서 아마 처음으로 나온 책이라는 칼럼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품절 책이라 구할 수가 없어서 도서관을 이용해 보려고 했으나 결국 못 다 읽고 반납한 기억입니다. 그리고 분명 예전에 한 번 산 것 같은데 어마무시한 책탑 속에서 찾기를 포기하고 마침내 수중에 넣을 수가 있었습니다. 청나라 건륭 연간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다룬 책으로 서구 지식인이 쓴 중국사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케이스로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책이 있습니다.

 

다른 한 책은 역시 역사책으로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나온 멍만 선생의 <여황제 무측천>입니다. 수많은 황제들이 명멸해간 중국 역사 속에서 유일무이하게 황제의 자리에 까지 올랐던 여황제 측천무후 무조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서적입니다. 당나라 고조 이연을 도운 개국공신의 자리에 올랐던 무사확의 둘째딸로 당태종의 후궁 재인이 되었다가 훗날 태종 이세민의 아들 고종 이치의 황후가 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팔자도 센 여인이로구만. 암튼 일단 읽기는 시작했는데 첫 번째 장 정도만 읽었다. 급한 불을 끄는 대로 읽어야지.

 

 

 

아직 문을 연지가 얼마 되지 않아 소장 도서가 꽉 차 있지는 않습니다. 주변에 입소문이 나고 그동안 쟁여 두었던 책들을 그야말로 박스째 가져 오기 시작하면 감당이 안될 정도로 그렇게 책들이 불어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는 곳만 하더라도, 차로 몇 상자씩 실어 오는 걸 많이 봤거든요. 물론 그 와중에 판매가와 매입 여부 때문에 스탭 분들과 실랑이하는 경우도 종종 있더군요. 인터넷에서 구입을 한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매입 거부를 당할 수 있다는 고지가 있는데도, 그리고 굳이 매입처에서 안 사겠다는 책을 팔겠다고 고집 부리는 모습은 보기 좀 그렇더군요. 안 사겠다면 버리거나 혹은 기증 등등의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걸 유념했으면 좋겠습니다.

 

 

역시나 신규점이라 그런지 실내가 깨끗하고 아주 좋았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서점만큼 좋은 공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희 동네 알라딘에 며칠 전에 들러 보니, 아이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빼곡하게 한 구석에 앉아서 열심히 책을 보는 모습이 아주 흐뭇했습니다. 물론 책읽이에만 열중마시고 필요한 책은 사주시는 센스!

 

 

자자, 다음은 이제 동탄점에서 제가 만난 책들입니다. 찰스 부카우스키의 책은 어찌어찌해서 다 구해서 읽고 있답니다. 그런데 시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동탄점에 가서 살펴 보았습니다. 영시를 번역한 것 같은데, 사실 시는 제가 주력하는 분야가 아니라 좀 고민하게 됐습니다. 벤 오크리의 책까지 사게 돼서 부담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 이 책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양이 관련 도서는 관심이 없어서 패스했는데 그래도 부카우스키 팬이니 사 버려?

 

 

올해 작가 전작주의를 나름 선포하고 열심히 읽은 이언 매큐언 작가의 <체실 비치에서>였습니다. 물론 다 읽은 책이고, 이미 소장까지 하고 있지만 반가워서 사진에 담아 봤습니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곧 개봉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그나저나 <속죄>는 언제 다 읽게 될까요. <속죄>만 다 읽으면 이언 매큐언 읽기는 일단락되겠죠.

 

 

올 여름에 나올 거라던 필립 로스의 <미국을 향한 음모>는 도대체 언제나 출간될지. 2년 전 겨울에 읽은 필립 로스의 <죽어가는 짐승>은 정말 최고로 야한 소설 중의 하나였다. 동명의 영화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 감상하지 못했다. 아마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는지 책이 없어서 살까 말까 망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읽은 책은 잘 사지 않게 되더라. 아마 당장에 구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겠지. 혹시라도 절판되거나 그렇게 된다면 바로 사지 않았을까나.


이상은 짧은 나의 동탄 알라딘 방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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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8-08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규출점인 경우 정말 괜찮은 책 몰아주는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바구니에 담으신 것만 봐도 득템이네요!

