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물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21년 1월
평점 :

놀랍고 무서운 책을 만난 후과 제 2탄이다. 알베르트 망겔 선생의 <끝내주는 괴물들>을 읽고 나서 바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읽었다. 그런 다음에 바로 알라딘에 주문을 해서 <보물섬>을 읽었다. 아, 덤으로 <로빈슨 크루소>도 왔다. 보물섬의 경우에는 버전이 너무 많아서 고민에 빠질 정도였다. 연암서가에서 최근에 새로운 번역으로 나온 책을 골랐다. 어제 받아서 오늘 아침 출근길에 모두 읽었다.
재미와 교훈 두 가지 토끼를 다 잡은 성공작이라는 느낌이다. 어려서 어린이 동화로 만난 책들의 원전은 나중에 커서 거의 읽지 않게 된다. 이유는 이미 읽어서 내용을 모두 안다는 그런 자만감(?)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또 그렇지가 않더라. 어려서 만난 책과 세상의 이치를 조금은 알고 나서 만난 책하고는 천지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이번에 만난 보물섬도 그랬다.
줄거리야 우리 동지들이 모두 알고 있을 테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나에게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변화무쌍한 캐릭터 롱 존 실버가 추구하는 황금 혹은 보물은 현대의 로또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8세기에 해적은 제국의 안전과 질서 그리고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그야말로 최고의 악당들이었다. 요즘에는 디즈니 영화들에서 해적이 낭만적으로 그려지면서 그들의 악행이 희석되는 느낌이지만, 당시 해적이 잡히면 소설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활대에 매달거나 고문을 해서 죽였다. 심지어 눈을 감지 못하게 실로 꿰맸다는 그런 악랄한 대처방식도 있었다. 그야말로 해적들은 공공의 적이었다.
망겔 선생의 책에서도 외다리 해적 롱 존 실버가 지닌 이중성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한다. 그는 천하의 악당이면서 재물이 생기면 바로 럼주로 대변되는 쾌락에 소비해 버리는 여느 해적과 달리 안락한 노후를 위해 투자도 할 줄 아는 그런 싸나이였다. 해적답게 자신의 본색을 철저하게 감추고 선상 요리사(the sea cook)로 변신해서 목적을 향해 내달린다. 물론 그의 목적은 아무런 노동의 대가 없이 얻게 될 일확천금, 지금으로 말하자면 로또인 것이다. 아 그리고 보니 내가 이번주 로또를 샀던가. 소설의 화자를 맡은 짐 호킨스는 이런 롱 존 실버를 지근거리에서 관찰하고 분석한다.
여인숙집 아들 짐 호킨스는 우연히 자신의 집에 투숙하던 해적 빌리 본즈가 남긴 자그마치 70만 파운드의 금화의 소재지가 그려진 보물지도를 발견하면서 파란만장한 모험에 나서게 된다. 스티븐슨 작가의 <보물섬>은 전형적인 ‘빌둥스로만’이다. 우리말로는 교양소설 혹은 성장소설로도 번역이 되는 말인 것 같은데,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짐 호킨스가 보물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비로소 ‘신사’로 거듭나게 된다는 점이다.
이거야말로 로맨스 소설의 전형이 아닌가 말이다. 사실 지금은 로맨스 소설이 연애소설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지만, 이 소설이 쓰일 당시만 하더라도 로맨스 소설은 모험소설을 이르는 말이었다고 한다. 한수 배웠다. 짐 호킨스는 보물섬을 찾아 탑승한 히스파니올라 호에서 계속해서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이런 제멋대로 행동양식은 궁극적으로 리브지 의사선생과 트렐로니 대지주 일행에게 도움이 되었지만, 하마터면 해적들에게 잡혀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위험천만한 상황의 연속이기도 했다. 하긴, 모험소설에서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위험 정도는 가뿐하게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일 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짐 호킨스가 벤 건이 마련해 둔 코라클 보트를 타고 망망대해에 나서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는 왠지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탐 행크스가 연상되기도 했다.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 줄도 모르고, 조각배에 몸을 싣고 나서는 무모함에 그만 기가 질려 버릴 지경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배에 올라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고는 하더라도, 노련한 포수이자 해적 이스라엘 핸즈와 대결하는 장면도 압권이었다. 물론, 짐 호킨스가 사과통에서 선상 반란을 도모하는 해적들의 모의를 사전에 엿듣지 않았더라면 파국이 좀 더 일찍 오지 않았을까도 싶다.
수적으로 절대열세인 선장 일행이 보물섬에 도착해서 자신들보다 3배나 많은 다수의 해적들을 상대로 요새에서 싸우는 장면에 대한 연출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해적들의 지휘관은 노련한 롱 존 실버로 강공과 협상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선장들을 압박한다. 한편, 스티븐슨 작가는 이야기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벤 건이라는 섬에 ‘마룬’형에 처해진 해적을 새로운 인물로 투입한다. 악당인 동시에 짐 호킨스를 난폭한 해적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서는 이거 심성은 좋은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할 정도의 이중성을 지닌 인간으로도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이중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나, 롱 존 실버의 경우에는 오로지 자신의 생존과 개인의 영달의 추구라는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적합한 인간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보물섬 탐험은 숱한 사상자들이 나고 결국 브리스틀에는 벤 건을 포함해서 5명의 생존자들이 돌아오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물론 롱 존 실버는 도중에 자기 몫의 금화를 챙겨 도주해 버린다. 어쩌면 선장들은 그의 도주를 방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벤 건은 아예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를 도와주었다고 했던가. 모험여행의 전주이자 실행자였던 트렐로니 대지주가 거의 모든 금화를 챙기고 꼴랑 벤 건에게 1천 파운드만 주었다는 사실을 읽으면서는 자본의 폐해가 연상됐다. 다 같이 죽을 고생을 해서 70만 파운드를 챙겼는데 그런 식의 분배를 했단 말이지. 그런 게 자본의 작동 방식이라고 한다면 내 할 말이 없다. 소설이 냉정하게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었다.
교훈은 됐고, 다른 건 몰라도 재미 하나 만큼은 최고였다. 어른도 이래 재밌으니 아이들에게는 말해서 뭘 하나 그래. 영국 수상이었던 글래드스톤도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애썼다고. 스티븐슨의 작가의 <보물섬>은 이야기의 재조합이라는 점에서도 압도적이다. 역자는 후기에서 허먼 멜빌의 <모디 빅>과의 유사성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공감하는 부분이 적잖이 있었다. 신체장애를 가진 쿨내가 진동하는 악당 해적의 이미지는 아마 스티븐슨이 창조해낸 롱 존 실버의 그것을 능가하는 캐릭터가 없을 것 같다.
내가 다음에 읽을 책은 <보물섬>과 어제 같이 도착한 <로빈슨 크루소>다. 알베르토 망겔 3탄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