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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주의자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68
알베르토 모라비아 지음, 정란기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평점 :

소설 <경멸>과 <권태>로 알게 된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순응주의자>를 읽었다. 아, 지난 명절 전에 주문한 책의 도착을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영화를 구해서 먼저 봤다. 그리고 나서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소설이 오리지널리티에서는 압도적이었지만 아무래도 흥미 위주로 만들어진 영화의 아우라에 눌려 책 읽는 속도는 좀 지지부진했던 것 같다. 이제 곧 콜슨 화이트헤드와 안드레 애시먼,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책들이 도착할 예정이기 때문에 부랴부랴 마저 다 읽었다. 개운하게 새로운 책들을 읽을 생각에 염통이 다 쩌릿하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문제적 인간은 삼십대 정부의 비밀 요원이자 골수 파시스트인 마르첼로 클레리치 무려 박사님이시다. 소설이 시간적 배경으로 삼은 1930년대로부터 17년 전인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년 시절의 악몽 같은 기억 때문에 마르첼로는 정상에 강박을 느끼는 그런 지식인으로 성장했다. 그것은 십대 소년이었던 마르첼로가 자신에게 기묘한 방식으로 접근한 리노라는 운전사를 권총으로 쏴 죽였다는 죄책감의 발로가 출발점이었다. 영화에서는 정말 간단하게 다룬 장면이 소설에서는 정말 주인공의 트라우마로 결국 그가 비정상적인 파시스트가 되어 버린 숙명과 구구절절하게 마르첼로의 심리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하나의 장치로 작동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다고 믿는 비정상 파시스트 집단의 일원이었던 마르첼로에게 상부에서는 하나의 명령을 하달한다. 그것은 파리에서 일 두체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는 콰드리 교수를 처치하라는 것이었다. 학생 시절, 마르첼로는 콰드리 교수에게 지도 교수 역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하러 갔다가, 파시즘이 창궐하던 이탈리아에 신물이 난 콰드리 교수가 조국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도 교수는 되어줄 수가 없다라고 말한 정도의 인연이 고작이다.
이제 막 아름다고 매력적인 약혼녀 줄리아(영화에서 줄리아 역을 맡은 배우의 캐스팅은 과히 최고였다고 생각한다)와 결혼을 앞둔 마르첼로는 그렇다면 파리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으로 위장해서 콰드리 교수를 처치할 계획을 세운다. 머릿속이 온통 질서유지와 권력에 대한 맹종으로 가득한 비정상 남자 마르첼로에게는 애인 줄리아는 물론이고, 결혼도 그저 타인에게 정상처럼 보이기 위한 카모플라지의 일환일 따름이다. 문제는 이 인간이 그런 배신행위에 희열마저 느낀다는 점이다(이거 진짜 미친 놈 아니야 그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간군상인 마르첼로는 뼛속까지 철저하게 비정상이지만, 주변은 물론이고 자신까지 속이면서 파리에서 자신을 환대해준 콰드리 교수를 배신하고 자신만의 구원을 추구한다. 파시즘 국가 이탈리아가 제공하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권력의 보호라는 테두리가 지식인 마르첼로의 이성적 판단을 무너뜨리고 인간성마저 황폐화시킨 주범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모라비아 작가는 그런 파시스트 국가를 직접 체험해 보고, 권력자들에게 핍박까지 받았으니 그런 체제 아래서 산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으리라. 잘 웃지도 않는 남자 마르첼로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이탈리아 지식인 사회의 추악한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찌어찌해서 파리에 간 마르첼로 부부는 콰드리 교수를 찾아가 대면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성서의 내용과 유사한 에피소드가 하나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마르첼로가 동료 요원 오를란도에게 콰드리 교수를 알려 주는 장면이다. 참 그런데 영화에서는 요원의 이름이 오를란도가 아니라 망가니엘로가 아니었던가. 오를란도는 내가 아는 그 “광란의” 기사 오를란도고? 잠시 여담이지만 그 책은 살 수 있을 때 샀어야 했는데, 비싸서 사지 못하고 있다가 그만 절판되어 버리고 말았다. 언제 과연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르첼로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던 콰드리 교수의 매력적인 아내 리나는 눈에 띄게 그에게 적대감을 표출한다. 동시에 그의 아내 줄리아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내외가 모두 비정상인 남자 마르첼로는 신혼여행길에서 자신에게 차갑게 대하는 리나에게 사랑을 느끼고, 중첩되는 배신을 마다하지 않는다. 콰드리 교수에 대한 첫 번째 배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 군사들에게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그것으로 치환된다. 한 마디로 그는 무고한 콰드리 교수를 희생시켜서 자신의 구원을 추구한 것이다. 콰드리 교수의 죽음과 자신이 비정상으로 변모하게 된 리노와의 관계는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그는 굳이 외면한다.
두 번째 배신은 이제 막 결혼한 아내 줄리아에 대한 것이다. 리나는 자신에게 무턱대고 들이대는 마르첼로에게 이게 신혼여행에서 아내가 버젓이 있는 상황에서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준엄하게 마르첼로를 꾸짖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마르첼로가 줄리아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그저 자신의 강박적인 정상성을 가장하기 위해 액세서리 같은 존재로 줄리아가 필요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영화에서 이런 복잡하기 짝이 없는 마르첼로 클레리치를 연기한 장 루이 트랭티냥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원래 소설에는 정말 다양하면서 마치 미래를 예언하는 것 같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그야말로 넘쳐흐른다. 결국 시간이 흘러 전쟁이 4년째 되던 해, 잘나가던 독재자 무솔리니는 국왕의 한 마디에 실각해 버리고 만다. 마르첼로가 충성하던 조국 이탈리아는 독일의 동맹국에서 피점령국가로 추락해 버린다. 그렇게 일 두체를 외치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꿔, 두체의 청동조각상을 무너뜨리고 줄에 매어 거리에서 질질 끌고 다닌다. 그 장면은 훗날 루마니아를 철권으로 다스린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실각하고 맞게 될 비참한 운명의 예고편처럼 다가왔다. 말미의 에피소드에서 무너져 내리는 기존의 왜곡된 세계에서 벗어나 시류에 편승해서 새로운 탈바꿈을 예고하는 변신의 귀재로서의 마르첼로의 이미지는 대단했다.

파리에서 콰드리 부부가 마르첼로 부부를 데려간 댄스홀 시퀀스는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최고의 비주얼한 장면으로 손꼽고 싶다. 두 명의 여주들의 사방으로 뿜어내는 매력은 그야말로 스크린을 날려 버릴 기세였다. 콰드리 교수와 리나의 최후 같은 경우 소설에서는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 반면, 영화에서는 아주 비장한 디테일을 잡아냈다. 이렇게 영화와 소설의 같으면서도 다른 점들을 서로 비교해 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영화에 나오는 콰드리 교수가 마르첼로에게 비유하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파시즘에 물든 철부지 청년의 정신을 죽비로 때려 깨우쳐 주려는 노선사의 모습을 엿보는 그런 느낌도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순응주의자>는 대단히 정치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혹한 시절의 살아 있는 증언자가 말하는 그것을 추체험했다는 점에서라도 모라비아의 <순응주의자>는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뱀다리] 소설을 읽기 전에 워밍업으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순응주의자>를 먼저 본 건 신의 한수였다. 소설부터 먼저 봤다면, 아마 완독이 쉽지 않았을 지도.

고저 가을에는 국화가 최고다.
지난 주말, 카메라 들고 외출했다가
찍은 국화 사진을 올려 본다네.
참 국화는 영어로 크리샌더멈
(chrysanthemum)이라고 한다.
발음이 참 어렵기도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