레삭매냐 2017-08-08 14:2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

신규 출점의 경우 기존의 다른 점포들에서 알짜배기
책들만 우선적으로 선정해서 몰아주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갠춘한 책들이 있어야 고객들이 찾을 테니
까요.

cyrus 2017-08-08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면 동성로점, 상인점이 들어선지 얼마 안 됐을 무렵에 절판된 좋은 책들이 많이 보였고, 샀던 것 같습니다. ^^

레삭매냐 2017-08-08 14:30   좋아요 0 | URL
그렇죠 ~

그래서 새로 생기면 바로 달려 가서 쓸어와야
합니다. 라이벌들이 다 챙겨 가기 전에 말이죠 ㅋㅋ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베스트셀러의 유혹?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책이 읽고 싶었다. 언젠가 들은 문학동네 팟캐스트 채널1 문학이야기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예능 알쓸신잡 출연으로 수년 만에 발표한 소설집도 순항 중이고, 이제 곧 영화도 개봉예정이라고 하니 작가에게는 겹경사다.

 

책을 읽기 전에 팟캐스트로 책의 저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입수해서, 사실 책읽기는 어쩌면 내가 들은 것의 점검 정도였을 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의도와 그리고 날카로운 예봉의 평론가의 포인트를 듣고 나니 책읽기의 재미가 배가 된다. 저자의 우려대로, 비슷한 제목인 아멜리에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이 연상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150쪽 남짓의 경장편인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은퇴한 살인자가 마지막 살인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왜 주인공 김병수는 25년간 그만 둔 살인을 다시 결심하는 걸까? 은퇴를 번복할 만큼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대두된 심각한 문제 하나가 있다. 그는 지금 시간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 현대적 병명으로 치환하자면,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말이다.

 

이미 이 지점에서 책은 충분히 독자로 하여금 흥미로움과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전직 수의사인 이 연쇄살인범은 아마추어 시인이자, 고전읽기를 즐기는 문인이다. 이미 십대에 폭력가장인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은퇴시켰고, 그것을 시발로 해서 킬러의 길에 들어섰다. 그가 주로 활동하던 시대인 1960~70년대는 체계적인 과학수사 따위는 없었고, 사로잡히지 않고 마음대로 무대를 휘저을 수가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 매혹적인 것이 살인이었노라고 기억을 잃어가는 킬러는 담담하게 때로는 냉혹하게 기술한다.

 

작가는 초반부터 대놓고 은퇴한 살인자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치매환자라고 선포하지만, 독자들은 작가가 놓은 교묘한 덫에 바로 걸려 버린다.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오락가락하는 주인공의 정신에 대해 독자는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종잡을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순간의 착란이야말로 작가가 야심차게 준비한 반전의 복선이 아니었을까. 그 어느 때보다 느리게, 그야말로 김병수가 잃어가는 기억처럼 한땀한땀 써낸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은 순수한 악의 본질을 관통한다.

 

인간이란 존재가 결코 싸워 이길 수 없는 존재인 불변의 크로노스, ‘시간’이야말로 이 소설의 중심이다. 주인공 김병수는 그리스 고전에 등장하는 아버지를 죽이고 그 사실을 잊어버린 오이디푸스를 비웃으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묻는다. 그에게 영화까지 만들어진 ‘살인의 추억’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사방에서 조여 들어오는 시간의 압박에 맞서 기록하고, 심지어 녹음까지 하며 필사적으로 맞서지만 한 때 무시무시했던 연쇄살인범의 승부는 이미 갈려있다. 다만 타이밍의 문제다. 그가 남긴 기록조차도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독자는 무시로 간과한다. 실제 생활에서라면 어림도 없겠지만 이 역시 문학이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어쩌면 이 점이야말로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는 재미일 것이다.

