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원근법>을 리뷰해주세요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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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을 보면서 분명 서경식이라는 한국 저자 이름 옆에 ‘박소현 옮김’이라는 글이 적혀 있어서 적잖이 놀랐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글을 썼는데 또 다른 한국 사람이 번역을 했단 말인가? 그런데 책날개를 펼쳐 보면서 바로 그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서경식 저자는 재일동포로 일본에서 거주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아하 그랬구나. 그런데 저자에 대한 나의 상상의 날개는 쉬지 않고 펼쳐졌다. 현직 법학부 교수가 서양근대 미술기행 에세이를 썼다고?

서경식 작가는 책의 말머리에서 자신의 저술의 방향에 대해 매니페스토를 선언한다. 왜 우리 근대미술은 예쁘다는 미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물론 예술이 모두 정치적인 색채를 띠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의 미의식을 지배하고 국가의 통제 아래 두려고 했던 반동적 움직임에 대해 기성의 예술가들의 무기력함을 질책하고 있다. 특히 분단과 전쟁 그리고 오랜 군사독재를 경험한 우리나라에 독일의 오토 딕스가 그린 것과 같은 “전쟁제단화”가 없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물론 저자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일본의 경우야 더말할 것도 없다.

2부로 나뉜 책에서 전반부는 작가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면서 체험한 유럽 특히 독일 화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반 고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고뇌의 미학과 학살 같이 어두운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실 이 <고뇌의 원근법>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에밀 놀데 외의 전반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오토 딕스 그리고 펠릭스 누스바움 같이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성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부터 나치 지배 하의 독일 치하의 예술 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알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래 탐미주의적인 미술계의 전반적인 추세에 반대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기치 하에 전쟁과 독재 그리고 서구사에서 도저히 씻을 수 있는 한 획을 그은 홀로코스트에 이르는 전 과정을 그린 굵직굵직한 인물들을 서경식 저자는 집어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회화나 조각 같은 예술 장르가 아름다움을 다뤄야 한다는 미의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을 덮거나 혹은 괴로움으로 책읽기가 고뇌의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 국가지배를 정당화하려고 했던 1930년대 나치 독일 이데올로기에 맞서 치열한 예술 세계를 전개했던 이들의 생생한 실제 이야기들은 ,역주행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목도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다소 투박하고 원시적으로 보이는 색채나 선을 구사하는 에밀 놀데의 <그리스도의 생애> 연작 시리즈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은 아리안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인종우월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자신들의 존립기반으로 삼았던 나치 도당에게 한없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치들은 에밀 놀데를 비롯해서 유대인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아 퇴폐미술전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주의에 예술을 종속시키려는 노력을 끊이지 않고 시도했다.

정말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오토 딕스의 <전쟁제단화>를 비롯한 상이용사들의 비참한 현실과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서 실제 체험한 엄청난 살상을 동반했던 참호전에 대한 묘사는 리얼리즘의 정수로 다가왔다. 하지만 오토 딕스는 다른 예술인들처럼 정치적 망명을 택하지 않고 독일 국내에 남아 있으면서 그의 조국 독일이야말로 자신의 작품 활동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독일이 통일된 후에도 서독과 동독 양측에서 찬사를 받은 몇 안 되는 화가 중의 한 명이라고 한다.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가로는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이 등장을 한다. 부제목으로도 등장한 것처럼 “누가 펠릭스 누스바움을 기억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누군가 말했듯이,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을 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부유한 유대 가문에서 태어난 누스바움은 어려서부터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끊임없이 투쟁을 벌여왔다. 게다가 자신의 타고난 예술가로서의 기질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만들었다. 벨기에에 숨어 살던 그는 해방을 몇 달 앞두고,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2부에서는 요절한 천재 카라바조의 그림 <토마스의 불신>을 통해 “보고 그린다”라는 양면성을 가진 세속적 욕망의 문을 통과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시작을 해서, 너무나도 유명한 화가인 반 고흐에 대한 대담 그리고 학살이라는 주제를 천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구상화시킨 과테말라 출신의 작가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의 이야기로 매조지를 한다.

특히 자본주의 산업혁명 이래, 미술이 산업화되어 가는 시기를 가열차게 살았지만 정작 생전에 자신의 작품이라고는 달랑 한 점 판 실패한 화가 고흐에 대한 접근은 아주 새로웠다. 우리가 살던 시대보다 120여년 정도를 먼저 살았지만, 자본에 의한 지배가 나날이 공고해지고 예술정신조차 가치가 매겨져서 국가권력보다도 더 무서운 시장논리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세계는 고흐가 참아낼 수 없는 19세기말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기만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개인적으로 예술은 모두 아름다워야 한다는 전통적인 미의식에 대한 가히 혁명적인 개조를 이룰 수가 있었다. 서경식 작가가 말한대로, 아름답지 못한 현실을 담은 회화가 어떻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겠는가. 현실세계를 도피해서, 물상이나 자연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다루고 있는 화가들의 부재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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