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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리아드 - 심너울의 사이버리아드 다시 쓰기 ㅣ FoP Classic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송경아 옮김 / 알마 / 2022년 11월
평점 :
지금은 코로나로 중단되었지만, 맹렬하게 책을 읽고 모여서 가열차게 토론 그리고 음주(아니 어쩌면 음주와 수다에 더 방점이 찍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를 즐기던 시절에 만난 SF 소설이다. 사실 폴란드 출신 SF 대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사이버리아드>는 해당 모임을 위한 책도 아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로 일환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오멜라스였는데 이번에는 알마에서 새롭게 단장해서 나왔다.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전통적 SF팬이 아니다 보니 거장이 구사하는 언어유희 혹은 현란한 말장난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영어는 물론이고 라틴어를 종횡무진하게 구사하며 벌이는 과학용어들을 따라가다 보니 정말 자주 문맥을 잃곤 했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저자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제목 <사이버리아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이끌어 가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문학적 노예들은 바로 생계형 로봇 창조자 트루를과 클라파우치우시라는 특이한 캐릭터들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로봇이 창조자라니, 이거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게다가 두 로봇 창조자들은 라이벌이기까지 하다. 서로 다투고 아웅다웅하면서도 기발한 창조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점에서는 인간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아니 그렇게 위대한 창조자라면 금붙이들도 직접 만들 수 있는데 왜 그러냐는 보상을 치러야 할 피조물들이 물었을 때, 자신이 만들어낸 것과 타인에게 얻어낸 게 같으냐는 우문현답 스타일로 우리의 창조자들은 재치 있게 대답한다. 하긴 내가 만든 음식보다 남이 만든 음식이 자고로 더 맛있는 법이지. 저명한 셰프들이 자신들이 먹겠다고 그렇게 현란한 솜씨로 요리를 하고 플레이팅을 하지는 않겠지. 당연한 말씀이시다.
뭐 여러 각도에서 거장의 글을 평가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인공지능 알파고 시대지만 창조자도 어쩔 수 없는 개개인의 들끓는 욕망에 대한 저격이라고 <사이버리아드>를 총평하고 싶다. 아니 어쩌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조의 능력에까지 도전하는 인공지능의 가공할 만한 능력에 대한 경고로도 볼 수 있으려나. 특히 괴짜 창조자 트루를이 만들어낸 전자 시인의 경우를 보라.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발명품은 존재할 수 없었다.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우리의 전자 시인은 자신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점차 자가발전하고 스스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지점에서 궁금한 점은 그렇다면 어떤 특정한 주제와 캐릭터들을 프로그래밍해주면 걸출한 소설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운율과 자구를 설정한 시구도 만들어내는 전자 시인이 전자 소설가로도 진화한다면... 그런 시절에는 인간은 무엇을 하게 될지 자못 궁금해졌다. 혹자의 표현대로 오로지 소비만 하는 “호모 컨슈머티쿠스” 같은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창조자들을 능가할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가진 폭군들은 창조자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협박해서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교묘한 두뇌플레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의 트루를과 클라파우치우시 역시 그런 위험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정해진 시간 내에 의뢰인들이 요구하는 발명품들을 무리 없이 창조해낸다. 때로 그것은 난폭하고 교묘하면서 사냥꾼을 지루하게 하지 않을 정도로 사나운 사냥감이 되기도 하고, 마이크로미니월드의 신민들이 되기도 한다. 어떤 시절에는 현자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말도 안되는 괴물 스타일의 “창백얼굴”로 분해서 구애에 성공하기도 한다. 자신을 옭아매려는 전자 마법사의 흉계를 교묘하게 회피하는 호색한 군주의 모습에서는 절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흔하게 등장하는 어휘들일진 몰라도 SF팬이 아닌 일반독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단어들의 선택 그리고 그런 단어들을 비비 꼬고 거기에 라틴어까지 가세한 언어유희의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쉽게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런 말장난에 더해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야기야말로 스타니스와프 렘 작가가 목표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동시에 같이 읽기 시작한 같은 작가의 생각하는 바다 <솔라리스>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소설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후자가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전개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전자 <사이버리아드>는 그야말로 사이버키네틱 혹은 사이버펑크 시대에 걸맞는 셰헤라자드가 들려주는 B급정서가 가득한 일렉트로닉 천일야화라고나 할까. 종종 길을 잃고, 문맥도 잡지 못한 채 꾸역꾸역 읽어내기도 했지만 뭐 이 정도면 낯선 SF작가와의 첫 번째 만남으로서는 만족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