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희망이다>를 리뷰해주세요
거꾸로, 희망이다 - 혼돈의 시대, 한국의 지성 12인에게 길을 묻다
김수행 외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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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과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추억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진 몰라도 책을 보는 내내 삐딱선을 탄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 오탈자들이 보일 적마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나는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유감을 제외한다면 시사IN북에서 나온 <거꾸로, 희망이다>는 2009년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주고 있었다.

책의 띠지에는 과감하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기를 “야만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거꾸로, 희망이다>는 12명의 지성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토론과 강연회를 통해 나누는 이야기들을 활자화한 책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촘스키와 아슈카르의 대담을 다룬 책을 읽고 있는데 좋은 비교가 되고 있다.

유시민 전 장관의 <후불제 민주주의>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민주주의가 역주행하고 있는 이 갑갑한 현실 속에서 그들은 거꾸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두 6개의 강연록으로 구성되어 있는 그 첫 번째 주자로는 “녹색평론”을 십 수 년째 발간해 내고 있는 김종철 발행인이 등장한다. 김종철 선생은 현 정부의 녹색성장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성장과 생태 환경보호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이라는 구호 아래, 소멸되어가고 있는 공동체적인 삶이야말로 21세기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김종철 선생은 역설한다. 그리고 각박한 경쟁 대신에, 인간관계에 기초를 둔 사회적 자본이야말로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우리네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아주 가슴에 와 닿았다.

두 번째 강연에서는 딴지일보의 총수 김어준이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선생과 인간 본질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들을 풀어 놓는다. 개인적으로 김어준 총수의 해학적이면서도 솔직한 입담이 인상적이었다. 자기 감각에 충실하고, 자기 대면(self encounter)을 통해 물질적인 성공과 부의 축적만이 모든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이 혼란의 시기를 극복해 나가는 팁을 정혜신 선생은 조근조근하게 풀어 나간다. 경쟁과 가시적으로 치환될 수 있는 물질적 성공만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는 현 세태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말이 뜬금없이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행동하는 실천적 삶에 방점을 찍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지성은 바로 지금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에서 은퇴하신 김수행 교수의 대담이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어쩔 수 없이 회전하게 되어 있는 위기, 공황 그리고 호황의 주기에서 우리는 현재 10년 주기로 돌아오는 위기/공황에 빠져 있다. 유례없었던 1950~60년대의 호황의 시기는 저물고,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한 공황을 신호탄으로 해서,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의 투기로 인해 작금의 경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 김수행 교수의 진단이다.


다음 편에 등장하게 되는 우석훈 교수가 자신의 저서에서 꾸준하게 주장해온 것처럼 우리나라 경제는 더 이상 1970~80년대 고성장 신화를 기대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회보장제도의 강화, 소득의 재분배와 사회적 기업들을 육성해서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여전히 위정자들은 구시대적인 사고를 가지고 대한민국 호를 이끌고 나가고 있다.

신성장 동력으로 가장 각광 받고 있는 문화 아이템들을 위한 창조적 상상력에 대해 조한혜정 교수와 우석훈 교수의 대담 또한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조한혜정 교수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소통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승자독식의 사회를 지양하고, 모든 구성원들이 덜 공포스럽게 살아가기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대한민국 시민운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박원순 변호사와의 이야기 역시 많은 공감을 자아냈다. 참여연대, 아름다운 가게 그리고 희망제작소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그의 족적은 보다 나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희망을 갖게 만들어준다. 박원순 변호사 역시 사회적 기업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만 명을 고용할 수 있는 한 개의 기업보다, 1명을 고용한 만 개의 기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건국절과 뉴라이트의 근대화론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역사학계의 주장을 서중석 교수의 말을 통해 들어본다. 어느 특정 계층을 위한 역사 연구과 해석으로 일관된 뉴라이트들의 주장에는 알맹이는 없고 검증되지 않은 이론과 가설들만이 난무하고 있다. 하나의 사실을 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게 놀랍기만 하다. 해방, 광복 그리고 건국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있어 부족했던 과거청산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경제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보여지는 경제지표들은 모두 하향곡선을 그리고만 있다. 국민소득은 몇 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고, 국민총생산 역시 우리나라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한 나라들에게 뒤지고 있다. 살인적인 물가상승에, 실업률은 단군 이래 최고를 기록하고 있고 주위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암담하기만 하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놓지 않고, 미래를 향해 달려나갈 수 있을까? 우리 시대의 양심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각개약진의 경쟁이 아닌 조화로운 공동체적인 삶을 바탕으로, 기존의 정형적인 틀을 부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져야할 것이다. 처음부터 거창할 필요도 없다. 1%의 깨어 있는 이들로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진보적이서 -> 진보적이어서 (113쪽)
2. 사레 -> 사례 (120쪽)
3. hear -> here (126쪽)
4. 조서 -> 조선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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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09-08-22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리한 분이네요. 시사인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오타 를 찾아봤는데 3번은

제대로 표시되어 있던데요. 혹시나 해서 산 책을 확인하니까 초판1쇄 인걸 보면 리뷰어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머지 1번, 2번, 4번 지적은 문제가 있군요.