 

아직까지 김영하 작가의 다른 소설을 충분히 접해 보지 못해, 비교평가가 어렵지만 전작들에 비해 유머가 늘었다는 작가의 말대로 이 노련한 살인자는 교양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유머도 갖췄다. 일본 방문길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는 공항직원의 질문에 그는 당당하게 “killing people"이라고 대답하고, 질문자는 ”healing people"이라고 잘못 알아듣는다. 촌철의 유머가 빛나는 장면이다. 시를 가르치는 문화센터 강사도 시원찮으면 은퇴시켜 버리겠다는 그의 독백이 농담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전자가 밝은 차원의 유머라면, 후자는 블랙유머 쯤 되겠다.

 

개인적으로 살인자 김병수가 살인을 그만 두게 된 계기가 마지막 살인 후, 당한 교통사고 때문이라고 했는데 소설에서 그 뒤의 삶에 대한 설명부족이 좀 아쉬웠다. 살인자는 그 뒤에 어떻게 먹고사니즘을 해결했지? 소설을 보니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어 보이는데, 궁금하다. 그리고 팟캐스트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역사적 특수화라는 점으로, 한국화된 시리얼 킬러의 원형을 제시했다고 하는데 좀 더 그 부분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뤘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의 정의를 행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천조국의 시리얼 킬러 덱스터와 김병수의 차이점은 무얼까. 그 누구도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주지 않았지만, 체포와 처벌을 아랑곳하지 않고 목표물을 제거하는 냉혹한 시리얼 킬러가 어느새 문학에서 하나의 클리셰이(cliche)라는 전당의 주인이 된 건 아닐까.

 

 

기억을 잃어가는 이에게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이미 물 건너갔고, 지금인 현재도 같은 운명이다. 그에게는 역설적으로 미래기억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미래기억 역시 소멸을 전제로 그 앞에 놓여 있을 뿐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렇게 존재의 소멸을 모른 채 혹은 외면한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가가 던지는 짓궂은 농담이다.

 

* 다음 달에 동명의 영화가 개봉예정이라고 한다. 김병수 역은 연기라면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설경구가, 오달수와 김남길가 조연을 그리고 걸그룹 AOA 출신 설현이 출연한다고 한다. 소설은 경장편인데 영화는 두시간이라니, 아마 디테일이 많이 추가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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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8-08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읽은 기억이 나는데 내용은 가물가물 하네요.곧 영화로 나온다는데 주연이 설 씨라서 좀 망설여지네요. 오랜만에 떠올려보네요. 더운 날씨 건강 잘 챙기세요.

레삭매냐 2017-08-08 13:21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영화 트레일러 덧글을 보니 흥행이 될지
궁금해 하는 글들이 있더군요.

쇼코 2017-08-08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영화가 개봉한다고 해서 책을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레삭매냐님 글 보니 소설이 더 궁금하네요. 레삭매냐님은 팟캐스트를 듣고 책을 더 재밌게 읽었다고 하셨는데 저는 레삭매냐님 글 덕에 소설을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좋은 리뷰 고맙습니다!!

레삭매냐 2017-08-08 13:22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내 머릿속의 지우개> 스크린
플레이 작업도 한 적이 있다는 김영하
작가가 직접 각색 작업을 했는지 궁금하네요.

2017-08-08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8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리를 건너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요시다 슈이치 작가의 책들을 최근에 읽기 시작했는데 신간 <다리를 건너다>에서 요시다 씨는 독자의 예상을 뛰어 넘는 그런 파격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사했다. 작가 소설의 핵심요소 중의 하나는 불륜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불륜”에대한 정의를 검색해 보니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라고 되어 있었다. 단순하게 결혼생활에서 다른 상대를 만나는 것을 불륜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생각과 사전적 정의는 상이했다. 물론 광의의 차원에서 본다면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가 그 누구보다 멋지게 잘 다루는 소재를 활용하면서 또 차원의 세계로, 다시 SF물을 연상시키는 결말에까지 도달하는 장면을 보면서 역시 작가는 이래야 하는구나,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자세로 새로운 도전을 마다해야 하지 않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결혼 8년차 아이가 없는 아키라와 아유미 부부는 부모가 싱가폴로 취업해서 가족이 이사하게 되었지만 거부하고 일본에 남기로 결정한 고등학교 조카 고타로와 일상을 영위한다. 화자 아키라는 도쿄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아유미의 처조카 고타로와 함께 사는 걸 그다지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면서도, 최근에 사귀기 시작한 유카짱과의 관계를 걱정한다. 유사 아버지의 고민이라고 해야 할까? 고타로와 유카짱은 아키라의 걱정 대로 결국 모종의 사고를 치게 된다.

