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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1부 : 삼체문제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평점 :
오늘은 대망의 달궁 독서 모임을 하는 날(지난 8월 12일)이다. 그리고 당일날 아침에 독서모임 책인 류츠신의 <삼체>를 다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무언가 깨달음이... 그런 건 없다.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머지 빈 부분은 네 시간 뒤 독서모임에서 채울 생각이다. 참, 내년 1월에 넷플릭스에서 <삼체>를 방영한다고 하는데, 오늘 너튜브에서 트레일러를 보니 역시 이 소설의 주인공은 관찰자인 왕먀오가 아닌 예원제라는 확신이 강렬하게 들었다.
우선 류츠신이라는 작가는 중화 SF 부흥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양 어깨에 걸머진 캐릭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스나이퍼 앤 파머즈’ 장르에서 노벨문학상이라는 휴고상을 2015년에 받았다고 한다. 나야 뭐 그 동네 사정에 대해서 잘 모르니... 그의 다른 소설인 <유랑지구>도 중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대박이 났다고 하는데, 고장난 태양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구별에 무려 일만 개의 엔진을 달아 다른 행성으로 튄다는 설정이 참 SF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현재 중국에서 진행 중인 여러 가지 이슈에 얽혔다고 하던데, 그 이야기도 궁금했다.
삼부작으로 구성된 <삼체>의 첫 번째 인스톨은 삼체 유니버스를 독자에게 물어다 준다. 시작은 <과학의 경계>에 소속(?)된 일단의 과학자들이 하나둘씩 자살하게 되면서 나노 소재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책임자 왕먀오에게 스창이라는 베테랑 형사가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되던가. 그리고 왕먀오는 우연한 기계에 <삼체>라는 VR 게임에 접속하게 되고, 그 게임 속에서 명멸하는 다양한 문명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한 축은 가장 최근에 죽은 과학자 양둥의 어머니인 예원제를 왕먀오가 찾아가 그녀의 과거사를 들추게 되면서 이야기를 그야말로 폭풍 속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녀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천체 물리학자였던 예저타이가 1967년 문화대혁명이라는 광란의 시기에 십대 홍위병들에게 모욕을 당한 채, 죽은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장에서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예원제. 예저타이는 부인이자 동료과학자였던 사오린과 작은딸 예원쉐에게도 배신을 당한다. 개인적인 시선으로 볼 때, 현재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오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 사태를 용인한 한 인물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유보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과 독서모임을 통해 나눈 이야기들은 수준이 달랐다. 누가 뭐래도 독서모임 동지들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제, 다수의 스포일러가 등장하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
전도유망한 천제 물리학자였던 예원제는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게 되었다. 물론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부인과 딸 그리고 제자 홍위병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고 살아갈 수는 없지 않았을까. 예원제는 2년 뒤, 다싱안링 레이더봉 부근의 벌목장에서 노동개조(?)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외계와 교류하겠다는 홍안 공정에 참가하게 되고, 외계의 삼체문명에 지구별을 박살내 달라는 메시지를 날린다.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이 점에서 류츠신의 <삼체>는 다른 SF물과 변별점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대개, 외계인들이 지구별을 침략해서 인류와 싸우거나 아니면 E.T. 같이 인류와 함께 공존을 도모하는 친근한 외계인 설정이 보통이 아닌가 말이다. 아니면 지구별에 혹독한 위기가 닥쳐 다른 별로 이주하는 그런 단계에서 뛰어넘어 이제 지구별에는 희망이 없으니 외계인이 침략해와서 우리의 문명을 끝장내달라. 자기파멸적인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그나마 외계 삼체 문명에도 양심적인 인사가 있었는지, 그런 파멸을 막기 위해 예원제에게 교신을 하지 말라고 했던가. 하지만, 이미 메시지는 접수되었고 삼체 문명은 450년 뒤 지구에 도착하기 위해 박차를 가한다.
독서모임을 통해 내가 잘못 읽은 부분에 대해(여전히 오독의 위험성은 존재한다) 수정하고 몰랐던 부분들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게 바로 독서모임의 참맛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어지는 2부 <암흑의 숲>에 등장하는 이른바 “면벽자”에 대해서도 아쉽게 내가 모임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헤르메스님이 일장 연설로 설명을 해주셨다고.
개인적으로 그간 중국이 시도해온 공정의 역사 때문인지 소설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양탄 공정> 그리고 <홍안 공정> 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전자야 역사적 사실이니 그렇다 치고, 후자가 실재했는가에 대해 달궁 동지들의 집단 지성을 요구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마땅한 답이 없었다. 그리고 247쪽에 등장하는 중국의 현 체제 선전적인 발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랑2>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중화민족주의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첸카이거나 장이모우 같은 거장들이 체제에 순응화되어 가는 모습이 아쉽다는 말도 추가했던 것 같다.
어쨌든 모든 것에 우선해서 생존을 도모한다는 것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주’로 모시는 외계의 삼체 조직을 추구하는 강림파와 구원파 그리고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아버지의 모습을 목격한 예원제 그리고 파멸이 예고된 450년 뒤에 모든 지구별 사람들까지 말이다.
뛰어난 영업사원 헤르메스 브로의 영업에 넘어가 결국 독서모임 다음날 삼체 시리즈 2권인 <암흑의 숲>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삼체 이야기에 제법 단련이 되어서 단박에 100쪽을 읽고, 또 다른 책들에 매달려 있다. 10월에 우리는 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 살인자의 성모>로 다시 만난다. 다시 만날 그 날까지. 그리고 그 날 아무 일이 없기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