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박람회
외르케니 이슈트반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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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순전히 폴스태프님 덕분에 읽게 되었다는 점을 리뷰에 앞서 밝힌다. 우리 책쟁이들은 호상간의 자극으로 책읽기에 나선다. 누군가 내가 모르는 미지의 책을 읽었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책 검색에 들어간다. 물론 모든 책이 해당되는 건 아니다. 책쟁이들도 나름 대로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혜안이 자동으로 장착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궁금한 책은 견디지 못하고 사거나 혹은 도서관에 가서 빌리거나 하는 방식으로 접하게 된다. 이번에는 도서관을 이용했다.

 

처음 들어보는 헝가리 출신 작가 외르케니 이슈트반 작가의 <장미 박람회>는 죽음을 다큐멘터리로 담아 보겠다는 야심찬 기획을 한 조연출 이제는 신참내기 PD 코롬 아론이 높으신 장관님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한다. 직속상관 울러릭에게는 퇴짜를 맞았지만, 높은 빽을 써서 코롬 아론은 자신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가동시키는데 성공한다. 물론 세 명의 후보자들을 미리 선정해 두었다. 아론은 영악한 선수였다.

 

죽음은 우리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그런 숙명이다. 다만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그 순간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 채 아니면 모르는 채 하면서 살고 있다. 아론의 기획은 참신했다. 다만, 카메라에 그 죽음을 담는다는 게 문제였다. 개인적으로 소싯적에 영상물 촬영도 해보고, 숱한 거절을 당하면서 거리 인터뷰를 해본 결과 카메라가 일단 돌기 시작하면 리얼리티는 사라지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 리얼리티가 되기 위해서는 피사체가 카메라의 존재를 몰라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실제로 아론과 그의 촬영팀들은 시청자들에게 보기 좋은 샷을 뽑아내기 위해 소위 주작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지나가 버린 순간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실제로 첫 번째 대상자는 촬영 허가가 나기 전에 이미 죽어 버렸다. 그는 언어학자로 17년간 같이 살았던 아내와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 두 번째 저서 집필에 자신에게 남은 모든 것을 홀랑 태워 버렸다. 그리고 인터뷰의 바통은 그의 아내가 받아 들었다. 홀로 남은 미망인은 금전적 보상이 필요했고, 아론은 그것을 제공해 줄 수가 있었다. 왠지 금전이라는 보상 앞에 죽음마저도 초라해져 버리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다음 주자는 화원 노동자인 미코 부인이었다. 그녀는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이번부터 아론의 주작질이 시작되었던가. 지나가 버린 암선고 장면을 위해 아론은 재설정을 주문한다. 그것 참... 나중에 이런 사실을 시청자들이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본 것을 리얼리티로 받아 들일 수 있을까? 나라면 아마 아닐 것 같다. 어쨌든 장미를 가꾸는 미코 부인은 장미 박람회에 자신의 화원이 출품한 작품을 입상을 기대한다. 이 모든 건, 촬영을 위한 좋은 소재로 이용된다. 카메라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긴 촬영 분량 대신 리얼리티를 전달할 수 있는 압축된 몇 컷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코 부인이 당면한 죽음의 경우에는 좀 더 케이스가 복잡하다. 자신이 죽고 나면 홀로 남은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어머니의 봉양 문제가 상존한다. 그렇다, 이러저러한 족쇄에 사로 잡힌 우리 인간은 자신의 소멸로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소멸된 뒤에도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한 생존의 방법도 도모해 두어야 한다. 그래서 미코 부인은 자신의 병간호와 뒤에 남을 어머니를 부탁하기 위해 살 집을 찾던 누오페르 가족과 동거를 강행한다. 내가 왜 강행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단순하다, 그것은 갈등의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점점 죽어가는 미코 부인은 어머니는커녕 자신조차 돌볼 수가 없는 상태로 접어든다. 아론의 촬영팀은 그런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을 집안의 개조도 마다하지 않는다. 죽음의 리얼리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시작된 촬영이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는 장면들에 점점 불쾌감이 상승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외르케니 이슈트반 작가는 바로 이런 점을 적확하게 타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자는 아론의 지인, 바람둥이 작가이자 리포터 J. 너지다. 그는 수년 전에 심장 발작을 일으킨 바 있다. 궁금한 것은 당장 죽을병에 걸린 사람도 아닌데, 언제 그가 사신의 방문을 받을 줄 알고 촬영을 시작한단 말인가? 그것 참. 하긴 또 어떤 면에서 본다면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아론 촬영팀의 기획이 아주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J. 너지 주변에는 여자가 끊이지 않는다. 전 부인을 비롯해서, 지금의 여자친구가 잇달아 J. 너지를 방문하고 음식을 전달한다. 심지어 멋진 주치의 실비어마저 그에게 빠져서 아론의 촬영을 방해하기도 한다. 얼마나 실비어가 매력적인지 촬영 기사들은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주자인 J. 너지보다 실비어에게 카메라를 돌릴 판이다. 수면제를 먹었는지 어쨌는지 해서 결국 J. 너지도 죽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외르케니 이슈트반은 거창하게 죽음에 대한 설교를 늘어놓지 않는다.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아론은 암전과 툭툭 끊어지는 내러티브가 특징인 짐 자무쉬의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기법으로 우리 주변의 죽음을 추적한다. 결국 죽음은 시간과의 싸움이 아니던가. 시간은 모름지기 모든 것을 파괴하기 마련인데, 유한한 존재인 우리 인간 역시 예외는 아니더라 뭐 그런 식의 결말로 가는 건가.