책이 쇄를 거듭하면, 수정되겠죠.

레삭매냐 2009-08-24 10:52   좋아요 0 | URL
안타깝게도 저도 다시 확인해 보았는데, 오자 맞습니다.
컨텐츠에는 맞게 되어 있지만 중간 타이틀을 한 번 보시죠, 뭐라고 되어 있나
^_______^

다이조부 2009-09-03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시 찾아 봤는데 님 이야기가 정확한 지적이네요 ㅋ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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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지영 작가의 책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은 몇 년 전인가 읽었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래되어 기억이 휘발되어 버리고 지금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공지영 작가에게 자신의 글에서 다루었던 사형수들의 삶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일 뿐이다. 내가 삐딱선을 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작가들에게 타인의 리얼리티는 단순하게 작가적 상상력의 소재에 지나지 않는건 아닐까.

작가는 <도가니>에서 보다 한층 자극적인 소재로 독자들에게 접근을 시도한다. 어떤 분은 책의 내용을 알고 차마 못 읽겠다고도 말했었다. 보통의 경우에 책에 대한 편견 없이 대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전 정보 없이 바로 책읽기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책을 읽으면서 그 분이 왜 책을 읽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는지 바로 이해가 갔다.

<도가니>의 배경은 안개로 유명하다는 지방의 무진(霧津)이다. 그 유명한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미처 읽어 보지 못해 그 내용에 대해 알 수는 없지만, 역시 무진을 배경으로 한 <도가니>에서 그 이야기를 빼놓고 갈 수는 없겠지.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아내의 소개로 무진의 어느 농아학교로 오게 된 기간제 교사 강인호가 등장한다. 사립학교 채용을 위해 관행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다섯 장의 학교발전기금은 그에겐 차라리 모멸이었다. 처음에 강인호에게 자애학원은 자신의 재기를 도모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교사로 일하게 된 자애학원에서 원치 않았던 엄청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내동댕이쳐지게 된다.

<도가니>는 최근에 본 윤태호 작가의 만화 <이끼>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 우선 토착화된 지역민들이 일심동체가 돼서 외부에서 온 인사들(강인호와 서유진)의 진리와 정의를 밝히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우리는 아무런 문제없으니 공연히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우리와 지내거나 아니면 이곳을 떠나라는 식의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도저히 상식이라고는 통하지 않는 추악하고 끔찍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금력과 관권 그리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들의 악행을 덮으려 하는 지역 기득권층에 대해 공지영 작가는 날카로운 활시위를 겨눈다. 소설에서 거대한 빙산에 작은 망치 아니 맨손으로 달려드는 서유진의 모습에 작가의 그것이 얼비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많지 않은 소설의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악머구리 끓듯한 작은 도가니탕 같은 무진의 이야기들을 읽기가 사실에 다가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작가의 글쓰기 패턴을 볼 때 분명 대한민국의 어디선가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을 텐데, 그 생각을 할수록 책장을 넘기기가 버거워졌다. 더 힘들었던 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정의는 승리한다는 식의 도식적인 결말 대신에 그래도 이런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삶은 계속 되더라라는 엔딩이 예상되서였다.

그런데 작가가 <도가니>에서 다루고 있는 더 본질적인 것은 바로 사실을 대하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보다는 차라리 위선적이지만 포장되고 가공된 거짓들에게서 위안을 받는다는 것이다. 왜냐구? 참혹한 진실보다는 적당히 뚜드려 맞춘 거짓이 우리들의 마음에 자책으로 수치심을 덜어 주기 때문에. 자애학원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무진 시민들의 일반적인 속내 또한 다르지 않았다.

