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망겔의 신간 <끝내주는 괴물들>을 읽었다. 이 책은 나에게 놀랍고 정말 위험한 책이었다.
우리 책쟁이들 세계에 있어 거의 초절정의 고수격인 망겔 선생이 보여주는 37개의 책과 그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깊이 있는 해석이 가능하구나 싶었다. 그야말로 고수의 품격이라고나 할까. 내가 읽는 피상적인 분석 혹은 해석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래서 망겔, 망겔하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서두에 선포한 후자의 경우에는 이런 이유에서다. 가지고 있는 책들이라면 모든 걸 다 때려 치우고 당장 집어서 읽어야 할 것 같은 그런 강박 때문이다. 소유하지 않은 책이라면 왠지 중고사냥에 나서야 할 것 같은 그럼 느낌적 느낌. 첫 번째 주인공인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미스터 보바리에 대한 명징한 분석을 읽고 나자, 얼마 전에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마담 보바리>가 바로 읽고 싶어졌다. 아직 중고로 풀리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자.
보유하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설명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창조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에 망겔 선생은 색다른 해석을 시도한다. 닥터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괴물’은 자신의 창조주에게 자신을 만들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괴물은 순전히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는 자신의 짝과 라틴 아메리카의 모처에 숨어 들어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조용하게 살고 싶었으나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쫓기는 사냥감으로 만들어 그를 추적한다. 그렇게 극단에 몰린 존재가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올해 안으로 반드시 읽어야 한 리스트에 <프랑켄슈타인>을 올렸다.
<해저 2만리>의 주인공 네모 선장이라는 캐릭터도 요주의 인물이다. 오디세우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바디’가 바로 네모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망겔 선생급이 아니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런 정보다. 내가 무슨 수로 ‘네모’의 의미가 아무도 아닌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가 자그마치 1만 2천권의 장서를 보유한 애서가이며, 동시에 프루동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의 면모마저 가지고 있다니 그야말로 놀랄 노자가 아닌가. 한동안 쥘 베른의 소설들을 열심히 읽었던 것 같은데 <해저 2만리>를 내가 읽었던가. 아니라면 이 책 또한 목록에 올릴 만하다. 이렇게 때문에 내가 망겔의 신간을 위험한 책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읽어야 할 책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날 판이다.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에 대한 망겔 선생의 잘못된 해석도 재밌었다. 그렇지, 아무래도 한자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서구인이 한자 풀이를 제대로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 책읽기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오독이라고 나는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문학평론가도 아니고 순수하게 문학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적당한 수준의 오독 또한 독서라는 장거리 여정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동서고금을 오가는 망겔 선생의 책읽기는 중국의 기서 오승은의 <서유기>도 피해 갈 수가 없다. 그는 삼장법사 현장이나 실질적인 주인공인 원숭이 손오공이나 저팔계보다 사실 더 존재감이 없는 제자 사오정에 주목한다. 참 영어로 사오정의 이름은 샌디(Sandy)라고 한다. 우리에게 샌디는 물귀신 같은 존재로 <날아라 슈퍼보드>의 영향으로 귀가 어두워 뭐든 잘 알아듣지 못하는 캐릭터의 전형인데, 망겔 선생의 분석은 또 다르다. 먹깨비에 호색한인 저팔계가 서역으로 가는 일행의 걸림돌과 유머를 맡고 있다면, 우리의 샌디는 두 번째 제자 저팔계와 달리 매사에 균형을 잡고 이성적 추론을 해내는 책사 같은 역할이라는 분석이다. 오 놀랍군 그래. 정말 샌디가 그런 역할이라고? 진짜 알고 싶다면, 원전을 만나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개인적으로 망겔 선생이 소개한 책 중에 라몬 델 바예인클란의 <폭군 반데라스>가 가장 읽고 싶다. 문제는 아직 국내에 번역이 되지 않은 책이고, 앞으로도 요원하기만 한 책이라는 점이다. 라틴 아메리카 폭군을 주제로 한 책들 중에서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이 제법 된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를 필두로 해서, 미겔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이건 소장하고 있지만 못 읽었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르테미오 크루스의 죽음> 등등.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족장의 가을>은 중고책으로 사려고 대기 중이다. 이래서 내가 처음에 이 책이 위험하다고 말했지.
우리 책쟁이들의 독서욕을 마구 자극하는 망겔의 책,
이거 물건이다.
(결국 도서관에 가서 이 두 책을 빌려 왔음,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도 있으면 빌리려고 했으나 부키에서 나온 버전이 대여중이라 아숩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