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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평점 :
느닷없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왔다. 그리고 바로 주문장을 날려서 구입했다. 읽기 시작하는데 한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다 읽는 데는 한 보름 정도가 걸렸다. 전작 <니클의 소년들>은 아마 이틀 정도가 걸렸던 것 같은데... 물론 지난 달에 좋은 책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통에 그런 탓도 있겠지만, 확실히 전작들과는 좀 달랐던 것 같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신작 <할렘 셔플>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은 레이 카니다. 아버지는 할렘에서 이름난 범죄자였고, 어머니는 일찍 돌아 가셔서 밀리 이모 밑에서 자라야했다. 그 시절, 사촌 프레디는 레이와 형제나 다름 없는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프레디는 할렘의 범죄 속으로 그리고 레이는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서 졸업하고, 아버지가 자동차 타이어에 남긴 범죄 은닉 자금 3만 달러로 가구점을 시작했다.
같은 도시에 살지만 뉴욕의 다운타운 맨해튼과 북부 할렘은 천양지차인 모양이다. 뉴욕 주로 맨해튼에는 몇 번 가봤지만, 할렘에는 아예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우범지대라는 편견 때문이었을까. 직접 눈으로 할렘의 실상을 보았다면 또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회계사 아버지를 둔 엘리자베스와 결혼해서 아주 평범한 삶을 꾸려가는 레이의 모습은 건실해 보인다. 문제는 빠듯한 살림살이와 흑인들을 상대로 한 가구 판매만으로는 보다 좋은 지역의 아파트로 이주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의 꿈은 리버사이드 드라이브(어딘지 잘 모르겠다, 아마 부촌이지 싶다)로 이사가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양탄자 판매상이라고 부르는 장인 릴런드에게 일종의 복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결국 레이 카니는 자신도 모르게, 아니 범죄라는 걸 알면서 소소한 부업에 나선다. 장물아비로. 어쩌면 카니의 가구점이라는 상호는 그에게 완벽한 보호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예전부터 카니 삶에 항상 장애물이었던 프레디였다. 프레디는 마이애미 조, 페퍼 그리고 아서와 팀을 짜서 테리사 호텔을 털었다. 아서가 죽고, 마이애미 조는 사라져 버렸다. 카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버마 전선에 참전했던 페퍼와 함께 위험한 도박에 나선다.
1부는 이런 이야기를 다룬 1959년의 일이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카니의 사업은 잘 흘러 가고 있었고, 그는 변호사 피어스의 추천으로 성공한 흑인들만 가입할 수 있다는 뒤마 클럽에 신규 후보자가 되었다. 장인인 릴런드는 이미 그곳의 고정 멤버였다. 이런 이너써클을 경멸하던 카니였지만, 보다 나은 기회를 위해 뒤마 클럽의 가입을 희망한다. 한 가지 장애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뒤마 클럽을 좌지우지하는 윌프레드 듀크가 그에게 일종의 가입비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거금 500달러를 듀크에게 일종의 뇌물을 건넸지만, 카니의 가입 신청을 거부되었다. 이에 분노한 듀크의 사무실을 찾아가 돈을 되돌려 달라고 하지만 카니는 문전박대당하고 심지어 경찰을 부르겠다는 협박에 후일을 기약하며 듀크의 사무실을 나선다. 듀크의 카니에 대한 판단은 착오였다. 듀크는 카니가 어떤 캐릭터인지 모르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파멸을 부를 그런 치명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갈취학 박사 못지않은 경찰 먼슨과 칭크 몬터큐에게 갈취를 당하고 있던 카니는 복수의 칼날을 썩썩 간다. 군자의 복수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그건 비용도 드는 그런 문제였다. 어쨌든 카니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듀크에 대한 처절한 복수에 성공한다. 경찰을 이용하려다, 오랜 동료 페퍼에게 한 방 얻어 맞기도 하지만.
다음 이야기는 유명한 1964년 할렘 인종 폭동의 와중에 벌어진다. 역시나 이번에도 문제는 프레디였다. 비무장한 15세 소년을 백인 경찰이 총을 쏴서 죽인 사건으로, 할렘은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어 버렸다. 콜슨 화이트헤드 작가의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느와르 스타일의 서사가 이어진다. 카니의 가구점은 이제 자리를 잡아 확장일로에 서 있다. 하지만 백인 부동산 재벌의 아들과 어울리던 프레디가 일으킨 문제 때문에, 카니는 잇달아 벌어지는 사건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사업상 중요한 미팅을 하던 가운데, 프레디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경찰들이 나타나 에이전트가 카니에게 실망한 채, 가게를 떠나고 만다.
프레디의 친구 라이너스는 호텔에서 약물 과잉으로 죽은 채로 발견됐다. 프레디를 찾던 카니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 프레디는 백만장자 라이너스 아버지의 집을 털기도 했다. 카니는 다시 한 번 페퍼의 도움으로 위기의 할렘에서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을 자기 소설의 핵심에 배치하고, 여전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국 사회의 인종문제를 다루고 있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신작은 예전 작품들과 그 결을 달리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최악의 우범지대라는 할렘 출신 캐릭터들의 고단한 삶에 방점을 찍는다. 언제나 프레디는 카니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말이다. 프레디라고 해서 범죄의 그늘에서 살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너무 유혹이 많았다. 어지간한 개인의 의지로는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는 그런 구조적 문제였다.
레이 카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찰과 범죄 조직의 갈취는 일상이었다. 그러니 자신도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다루는 장물아비가 되는 상황 속에서 기묘한 자기합리화에 나선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듯, 위험이 높을수록 수익도 커지는 법이다. 가구업은 대외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일일 뿐, 카니의 진짜 수입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게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스와 메이 그리고 존에게 보다 나은 환경과 소비재를 공급하기 위해 가장으로서 작은 위법 정도는 괜찮다는 판단이 아니었을까. 그렇가면 카니의 아버지는 스케일이 달라서 그렇지, 카니의 경우와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합리화와 변명에 능숙하니 말이다.
전작 <니클의 소년들>로 기대치가 너무 올라가서 그런 진 몰라도 콜슨 화이트헤드의 이번 작품은 좀 싱거웠다. 화이트헤드 작가의 매운맛이 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