비록 민주화의 성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무진이지만, 이제는 빛바랜 옛 추억에 불과하고 지금은 모두 한 자리씩 잡고 공고해져 가는 기득권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밝혀져야할 진실 따위는 슬쩍 눈감아 버리면 그만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예의 도시에 농무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지영 작가의 종교에 대한 다소 회의적인 시각은 무진 영광제일교회 신도들의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아멘과 할렐루야 선창을 통해 청각화되고 있었다. 교회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들은 옳고, 그 밖에서 우리들을 핍박하는 무리들은 모두 사탄이라고 외쳐대는 맹목적인 신앙의 모습들이 자못 두렵기까지 했다. 나중에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악당들의 잘못에 대해 비판 없이 아멘을 읊조리는 그네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IMF 이후 하루가 다르게 보수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서 다시 한 번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는 것 같은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가 무척 반가웠다. 비록 책읽기가 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네 현실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어쩌면 거짓이 우리네 양심을 잠깐 동안 자유롭게 해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불의에 대해 언제나 눈을 감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정답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진실과 거짓이 뒤범벅이 된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오늘 하루를 사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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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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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상에 없는 82세의 노작가의 마지막 백조의 노래와도 같은 책을 만날 수가 있었다. 마크 트웨인 이래 미국 최고의 작가라는 호칭을 얻은 커트 보네거트의 책을 지난 4월 달에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마치 그의 작품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듯 그렇게 그의 책들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나라 없는 사람>은 자신의 평생을 반추해 보는 작가의 자전적인 에세이처럼 다가온다.

미국에서 독일계 후손으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징집되어 참전하기도 했던 커트 보네거트는 1944년 12월 14일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동부 독일의 드레스덴으로 이송되었다. 노작가는 드레스덴에서 강제노동을 하던 도중, 영국군과 미군이 추축이 되어 감행한 1945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대폭격으로 드레스덴 시가지가 불타고, 13만 5천명이 살상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이 인류 역사상 유래 없었던 대참상은 훗날 커트 보네거트를 반전 평화주의자의 길로 인도한다. 아울러 이 사건은 향후 작가의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 세계에서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미국에 사는 보네거트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은 (자유와 정의, 평화가 없는) 나라 없는 사람이라고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소수의 얼간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미국은 그 헤게모니와 방향성을 상실한 채, 국민들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해 마지않고 있다. 그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동지로 부시 행정부 시절 내내 부시 대통령을 갈구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을 들 수가 있겠다.

구닥다리 작가답게, 컴퓨터로 쓱싹쓱싹 쳐나가는 글보다는 손수 타이핑을 하고 교정을 봐서 전문 타이프라이터에게 자신의 육필 원고를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산 마닐라 봉투에 넣어 우체국에 가서 붙인다. 그리고 한 점의 스스럼도 없이 뻔뻔하게 예의 우체국에서 일하는 아가씨와 사랑에 빠졌노라고 고백한다. 그의 솔직한 고백과 글쓰기에 대한 태도가 너무 편하게 글을 찍어내는 요즘의 그것과 변별이 되어서 그런 진 몰라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모두 13편의 에세이와 각장의 시작마다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 ‘보코논’ 혹은 자신의 이름으로 쓴 묵시적인 교훈들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스스로가 수다쟁이라고 칭하는 커트 보네거트는 철지난 옛 이야기처럼 대가족제의 장점을 설파하고, 그 중요성에 살짝 방점을 찍는다. 핵가족제가 시대의 트렌드마냥 위세를 떨치고 있는 시기에 어느 노땅의 반란처럼 다가온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암울한 생각을 숨기지 않지만 그래도 인류가 만들어낸 여러 가지 발명품 중에서 특히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대놓고 드러낸다. 특히 아프리카계 흑인들에게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블루스는 모든 음악의 원조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흠,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을 두려움으로부터 방어하는 기제로서 유머에 아주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어려서부터 타인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싶어서 웃기는 말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보네거트의 솔직담백한 고백에 웃음꽃이 슬그머니 피어오른다.

자유와 정의가 꽃피울 자신의 조국 미국을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갖 사회의 부조리가 판을 치고 있는 미국을 어느 날 화성인이 침공해 주기를 내심 바라는 이중적인 면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희망을 다른 곳이 아닌 오늘도 열심히 공공도서관에서 금지된 책들을 대중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서들에게서 찾는다. 그에게는 텔레비전도, 신문 같은 대중매체들도 하나 같이 믿을 수가 없는 존재다. 오로지 책만이 우리에게 진리(veritas)를 전해 준다고 역설한다.