 

한편 갤러리 오너 아유미에게 자신의 작품을 봐달라며 일본주나 쌀을 보내오고 심지어 집에까지 찾아오는 예술가 지망생 아사히나 다쓰지의 집요함에 아유미는 진저리를 내고 있는 중이다. 아키라는 조심스럽게 아사히나 군의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인 아내에게 물어보지만 아내는 단칼에 전혀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선언한다. 아유미의 판단 착오였을까? 아니면 저명한 인사의 추천으로 아유미의 예상과는 달리 아사히나 군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이 또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이 에피소드에서 등장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언급에 마음 한구석이 저릿저릿해져 온다.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본 작가도 희대의 비극에 대해 글을 남겼구나하고 말이다.

 

다음에 등장하는 여름 에피소드에서는 아키라 스토리에서도 등장했던 도의원 성희롱 사건의 진범일지도 모르는 히로키의 아내 아쓰코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현재에서 70년이나 지난 다음의 이야기인 <그리고, 겨울> 편 전까지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묘한 접점을 가지고 있다. 내가 그동안 요시다 슈이치를 읽으면서 느낀 점인데 이 작가는 그런 접점을 묘사하고 전개하는데 있어 매우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이어지는 부드러운 전개, 아 전의 에피소드에서 그런 장면들이 있었지 하고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발군의 능력 말이다. 현대 뉴스 미디어의 활용에 있어 요시다 슈이치는 정말 뛰어나구나 싶다.

 

