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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엔 카프카를 -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
의외의사실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평점 :
딱 일주일 전에 눈여겨보고 있다가 <삼국지>부터 읽고 나서 오늘 결국 읽을 수가 있었다. 결국 읽게 될 책들은 읽게 되는구나. 오늘 아침에는 도서관에 가서 빌려서 읽지 못한 책들을 다 반납하고 왔다. 그리고 다시 빌린 책들도 있고 말이지. 책에 대한 욕심이 끝이 없구나 싶다.
의외의사실 작가가 소개하는 책들을 보니 참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 춘수 쌤의 <노르웨이의 숲>은 독서모임 책으로까지 읽었는데 왜 기억이 나질 않는 거지. 그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을 적에는 센세이션 그 자체였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읽어 보니 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춘수 쌤 특유의 허세 그런 느낌 때문일까.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글을 쓰기 위해, 매일 같이 하루에 10KM를 뛰신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하고 나서는 재즈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고.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면서 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인이 바로 춘수 쌤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의 흐름으로 유명한 버니지아 울프의 <등대로>는 다른 버전으로 두 권이나 사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호기롭게 읽어 보겠다고 도전장을 던졌으나... 결국 읽지 못한 것으로. 그런데 또 의외의사실 작가의 액기스를 읽어 보니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그전에 <등대로>가 책무더기 어디에 끼어 있는지 찾아야 하는 건 아니고. 그리고 보니 <댈러웨이 부인>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맨 끝에 실린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의 <나를 보내지 마>는 항상 영화의 애절한 장면들이 계속해서 생각나게 만들어 준다. 물론 책도 읽었다. 내가 책을 먼저 읽었던가? 아니면 영화를 먼저 보았던가. 어쩌면 이시구로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헤일셤 출신 복제인간들의 삶에 대한 책인 <나를 보내지 마>를 꼽을 지도 모르겠다. 어떤 면에서 우리 인간이나 복제인간들이나 유한하다는 점에서 같으면서도 동시에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살아간다는 결정적 차이를 보이지 않았던가. 영화의 스산한 엔딩은 다시 생각해도 참 슬프고 뭐 그렇다.
도끼 선생의 <죄와 벌>은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두 번 읽었다. 처음에는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으로. 그리고 두 번째는 문동판으로. 처음에는 여러 개의 다른 이름을 가진 라스콜니코프 때문에 좀 헷갈렸지 아마. 그리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전당포 자매를 참혹하게 살해한 주인공의 행동에 충격을 먹었지. 살면서 모든 이들의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걸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문득 어디서 일러스트로 그린 예의 장면을 보고 따라서 그려본 기억이 난다. 지금이라면 AI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물론 바로 제한 조치를 받았겠지만 말이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이야기도 재밌었다. 이아고라는 악당이 불러일으킨 데스데모나에 대한 오셀로의 의심이 결국 모든 이들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17세기 막장 드라마라고 불러야 하나.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이 그의 생전에 책의 형태로 있지 않았고, 사후에 기억과 배우들에게 주어진 대본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거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기억의 왜곡과 편집의 오류 같은 건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들이 더 흥미진진하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무려 2,500년 전에 소포클레스에 의해 쓰인 막장 오브 막장 드라마인 <오이디푸스> 서사가 여전히 건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되고 있다는 점도 놀랍지 아니한가.
인상 깊게 읽은 어떤 책들은 의외의사실 작가의 도움으로 생생하게 기억이 나기도 하고 또 언젠가 읽어봐야지 하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반대로 분명히 읽고 리뷰까지 써서 기록해 두었지만, 지금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책들도 있고 말이지.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굳이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비용을 동원해서 책을 읽는 건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질 수가 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쨌든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책들에서 엑기스만 쪽쪽 뽑아내는 기술? 실력에 그저 놀랄 뿐이다. 그렇게 얻은 경이가 새로운 독서나 재독으로 이어진다면 아마 더 바랄 게 없겠지. 그중에 가장 관심이 가는 책은 바로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었다. 가까운 중고서점에 있다고 하기에 사러 가야 하나 싶어서, 혹시나 하고 주문도서들을 검색해 보니 2년 전에 이미 산 책이다. 그런데 그 책은 어디에 가 있나 그래. <보이지 않는 도시들>도 찾게 되면 한 번 읽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