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의 동물기
엔도 슈사쿠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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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십자매 한 쌍을 길렀다. 마리당 3천원 씩해서 어머니가 하시는 선생님을 통해 구입했다. 그 샘은 아마 부업으로 새를 기르셨던 모양이다. 어린 마음에 녀석들이 번식해서 알도 낳고 새끼도 낳길 바랬으나 나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먹이는 주로 좁쌀을 주었고, 새똥 가는 게 참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여느 아이들처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으나, 곧 관심이 시들해지고 물과 먹이 주는 것도 잊어 버렸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마리가 하늘나라로 갔다. 나는 한 마리 남은 녀석을 아파트 뒤뜰로 데려가서 풀어 놔줬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새장에만 갇혀 있어서 그런지 또 내 예상과는 달리 푸른 하늘로 날아가지 않고 땅에만 앉아 있더라. 그 다음부터 내 삶에 애완동물 혹은 반려동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침묵>, <사무라이> 그리고 <깊은 강>처럼 심오한 주제를 장끼로 삼은 엔도 슈사쿠 선생이 동물 애호가였다는 걸,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동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작가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는 걸 새삼 엔도 슈사쿠를 읽으면서 깨닫게 됐다. <깊은 강>에 등장하는 다롄의 검둥이나 구관조 모두 엔도 슈사쿠의 삶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가정불화 때문에 부모님들이 이혼하게 되시면서, 한 시절을 자신과 함께 했던 만주견 검둥이와 강제 이별하게 되었다. 이별은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런 것처럼 쉽지 않았으리라. 십대 소년에게는 더더욱. 훗날 선생은 자신의 약함과 비겁함 때문에 검둥이를 내지로 데려 오지 못한 것에 대해 깊은 상처를 입었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훗날 만나게 되는 흰둥이와 먹보 등등의 다른 반려동물에게 속죄의 마음으로 더 잘했다고 하던가.

 

보통의 경우 댕댕이들을 좋아하는 이들은 야옹이는 별로라고 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선생은 댕댕이와 야옹이 모두를 사랑하고 또 그 사이에 별스러운 아기가 태어나면 그 녀석들을 이용해서 돈벌이도 하고 싶다는 망상에 가까운 고백도 서슴지 않는다. , 신의 사랑과 인간의 연약함을 문학적으로 표현하시던 작가가 선생이 맞단 말인가요? 놀라울 따름이다. 동시에 유쾌한 생각도 들었다. 작가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라는 점에서 말이다.

 

청년 시절, 전범국의 국민으로 프랑스 리옹 유학시절에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 주던 리옹 공원의 원숭이도 있었다고 한다. 백인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보기 드문 동양인 게다가 전범국 출신이니 누구 하나 살갑게 다가와주지 않았으리라. 그곳의 암컷원숭이거 선생을 보고 입술을 살짝 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전문가에게 물어 보니 그것은 사랑에 빠진 원숭이의 행동이었다고. 인간 여성에게도 사랑 받지 못한 선생이 원숭이에겐 연모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선생은 오늘날의 아이들이 동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게 좋다고 강조한다. 아무래도 PC 시절이다 보니 애완이라는 표현보다는 반려가 맞는 말일 듯 싶다. 나도 얼마 전에, 동네 개천에 가서 득시글거리는 다슬기 녀석을 다수 체포해다가 길러 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녀석들의 섭생에 대해 정보가 전무했던 탓으로 돌려야 할까. 지인의 딸이 14마리의 송사리들과 수조 일색을 선물했다는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녀석들은 차례로 용궁으로 가고 단 한 마리 남은 녀석이 힘차세 수조 속을 헤엄치는 장면이라. 아니 그럴려면 일단 물가에 나가 송사리부터 잡아야 하는 건 아니고? 아서라 내 한 몸 챙기기에도 버거운 판에 어떤 생명을 내가 책임진단 말이냐.

 

엔도 슈사쿠 선생은 또한 디즈니 만화를 통해 의인화되고 순화된 동물들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특히 판다가 그렇다. 내가 듣기로는 판다란 녀석은 옛날 난폭한 짐승의 후예라고 하던데, 그 손발의 모양이 그렇다고 한다. 지금은 지구촌 어디서도 대환영 받는 중국의 특산 동물이 아니던가. 하긴 지난번에 녀석을 알현하기 위해 꿈과 환상의 나라를 방문했더니 존귀하신 몸이 오수를 즐기고 있다고 하여, 방해하지 말라는 문구를 보고는 좀 놀랐다. , 판다가 동물원의 보통 동물과 달리 상전이시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튼 디즈니에서는 동물 본성을 순치하고 의인화해서, 원래 동물의 이미지를 알 수 없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아무래도 못생긴 두꺼비나 발이 없어 흉측한 모양의 뱀보다는 왠지 푸근해 보이고, 귀염이 폭발하는 판다 같은 녀석들이 인기가 있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게다가 인형으로 만들어도 판다가 훨씬 인기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은 거의 모든 동물들을 키워본 경험이 있으신 것 같다. 자신 말고는 가족 중에서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이 없어서 좀 문제가 되긴 했겠지만 말이다. 동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식물계에까지 발을 들이는 모습에서는 정말 대단한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계절 피고 지는 꽃이 나팔꽃이라는 말에 혹해서 당장 나가서 나팔꽃 씨를 받아와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번에 받아온 마리골드 씨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던데 말이지.

 

엔도 슈사쿠 선생의 작품 중에 지금은 절판된 <유모아 극장>이라는 책이 있다고 하던데, 선생이 구사하는 유머는 또 어떠한지 궁금하다. 선생의 동물기는 참 매력적이었다. 읽을 책들이 많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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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8-22 14: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저도 여러 동물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나네요. 식물과 동물 모두가 소중한 생명이지만, 주는 의미는 다른 듯 합니다. 식물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며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면, 동물은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어주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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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8-23 10:55   좋아요 1 | URL
저는 아직도 다슬기와 메뚜기
잠자리를 잡으러 다닌답니다.

어제도 메뚜기 5마리를 잡았
습니다. 물론 나중에 다 풀어
주었습니다.

함께 살아감의 즐거움!!!

mini74 2021-08-23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댕댕이도 야옹이도 다 좋아요. 그런데 우리집 댕댕이가 야옹이를 무서워해요 ㅎㅎ 외롭고 쭈구리였던 지금도 그렇지만 ㅠㅠ 그런 시절 나를 태양처럼 봐주던 동물들이 큰 위로가 된 기억이 ㅠㅠ 저는 잘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숩니다. 까칠한 사춘기아이들이 동물앞에선 혀 짧은 소리하며 예뻐하는 거 보면 고마운 존재고 미안한 존재고. 그렇지요 ㅎㅎ

레삭매냐 2021-08-23 10:56   좋아요 1 | URL
오오 댕댕이 야옹스 러버
시로군요.

어제도 공원에 나가서 메뚜기
잡으러 뛰어 다니는데, 댕댕이
들이 신나서 마구 뛰댕기더라
구요.

누군가로부터의 위안 !!!
아이들은 정말 동물들을 좋아
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