아내는 마초 스타일의 남편 히로키가 성희롱 사건에서 잡히지 않은 주범이라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남편이 보여준 그간의 행동을 유추해 볼 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다. 아들 다이치 군이 무더운 여름날, 수영장 교습 중에 쓰려졌다는 소식에 놀라운 마음을 추스르며 아들을 절친한 아야짱 엄마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데려온다. 남편 히로키가 렌즈 회사를 운영하는 친구 에하라 씨에게 부정한 뇌물을 받는 장면을 목격한 아쓰코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남편과 가정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러면서 다른 충격적인 뉴스들이 연달아 등장해서 자기 남편의 스캔들이 덮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구독 중인 주간지 담당에게 전화를 해서 새로운 특종을 캐달라는 독촉을 하기도 한다. 이 에피소드에서 아쓰코의 특종 독촉은 가을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접점을 만들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이 자신의 집을 찾아오자 남편의 스캔들 꼬리가 잡혔는가 긴장하지만 아야짱 엄마와 수영장 오야 코치가 사라졌다는 소식에 안도하기도 한다. 자신이 알게 된 비밀 때문에 시작된 아쓰코의 번민은 예상치 못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자, 이제 소설 <다리를 건너다>에서 가장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 번째 에피소드 <가을-겐이치로>가 등장할 차례다. 그동안 요시다 슈이치 작가는 개인의 영역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에 전력을 다했었는데 이번 소설에서는 사회 이슈들에 대한 질문들에 도전한다.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일 필두로 해서, 도의원 성희롱 사건, 파키스탄의 말랄라 유사프자이 테러사건, 2014년 홍콩의 우산혁명에 이르는 다양한 이슈들을 이번 작품에 녹여 내고 있다. 다큐멘터리 작가 겐이치로는 와타이고 동아리에서 만난 가오루코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자신의 일에 충실한 남자 겐이치로는 평화헌법을 지지하는 일본 국민 대신 말랄라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지지하는 가논짱을 취재하고, 홍콩의 우산혁명을 취재하는 자신의 일에 충실한 남자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겐이치로 삶의 균열은 약혼자 가오루코에게서 비롯된다. 앞선 에피소드의 주인공이었던 아쓰코 씨의 특종 독촉전화를 받았던 주간잡지 사의 친구로부터 애인 가오루코와 한때 그녀가 빠졌던 유부남 유키 씨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겐이치로는 가오루코가 약속을 갑자기 취소한 날 불길한 예감에 유키 씨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아, 그전에 요시다 슈이치 작가는 모든 에피소드를 종결시키는 <그리고, 겨울> 편에 대비해서 미래의 안드로이드 인간을 만들 수 있는 연구를 진행 중인 사야마 교지 교수를 등장시킨다. 자신의 세포를 이용해서 정자와 난자의 유전자 재조합 과정을 통한 복제인간 프로젝트 말이다. 이미 영화 <아일랜드>에서도 등장했던 예의 컨텐츠에 대한 기시감이 겐이치로가 말하는 “스페어” 개념과 어우러지면서 과연 요시다 슈이치 작가가 왜 굳이 이 스토리를 소설에 집어넣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궁금증은 결말에서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다시 겐이치로와 가오루코의 이야기로 돌아와 결국 겐이치로는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여자와 그 남자가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안 본 것으로 할 수도 있었겠지만, 순수한 겐이치로의 양심은 그것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세월호 사건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들의 양심 그리고 위안부가 없었다는 주장을 펼치던 아사히 신문의 추락이라는 뉴스가 자기 남편의 부정을 감추어 줄 거라는 아쓰코 같은 개인이 대변하는 일본인들의 양심을 예리하게 타격한다. 결국 가루이자와 별장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전국을 도주하던 겐이치로는 쓰시마에서 와타이고를 혼신의 힘을 다해 두드리며 삶 가운데 옳지 않은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소설 <다리를 건너다>는 결말의 수레를 굴리기 시작한다. 처음의 세 이야기들이 현재상을 다룬 거라면 <그리고, 겨울>은 70년 뒤 사야마 교지 교수가 개발한 기술이 창궐한 디스토피아 일본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어쩔 수 없이 리들리 스콧의 레플리컨트를 연상시키는 ‘사인’이 도래했다. 가사나 병간호 같이 기존의 인력이 동원되는 로봇이 대신하고, 70만 명 연구소에서 태어난 사인(복제인간)과 결혼도 하고, 군인으로 전선에 배치하기도 한다. 역시 인간과 같이 유한한 존재라는 점 그리고 생식능력이 없다는 점 등은 레플리컨트와 유사하다. 주인공 히비키와 린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릭 데커드와 레이철처럼 알 수 없는 지점을 향해 도주를 감행한다. 과거의 모든 것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게 된 70년 후 미래는 과연 교정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을 오가는 웜홀까지 등장한 <다리를 건너다>를 확실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요시다 슈이치 작품 중에서 최고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문제는 몇 개 읽지 않았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복잡하면서도 또 결말이 너무 궁금하게 만드는 저력을 보여준 저자는 미래를 위해 현재에 옳은 일을 하라고 주문한다. 이 순간의 결정들은 모두 미래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무엇이 잘못 되었다면, 충분히 반성하고 고치면 될 게 아닌가. 그렇게 세상을 바꾸기 위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는 열대야 속에서 눈을 비벼 가며 읽을 정도의 수고를 감내할 만한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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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7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8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광조 평전 - 조선을 흔든 개혁의 바람
이종수 지음 / 생각정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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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폭정의 그림자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조광조 평전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책에서 가장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문장이 아닐까 싶다.

 

