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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센구미 혈풍록
시바 료타로 지음, 김성기 옮김 / 창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714/pimg_7234051033022638.jpg)
오래전부터 사냥하고 있던 책이 있었으니 그 책이 바로 오늘 다 읽은 시바 료타로의 <신센구미 혈풍록>이다. 내가 이 책의 존재를 알았을 때, 이미 책은 절판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막 이 책을 구하고 그랬다는 건 아니다.
사실 작년 여름에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야에스>와 <오다 노부나가>를 읽지 않고 또 작년 말 올해 초에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니까 넥스트 레벨로 가기 위한 사전 정비작업을 마쳤다고나 할까.
신센구미라는 조직에 대해서는 한때 즐겨 보던 만화 <바람의 검심>을 통해 알게 됐다. 유신지사 켄신과 맞짱을 뜬 인물 중의 하나로 등장하는 캐릭이 바로 신센구미 3번대 조장 사이토 하지메였다. 실력 면에서 막부말 최강이었다는(말 그대로 전설일 지도 모르겠다) 켄신과 버금가는 고수가 바로 유신 지사들의 숙적 사이토 하지메였다. 나주에 후지타 고로라는 이름의 경관으로 신분을 바꿔 켄신과 협력했지 아마. <신센구미 혈풍록>에도 사이토 하지메가 등장하는데 시바 료타로는 나중에 야마구치 하지메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1863년 교토의 미부 지역에서 아이즈 번의 지원을 받으며 일단 무사들로 결성된 신센구미는 테러리스트 집단이었다. 미토 번에서 개발한 존왕양이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로닌 출신 사무라이들은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을 중심으로 한 도막파에 대항해서 좌막의 선봉에서 상대 유진지사들을 암살하고, 교토의 치안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갖은 폭력을 행사했다. 곤도 이사미 국장을 중심으로 한 오키타 소지 그리고 히지카타 도시조 3인방이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신센구미 혈풍록>은 모두 15개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신센구미 대원들은 말로는 존왕양이를 주창하지만, 실제 그들의 본질은 스러져 가는 구질서를 지키려고 했던 이익 추구 집단에 불과했다. 엄격한 규율로 대원들을 처리하면서 배신자들은 색출해서 참수와 할복을 강요했다. 어느 번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던 실력 있는 로닌들이 다수 지원하고, 아이즈 번의 후원을 받으면서 교토에서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막부 말이라는 시대적 전환기와 난세에 칼 한 자루에 자신의 운명을 걸고 스러져 간 숱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시기야말로 일본 (역사소설) 작가들이 센고쿠 시대와 더불어 가장 애정하는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에도 바쿠후 시절 같이 밋밋하고 아무런 일도 없는 그런 시절에 무슨 이야깃거리가 있을까. 당연히 구질서와 체제가 붕괴되고, 그 틈을 타 기존의 질서를 뒤엎어 버리려는 시도와 그것을 막으려는 반동 세력 간의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는 순간이야말로 당연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굽시니스트 작가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에도 등장한 이케다야 사건(낙양 동란), 금문의 정변, 사쓰에이 전쟁 등등을 다시 만나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처음에는 과격한 방식으로 존왕양이를 주창했던 조슈 번과 경쟁하면서 아이즈 번과 협력해서 조슈 번을 몰아내기도 했던 사쓰마가 조슈와 동맹을 맺고 결국 에도 바쿠후를 무너뜨리지 않았던가. 메이지 정부군의 승리로 귀결된 도바 후시미 전투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신센구미가 가지고 있던 나무 대포 혹은 청동 대포로 서양에서 성능이 입증된 강선으로 만들어진 신식 대포를 상대로 무모하게 돌격하는 신센구미 대원들의 모습에서는 센고쿠 시대의 막무가내 정신이 연상되기도 했다.
신센구미는 대원들의 안위보다 조직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상시적인 감찰로 대원들을 옥죄었다. 갖가지 죄목으로 내부 인사들을 숙청하는 건 기본이었고, 초대 국장이었던 세리자와 가모 같은 경우는 곤도 이사미와의 권력투쟁 와중에 암살되기도 했다. 일단 신센구미에 가입하면 탈퇴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수하를 이끌고 조직을 떠난 이토 가시타로의 암살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혈풍록’이라는 제목에서부터 피바람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출발해서 모욕을 당했다고 칼싸움을 벌이고 전투에서 부상당하고 도주했다는 이유로 배를 가르는 등의 이야기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긴 여전히 전근대적 사고가 지배하던 시절의 인물들을 현대인의 시점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곤도 이사미만 하더라도, 도쿠가와 바쿠 시스템에서 모든 가치들이 생성된다고 믿었다. 그 가치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은 가차 없이 베어 넘겼다.
시바 료타로는 실존 인물들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조사를 바탕으로 해서 신문 기자 출신 작가답게 마치 현장 리포트를 보는 듯한 그런 생생한 보고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군더더기가 없고 간결하고, 속도감이 넘치는 구성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불필요하게 피와 살이 튀는 폭력적인 장면들이 넘실거리지만, 그 또한 그 시대에 대한 하나의 스케치가 아니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재미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 뒤를 살펴보니 신센구미의 또 다른 주역 히지카타 도시조를 주인공으로 삼은 <타올라라 검> 3부작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혹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나 싶어 검색해 보니 없단다. 중고로도 구할 길이 없고... 같은 하늘 아래 살다 보면 언젠가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씨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