 

미코 부인의 케이스까지는 그런 대로 유지되던 긴장감은 마지막 주자인 J. 너지로 넘어가면서 동력을 잃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원래 이 책을 사서 보려고 했었는데, 도서관에서 실물을 영접하고 그 다음에 다 읽은 다음에는 빌려서 보길 잘했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꾸만 책이 늘어나다 보니 책 구매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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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6-01 14:33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전 이 책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저하고 맞지 않는다는 얘기도 했고요.
또 추천했다고 해도 세상만사가 어찌 전타석 안타일 수 있겠습니까.
안타도 치고, 홈런도 치지만 주로 내야 땅볼에 가끔 삼진도 먹고 아쉬운 파울 홈런도 치는 거지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6-01 14:54   좋아요 9 | URL
저한테 이 책은 번트 같은 책이었습니다.
저를 희생해서 주자를 2루로 진출하게 하려고 했으나 얼결에 저는 1루에 무사 안착, 그러나 주자 2루 진출은 실패! 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6-01 15:00   좋아요 8 | URL
아놔, 제가 딱 야수선택 정도 되겄네요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바로 아래
잠자냥님께서 그 상황을 대입해 주셨
나이다 - 오마이가뜨 ~!

네네 통했삽니다.

syo 2021-06-01 19:49   좋아요 4 | URL
여기가 바로 그 알라딘 소설 리뷰 계의 거대한 신비, 소설들이 그냥 한번 들어오면 벗어나지를 못하고 걸려든다는 ˝레-잠-폴 삼각지대˝의 회동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현장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이 경이로운 풍경을 마주한 다른 이웃님들 누구도 댓글 못 잇고 그저 좋아요만 누르시고 갔지만 철없는 syo가 찬물 끼얹고 도망칩니다 ㅎㅎㅎㅎ

새파랑 2021-06-01 15: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책 전문가의 상호 주고받는 추천이라니 너무 대단합니다~!

레삭매냐 2021-06-01 21:30   좋아요 1 | URL
뭐랄까 적극적인 추천이라기
보다는 은연 중에 느끼게 되는
압박이라고나 할까요 ㅋㅋ

아니 다른 이웃분들이 이런 책
을? 하면서 책탑이라는 개미지
옥에 자발적으로 빠지게 됩니다.