역시 평화주의자답게 기존의 미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기존의 (전쟁) 영웅상에도 반기를 든다. 마초주의로 무장한 영웅들이 아닌,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것에 주목해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 오스트리아 출신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의 손씻기 운동을 언급한다. 수많은 산모들이 산욕열로 죽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제멜바이스는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손씻기를 제안한다. 그에 대한 후폭풍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네 평범한 영웅들의 말로가 그렇듯 제멜바이스 역시 기존의 의학계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커트 보네거트의 <나라 없는 사람>은 팔순을 넘긴 노작가가 이 세상과의 이별을 앞두고 부른 ‘백조의 노래’처럼 다가온다. 아들과 세상살이의 본질에 대해 마치 선문답을 하듯 대화를 하고, 자신이 왜 노벨상을 받지 못했는지에 대해 농담을 하며 작가로서의 파란만장한 삶을 매조지할 준비를 차분히 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얼마 전에 읽은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에서 대작가와 담배를 같이 피우기도 했다는 닉 혼비가 어찌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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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을 리뷰해주세요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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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을 보면서 분명 서경식이라는 한국 저자 이름 옆에 ‘박소현 옮김’이라는 글이 적혀 있어서 적잖이 놀랐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글을 썼는데 또 다른 한국 사람이 번역을 했단 말인가? 그런데 책날개를 펼쳐 보면서 바로 그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서경식 저자는 재일동포로 일본에서 거주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아하 그랬구나. 그런데 저자에 대한 나의 상상의 날개는 쉬지 않고 펼쳐졌다. 현직 법학부 교수가 서양근대 미술기행 에세이를 썼다고?

서경식 작가는 책의 말머리에서 자신의 저술의 방향에 대해 매니페스토를 선언한다. 왜 우리 근대미술은 예쁘다는 미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물론 예술이 모두 정치적인 색채를 띠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의 미의식을 지배하고 국가의 통제 아래 두려고 했던 반동적 움직임에 대해 기성의 예술가들의 무기력함을 질책하고 있다. 특히 분단과 전쟁 그리고 오랜 군사독재를 경험한 우리나라에 독일의 오토 딕스가 그린 것과 같은 “전쟁제단화”가 없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물론 저자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일본의 경우야 더말할 것도 없다.

2부로 나뉜 책에서 전반부는 작가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면서 체험한 유럽 특히 독일 화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반 고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고뇌의 미학과 학살 같이 어두운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실 이 <고뇌의 원근법>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에밀 놀데 외의 전반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오토 딕스 그리고 펠릭스 누스바움 같이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성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부터 나치 지배 하의 독일 치하의 예술 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알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래 탐미주의적인 미술계의 전반적인 추세에 반대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기치 하에 전쟁과 독재 그리고 서구사에서 도저히 씻을 수 있는 한 획을 그은 홀로코스트에 이르는 전 과정을 그린 굵직굵직한 인물들을 서경식 저자는 집어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회화나 조각 같은 예술 장르가 아름다움을 다뤄야 한다는 미의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을 덮거나 혹은 괴로움으로 책읽기가 고뇌의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 국가지배를 정당화하려고 했던 1930년대 나치 독일 이데올로기에 맞서 치열한 예술 세계를 전개했던 이들의 생생한 실제 이야기들은 ,역주행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목도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다소 투박하고 원시적으로 보이는 색채나 선을 구사하는 에밀 놀데의 <그리스도의 생애> 연작 시리즈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은 아리안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인종우월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자신들의 존립기반으로 삼았던 나치 도당에게 한없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치들은 에밀 놀데를 비롯해서 유대인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아 퇴폐미술전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주의에 예술을 종속시키려는 노력을 끊이지 않고 시도했다.

정말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오토 딕스의 <전쟁제단화>를 비롯한 상이용사들의 비참한 현실과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서 실제 체험한 엄청난 살상을 동반했던 참호전에 대한 묘사는 리얼리즘의 정수로 다가왔다. 하지만 오토 딕스는 다른 예술인들처럼 정치적 망명을 택하지 않고 독일 국내에 남아 있으면서 그의 조국 독일이야말로 자신의 작품 활동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독일이 통일된 후에도 서독과 동독 양측에서 찬사를 받은 몇 안 되는 화가 중의 한 명이라고 한다.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가로는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이 등장을 한다. 부제목으로도 등장한 것처럼 “누가 펠릭스 누스바움을 기억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누군가 말했듯이,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을 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부유한 유대 가문에서 태어난 누스바움은 어려서부터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끊임없이 투쟁을 벌여왔다. 게다가 자신의 타고난 예술가로서의 기질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만들었다. 벨기에에 숨어 살던 그는 해방을 몇 달 앞두고,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2부에서는 요절한 천재 카라바조의 그림 <토마스의 불신>을 통해 “보고 그린다”라는 양면성을 가진 세속적 욕망의 문을 통과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시작을 해서, 너무나도 유명한 화가인 반 고흐에 대한 대담 그리고 학살이라는 주제를 천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구상화시킨 과테말라 출신의 작가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의 이야기로 매조지를 한다.