촛불선거로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적폐청산, 개혁을 표방하고 있다. 프랜차이즈와 군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질 천태만상에 대한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오백년 전 조선을 살았던 사대부이자 특출한 학자 지식인이었던 조광조 역시 비슷한 상념에 빠지지 않았을까 싶다. 조선 건국 한세기 정도가 흐르면서 조선의 권력층은 필연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고, 수양대군의 쿠데타, 연산군의 폭정 기간 동안 벌어진 두 번의 사화 그리고 마침내 신하들이 일어나 군주를 몰아낸 반정에 이르면서 그동안 쌓인 적폐들이 비등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평전은 기세등등하게 개혁과 혁신을 주도하던 대간 조광조의 실각이 벌어진 기묘년의 친위쿠데타로 시작한다. 조선의 11번째 군주였던 중종의 치세를 함께 했던 풍운아 조광조가 실제적으로 활약했던 시기는 고작 4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사림은 조광조가 총애를 입던 군주 중종에게 사약을 받은 뒤,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조광조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당시 국립대학 격인 성균관에 진입한 후, 천거로 조정에 출사하게 되는 순간부터 그를 반대하는 정적들의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연산군 시절 사화로 유배 중이었던 사부 김굉필을 17세의 나이에 찾아 사사 받은 후, 너무나 학문을 사랑한 나머지 광자(狂者)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들어야 했던 희대의 지식인은 꿋꿋하게 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사장(문학)을 멀리하는 후생철학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사장으로 승부를 걸어 1510년 진사시에 합격하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지 않았던가. 책을 통해 온전하게 성리 철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조광조는 실천을 통해 요순시절의 군주와 백성을 재현하겠다는 정치적 포부를 안고 있었다.

 

한편, 명군 성종의 왕자로 연산군 치하에서 숨죽여 지내던 진성대군 중종은 반정으로 일약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자그마치 38년 동안이나 왕위를 지킨 중종은 치세 10년간은 반정 삼대장이라 불리는 박원종, 성희안 그리고 유순정을 비롯한 공신들의 위세에 못이겨 허수아비 임금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군주의 권위를 넘어설 정도로 위풍당당하던 공신들이 사라지면서 청년 군주는 자신만의 정치를 펼쳐 보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거에 빚지지 않은 신진 세력이 필요했다. 이미 기득권 세력으로 안착한 공신 그룹에서는 그런 인재를 찾을 수가 없었으리라. 그런 와중에 사림의 기대주였던 원론주의자 조광조야말로 적합한 인재였다.

 

굳이 과거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1515년 알성시 급제로 자신의 정치적 포부와 앞으로 펼칠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밝힌 조광조는 천거로 등용되었다는 핸디캡을 털어내고 마침내 정6품의 사간원 정언(정원 5명)으로 중앙 정계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혁신가의 등장은 시작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자신이 몸담은 사간원과 사헌부의 수장들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주상에게 올리면서 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중종은 반정세력에 의해 원래 부인이었던 신 씨와 강제이혼 당한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후 장경왕후 윤 씨가 사망하면서 새로운 왕비 간택을 앞두고 구언을 받는 와중에 담양 부사 박상과 순창 군수 김정이 올린 신씨복위상소가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군주에게 올린 구언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중종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지적한 당사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양사 수장들의 의견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광조는 구언 상소를 올린 이들을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원론에 입각한 ‘사림의 공론’이라는 주장으로 양사의 수장들을 파직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폭군 시절이었던 폐주 연산 시절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지식인의 기백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전 권력의 모든 것을 부정해야 했던 중종 연간에 비약적으로 성장한 사림세력으로서는 언로를 탄압하는 것을 묵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접한 침묵은 폭정의 그림자라는 표현은 지난 정부에서도 이미 우리는 목격하지 않았던가.

 

이듬해인 1516년(35세) 홍문관 수찬으로 임금의 공부시간인 경연에 참여하게 된 조광조는 자신이 꿈꾸는 도학정치의 전개에 앞서 군주 교화작업에 착수한다. 왕위계승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중종은 어린 시절 학문을 가까이할 겨를이 없었다. 왕이 되어서도, 근 십년간 경연은 형식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광조라는 엄격한 가정교사의 등장으로 국왕의 경연시간은 전혀 이전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조광조는 조강, 주강, 석강의 기본 경연 시간외에도 야대라는 야간공부 과정을 통해 28세 청년군주의 학문적 성취를 지도했다. 여러 서책 중에서도 그는 특히 <근사록>과 주자가 편찬한 <소학>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조광조와 신진사류가 꿈꾸던 요순시대 왕도정치의 도래를 위한 군주와 백성의 교화에 <소학>은 필수요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읽어야 할 텍스트와 사상을 장악하는 쪽이 승자가 된다는 역사적 사실을 개혁가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에 이어진 전광석화 같은 개혁조치들은 다음과 같다. 내수사 장리와 기신재 혁파, 소격서 혁파 등을 통해 흐트러진 유교국가 조선의 기상을 세우고 했다. 조선 사림의 영수라는 사대부 여론의 지지를 업고, 현량방정과까지 신속하게 실시한 정암 조광조는 세부적인 사항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점이다. 소격서 혁파 논쟁 가운데, 임금의 역린을 건드린 탓일까? 정암이 보다 신중한 자세로 중간점검을 하면서 자신의 지지세력은 물론이고 반대세력까지 끌어안는 정치력을 구사했다면 중종연간 그가 주도한 개혁은 어쩌면 성공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짜 반정공신들에 대한 정국공신 개정과 위훈삭제라는 그야말로 기득권 세력을 인정하지 않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남곤, 홍경주와 심정 등으로 대변되는 반대파들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연출된다.

