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 2014 앙굴렘 국제만화제 대상후보작
톰 골드 지음, 김경주 옮김 / 이봄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바람돌이님의 <골리앗> 리뷰를 봤다. 분명 예전에 그래픽 노블로 만난 적이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럴 땐 다시 읽어야 한다. 어제 도서관에 들러서 <골리앗><달과 경찰>을 내리 읽었다. 전자도, 스산한 느낌이 드는 달나라 이야기도 다 마음에 들었다.

 

골리앗은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대공병기의 이름이 아니다. 그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다윗이 맞서 싸운 블레셋 출신의 거인 전사에서 유래되었다. 거대한 사이즈로 완전 무장을 한 골리앗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발한다. 놋쇠투구에, 단창 그리고 방패로 무장한 무시무시한 전사에 맞서 싸울 이스라엘 병사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 목동 출신의 애송이 다윗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불세출의 블레셋 출신 전사는 다윗 전설을 위한 불쏘시개가 아니었을까. 골리앗을 쓰러트리고, 전쟁 영웅이 된 다윗은 결국 사울 왕에 이어 유대왕국의 왕위에 오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팔레스타인(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유대인) 사이는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베들레헴을 기점으로 유대 왕국을 둘로 나누려던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엘라 계곡에서 대치하게 된다. 너튜브의 어느 다큐멘터리를 보니 골리앗은 45kg이나 나가는 전신갑주를 입은 중보병이었고, 그에 대항하는 다윗은 투석병이었다는 분석이 등장한다.

 

고대 세계에서는 대규모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일기토 대결 방식이 전쟁에서 선호된 모양이다. 근거리 전투에서 다윗을 박살내고 싶었던 골리앗은 내게로 오라고 적에게 외친다. 후대 연구자들은 골리앗이 성장 호르몬 과다분비로 말단비대증(Acromegaly)을 겪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합병증으로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복시증이 있었을 거라고도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골리앗은 보이는 게 없었다. 그래서 골리앗의 방패지기 소년은 적의 이동을 구분하는 역할을 맡지 않았을까. 그래픽 노블에서 골리앗의 눈 역할을 해주던 방패지기 소년이 골리앗의 곁을 떠났을 때, 이미 승부는 정해졌던 게 아닐까.

 

갑옷을 입지 않은 다윗은 골리앗에 비해 훨씬 더 뛰어난 기동성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는 다년간의 목동 생활을 통해 훈련된 투석병이었던 다윗이 던진 돌팔매의 위력은 현대에 있어 권총의 살상능력에 가까웠다고 한다. 일격필살의 위력으로 다윗은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도전장을 냈다. 그런 다윗이 여러 제약을 지닌 골리앗을 일기토 대결에서 이기는 게 아주 허황된 전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톰 골드가 그린 <골리앗>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성경에서는 다윗을 부각시키기 위해 무시무시한 전사로 묘사되지만, 가드 사람 골리앗은 사실 전쟁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 그리고 심지어 행정병 출신의 거인이었다. 이스라엘군과의 지루한 교착상태(40여일)를 타파하기 위해 블레셋 사령관은 골리앗을 전면에 내세우기로 결정한다. 그런 걸 보면, 그는 전장에서 비밀병기의 중요성을 잘 알던 지휘관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딱히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최전선에 나선 골리앗은 할 일이 없다. 그저 매일 같이 사령관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도발하는 문구를 읽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다시 병영으로 돌아온다. 그러다가 다윗의 등장으로 전선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골리앗은 허무하게 죽고 만다.

 

톰 골드의 <골리앗>을 읽으면서 오랜 전설/신화의 실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오랜 과거의 진실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요즘처럼 동영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건을 목격한 소수가 남긴 구전에 기반한 기록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목동 출신의 소년 다윗이 어마무시한 능력과 신체적 조건을 가진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뜨린다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할까. 이게 신념의 문제로 간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사후약방문처럼 나중에 갖다 붙인 정밀한 분석들을 보면 아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아닌 것처럼 포장될 수도 있겠구나 싶다.

 

기존의 사고 대신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톰 골드의 <골리앗>은 의미 있는 독서였다. 상당히 많은 여백을 각자의 상상에 맡긴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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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1-30 16: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어제 그 책은 없고ㅠ
이 책은 있더군요. 조만간 저도!!

레삭매냐님 스타 하시나봐요ㅋㅋㅋㅋ
웬지 저그 하실듯 합니다.
저는 테란^^*

레삭매냐 2023-01-30 16:10   좋아요 3 | URL
어제 알았으면 더 빌렸을
텐데, 톰 골드 아재의 책이
좀 더 있더라구요.

주말에는 내내 그래픽 노블
만 봤네요. 저도 밀린 리뷰
가 늘어서 팍팍 써볼랍니다.

저도 테란했습니다. 그냥
솔플 하는 정도로 헷
실력은 미천하지요.

stella.K 2023-01-30 16:21   좋아요 3 | URL
아니 스타는 뭐고 테란은 또 뭡니까?
요즘 말은 당췌...ㅠㅎㅎㅎ

거리의화가 2023-01-30 16:22   좋아요 3 | URL
스타는 하지 않았지만 워낙 유명한 게임이라 저그, 테란 알아먹는 저^^;;;

stella.K 2023-01-30 16:42   좋아요 2 | URL
아, 게임 이름인가요?
와, 두 분들 대단하시네요.^^

coolcat329 2023-01-30 19:37   좋아요 2 | URL
하하 저도 테란 ㅋㅋ
아 제 20대 추억의 게임 ㅠㅠ

그레이스 2023-01-30 1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전에 소개받은 적 있어요.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기를 한 책이란 생각이 들어요.

레삭매냐 2023-01-30 17:3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

이 참에 골리앗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네요.

책으로 촉발된 지혜의
탐구에 너튜브가 또
한 도움 주네요.

거리의화가 2023-01-30 16: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바람돌이님께서 소개해주실 때 마음에 남았어요.
골리앗이 말단비대증과 복시증을 겪었을 거라는 분석이 재밌습니다^^ 어쩌면 이런 전설은 메타포가 담긴 이야기에 포장 전술을 그럴싸하게 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로 해석하기보다는 다양한 방향의 해석이 필요한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3-01-30 17:39   좋아요 3 | URL
예전에 만난 <골리앗> 기억
이 나지 않아 부러 도서관에서
다시 읽었답니다 :>

언급해 주신 대로 예전 전설/
신화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싸인들이 잔뜩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다양한 해석이야말로 우리
책쟁이들이 책을 읽는 이유
가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coolcat329 2023-01-30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3-01-31 07:42   좋아요 1 | URL
톰 골드의 책들, 추천합니다.

새파랑 2023-01-31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쟈는 프로토스 아닌가요? ㅋ 신화의 골리앗과는 다르게 스타의 골리앗은 좀... ㅋ

골리앗에게 저런 사연이 있다니 첨알았습니다~!!

레삭매냐 2023-01-31 17:12   좋아요 1 | URL
프토 질럿의 공격력은 정말 ~
스타 골리앗은 정말 허접하지요 :>

저도 어디선가 얼핏 듣고 나서
이번에 너튜브로 정주행하고
알게 되었네요. 신화의 재해석
재밌었습니다.

서니데이 2023-02-01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리앗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군요.
다윗의 돌에 맞는 역할 외에 다른 것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괜않은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02-02 10:09   좋아요 1 | URL
그렇죠.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가
새로운 해석을 접하게 되면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
더라구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