특히 자본주의 산업혁명 이래, 미술이 산업화되어 가는 시기를 가열차게 살았지만 정작 생전에 자신의 작품이라고는 달랑 한 점 판 실패한 화가 고흐에 대한 접근은 아주 새로웠다. 우리가 살던 시대보다 120여년 정도를 먼저 살았지만, 자본에 의한 지배가 나날이 공고해지고 예술정신조차 가치가 매겨져서 국가권력보다도 더 무서운 시장논리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세계는 고흐가 참아낼 수 없는 19세기말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기만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개인적으로 예술은 모두 아름다워야 한다는 전통적인 미의식에 대한 가히 혁명적인 개조를 이룰 수가 있었다. 서경식 작가가 말한대로, 아름답지 못한 현실을 담은 회화가 어떻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겠는가. 현실세계를 도피해서, 물상이나 자연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다루고 있는 화가들의 부재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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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츠 캠핑 it's camping - 초보 캠퍼를 위한 캠핑 가이드&캠핑지 100선
성연재 외 지음 / 이밥차(그리고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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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에서 <잇츠 캠핑>의 돌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불과 한 달 사이에 3쇄에 들어간걸 보면, 이 책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짐작이 가고 남음이 있을 것 같다.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무엇보다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하긴 요즘처럼 비주얼의 시대에 사진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남자들에게 아마 캠핑은 어렸을 적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로망의 촉진제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목적지도 뚜렷하게 정하지 않은 채, 어느 여름 남도 바닷가를 둘러보겠다는 일념으로 친구들과 긴 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난다. 인원수를 훨씬 초과하는 텐트를 메고 다니느라 엄청 고생을 한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하더라도, 요즘처럼 오토캠핑이 일반화되지도 그리고 교통편도 좋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그 추억들은 오롯하게 지금도 기억 속에 피어오른다.

<잇츠 캠핑>에서는 그런 마구잡이식 캠핑이 아닌 보다 체계적이고, 자연을 벗 삼아 즐길 수 있는 많은 노하우들을 아낌없이 전수해준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52곳의 캠프 사이트들을 직접 가본 후에, 짤막짤막하게 소감을 피력하는 저자의 전개에 그저 넋을 잃은 듯, 사진과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에 흠뻑 빠져 버렸다.

물론 수년간 캠퍼로써, 경력을 쌓은 이들도 있겠지만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텐트와 추위방지용 침낭 하나만 있다면 오늘 당장에라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책에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지만, 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동력 다시 말해서 차량이다. 특히 오지의 비포장도로 같은 곳을 달릴 수 있는 스포츠 차량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그 점은 아마 캠핑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느라 의도적으로 피한게 싶다.

가족과 함께 하는 캠핑은 더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예전처럼 자연을 벗하지 않고 회색빛 콘크리트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주말의 잠깐이라도 회색빛 공해의 공간에서 벗어나 굴참나무와 전나무들이 하늘로 치솟은 산 속에서 바로 당장이라도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보내는 시간들은 그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아울러 단순하게 야외로 나가 먹고 자는 것이 아닌, 일상에 피로에 시달린 자신을 되돌아보고 보다 여유로운 독서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들은 담담하게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 아웃도어 스포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이 피싱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자연을 사랑하는 캠퍼들답게, 열목어나 산천어 같이 희귀어류들을 잡아 사진을 찍고 바로 놓아주는 강태공 캠퍼들의 자연 사랑 정신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저자들은 모두 52곳의 멋진 캠핑 사이트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나서, 역시 캠핑하면 빼놓을 수 없는 베스트 먹거리 20선을 선보여 준다. 누가 나가서 먹는건 뭘 해먹어도 맛있다고 했던가. 자연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지글지글 타오르는 장작불에 더치오븐을 걸고 로스트치킨이 익기를 기다리는 캠퍼들의 허기가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주 기본적인 요리인 밥구이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조금은 손이 많이 갈 것처럼 보이는 토마토카레그라탕에 이르기까지 베테랑 아웃도어 쿡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20가지 요리 중에서 압권은 ‘비어캔치킨’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꼭 도전해 보고 싶은 요리다.

결국 이 책 한 권을 읽고, 캠핑에 중독이 되어 버린 나머지 캠핑 물품 사이트를 뒤지고 결국에는 ‘캠핑 앤 바비큐’ 카페에도 가입을 했다. 물론 일상의 삶이 항상 발목을 잡고 있어서 과연 나의 첫 캠핑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좀 부족하고 불편하면 어떻겠는가? 바로 그 맛이 지금도 수많은 캠퍼들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과 강으로 캠핑을 떠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말이 필요 없다, 당장에 떠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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