 

결국 중종이 석연치 않은 붕비의 죄를 물어 조광조를 비롯한 8명의 신하들을 파직하고 사형과 유배형을 선고하는 기묘사화로 정국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반대파들의 명백한 상소도 보이지 않았으며, 중종은 자신을 믿고 따르던 신하들에게 해명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속전속결로 개혁세력을 조정에서 일소해 버렸다. 의정부의 수장이었던 영의정 정광필이 조광조가 구사한 모든 정책을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선비로서 정암 선생의 구명에 나선 것도 주목할만하다. 붕비의 죄 정도로 사형에 처할 정도는 아니라며 자신의 소신에 따라 조광조를 변호하는 장면에서는 조선 선비의 기개를 엿볼 수도 있었다.

 

송나라 시절 왕안석의 신법처럼 조광조와 소학일파가 구사한 개혁 역시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것일까. 군주제 국가에서 국왕과 정부를 위한 개혁은 가능할지 몰라도, 밑바닥 백성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개혁까지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조광조가 강조하는 도학정치는 국왕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신의 곁에서 사사건건 조종조의 예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며 결단력 없는 군주에게 항상 결단을 요구하는 강직한 신하가 주는 피로도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중종의 친위쿠데타가 기묘사화로 이어지지 않았나 추론해 보게 된다.

 

일세를 풍미한 개혁가가 죽은 뒤, 조선은 명종 연간 외척의 발호 그리고 선조 연간의 임진왜란으로 국가 부도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중종 연간에 이미 조광조를 제외한 나머지 개혁 인사들의 복권은 마무리되었으나 자신이 죽음을 명한 개혁의 영수에 대한 사면은 끝내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조선 사림의 대표선수로 각인된 조광조는 후대에 사면 복권되었고 선조 대에는 문묘에 종사되는 유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문득 죽음 뒤에 그런 영예 보다 살아서 중종 연간의 긴 치세 기간에 개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면 문정공 조광조에게 보다 큰 영예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야사에서나 등장할 법한 조작설인 주초위왕(走肖爲王) 스토리는 저자가 아예 배제한 모양이다. 매 장마다 작가의 상상력을 덧입힌 도입부도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98년 전에 일어난 사건(기묘사화)과 인물을 평전에 등장하는 정암문집이나 중종실록 같은 기록만으로는 독자에 대한 호소력이 떨어질 거라는 점을 정확하게 파악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기록에는 충실하되, 상당한 공백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하면서도 합리적인 추론으로 채워 넣은 저술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또다른 개혁가 장거정 평전을 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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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 2017-08-07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등학생때 국사 과목을 좋아해서 지금까지도 저는 ˝역사 좋아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생각해보니 제대로된 역사관련 도서를 읽어 보진 않았던 거 같아서 반성하며 읽었어요. 그래도 역시나 다른 사람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증말 재미지네요. 현재와 과거를 유려하게 연결짓는 레삭매냐 님의 깊은 안목이 느껴지는 글이라 읽는 내내 더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이 책도 꼭 읽어보고 싶어요. 좋은 책 소개해 주시고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돌아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레삭매냐 2017-08-07 13:18   좋아요 0 | URL
역사 전공자라 좀 더 많은 역사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소설만 줄창 읽고
있습니다.

그래도 소설 읽는 속도보다 역사책 읽는 속도
가 빠르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려고.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